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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록 May 27. 2019

지금, 이 순간이 아니라면 누리지 못했을 행복들

어느덧 유럽 땅을 밟은 지 일주일이 지났다. 일주일간의 여행을 총평하자면, 비교적 괜찮았다고 평을 내릴 수 있겠다. 어머니는 나름대로 시차 적응을 잘 해내고 계시고, 음식도 아직까지는 어려움 없이 잘 드시고 계시다. 우리의 첫 숙소는 무척 좁은 데다, 침대를 같이 써야 하는 상황이라 어머니께 매우 죄송한 마음이 컸는데 어머니는 그럼에도 괜찮다고, 편하다고 해주셨다. 나는 하루에도 수십 번 어머니의 상태를 묻는다. 건강은 괜찮은지, 다리 상태는 어떤지, 더 걸을 수 있겠는지, 저기 카페에서 쉬다가 가는 게 좋을지 등 많은 것을 어머니에게 물어본다. 이번 여행의 모든 초점은 어머니에게 맞춰져 있다. 나는 이미 다녀온 것을 한 번 더 가는 느낌이라면 어머니는 모든 것을 처음 마주하고 계실 테니까.

5년 전에 형과 함께 여행했을 때는 사실 형을 많이 의지했다. 여행 계획과 일정, 의사소통을 비롯한 많은 것을 내가 담당했을지 몰라도 모든 일정을 묵묵히 함께해주고, 짐을 나눠 들어주는 형이 있어 무척 든든했다. 하지만 어머니와 함께하는 이번 여행은 든든함보다는 걱정이 앞서는 것이 사실이다. 20대 초반의 둘이 여행했던 것과는 달리 어머니는 50대의 나이이기에 체력적으로 부침이 크실 것이라는 걱정 때문이다. 

나 혼자 잔뜩 걱정하고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어머니는 일주일 내내 무척 행복해하셨다. 소소하게는 집에서 가져온 누룽지를 끓여 먹으며 반찬으로 김치를 먹을 때 행복해하시고, 거창하게는 대단한 유럽의 미술품을 보면서, 그들의 오랜 역사를 증명하는 건축물을 보면서 행복해하셨다. 심지어 잠시 쉬기 위해서 들른 스타벅스에서 와이파이가 빵빵 터지기만 해도 어머니는 행복해하셨다. 나는 어머니가 새로운 것을 보았기 때문에, 새로운 장소에 왔기 때문에 행복하신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저 어머니는 어머니 나름대로 행복을 누리고 있었다. 어머니는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으신 뒤에 잘 하지도 않는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올린다. 팔로우에게, 친구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기록하고 기억하기 위해서. 오늘 내가 지금 이곳에 있다는 것을 나중에도 기억하기 위해서. 

나의 카메라 속에 담긴 어머니의 표정은 다른 걱정 없이 온전히 행복해 보였다. 지금, 이 순간을 오롯이 누리고 계시는 것처럼 보였다.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다시 유럽을 밟은 나와 달리 어머니에게 유럽은 지금이 아니면 또다시 오기 힘든 곳일지도 모른다. 지금, 이 순간을 즐기지 못한다면, 지금, 이 순간을 핸드폰에 두 눈에 담아두지 못한다면 언제 또 담을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기에 어머니는 말 그대로 ‘Carpe Diem’을 해내고 계시다. 

‘지금이 아니라면’이라는 마음으로 준비했던 이번 여행이다. 이제 겨우 일주일이 지났지만, 정말 여행하길 잘 선택했다는 확신이 내 마음속을 가득 채웠다. 이번 여행이 아니었다면 어머니의 행복한 모습을 함께하지 못했을 것이고, 그런 어머니를 보면서 나 역시 행복한 경험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 겨우 우리의 여행이 시작되었을 뿐이다. 이제 겨우 첫 발자국을 내디뎠을 뿐이다. 앞으로 우리에게는 2달 남짓한 시간이 남아있다. 어머니의 기억 속에 이번 여행이 최고의 기억으로 남을 수 있도록 더 더 많이 힘내야겠다. 더 좋은 기억이 되도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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