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 중독자가 처음으로 신중해진 순간
사람은 참 묘하다.
스포츠 배당률 하나에 몇십만 원을 아무렇지 않게 걸면서도
식물 하나 들이기엔 그렇게 오래 고민했다.
싱고니움 네온핑크.
처음 본 순간부터 자꾸 생각났다.
이름이 예뻤고, 생김도 귀여웠고,
무엇보다 지금 내가 갖고 싶은 ‘무언가’였다.
처음엔 장바구니에만 담아뒀다.
이 돈이면 뭐 다른 것도 살 수 있지 않나
혹은 또 죽이면 어쩌지
내가 얘를 감당할 수 있을까.
그런 걱정들이 머릿속을 맴돌았지만
결국 결제 버튼을 눌렀다.
손가락이 망설이지 않았다.
포장 박스를 열고 조심스럽게 꺼냈다.
잎에 상처가 없는지 확인했고
흙이 눅눅한지 건조한지 살펴봤다.
배팅할 땐 절대 하지 않던 행동들.
도박은 걸고 잊는 거였지만
식물은 사고 난 뒤부터 진짜 시작이었다.
그 아이를 위한 자리를 만들었다.
햇빛이 가장 잘 드는 자리를 비웠고
작은 받침대를 사서 그 위에 올려뒀다.
주변에 있는 다른 화분들도 자리를 옮겼다.
이 아이가 제일 좋은 햇빛을 받도록.
그렇게까지 무언가에 신경 쓴 적이 있었던가.
누구에게든 무엇이든.
그러고 나서 가만히 앉아 한참을 봤다.
‘이게 올인배팅이구나’ 싶었다.
돈을 다 썼다는 게 아니라
이 존재가 잘 살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
그게 나에겐 생소했다.
내가 무언가를 이렇게 오래 들여다보며 바라본 적이 있었던가.
이렇게 신중하게 돈을 쓴 적이 있었던가.
한 존재를 위해 내 공간을 바꾼 적이 있었던가.
화분 하나 샀을 뿐인데
그 안에 내가 너무 많이 들어가 있었다.
이 아이가 잘 자라면 내가 뭔가 괜찮은 사람이 된 것 같을 것 같았다.
내가 이걸 망치지 않으면
혹시 나도 괜찮아질 수 있을까 싶은.
그래서 올인했다.
물은 조심스럽게 주고
잎이 구겨지지 않게 매일 각도를 바꿔주고
하루에 한 번 이름을 불러주었다.
그건 배팅이 아니라 기도에 가까웠다.
배당률이 아니라 생존율을 생각했다.
확률이 아니라 존재였다.
조금만 더 잘 살아주면 좋겠다.
그 아이도 나도.
오늘의 식물 : 에피프레넘 마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