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의 추억

by 콧수염장발

바닷가의 추억




청소년 때 유난히 바다를 좋아했다. 바다와의 처음 만남은 초등학교 때 바닷가로 소풍을 가면서였다. 얕은 바다는 간척으로 인하여 작은 섬이 육지에 갇히게 되었고 사람들은 똥 섬이라 불렀다. 물이 빠진 제방을 넘어 바다에서 게, 고동, 소라를 잡고 놀았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나는 그때 비릿하면서 짭쪼로운 바다 냄새를 처음으로 맡았는데 시간이 지나고도 잊혀지지 않았다. 시골집은 바다하고 직선거리로 십오 리쯤 떨어진 곳이다. 산자락에 위치해 있어서 맑은 날 대청마루에 서서 먼 바다를 응시하면 바다가 어렴풋이 눈에 보였다. 고등학생이 되어 여름방학을 맞이하면 해마다 바다를 찾았다. 시간이 날 때면 바닷가를 서성거렸고 바다는 나를 고독과 낭만의 시인이 되게 하였다.


어느 해 여름 방학을 맞아 형과 함께 형 지인의 초대를 받고 바닷가를 찾았다. 형 지인이 사는 곳은 바닷가의 조용한 마을이었다. 그 바닷가에는 초승달 같은 작은 해변이 있었다. 뒤로는 높다란 벼랑이 병풍처럼 둘러있고 모래사장이 있는 작고 아담한 해변이었다. 나는 그곳을 좋아했다. 모래사장에서 공을 차기도 하고 예쁜 소라껍데기를 주우면서 바다와 함께하는 시간이 즐거웠다. 무료할 즈음에는 굴 껍데기로 바위에 앉아 이름을 새기기도 하였다.


형 친구는 우리에게 이곳저곳을 구경시켜 주면서 다양한 해산물을 맛보게 하였다. 하루는 작은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서 잡아온 고기를 가지고 즉석에서 회를 떠주었다. 생것을 먹어 보지 않았던 나는 보고만 있었다. 형들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는지 나에게 이 고기는 비린내가 나지 않으니 먹어도 괜찮다고 하면서 된장에 찍어 먹어보라고 하였다. 나는 거절을 못하고 용기를 내서 눈을 감고는 입에 넣었다. 그런데 생고기가 정말 비린내가 나지 않았고 비위에 거슬리지도 않는 색다른 맛 이였다.


나는 회를 몇 점 더 먹게 되었고 이렇게 하여 회 먹는 법을 배웠다. 그 고기 이름은 ‘서대’라고 하였다. 나는 그 후 회를 먹으러 가자고 하면 서대회만 찾았고 서대가 횟감 중에서 제일 맛있는 고기인 줄로만 알았다.


바다에도 목장이 있었다. 고막과 바지락이 지천으로 널려 있다시피 하였는데 아무나 잡을 수는 없었다. 목장 주인들은 새끼 고막을 바다에 뿌리면서 목장 관리를 하였다. 목장 외의 공동구역이 있는데 마을 사람들이 다 같이 자유롭게 잡아서 요기를 할 수 있는 곳이 별도로 정해져 있었다.


바닷가에 살던 형의 친구는 우리가 떠나기 전에 좋은 추억을 남기고자 특별한 준비를 하였다. 통통선으로 한 시간쯤 가야 하는 거리에 섬이 있었다. 그곳에 수박 농사를 하는 농부가 있는데 그곳에 가서 수박을 사주겠다고 하였다. 당시 여름에는 수박이 최고였는데 촌에서는 귀한 채소였다. 물때에 맞추어 배가 움직여야 하는데 밤중에 출항하여 새벽에 돌아온다고 하였다.

조그만 통통선에 형의 마을 친구 남, 여 몇 사람과 내가 끼어 함께 가게 되었다. 어두운 밤바다에 통통선을 타고 가면서 섬에서 수박파티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설렜다. 이윽고 섬에 도착한 후 산에 올라 수박밭의 주인을 만났다. 수박밭주인은 익은 수박은 어제 수확을 하여 시장에 내다 팔았다며 지금 익은 수박이 없다고 하였다. 형들은 당연히 있는 줄 알았는데 무작정 오고 보니 이런 일이 발생하게 되어 당황해하였다.


그 당시에는 집 전화도 귀한 시절이고 더구나 산 원두막에 전화가 없었기에 미리 알아볼 수도 없었다. 우리는 허탈하였지만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밀물이 완전히 들지를 않아서 배가 목적지에 닿을 수 없다고 하였다. 만조가 될 때까지는 이른 아침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하였다. 어느 형이 이곳에서 모기에 물리는 것보다 배에 있는 것이 낫겠다면서 배를 타자고 하였다. 우리는 모기를 피해 배를 타고 바다 중간쯤에서 만조가 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밤새 조용하던 바다는 새벽이 되자 바람이 불더니 비까지 내리기 시작했다. 밀물이 조금씩 밀려왔지만 밀물의 속도보다 바람의 속도와 비가 더 거세게 몰아쳤다. 그때서야 태풍이 오고 있음을 알았다.


파도는 점점 높아지면서 조그마한 배를 삼킬 듯이 덮치는데 파도에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나는 지금 이곳을 나가지 못하면 바다에서 죽게 될 것 같았다. 함께한 누나들도 숨죽이고 있었다. 형들은 겁에 질려 있는 나와 누나들에게 갑판 아래에 들어가 있으라고 하였다. 고기를 잡으면 배 바닥에 고기를 보관해 놓은 조그마한 빈 공간이 있는데 우리는 그곳의 좁은 공간에서 운명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


비릿한 고기 냄새가 코를 찔렀다. 비바람은 피할 수 있었지만 불안함은 여전했다. 배가 너무 심하게 요동을 치니 어느 누구도 말하는 사람 없이 고개를 파묻고 빨리 이 순간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물이 빨리 차서 배가 나가야 하는데 그전에 잘 못 되면 어쩌나 하는 불길한 마음이 엄습하였다.


우리는 오직 조그만 배에 운명을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배는 곧 뒤집어질 것 같이 파도에 파묻혔다가 가까스로 다시 나오기를 반복하면서 숨이 멎을 것 같은 순간이 지속되었다. 농부가 곡식을 거두어 키질을 할 때 곡식이 공중으로 날리었다 내려앉듯이 키질을 잘못하면 알곡이 밖으로 튀어나가는데 그런 순간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렇게 두어 시간이 지났고 서서히 날이 밝았다. 파도는 더욱 거세게 몰아치고 작은 배는 위태위태한 순간의 연속이었다. 그 순간 물이 든 것 같다면서 시동을 거는데 이제는 시동이 잘 걸리지를 않았다.


‘아! 이제는 꼼짝없이 바다에서 죽게 되는구나. 하는 순간에 엔진에 시동이 걸렸다. 배는 험한 파도를 헤치고 앞으로 나갈 준비를 하였다. 키를 붙잡은 형은 배를 잘 다루어본 경험이 있는지 앞으로 바로 가게 되면 파도에 부딪혀 배가 바로 전복된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거친 파도를 타고 가야 한다고 하였다. 작은 배는 거친 파도를 타고 이리저리 빠져나가는데 신기에 가까울 정도로 배가 파도에 잠겼다가 다시 나오기를 수없이 반복하고서야 가까스로 바닷가의 출발지에 이르게 되었다.

그날의 태풍은 바닷물이 방파제를 넘어 해수가 벼 잎을 하얗게 할 정도로 세차게 몰아쳤다. 바다와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나는 잔잔한 바다를 볼 때 참으로 평화로워 보였는데 성난 파도를 보면서 인간은 자연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더 큰 바다를 탐험하고 싶었고 이듬해 여름방학을 맞아 큰 여객선에 오르게 되었다. 여수항에서 출발한 여객선은 녹동항을 거쳐 완도까지 가는 동안 수많은 섬과 섬 사이를 곡예를 하듯이 넘나들었다. 남해안의 경관을 조망하는데 밭일을 하는 농부들처럼 수많은 섬들이 바다에 엎드려 있었다. 바다에 웬 섬들이 저렇게 많은지 크고 작은 섬마다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였다. 언젠가는 저 섬들을 다 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남해안의 섬이 무려 2,300개나 된다고 하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나는 여객선을 처음으로 타면서 버스보다도 안정감 있고 편안함을 느꼈다. 항구에 정박해 있거나 고기잡이배들에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큰 배였다. 차에서 나는 기름 냄새로 차멀미가 유난히 심했던 나는 뱃멀미가 걱정이 되었지만 기름 냄새도 그렇게 나지 않았고 너무나 조용히 물 위를 가르며 섬과 섬 사이를 스치며 지나갔다.


작은 섬 가까이 도착하면 잠시 바다 위에 정박을 하면서 작은 나룻배들이 섬 주민들과 물건을 실어와 내리고 태우기를 반복하였다. 수 시간을 가는 동안 지루할 틈이 없었다. 바다와 섬들을 보다가 지루하면 여객선 아래층 선실로 내려가 물에 잠기어 있는 둥그렇게 난 창으로 바다 밑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선창으로 스치는 형형색색의 물고기들의 모습을 보면서 대형 수족관을 관람하는 느낌이었다.


완도에 도착하니 그 옛날 바다를 제패한 장보고 대사가 생각났다. 바다의 해적들을 소탕하고 세계로 무역의 길을 넓히면서 해상 왕이라는 이름으로 명성을 떨쳤던 위대한 선인의 자취가 그곳에 숨 쉬고 있었다. 완도에서의 바다는 그렇게 정이 들었고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면서 잊을 수 없는 즐거운 여름을 보냈었다.


이듬해 여름이 되어 나는 다시 고향 바닷가에 있는 지인의 집을 찾았다. 하루는 형들이 노를 저어 바다로 나가는데 따라붙었다. 얼마 떨어진 바다에 이르러서는 낚시로 고기를 잡았고 점심때가 되어 배에서 밥을 지어 먹었다. 반찬이야 갓 잡아 올린 고기로 만든 회와 된장을 풀어 만든 단순한 매운탕뿐이었지만, 세상에서 잊을 수 없는 제일 맛있는 별미였다. 세월이 지난 지금도 그 맛의 기억이 새롭게 떠오른다.


바다에서 돌아오는 길에 형들의 노 젓는 모습은 정말 멋있고 낭만적이었다. 형들에게 내가 노를 저어보겠냐고 하였더니 노를 건네주었다. 보기에는 너무 쉬워 보였는데 노를 저으려 하니 노가 노걸이에서 빠지기 일쑤였고 빠지지 않더라도 배가 제자리에서 뱅글뱅글 돌기만 하였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형들은 웃으며“힘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야.”라고 하면서 “목표를 바라보면서 밀고 당기는 힘을 조절해야 한다.”라며 시범을 보이며 노젓은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러나 바다에서는 가까운 곳에 사물이 보이지 않아 목표점을 맞출수가 없었다. 형들은 집중을 하면 보인다면서 뱃머리를 가고자하는 목표점하고 일치시켜야 한다고 하였다. 설명대로 하였더니 처음에는 배가 뒤뚱 거렸지만 잠시 후 안정을 찾고 앞으로 나가기 시작하였다.


나는 그 경험을 통해 젊은 날의 고독을 씹으며 낭만을 노래하던 그런 바다가 아니라 인생의 목표점을 바라보고 가야 하는 것이 바다라는 선생에게서 얻은 잊을 수 없는 교훈을 이였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파도와 같은 굴곡진 삶 속에서도 만선의 꿈과 희망을 노래하는 지혜를 경험하게 되었다.


살아보니 인생의 목표점이 정해지면 꾸준하게 노를 저어 가는 열정이 필요했다. 나는 어떤 고통 속에서도 삶의 이정표가 되었던 그 바다를 생각하면서 항상 힘을 내었고 지금도 여전히 앞으로 나아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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