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집 앞 산책로를 달렸다. 나는 건강에 조금 집착하는 편인데, 의지가 약해 음식은 잘 조절하지 못한다. 감사하게도 술이나 담배에 맛을 느끼지 못하게 태어나 술 담배는 하지 않으나, 들려오는 이야기를 들으면 술 담배만큼이나 해로운 밀가루와 설탕, 소금을 즐기니 위험부담은 비슷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혈압이나 당뇨 같은 질환을 앓아본 적은 없다. 하지만 늘 걱정하며 산다. 혈압이 조금만 올라가도, 조금만 피곤해도 나에게 드디어 혈압이나 당뇨가 찾아왔나 생각하는 것이다. 참 바보 같지만, 건강염려증도 정신 질환의 한 종류라고 하니 내 잘못만은 아닐 것이라 믿으며 산다. (이 걱정을 합리화하는 것까지.)
나는 운동을 즐긴다. 건강에 집착하지만 음식은 조절하기 싫은 간사한 마음 때문에, 그리고 운동을 잘하는 사람이 멋있어 보이는 개인적인 취향 때문에 운동을 즐긴다. 나는 다양한 운동을 접해보았는데, 다행히 어느 한 곳에서도 몸치라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이것 또한 내가 운동을 즐기게 된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요즘은 시간적, 공간적인 제약 때문에 웨이트 트레이닝을 조금 하며 지냈다. 내가 정말 꿈꾸고 배우고 싶은 운동은 주짓수나 이종격투기 같은 투기 운동이나 크로스핏 혹은 역도, 단거리 달리기와 같은 폭발적인 전신 운동, 혹은 축구 같은 구기 종목이지만 환경이 허락하는 한에서 자신의 방법을 찾는 것이 인간인지라, 나에게는 웨이트 트레이닝밖에 허락되지 않는다. 내가 서울에 살 때는 몰랐다. 지방에 사는 것이 이토록 소외감을 느끼는 일인지는. 내가 원하는 운동을 하려면 내가 직접 체육관을 차리는 수밖에 없다니. 가혹하기 그지없다.
이야기가 잠깐 옆길로 샜다. 내가 보디빌딩 스타일의 웨이트 트레이닝을 즐기기는 하지만, 늘 한편에 아쉬움이 있다. 내가 운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는데, 내가 정말 좋아하는 운동을 하게 될 날은 언제 올까 하는 마음. 내가 어느덧 원하는 운동이 있는 곳으로 가게 되면 이미 내가 아저씨가 되어 버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물론 이렇게 글로 적어놓고 보니 터무니없는 생각이기는 하다. 하지만 나는 필연적으로 다가올 노화가 두렵다. 나이를 먹으면 근육도 사라질 것이고, 몸은 약해질 것이 당연하다. 그런 날이 오면 찾아올 내 마음의 후회가 두렵다. 젊었을 때 운동을 조금만 더 해둘걸 하는 후회가 두렵다.
그래서 나는 운동을 최대한 골고루 하려 노력한다. 내가 체력적으로 부족한 부분을 느끼면 보충하기 위해 노력한다. 최근에 내 체력에서 부족하다고 느낀 부분은 심폐 지구력이었다. 어제 수업 준비를 하다 잠깐 시간이 남아 저학년 아이들과 축구를 할 때였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느낌에 깜짝 놀랐다. 이 정도 뛰었다고 숨이 이만큼 차다니, 겁이 덜컥 났다. 올해 초만 해도 이렇지 않았는데, 생각했다. 올해 초에는 달리기를 꽤나 열심히 즐겼던 탓일까. 요즘은 지구력 운동을 딱히 하지 않는 탓일까. 주말이 되면 달리기를 시작하겠노라 마음을 굳게 먹었던 것이다.
오늘 아침 느지막이 눈을 떴다. 눈을 뜨자마자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갔다. 운동에서 가장 힘든 부분은 운동을 하러 나가는 것이다. 나는 그 부분을 최대한 빨리 해내려 노력한다. 막상 나가면 나가지 않는 것보다는 많이 운동을 했으니까. 허리에 휴대폰을 담을 수 있는 가방을 메고, 귀에 이어폰을 꽂고. 길을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길은 울퉁불퉁, 경사가 있다가 없다가 한다. 오르막길을 올라가다, 곧 내려오곤 한다. 왼쪽으로 굽었다 오른쪽으로 굽었다 한다. 조금 있으니 숨이 조금씩 차오르기 시작한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곧 괜찮아질 것이다. 호흡은 곧 안정되고 평온이 찾아온다. 고요한 길에 내가 달려가는 턱턱 소리가 울려 퍼진다. 최대한 발소리를 내지 않고 부드럽게 달리려 노력하지만 아직은 쉽지 않다.
나무로 되어있는 길, 아스팔트 길, 터널도 지나고 꽤나 멀리 왔다. 여기는 처음이다 싶은 곳까지 왔다. 손목시계를 보니 얼핏 5KM의 절반 반환점까지 온 듯 싶다. 나는 발걸음을 돌려 온 길을 다시 뛰어간다. 처음 가는 길보다 온 길을 뛰어가는 것이 더 힘들다. 처음 가는 길의 설렘이나, 뛰기 시작했을 때 가지고 있던 신선함은 사라지고 오직 떨어져 가는 체력과 나와의 싸움만이 남았다. 5KM 정도 뛴다고 앓아누울 정도의 체력은 아니나 그래도 힘든 것은 어쩔 수 없다. 다리는 점점 무거워지고, 숨은 조금씩 더 차오른다. 시계를 보니 심박이 찍힌다. 160, 161. 아직 괜찮다고 생각한다. 다시 달려간다.
달리기를 하다 보면 시간이 금방 지나간다. 달리기를 마치고 집에 오니 벌써 35분이나 지났다. 30분이 이렇게 짧은 시간이라니, 다시 생각한다. 다리는 무겁고 숨은 차지만 아침부터 날 괴롭히던 두통이 말끔히 사라졌다는 것을 느낀다. 역시 운동 부족이었구나. 요즘 몸이 무겁더라니, 운동 부족이었다. 그래도 달리기는 효과가 빠르다. 달리고 나면 그 즉시 몸이 가벼워진다. 이제 매일 뛰어야겠다, 다짐하며 물을 들이켠다. 내일도 또 달릴 수 있을까? 내일 내가 몸을 일으켜 달리러 나갈 수 있을까.
달리기는 아름답다.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더 그렇다. 달리기는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한 행동이 아니다. (물론 그럴 때도 있다.) 몇 킬로미터 앞을 목적지로 정해두고 그 목적지에 도달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과정을 오롯이 온몸으로 견뎌야 한다. 편법을 쓸 수도 없다. 조금 좋은 운동화를 신고, 가벼운 옷을 입고, 미리 영양제를 먹을 수는 있으나 그래도 내가 달려야 한다. 대신 뛰어줄 수 없다. 누군가가 대신 옮겨주거나, 들어주지 않는다. 땅을 내 발로 딛고, 밀어내야 한다. 내 무게를 온전히 느끼고 이겨내야 한다. 나는 그래서 달리기가 좋다. 달리기는 힘든 순간을 이겨나갈 힘을 준다. 어차피 인생이란 내가 이겨나가야 한다는 단순한 진리를 다시금 깨닫게 해 준다. 내가 잊고 살았던 단순한 사실을. 달리기를 마치고 나면 즐겁지만, 달리기는 인생이나 매 한 가지다. 오늘만 달리고 내일은 쉴 수 없다. 계속 달려야 한다.
나는 내일도 달리러 갈 것이다. 몇 명이 볼지는 모르지만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는 공개적인 장소에 선언했기 때문에 갈 수밖에 없다. 내일도 달리고, 모레도 달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