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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록 May 29. 2019

당연하다 생각했던 모든 것과 당연하지 않은 이야기

런던에서 첼시 경기를 관람했던 것과 달리 런던의 또 다른 빅클럽, 손흥민 선수가 소속된 토트넘 경기는 아쉽게도 영국 일정 중 사우샘프턴 원정밖에 없었다. 런던에서 사우샘프턴까지는 차로 이동할 경우 약 2시간 남짓한 거리다. 다만 런던 지하철을 타고 경기를 보러 가는 것과 런던을 벗어나서 고속버스를 타고 경기를 보러 가는 것은 큰 차이가 있기 때문에 꽤 망설였다. 특히 어머니와 함께하는 여행이기에 내 욕심 때문에 어머니가 괜히 고생하는 게 아닌가 싶어 고민은 더욱 커졌다.

하지만, 손흥민 선수 경기를 또 언제 볼 수 있을지도 모르는 데다, 토트넘 홈경기는 멤버십이 없으면 티켓을 구입하지도 못하기에 일반판매로 구입할 수 있는 원정이 아니면 경기를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간절한 마음으로 나는 어머니께 의사를 여쭤봤고, 다행히 어머니께서 흔쾌히 허락해주셔서 함께 축구 경기를 보러 가기로 했다.

아침 일찍 런던에서 버스를 타고 약 12시쯤 사우샘프턴에 도착했다.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경기 전까지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현지 시각으로 2시가 되었을 무렵 토트넘의 선발명단이 나왔다. 당연히 선발에 포함되었을 것으로 생각했던 손흥민 선수가 후보 명단에 있었다. 명단을 마주한 순간 무척 당혹스러웠다. 어머니를 설득해서 런던에서 2시간이나 걸려서 여길 왔는데, 손흥민 선수가 선발이 아니라니. 심지어 손흥민 선수는 그 경기 전까지 출전한 모든 경기에서 공격 포인트를 기록할 만큼 컨디션이 최상이었고, 공격진의 부상이 계속 이어졌기 때문에 손흥민 선수가 없으면 공격의 무게감이 무척 떨어지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흥민 선수는 선발명단이 아닌 후보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순간적으로 짜증이 밀려왔다.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인가. 손흥민 선수가 뛰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런던에서 2시간 걸려서 이곳까지 왔는데. 손흥민 선수의 출전을 확신할 수조차 없는 상황이라니. 약간 당혹스러운 감정과 더불어 짜증 나는 감정에 휩싸여 당황하던 그때 문득 어찌 보면 이게 당연할 수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갔다. 지금까지 부상자 명단에 있던 선수가 복귀했으니 그를 선발로, 손흥민 선수는 지금까지 계속 선발로 뛰면서 체력적인 어려움이 있을 테니 후보로 경기를 시작하는 게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감독 역시 손흥민 선수를 선발로 출전시키고 싶었겠지만, 많은 것을 고려해본 뒤 후보 명단에 넣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고의 연속을 마주하며 무언가를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새삼 깨달았다. ‘이 사람은 당연히 내 편이겠지’, ‘내가 여행하는 기간 내내 날씨가 좋은 것이 당연하겠지’처럼 ‘무언가가 당연하다’라고 치부해버리면, 자연스레 나에게 주어지는 결과물은 그야말로 당연함 혹은 그보다 더 큰 실망감일 것이다. 세상에는 내 뜻대로, 당연하게 주어지는 결과물이 무척이나 적다는 것을 지금까지 충분히 경험했으니까. 세상은 늘 나의 기대와 맞지 않아서 때로는 힘겹고 때로는 즐겁다는 것을 지금껏 배웠으니까.

랄라스윗의 ‘당연하지 않은 이야기’에는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계절과 영원할 것이라 생각했던 사랑도 당연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순간, 흔하고 지루해져 버린다고 말한다. 

인간은 무척이나 이기적이라서 주어진 것을 당연하게, 주어지지 않은 것을 당연하지 않게 받아들인다. 모든 상황에 미리 앞서서 ‘이건 당연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주어진 당연한 혹은 당연하지 않은 모든 것을 감사로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감사를 알지 못하고, 감사를 하지 못하고 살다 보면 난 나 자신을 지독히 불행한 존재로 여길 수밖에 없었다.

오늘 경기에서 당연히 손흥민 선수가 선발이었어야 했고, 당연히 손흥민 선수가 골을 넣었어야 했고, 당연히 사우샘프턴보다 강팀이라고 일컬어지는 토트넘이 이겼어야 했지만, 오늘의 결과물 중에서 그 어느 것 하나 맞아떨어진 것이 없었다.

오히려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도 못했던 사우샘프턴 팬들의 열광적인 응원과 열정, 선수들의 투지가 나를 더욱 감동하게 했고, 선발이 아닌 후보로 시작한 손흥민 선수가 경기장 밖에서 몸 푸는 모습, 정말 당장이라도 뛰고 싶다는 눈빛으로 경기장을 바라보는 모습이 나에게 더 큰 감동을 주었다. 손흥민 선수는 경기 후반 교체되었고, 교체된 직후 토트넘은 사우샘프턴에게 연속골을 허용해 2:1로 패배했다. 손흥민 선수는 경기 후 팬들의 위로를 받으며 구단 버스에 올랐다. 그는 런던으로 돌아가는 버스에 오른 뒤 무슨 생각을 했을까. 

오늘 경기에서 당연히 손흥민 선수가 선발이었어야 했고, 당연히 손흥민 선수가 골을 넣었어야 했고, 당연히 사우샘프턴보다 강팀이라고 일컬어지는 토트넘이 이겼어야 했지만, 오늘의 결과물 중에서 그 어느 것 하나 맞아떨어진 것이 없었다.

오히려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도 못했던 사우샘프턴 팬들의 열광적인 응원과 열정, 선수들의 투지가 나를 더욱 감동하게 했고, 선발이 아닌 후보로 시작한 손흥민 선수가 경기장 밖에서 몸 푸는 모습, 정말 당장이라도 뛰고 싶다는 눈빛으로 경기장을 바라보는 모습이 나에게 더 큰 감동을 주었다. 손흥민 선수는 경기 후반 교체되었고, 교체된 직후 토트넘은 사우샘프턴에게 연속골을 허용해 2:1로 패배했다. 손흥민 선수는 경기 후 팬들의 위로를 받으며 구단 버스에 올랐다. 그는 버스에 오른 뒤 무슨 생각을 했을까.

오늘은 결국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결과물은 하나도 얻지 못했던 하루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오늘 하루가 소중하게 기억될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내가 얼마나 간사한 존재인지 스스로 깨닫게 되었기 때문일 것 같다. 

오늘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것에 감사하고 싶다. 추운 날씨에도 사우샘프턴 원정에 함께해준 어머니 그리고 경기에 잠시 뛰면서 에이스를 나타내는 등 번호 No.7 유니폼을 입고 경기장을 누빈 손흥민 선수, 경기에 승리한 사우샘프턴 선수들과 팬들 모두에게 감사했다. 비록 처음에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경기를 봤지만 적어도 끝나는 순간에는 사우샘프턴 팬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어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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