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kb 하우스 Aug 26. 2022

03. 무의식이 꿈이 되다

[에세이] 나는 퇴사에 실패했다

  누워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그렇다고 잠을 편히 잘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보니 새벽부터 일어나 앉았다 눕기를 반복해야 했습니다. 예전 같으면 이 상황을 툭 털고 일어나 이것저것을 하며 새벽 시간을 보냈겠지만 이번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새롭게 생긴 스트레스가 잠을 일찍 깨게 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잠을 설치게 된 데는 간밤에 꾼 꿈이 또 한몫한 것 같습니다. 나는 꿈에서 한적한 주차장에 들어가 주차를 하면서 실수로 뒤차와 부딪혔는데 이것에 대한 보상 문제로 어수선한 상태에서 잠을 깨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 꿈은 나의 현실과 비슷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냥 눈 한번 질끈 감는 것으로 넘겼으면 되었을 상황을 나는 굳이 스스로를 멈춰 세우는 돌발 행동을 해버린 것입니다. 알랭드 보통은 인생을 하나의 불안에서 다른 불안으로 대체되는 과정으로 존재감을 위협받을 때 우리는 불안을 느끼게 된다고 했습니다. 나 역시도 회사라는 아우라가 일순간 사라지면서 이러한 불안과 장애가 나타난 것입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아파트에 있는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거나 집 근처의 산을 등산하는 것으로 퇴사 첫날을 시작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이상하리 만치 몸에 힘이 빠지면서 사실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지난주에 예약해 놓았던 코엑스서 열리는 신기술 전시회도 가지 않기로 하고 취소를 해버렸습니다. 이것이 회사와 관련된 일이다 보니 피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내가 다행 중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은 퇴사를 이유로 술독에 빠져 지내지 않는 것입니다. 술로 스스로를 망가뜨리지 않을까 많이 걱정하고 신중했는데 다행히 그러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술에 매달리지 않고 지내게 되면서 소주 한잔하자며 만나자는 주변의 연락도 가볍게 거절하고 다음으로 미룰 수 있었습니다. 이로써 술을 앞에 놓고 들어야 하는 퇴사에 대한 반대 목소리도 이로 인해 커질 게 될 술판까지도 미리 피할 수 있었습니다.


  인간이 하는 행동에는 그 기저에 잠재의식이 겹겹이 쌓여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퇴사를 하겠다며 회사를 나올 때까지만 해도 나는 여행을 떠날 생각에 깊이 심취해 있었습니다. 집에 도착하면 바이크에 짐을 싣고는 비가 그치는 대로 일주일이고 혼자 여행을 떠날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버스에서 내려 집에 도착하니 거창하게 시행될 것 같았던 이 계획이 나의 생각에서 사라지면서 이상하리 만치 바이크가 모든 일의 뒷전이 되어 버렸습니다. 비나 눈이 오지 않으면 바출이라는 바이크로 출근할 정도였는데 이상하게도 한순간에 바이크에 대한 매력이 내 영혼에서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수시로 단톡방에 올라오는 바이크 글도 더 이상 열어보지 않으면서 그냥 지금의 기분대로라면 몇 달 정도는 바이크를 안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다음 달로 예약해 놓은 1박 2일로 열리는 바이크 행사를 참석하지 않는 걸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오늘 에서야 드는 생각이지만 나는 아마도 나의 불안한 마음을 바이크에 매달리는 것으로 풀어 보려고 한 것 같습니다. 4년 전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바이크를 몰래 가져왔는데 사실 그때는 왜 내가 바이크를 다시 타고 싶은지를 잘 몰랐습니다. 바이크 사고의 경험과 후유증이 트라우마로 가지게 되면서 나는 바이크로 잃었던 존재감을 다시 찾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불과 몇 주 전에는 춘천에서 열리는 랠리 대회까지 참가했는데 이걸 보면 한계를 바이크로 견디는 것으로 나는 회사의 생활과 고비에 맞서려 했던 것 같습니다.


  오늘은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주변이 보인다는 말을 느낀 하루였습니다. 나는 오늘 하루를 몸도 마음도 그냥 가만히 쉬게 놓아두려고 합니다. 이렇게 그냥 가만히 놓아두는 것으로 흙탕물을 일으키며 살아왔던 나의 삶도 그리고 내 주변까지도 다시 맑아 지길 기대합니다. 이것으로 지금까지 보이지 않았던 세상도 내가 가야 할 길에 대한 희망도 가져 봅니다. 마치, 유대인의 안식일 같은 시간으로 모든 걸 내려놓으면서 여유와 치유를 얻고 싶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02. 인생에서 하이킥 세례를 맞으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