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노란빛 목이의 노란빛
퇴근하고 경의선숲길에 갔다.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집에서 가까운 산책로 경의선숲길은 불과 며칠 새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점층적 빨강으로 그라데이션 진 산책로는 평소 내가 알던 공간이 아닌 다른 공간인 것처럼 생경했다. 인적이 드문 쪽을 향해 느리게 느리게 걸었다. 첫 단풍이었다. 비로소 계절의 변화가 실감 났다. ‘문자를 하기엔 손이 시린 계절이 되어버렸구나’라고 생각하며 걷는데 불쑥 새빨간 트렌치코트를 입은 엄마가 떠올랐다.
엄마는 빨간색을 좋아했고, 빨강을 좋아하는 엄마는 우리에게 빨간색 아이템을 사 입히곤 했다. 빨간색 트렌치코트, 빨간색 베레모, 빨간색 가죽코트, 빨간색 야구점퍼, 빨간색 구두 등…. 빨강 아이템으로 포인트를 콕 주고 있는 사진 속 우리는 꽤 멋쟁이 어린이들처럼 보인다. 하지만 우리 중 빨강과 가장 찰떡인 멋쟁이는 이 모든 것의 기획자, 바로 엄마다.
긴 생머리, 쨍한 빨간색 트렌치코트, 시원한 블루의 부츠컷 진과 흰 컨버스, 거기에 빨간 루즈로 완성되는 엄마의 룩은 20년이 지난 지금 보아도 세대 이질감 없는 멋쟁이 룩이다. 지금 경의선숲길을 걷는다면 근사한 가을 여자처럼 보일 것이 분명한 엄마가 불쑥 단풍길과 함께 떠올랐다. 순식간에 보고 싶은 마음이랄까, 그리움 같은 것이 오소소 머리끝부터 발끝을 타고 흘렀내렸다.
“엄마 기억나? 우리 같이 걷던 경기전 말이야. 낙엽이 이불처럼 두툼하게 깔려있었고, 고즈넉한 한옥 안에서 가을 정취를 만끽했었잖아. 엄마는 그때 엄마의 소멸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을까? 아연이, 경은이 같이 보낸 그 가을날, 엄마가 어떤 마음이었을지 이제 와 많이 궁금해. 나는 교복, 아연이는 캉캉치마, 경은이는 빨간 저지 입고 있었는데, 사진 한 장으로 남은 그날 엄마 기억나? 가을이야. 보고 싶어.”
엄마가 소천한 봄이 시린 계절이 된 것은 막을 수 없는 연결고리다만 시림이 가을까지 번지려고 하다니. 산책로 끝에 엄마가 서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엄마에게 와락 안기고 싶은 바람이 울컥거려 산책로를 비껴 골목골목으로 발길을 돌렸다.
집 앞 유치원 정원에서 빨갛게 물들어가는 단풍을 볼 때도, 덕수궁 안에서 빨갛게 물들어가는 단풍을 볼 때도, 버스 창가로 비치는 단풍을 볼 때도 단풍을 보면 곧바로 엄마가 떠올랐다.
2주 정도 무시로 떠오르는 엄마 생각에 잠겨 지냈을까? 목과 은행나무 길을 걸었다. 은행잎 색깔의 간판에 ‘오이소’라고 적힌 작은 순댓국집에서 뜨끈하게 뚝배기를 한 그릇씩 비우고 집에 돌아가는 길이었다. 하늘은 맑았고 은행잎은 나무에 달려 반짝반짝 일렁이기도, 후두두 날리기도 했다. 큰길도, 골목도 온통 노란 은행나무였다.
빨간 단풍 없이 쭈르르 나란히 일렬로 서있는 은행나무로만 조성된 길. 맑고 포근한 날씨 덕인지 가지에 풍성하게 달린 은행잎은 황금빛처럼 눈이 부셨고, 그 풍경을 앞서 걸어가는 목이는 정말 편안해 보였다. ‘찬란하다.’고 생각했다.
“엄마, 맞아. 경기전은 온통 노란색이었어. 경기전 은행나무…. 우리가 함께했던 가을도 온통 노란빛이었어.”
빨간 가을빛은 왠지 서글프지만 노란 가을빛은 찬란하다. 노랑이 풍성한 순간엔 언제나 사랑하는 이들이 함께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엄마의 노란빛, 목이의 노란빛. 찬란한 가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