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향을 잃은 채 성실해지는 것, 그것이 우리의 실수다
우리는 이상하리만큼 자신에게 무관심하다. 하루에도 수십 번 타인의 눈치를 살피면서도 정작 자신에게는 단 한 번도 묻지 않는다. 무엇을 위해 이토록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지, 지금의 선택이 나를 닳게 하는지 아니면 단단하게 만드는지. 질문은 늘 뒤로 밀린다.
묻지 않는 삶은 편하다. 속도를 줄이지 않아도 되고, 멈춰 서서 불안을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질문을 미루는 대가는 분명하다. 방향을 잃은 채 성실해지는 것. 그것이 우리가 가장 자주 저지르는 실수다.
전면적인 내 모습을 볼 수 있는 공간은 비행기 안이었다. 지상에서는 늘 누군가의 역할로 서 있었다. 책임을 지는 사람, 결정을 내려야 하는 사람, 흔들리면 안 되는 사람. 그러나 이륙한 뒤 모든 신호가 꺼지고 기내가 어둠에 잠기면, 나는 더 이상 직함으로 존재하지 않았다. 창밖에는 아무 표지도 없는 밤하늘이 펼쳐지고, 그 고요 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속도를 잃는다. 아무것도 나를 붙들지 않는 그 시간에, 비로소 묻게 된다. 나는 정말 내가 선택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비행기 안에서 속도를 잃었던 나는, 착륙과 동시에 다시 역할로 돌아간다. 공항을 빠져나오면 휴대전화는 어김없이 울리고, 확인하지 못한 메시지들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공장에 들어서는 순간 고요는 완전히 사라진다. 재단 기계의 날카로운 소리, 봉제 라인의 일정한 진동, 누군가의 빠른 발걸음과 짧은 보고. 그곳에서는 멈춤이 사치처럼 느껴진다. 모두가 바쁘고, 모두가 성실하다. 그러나 그 소음 속에서 나는 문득 생각한다. 우리는 왜 이렇게까지 성실해지면서도 정작 어디로 가는지 묻지 않는가. 나는 그 답을 이미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늘 위에서는 내가 나로 존재했지만, 지상에서는 다시 역할로 돌아간다. 책임은 선명해지고 판단은 빨라진다. 실수는 곧 손실로 이어지고, 결정은 누군가의 하루를 바꾼다. 그래서 우리는 묻지 않는다. 멈추면 뒤처질 것 같고, 질문하면 약해질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방향을 점검하지 않는 속도는 결국 같은 자리를 맴돌 뿐이다.
우리가 질문을 미루는 이유는 단순하지 않다. 묻는 순간, 지금까지 쌓아온 속도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방향이 틀렸다는 사실을 알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애써 버텨온 시간이 무의미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우리를 멈추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움직인다. 바쁘게, 성실하게, 누구보다 책임감 있게.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를 안심시키기 때문이다. 속도는 일종의 마취제처럼 작동한다. 그리고 나는 그 마취 속에서 오래 살았다.
특히 책임을 지는 자리에 있을수록 질문은 사치가 된다. 누군가는 결정을 기다리고 있고, 누군가는 나의 판단에 하루를 건다. 그 앞에서 나는 흔들릴 수 없다고 믿는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내가 두려워했던 것은 실패가 아니라 멈춤이었다. 멈추는 순간 드러날 나 자신의 민낯, 그동안 미뤄둔 질문들이 한꺼번에 밀려오는 시간. 우리는 어쩌면 그 시간을 피하려고 더 바빠지는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우리는 또 하나의 선택을 한다.
질문은 나를 약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서 있는 자리를 확인하게 한다. 그러나 우리는 묻지 않는다. 확인보다 안정이 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묻지 않은 삶은 결국 타인의 속도로 흘러간다.
한 번은 공장에서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있었다. 일정은 촉박했고, 선택은 빠를수록 유리해 보였다. 모두가 "지금 가야 한다"라고 말했고, 나 역시 그 흐름에 올라타려 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손이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그날 밤, 비행기 안에서처럼 잠시 멈췄다. 그리고 처음으로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 선택은 나를 단단하게 만드는가, 아니면 단지 급한 불을 끄는 일인가.
그 질문 하나가 속도를 낮췄다. 판단은 하루 미뤄졌고, 몇 사람은 불안해했다. 그러나 그 하루 덕분에 나는 다른 방향을 보았다. 성실함이 아니라 구조를, 속도가 아니라 지속을 선택했다. 그때 깨달았다. 질문은 시간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구한다는 것을. 멈춤은 손실이 아니라 점검이라는 것을.
우리는 여전히 바쁘다. 내일도 해야 할 일은 줄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 안다. 방향을 묻지 않은 채 성실해지는 것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태도라는 것을. 질문은 나를 흔들기 위해 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확인하게 하기 위해 온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묻는다. 속도를 내기 전에, 결정을 내리기 전에, 누군가의 기대에 답하기 전에.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 선택은 나를 닳게 하는가, 아니면 단단하게 만드는가.
묻는 삶은 느릴지 모른다. 그러나 묻지 않는 삶은 결국 나를 잃는다. 질문은 나를 살리고, 나는 그 질문 위에서 다시 시작한다.
쉼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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