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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숙 Oct 22. 2023

김밥

김밥을 말았다. 8시 반에는 집에서 나가야 하는데 8시 12분이 되어서야 김을 깔고 그 위에 밥을 폈다. 예상했던 것보다 밥이 늦게 된 탓이다. 일어나자마자 취사 버튼부터 누를걸…. 어젯밤까지만 해도 생각해 뒀건만 아침잠이 덜 깬 채로 뭉그적거리다가 깜빡하고 말았다.

 ‘내일은 김밥을 먹어야겠어.’ 퇴근까지 한 시간 남짓 남은 시점이었다. 기획 아이디어는 고갈되고, 집중력 마저 바닥난 상태로 모니터 화면을 응시하던 중이었다. ‘김밥. 그래, 내일은 김밥이야.’ 종종 이런 날이 있다. 엉뚱깽뚱하게 김밥이 선명하게 생각나는 날. 그 엉뚱깽뚱한 타이밍은 주로 높은 확률로 퇴근을 앞둔 시점이다.


 ‘왜 저걸 돈 주고 사 먹을까?’하는 음식이 몇 가지 있다. 예를 들면 새우볶음밥, 김치볶음밥, 중식 계란볶음밥이 그렇고 제육덮밥이나 김치찜, 김치찌개가 그렇다. 여기에 라면과 김밥까지. 철저하고 다분하게 주관적 견해 가득한 의견인데, 이들의 공통된 특징은 집에서도 요리해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는 것이다. 물론 개인의 요리 실력이라든지 가족 식문화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말이다. 앞에서 언급한 음식들은 내게는 언제든지 집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었다. 대학 시절 선배들은 식당에 가면 그렇게 볶음밥과 덮밥 아니면 검은 뚝배기에 담겨 나오는 김치찌개, 순두부찌개, 된장찌개 등을 주문하곤 했는데 나로서는 매번 의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난 언제나 일편단심 쫄면이었다.) 김밥 역시 마찬가지였다. 점심이라며 포일에 돌돌 말린 김밥을 한 알씩 밀어 올려 입에 넣는 선배들, 기다란 직사각형 상자와 나무젓가락이 들린 비닐봉지를 털레털레 들고 나타나는 친구들을 볼 때면 갸우뚱한 동시에 내가 뭐라고 ‘김밥을 돈 주고 사 먹다니 안타깝기 그지없군’이라는 생각까지 했다. 진짜 내가 뭐라고 말이다.  

 김밥에 대한 오만과 편견이 깨진 것은 서른 살, 서울 생활을 하면서부터다. 아주 와장창 깨졌다. 퇴근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간이었는데 ‘김. 밥.’ 두 글자가 뇌리에 똬리를 틀기 시작했다. 김이든 밥이든 일단 일을 마무리하고 어서 사무실을 뜨는 것이 급선무이기에 두 글자를 모른 척하고 마저 일을 마무리했다. 그런데 퇴근길, 회사에서 집까지 걸어가는 20분 남짓 동안 김밥 두 글자가 도통 사라지지 않았다. 김밥 가게를 하나씩 지나칠 때마다 김밥이 나를 놀리는 것 같기도 했다. ‘정말? 정말 안 먹고 싶어? 너 지금 내가 굉장히 먹고 싶을 텐데?’

 특정 음식이 당기는 것은 가짜 배고픔이라고 했다. 그래서 세운 나만의 원칙. ‘절대 문득 떠오른 음식은 당일날 먹지 않는다.’ 가짜 배고픔에 속지 않고 재정 출혈도 잡기 위한 나만의 원칙이다. 가령 순살 양념 치킨이 떠오른다거나 로제 찜닭이 떠오른다거나 짜장면이 떠오른다거나, 스팸 마요 삼각 김밥이 떠오른다거나 막국수가 떠오른다거나 중국 냉면이 떠올라도...! 절대 그날 먹지 않고, 적게는 2~3일, 많게는 1~2주 정도 내 식욕을 면밀히 관찰하는 시간을 갖는다. 정말 그 음식이 먹고 싶은지 말이다. 대부분은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거짓말처럼 식욕이 사라졌다. 이 정도면 식욕을 참아내는 재주가 꽤 있는 편이라고 자부했었는데 아니었다. 갑자기 떠오른 김밥을 도통 참아낼 수 없었다.


 김밥 가게로 향했다. 집으로 가는 길에 남은 마지막 김밥집이었다. 그마저도 그냥 지나쳤다가 발길을 되돌렸다. 메뉴판에 ‘바를 정’ 자로 수량을 표기하며 주문하는 광경을 생각했는데 김밥집 역시 요즘 대세를 따라 키오스크 주문인 게 새삼 낯설었다. 찬찬히 키오스크로 메뉴를 둘러보다가 놀랐다. 올라도 너무 많이 오른 김밥 가격에 한 번, 생경하고 다양한 김밥 종류에 한 번. 한 줄에 1,000원, 1,500원 하던 김밥이 4,000원이 돼 있을 줄이야. 4,000원이라는 가격을 보는 순간 ‘역시 김밥은 사 먹는 게 아니야.’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좁은 가게에 들어와 키오스크까지 훑어본 이상 다시 나가기는 영 애매한 상황이다. 이왕 발 들인 거 맛있게 먹자고 생각하며 신중하게 메뉴를 훑었다. 묵은지 참치 김밥, 매콤 진미 김밥, 할라피뇨 잠봉 김밥, 고추냉이 크래미 김밥. 치즈 김밥과 돈가스 김밥이 김밥계의 프리미엄인 시절이 있었는데 두 메뉴는 메뉴판에 존재하지도 않았다. 고추냉이 크래미 김밥과 묵은지 참치 김밥을 두고 고민하다가 묵은지 참치 김밥을 주문했다.

 대학 시절 친구들에게서 익숙하게 보던 모습 그대로 기다란 직사각형 상자가 담긴 비닐봉지를 털레털레 들고 귀가했다. 그리고 식탁에 앉자마자 김밥 하나를 입에 넣었는데…. 세상에…! 역사적인 날이었다. 무려 30년 간 김밥을 얕잡아 본 나의 오만과 편견이 굽이 겸손을 찾은 날, 집에서는 절대로 낼 수 없는 김밥맛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날, 이런 음식은 돈 주고 사 먹어야 마땅하다며 김밥 앞에 회심한 날이었다.

 그날 이후 종종 김밥을 사 먹었다. 고소한 동시에 개운하고 든든한 묵은지 참치 김밥은 기본이고, 아삭아삭 얇게 썰린 양배추가 몽땅 말려 있는 샐러드 김밥, 크래미와 밥의 보드라운 식감을 목 뒤로 넘길 때쯤 톡 하고 코를 쏘고 지나가는 고추냉이 크래미 김밥, 오독오독 견과류가 씹히는 견과류 멸치 김밥, 알싸한 땡초가 입안을 얼얼하게 하는 땡초 김밥까지…. ‘전에 알던 내가 아냐 brand new style 새로워진 나와 함께 one more round’ 영원히 소녀인 언니들의 노래 가사처럼 김밥은 전혀 알지 못했던 세계로 나를 데려갔다. 그때마다 감탄하게 했고, 깜짝깜짝 놀라게 했다. ‘그동안 김밥을 오해해도 아주 단단히 오해하고 있었구나’하는 깨달음과 함께 도대체 왜? 어째서 나는 김밥을 집에서 만들어 먹는 음식으로 오해하고 있었는지 곰곰이 생각해 봤다. 그러다 한 장면이 떠올랐다. 스무 줄, 서른 줄 네모난 쟁반 위에 가득 쌓인 김밥 더미. 아침 일찍부터 엄마가 말아 놓은 김밥 더미였다. 반질반질 참기름이 발린 채 가지런하게 썰리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두툼한 김밥 더미.


 오빠와 내가 다닌 초등학교는 무려 한 달에 한 번씩 현장 체험학습을 갔다. 현장학습 가기 전날 저녁은 매우 설레는 시간이었다. 슈퍼에서 먹고 싶은 과자 두 개와 음료수 하나를 고를 수 있기 때문이다. 오빠와 내가 서로 등을 마주한 채 한 명은 짭짤한 봉지 과자를, 한 명은 달달한 곽과자를 고를 때면 엄마는 장바구니에 김밥 재료를 한가득 담았다. 집에 돌아와 냉동실에 음료수를 얼리고, 가방에 과자를 챙긴 후 오빠와 나란히 방으로 들어가 그날의 학습지를 풀기 시작하면 엄마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어마어마한 양의 재료 준비가 시작되는 것이다.

 162cm에 44kg을 유지한 엄마는 많이 먹지도 않으면서 손이 굉장히 컸다. 감자탕을 끓이면 깊숙한 솥에 온 식구가 3일은 배부르게 먹을 만큼을 끓였고, 김치전을 부칠 때면 김치전 케이크라도 만들 작정인지 차곡차곡 쌓인 높이가 어마어마했다. 김밥 열 줄은 우스웠다. 한 번 김밥을 말면 스무 줄은 말아야 성이 풀리는 듯했다. 아직 자르기 전인 기다랗고 두툼한 김밥이 김밥 산 마냥 차곡차곡 쌓여 갔다.

 김밥을 말아본 사람은 알 것이다. 돌돌 마는 거야 쉽지만 재료 준비에 어마어마하게 손이 많이 간다는 사실을 말이다. 엄마는 두툼하게 계란 지단을 부쳐서 길쭉길쭉하게 썰었고, 당근은 얇고 길쭉하게 썰어서 기름에 살짝 볶았다. (요즘 유행하는 당근 김밥처럼 채 썰지 않는 게 엄마의 포인트다.) 시금치는 데쳐서 깨소금으로 간을 해두고, 햄을 볶고, 단무지도 썰어 둔다. 준비한 재료들은 집에서 가장 큰 쟁반에 랩을 깔고 종류별로 쌓아 두었는데, 방에서 공부하다 말고 하나씩 주워 먹고는 했다. 한 줄씩 야금야금 먹는 계란 지단이 얼마나 맛있었는지 모른다.

 밤사이 한 김 식은 재료들은 다음날 아침 김밥이 되어 있었다. 아침 상에는 초코파이 케이크처럼 한 알 한 알 쌓아 올려진 김밥이 올랐다. 출근 준비하는 아빠와 학교 갈 채비를 하는 우리가 왔다 갔다 하면서 집어 먹으면 김밥 케이크는 금세 층이 낮아졌다. 가끔 운이 좋으면 햄이 두세 개씩 들어간 김밥을 먹기도 했다. 소풍 가서 먹는 김밥도 맛있었지만 아침에 하나씩 집어 먹는 금방 말아낸 따끈따끈한 김밥 맛은 따라갈 수 없다. 고소한 참기름과 함께 부드럽게 입안으로 퍼지는 따듯한 김밥의 맛. 


 내가 2학년이 되자 엄마는 나에게만, 오직 나를 위한 특별한 김밥을 말아줬다. 이름하야 마요네즈 김밥. 어느 여름, 엄마가 삶은 감자를 한 입 크기로 잘라서 마요네즈에 버무려 반찬으로 내줬는데 그때 번쩍 마요네즈에 눈을 떴다. 어느 정도로 마요네즈를 좋아했냐 하면 요구르트를 꺼내 먹듯 냉장고를 열고 마요네즈를 한 입씩 짜 먹을 정도였다. 그때마다 엄마가 “너 또 마요네즈 먹지?”라고 하며 나를 감시해서 ‘마요네즈는 많이 먹으면 안 되는 것’ ‘마요네즈는 몰래 먹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엄마가 나를 위해 마요네즈 김밥을 싸기 시작했다. 엄청난 감동이었다. 매달 찾아오는 현장체험학습날을 손꼽아 기다렸고, 도시락을 꺼내 먹을 때면 친구들에게 으쓱이며 자랑했다. “내 건 마요네즈 김밥이다!” 하지만 누구도 내 김밥을 탐내지는 않았다.

 마요네즈 김밥 레시피는 간단했다. 먼저 가족들용 ‘일반 김밥’을 말아낸 후, 마지막 두세 줄 분량의 밥에 마요네즈를 듬뿍 넣고 비벼서 김밥으로 말아내는 것이다. 마요네즈에 비빈 밥은 그냥 퍼먹어도 맛있어서 엄마가 마요네즈 김밥을 말기 시작하면 꼭 옆에서 얼쩡거리면서 마요네즈 밥을 한 숟가락씩 얻어먹었다. 

 딸의 열렬한 반응에 엄마의 마요네즈 김밥은 진화해 갔다. 마요네즈의 느끼함을 잡기 위해 씨를 뺀 청양 고추를 쫑쫑 썰어 넣어 마요네즈 밥에 비빈 후 김밥을 말기도 했고 (물론 나에게는 마요네즈 김밥이 느끼할 리가 없었지만!), 김 위에 밥을 깔기 전에 깻잎을 깔아서 마요네즈에 김이 눅눅해지는 것을 방지하기도 했다. 아주 가끔씩 속 재료 하나 없이 김 위에 청양고추를 쫑쫑 썰어 넣은 마요네즈 밥만 넣고 김밥을 말아냈는데 초 간단한 이 김밥이 히트 메뉴였다. 엄마는 집에 방문하는 손님들에게 이 김밥을 간식으로 내곤 했는데 손님들은 다른 간식은 남겨도 이 김밥만은 그릇을 싹싹 비웠다. 초등학생 때 만난 윤선생 영어 선생님, 재능 한자 선생님부터 중학생 때 만난 수학 과외 선생님과 피아노 레슨 선생님까지 모두가 그랬다. 선생님들은 다 같이 약속이라도 하신 듯 ‘너희 집만 오면 살이 찐다’는 말을 하시면서도 청양고추 마요네즈 김밥만큼은 몽땅 다 드셨다. 

 김밥은 사 먹는 음식이 아니라는 오만과 편견이 여기서 생겼나 보다. 원 없이 김밥을 먹던 행복한 어린 시절에서 말이다. 그래도 한 가지 풀리지 않는 의문이 남아 있다. 평소 사 먹지도, 그렇다고 직접 해 먹지도 않은 김밥이 도통 왜 먹고 싶어 졌는지 모르겠다. 가끔 마요네즈 밥은 먹었어도 김밥을 먹지는 않았었는데 말이다. 얼마 전 gs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빵빵 청양참치마요김밥’을 먹었는데 김밥 한 알을 입에 밀어 올려 넣자마자 눈물이 날 뻔했다. 그 시절 청양고추를 쫑쫑 썰어 넣은 엄마의 김밥이 생각나는 맛이었기 때문이다. 몇 년 전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청양 마요를 20년 전에 생각해 냈었다니… 엄마는 우리보다 시간을 앞서서 빠르게 살다 가버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이렇게 불쑥불쑥 예고 없이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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