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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록 May 25. 2019

어머니와 함께 다시 돌아온 그 자리

한국을 떠나 11시간여의 비행을 마치고 무사히 런던 히스로 공항에 도착했다. 지난 여행에서는 대부분 호스텔의 도미토리를 이용했다. 유럽은 물가가 비싸므로 도미토리로 숙소를 잡는 것이 저렴하다는 가이드북의 추천도 있었고, 한 도시에 얼마만큼 머무를지 구체적으로 계획을 하지 않아 전날이나 당일에 숙소를 예약했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만 해도 에어비앤비와 같이 숙박 공유 플랫폼이 활성화되지 않았던 것도 하나의 이유였다. 하지만 이번 어머니와의 여행을 준비하면서 숙소는 모두 에어비앤비로 선택했다. 

이번 여행은 지난번과 다르게 미리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워 준비했고 그 덕분에 여행 출발 전에 저렴한 가격에 좋은 숙소를 선택할 수 있었다. 호텔과 호스텔을 이리저리 옮겨다니던 지난 여행과 달리 이번 여행 내내 숙소로 선택한 에어비앤비는 대부분 주방을 갖추고 있었다. 주방이 구비된 에어비앤비 덕분에 숙박비와 식비를 동시에 아낄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에어비앤비를 선택한 것은 무척이나 현명한 선택이었다. 한 도시에서 적어도 한 주일 이상 머물기 때문에 짐을 풀고 편히 지낼 수 있었으며, 집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에어비앤비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이 많았지만, 적어도 내가 만났던 호스트들은 모두 친절했고 나의 만족도 역시 높았다. 

걱정했던 것과 달리 첫 숙소는 나쁘지 않았다. 2명이 머물 수 있는 최소한의 시설을 제공한 숙소였다. 물론 미리 숙소를 예약했음에도 만족스럽지 못한 곳은 런던이 유일했지만, 유럽에서도 가장 물가가 비싸고 집값 역시 턱없이 높은 런던임을 감안하면 나름대로 선방했다고 생각한다.(대부분의 유럽 도시는 지하철역과 도심과의 거리를 근거로 ZONE을 설정하는데, 도심이 1 ZONE 도심에서 떨어질수록 ZONE의 숫자가 높아지는 형태이다. 우리 숙소는 도심과는 약간 떨어진 2 ZONE과 3 ZONE의 경계에 있다.)

    

11시간의 비행을 하고 난 후라서 그런지 첫날은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기절한 것처럼 잠들었다. 푹 자고 일어난 시간은 오전 7시였다. 한국에서는 절대 상상도 못 할 시간에 일어났다. 일찍 자면 일찍 일어나게 된다는 당연한 진리를 새삼 깨달았다. 유럽에 완전히 적응하지 못한 몸을 이끌고 아침식사로 꾸역꾸역 빵과 오렌지주스를 먹었다. 한국에서는 아침을 잘 안 챙겨 먹는 데다, 빵을 먹는 경우도 드문데, 막상 여행만 오면 찾아 먹게 되는 것 같다. 일찍 눈이 떠진 만큼 부지런한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모든 준비를 마친 시간은 오전 9시. 시차 덕분에 아침 일찍부터 런던을 둘러볼 기회를 얻었다. 이번 여행을 통틀어 런던은 무려 3번이나 방문할 정도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도시지만, 여행의 설렘이 가장 클 지금 런던을 모조리 맛보고 싶었다.   

여행 첫날인 만큼 런던에서 가장 유명하고, 런던을 상징하는 랜드마크를 보러 가기로 했다. 런던 시내를 한눈에 구경할 수 있는 런던아이와 런던의 대표 랜드마크 빅 벤과 국회의사당 순으로 이동했다. 랜드마크를 마주하면서 이제야 비로소 런던에 도착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5년 전에 마주했던 모든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때와 달라진 것이 있다면 함께 여행하는 사람이 달라졌고, 위용을 자랑하던 빅 벤이 공사에 들어갔다는 것이었다. 어머니 역시 TV에서 보던 것을 직접 실물로 보니 유럽에 온 것을 실감하는 눈치셨다.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여행을 준비하길 잘했다는 생각과 더 일찍 왔으면 좋았겠다 하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어머니의 나이는 어느덧 50대 중반. 2달이 넘는 기간을 자유여행하기엔 체력적으로 무리가 될법한 나이다. 그럼에도 나의 욕심과 더불어 일정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자유여행으로 준비했다. 여행 준비과정에서 미리 어머니와 함께 운동하면서 준비했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후회가 들었다. 

오전 일정을 마치고 버킹엄 궁전과 내셔널 갤러리를 방문하기로 했다. 이 역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 걸어서 이동하기로 했다. 기껏 비싼 돈을 주고 1주일 무제한 교통권을 구매하고도 걸어 다니는 상황이라니 돌이켜보면 무척 어리석었다. 어머니의 체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선택이라는 후회가 들었던 것은 하루를 꼬박 걷고 난 이후였다.

사실 어머니는 한국에서도 운동을 그다지 하지 않는 편인 데다, 시차 때문에 어젯밤 자다 깨기를 반복하시며 정상 컨디션이 아니었다. 그런 어머니를 모시고 우리는 계속 걷고 있었다. 하루 여정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지하철에서 어머니가 피로를 못 이겨 졸고 계시는 모습을 보면서 후회는 더욱 커졌다. 조금이라도 건강한 지금 여행을 와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면서, 어머니가 새삼 나이가 많이 들었다는 생각 역시 공존했다. 첫날 여행을 통해 내가 보지 못했던 어머니의 모습을 볼 때면 가끔은 짠해지고, 가끔은 웃음이 나기도 했다.

여행 첫날, 어머니와 함께 돌아다니며 어머니가 행복해하시는 모습에 괜스레 나도 행복해졌다. 비록 어머니가 체력적으로는 힘에 부치는 모습이 역력했지만, 적어도 새로운 것을 보고 행복해하시는 모습이 정말 어린 아이 같았다. 항상 챙김을 받던 내가 도리어 어머님을 챙겨야 한다는 사실이 어색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음에 정말 감사했다. 악명 높은 런던 날씨도 오늘 하루는 우리에게 행복을 선사해주었다. 초심자의 행운이랄까. 처음 런던을 방문하는 어머니 덕에 나 역시 덩달아 행운을 누리는 것 같았다. 그렇게 오전 9시부터 시작한 일정을 5시쯤 마무리하고, 다시 숙소로 들어왔다. 오늘 런던 여행을 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첫 번째는 어머니와 함께하고 있다는 것, 두 번째는 버킹엄 궁전을 배경으로 한 사진이다.

2014VER.
2019VER.

지난 여행을 마치고,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을 꼽아본다면 바로 버킹엄 궁전을 배경으로 한 사진이다. 여행 초반이라 그 어떤 피로감도 얼굴에 담겨 있지 않았고, 처음 유럽에 도착했다는 설렘이 얼굴에 가득 담겨 있기 때문에 가장 아끼고 좋아하는 사진이다. 내 노트북의 첫 화면을 오랫동안 지킨 사진이기도 했다. 내가 처음 느꼈던 행복감을 어머니 역시 느끼고 계실까. 그때의 나처럼 어머니 역시 기대감과 행복감을 누리고 계실까 궁금해진다.

그때를 기억하며 똑같은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보았다. 그때보다 지금 조금은 성장했을까, 조금은 더 나은 사람이 되었을까 고민해본다. 뻔한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조금이라도 젊을 때, 건강할 때 많은 것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하루를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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