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운동화는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아이가 슬리퍼가 아닌 운동화를 신고 왔다. 학교에 올 때면 늘 슬리퍼를 신고 오던 아이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늘 슬리퍼나 실내화를 신고 다니던 아이가 운동화를 신고 왔다. 나와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아이는 운동화를 신고 왔다.
아침이었다. 나는 오늘도 체육 수업 준비로 분주했다. 체육관 문을 열고, 불을 켜고, 여러 체육 용기구를 꺼냈다. 오늘은 마지막 반 대항전이 있는 날이다. 아이들이 해본 적 없는 다른 반과의 대항전이라 아이들 모두 설렐 것이다. 나도 기대하고 있던 날이니까. 준비가 완벽해야 실수가 없고, 실수가 없어야 흐름이 끊기지 않는다. 흐름이 부드럽게 이어져야 재미가 배가 되는 법이다.
눈이 변수다. 꽤나 쌓였던 눈은 녹아서 질척거리고 있다. 얼음은 아이들의 발에 붙어 체육관으로 들어올 것이다. 체육관으로 들어온 얼음은 금세 녹아 바닥을 미끄럽고 위험하게 만든다. 대걸레를 서너 개 가져다 두고, 플라스틱 빗자루로 앞을 쓸었다. 녹지 않은 눈은 반복적으로 밟혀 얼음이 되어 있었다. 시설 관리 주무관님께서 염화칼슘을 뿌려두셨지만 뿌리신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아직 얼음 그대로다. 쓸어도 얼음은 그대로다. 박스를 더 깔고, 깔개를 가져다 둔다. 여차하면 계속 닦으며 해야지, 생각했다.
음악을 틀기 위해 선을 정리하고, 기계와 씨름하고 있을 때였다. 밖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체육선생님!
누구지? 이른 시간이다. 수업을 시작하려면 15분 정도 남았다. 누굴까, 나는 나가보았다. 아이다. 아이의 얼굴을 보고, 자연스럽게 시선이 밑으로 내려간다. 찰나의 순간, 나는 알았다. 아이는 늘 신고 다니던 슬리퍼가 아닌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나와 약속했던 목요일에, 나와 약속했던 운동화를. 아이는 자랑스레 운동화를 신고 멋쩍은 표정으로 쭈뼛대고 서 있었다. 아이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지만 나는 알았다. 나와의 약속을 지켰구나, 약속을 지켰다고 이야기하려고 굳이 여기까지 찾아왔구나.
나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양팔을 벌렸다. 아이는 얼른 달려왔다. 6학년 남자아이 치고도 꽤 큰 아이는 얼핏 160은 넘어 보였다. 또래 중에서도 큰, 장정만 한 아이가 아무런 저항 없이 자연스레 내 품에 안긴다. 나는 아이를 꼭 안아 주었다.
약속 지켜줘서 고마워. 진짜 고맙다.
아이는 쑥스러운지 별 대답이 없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운동화를 신고 학교에 온 게 이렇게 감동스러울 일인가.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겨우 참았다. 아이를 안고 다독였다. 고맙다, 고마워. 정말 고맙다. 몇 차례나 말했는 지도 모르겠다.
아이는 다시 자신의 반으로 갔다. 나는 가는 아이의 등 뒤에다 한 번 더 외쳤다.
고마워!
운동화는 새것이었다. 가격표만 붙이면 상점에 다시 내놓아도 새것으로 착각할 만큼, 아무런 때도 묻지 않은 새것이었다. 아이는 새 운동화를 신고 왔다. 지금까지 아껴 두었던 것일까. 아니면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어제 시간을 내어 운동화를 사러 갔던 것일까. 아이의 새 운동화는 내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차라리 아이가 몇 번 신은 흔적이 있는 신발을 가져왔더라면, 이렇게까지 감동적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집에 있는 아무 신발이나 가져다 신고 왔다면, 이렇게까지 여운이 남지 않았을 것이다. 아이의 새 운동화는 내 눈에 박혀 사라지지 않는다. 아이는 새 운동화를 신고 왔다. 밝게 빛나는 새 운동화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