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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록 May 25. 2019

보통 사람들이 주목받는 세상

한국에서 알람까지 맞춰가며 예매했던 첼시와 디나모 키예프 경기 날이 밝았다. 5년 전의 유럽 여행은 축구 여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경기를 관람했던 것과는 달리 이번 여행에서는 영국에서 두 차례 관람하기로 했다. 만약 욕심을 낸다면 더 많은 경기를 볼 수 있겠지만, 나는 이번 여행만큼은 내 욕심보다는 어머니에게 더 집중하는 여행이 되고 싶었다.

한정적인 기회를 가졌기 때문에 꼭 보고 싶은 경기는 미리 예매해놓고 싶었다. 5년 전과 달리 대부분 클럽은 자체 클럽 멤버십을 운영하고 있었다. 이는 곧 멤버십이 없는 사람들은 티켓을 사기 어렵다는 뜻이고, 티켓을 사기 위해서는 많은 지출이 불가피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난 여행에서 경기장에 가서도 티켓을 살 수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관광객의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불편해진 셈이다. 다행스럽게도 내가 봤던 첼시 경기는 멤버십이 없는 사람에게도 티켓을 판매하는 일반 판매로 진행됐다. 1년에 몇 번 되지 않는 기회를 잡다니, 참 운이 좋다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됐다. 

경기장에 도착하니, 축구에 환장하는 나와는 달리 어머니는 약간 시큰둥한 눈치였다. 사실 생각해보면 당연하다. 직접 경기에 참여하는 것도 아닌데, 수많은 팬이 환호하고 분노하고, 난리가 나는 것은 도무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문제이다. 선수들과 함께 호흡하며, 선수의 아픔이 나의 아픔이고, 팀의 승리가 나의 승리로 생각하며 선수와 나를 동일시한다는 것은 참 신기한 일이다.

경기는 시종일관 홈 팀 첼시의 일방적인 주도로 진행되었다. 비교적 약팀을 상대해서 주전 공격수인 아자르와 주전 미드필더 캉테 등이 빠진 첼시였지만, 주전이 그대로 출전한 수비진은 단단했고, 공격진도 윌리안, 페드로가 잘 이끌었다. 최전방 공격수로 출전한 지루도 연계를 잘하는 명성에 걸맞게 도움 한 개를 추가하며 공격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지루는 항상 골을 넣지 못한다는 이유로 저평가받기 일쑤이지만, 나는 지루 같은 유형의 공격수도 무척이나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격수는 골로 평가받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골을 넣는 과정에서 골과 다름없는 패스와 연계, 움직임을 만들어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득점과 같은 가치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직접 경기장에서 본 지루는 계속 움직임으로 공간을 창출하고, 패스 연계로 공격을 더욱 원활하게 해주었다.

경기에 출전해서 열심히 뛰고 있는 지루를 바라보며 문득 생각난 것은 주전에 대한 욕심이었다. 언제부턴가 난 주전이 되어야겠다는 혹은 최고가 되어야겠다는 욕심이 서서히 사라졌다. 그 대신에 내가 속한 곳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이 목표가 되었다. 무언가를 시작할 때면 항상 최고가 되고 싶었고, 잘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다짐은 금세 식어버렸고, 다른 이들에게 민폐가 되기도 했다. 쉽사리 늘지 않는 실력을 탓하고, 나 자신을 깎아내리며 남들만큼 하지 못하는 나를 원망하기도 했다. 특히 악기를 배울 때, 운동할 때 이런 생각은 더욱 심해졌다. 어떤 것을 재능의 문제, 능력의 문제로 생각하자 그것을 가지지 못한 내가 초라해 보였다. 마치 남들이 가진 능력이 그들의 선천적인 재능과 능력으로 생각했고, 남모르게 했을 그들의 노력을 고려하지 않았었다. 부러운 마음에 그들이 보이는 성과만으로 그들을 폄하하기도 했었다. 다른 이가 가진 재능, 외모, 가치는 그 누구도 비교해서도 안 되고, 비교할 수도 없는 것들을 비교하려 하다 보면 결국 무너지는 것은 나 자신이었다.      

경쟁에 익숙해진 대한민국에서 능력 없음은 곧 도태됨을 일컫는다. 한 가지를 잘하는 장인보다 모든 것을 두루 잘할 수 있는 올라운드 플레이어가 더욱 주목받는다. 나 역시 올라운드 플레이어가 되기 위해 무던히 애썼다. 내가 잘하지 못하는 것을 더 잘하기 위해 스스로를 다그쳤다. 도무지 깰 수 없는 벽을 마주할 때면 절망했다. 분명히 내가 잘하는 부분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랬다.

몇 번의 절망을 경험하고 난 뒤에야 내가 잘할 수 있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게 되었다. 그러자 조금은 행복해졌고, 약간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누구나 최고가 될 수 있다면, 누구나 주전으로 선택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누군가는 백업의 역할을 감당해야 하고, 누군가는 서포터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주어진 역할에 만족하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불만족의 결과를 만들어가는 것은 결국 스스로의 몫이다. 더 잘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할 것인가. 내가 잘하지 못하는 것을 후회하며 스스로를 깎아내릴 것인가. 결국, 나에게 달린 문제였다. 

그래서인지 항상 최고의 자리에 있는 사람보다, 항상 주전으로 뛰는 선수보다 그들의 자리를 대신하기 위해 잠시 나온 이들에게 더욱 관심이 간다. 그들은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자신의 장점을 더욱 발전시켰을 것이고,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역할에 집중했을 것이다. 나는 특출난 몇몇 사람이 주목받는 세상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 다수가 주목받는 세상을 꿈꾼다. 항상 주목받는 것은 최고의 자리에 있는 사람이지만 그것을 위해 애쓰고 수고한 사람, 묵묵히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더욱 주목받기를 원한다. 그리고 그런 사회가 되길 꿈꾼다. 

홈 팀 첼시는 주전이 아닌 후보 선수들을 대거 출전시켰음에도 3:0으로 완승했다. 선수들이 가장 행복했겠지만, 직접 경기를 본 팬들 역시 무척 행복해 보였다. 지하철 승강장에서 한목소리로 응원가를 부르고, 지하철이 도착하자 우오오~~~하면서 단체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그들의 열정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찬스에서 골이 들어가지 않으면 머리를 쥐어 싸고 아쉬워하는 팬들의 모습, TV로 볼 때는 경험할 수 없었던 엄청난 응원 소리, 팬들의 격려 소리를 들으며 내심 경기장에서 뛰는 선수들이 무척이나 부러웠다. 남모르게 했을 그들의 노력과 열정을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다. 

홈 팀 첼시가 이겨서 행복했고, 그들의 노력을 알기에 기뻤고, 그 자리에 있다는 것에 즐거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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