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즈워스'의 이해-여행하며 글쓰기 1
트래블링 라이트
일찍이 호머(Homeros)의 오뒷세이아(Odysseia)와 일리어드(Iliad)의 서사시 이후 트래블 라이팅은 독립된 ‘문학 장르’ 로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ide)는,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에서 유럽인의 동양학에 대해 지적하면서, 동양을 직접 경험할 수 없는 서양인들이 과거 동양에 관한 담론과 당시의 문명 사관, 제국주의적 이데올로기 등의 관점을 통해서 동양을 바라보았고, 때문에 종전의 트래블 라이팅에 재현된 동양은 동양이라기보다는 동양에 대한 인용과 각주의 체계, 동양에 대한 진실이라기보다는 동양 문명의 이데올로기적 자기 확인이었음을 강조하였다. 동양이 유럽의 창작물이라는 것이다. 그러한 푸코적인 담론 분석방법이 점차 탈식민주의적 연구로 확대되면서. 신변잡기로 인구에 회자되던 트래블 라이팅이 학문적 관심의 대상이 되어 인문학뿐만 아니라 사회과학의 영역에서도 그에 관한 학제적 비평이 시도되고 있다. 그 비평의 요체는 트래블 라이팅이 사건의 서술(story)이면서 아울러 담론적 구성물(discourse)이므로, 텍스트적으로 재현된 여행지는 대상으로서의 여행지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그렇다고 사이드가『오리엔탈리즘』에서 보여 준 식민주의 담론의 관점에서는, 특정 트래블 라이팅에 나타난 구체적 묘사가 여행자의 여행지에서의 경험을 제유적으로 요약해주거나 여행지의 본질을 설명해주는 비유 또는 텍스트를 구성하는 중심 플롯으로 승화되지는 않았다.
낯설고 신비한 미지의 나라를 하나의 일관된 담론의 대상으로 전개하는 것은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의 사회진화론과의 결합에 힘입었다. 게으르고 나약한 존재들의 소멸은 자연의 법칙이라는 허버트 스펜서는 이를 사회진화론으로 발전시켜, 사회라는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하는 자가 사회에서 가장 잘 살아남는다는 주장을 하였다. 이러한 주장을 사회에도 적용하여, 사회는 미분화 상태에서 분화 상태로, 혼란스러운 동종성에서 개별성으로 진화한다고 하였다. 진화의 종착점인 자유주의와 개인주의가 일관된 패러다임으로 환원되어 각 트래블 라이팅에서 담론적 통제와 플롯의 개연성을 담당하였다.
또한 트래블 라이팅 연구가 학문적 방법론으로 포장됨과 더불어 트래블 라이팅에 포스트 모더니즘의 영향 또한 부가되었다. 테리 이글턴(Terry Eagleton)은 현대의 학계가 ‘타자성’과 열애에 빠져있음을 지적하면서 ‘타자성’에 대한 편애가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이라 하였다. 모더니즘의 정서가 동일성과 자율성이었다면, 포스트모더니즘의 기조는 ‘차이’와 ‘타자성’에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1970년대 이후 트래블 라이팅을 다루는 제 학계에서는 포스트식민주의의 궤에서 재현의 문제에 문화와 권력의 관계를 포섭하여 분석하는 경향이 지배적이었다. 대표적으로는 철의 장막 너머의 국가 등을 대상으로 한 Michael Palin을 비롯하여, Bill Bryson, Paul Theroux 등이 유럽과 미국 등을 묘사하면서 사회에 대한 통찰을 시도한 것이다. 여기에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중앙집중주의, 제국주의, 인종주의, 성차별 등의 이념이 똬리를 틀고 있다.
그런데 에드워스 사이드가 『오리엔탈리즘』에서 주장하였듯이, 유럽에서는 소급하여 18세기 말경부터 이미 타자성에 관한 사회적 관심이 있었다. 예컨대 디포(Daniel Defoe), 필딩(Henry Fielding), 존슨(Samuel Johnson), 울스튼 크래프트(Mary Wollsotonecraft) 등은 식민지 탐험문화의 일종으로 비유럽에 관한 트래블 라이팅을 유럽 사회에 쏟아내었으며, 나아가 스위프트(Jonathan Swift)는 상상적인 연대기를 집필하였다. 특히 전자는 18세기 유럽의 제국주의적 개척을 기호화하여 보고서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트래블 라이팅이 글쓰기의 한 형식 또는 문화 번역의 텍스트로서 18세기 영문학의 주요한 화두를 제시한 것이다. 최근에 본격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낭만주의 여행 담론의 연원이 거기에 있다.
낭만주의 여행 담론은 프랑스혁명 이후의 근대 유럽을 배경으로 한다. 18세기 영국 상류층 자제들 사에에 열풍처럼 번진 유럽 대륙 장기여행(Grand Tour)과는 다른 태양으로, 여행자가 산업혁명, 소비자 혁명, 운송 혁명을 겪고 있는 유럽을 방문하여 남긴 트래블 라이팅인 것이다. 프랑스혁명의 특징적인 편린을 짜 맞추어 보면,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서로 평등하며, 한편으로는 이성적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이기적인 추상적 개인’을 이념적 인간형으로 하여 이를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새로운 질서 하에서 인간은 자유를 획득하는 대신, 모든 경제관계를 자기 스스로의 책임하에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개인을 보호해주던 공동체라는 울타리가 사라져 버렸다. 그러한 공동체 해체를 바탕으로 하여, 18세기 후반 산업혁명의 기치 아래 기술혁신과 그에 수반한 사회 경제구조상의 변혁이 일어났다. 더불어 산업자본주의의 절대적 보호라는 당시의 사회적 이데올로기가 구현되면서, 도시문제, 노동문제 등 초기 산업자본주의의 병리현상이 노정되었다.
낭만주의 문학은 이러한 과정에서 배태된 듯하다. 특히 산업사회로 진행 중인 유럽을 대상으로 한 트래블 라이팅은 산업혁명의 의미를 재음미하는 계기가 되었고, 여행자라는 수사는 근대성에 관한 논의와 자연스럽게 결부되었다. 그 흐름의 단초를 제공한 이가 워즈워스이다. 프랑스혁명의 여진이 남아 있던 프랑스를 방문한 그는, 혁명파 장교 마이클 보피(Michel Beaupuy)를 만나 사상교육을 받고 공화주의자로 전향하였다. 그 전향은 혁명의 소명을 다하지 못하는 현실에 부딪쳤다. 정치 신념이 좌절된 워즈워스가 코울리지(S.T. Coleridge)와 공동 작업한 1798년의『서정 민요집』(Lyrical Ballads)은 영국 낭만주의 문학의 맹아가 되었다. 이어서 『서곡』의 9권과 10권에서 전쟁미망인, 상이군인, 부랑자, 몰락한 농부 등의 민중을 대상으로 삼으면서 정치적 정열을 시적 에너지로 승화하였다.
일련의 워즈워스 시에서 주목할 것은 워즈워스의 공동체에 대한 시각이다. 모든 이야기에서 타자에 대한 기록은 화자 자신에 대한 것이다. 더욱이 혁명적 사상의 세례를 받은 워즈워스에게는 애당초 여행지를 투명하게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은 담보될 수 없었다. 그의 시에 투영된 공동체가 나름의 가공된 의제임은 캠벨(Mary Baine Campbell)이 언급하는 재현의 본질적 허구성에 의해서도 뒷받침된다. 캠벨에 의하면, 여행자 화자와 타자는 장소를 변경하는 인간의 근본적인 욕구를 갖고 있음을 전제로, 맨더빌(Mandeville), 마르코 폴로(Marco Polo), 콜럼버스(Columbus), 월터 롤리(Walter Raleigh)의 트래블 라이팅을 조명한 후, 그들이 자신의 여행지에서의 경험에서 멀어지는 것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국가관(national identity)이 재현 또는 자기 재현이라는 가설이 워즈워스에게 적용될 수 있다면, 워즈워스의 공동체에 관한 묘사는 결국 자기 재현이라는 논리에 귀착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마르크스주의의 가능성을 일깨워 주었던 홉스봄(E. J. Hobsbawm)이 국가(nation)를 시간의 변수에 놓여 있는 발명(inventions)으로 파악하였던 관념과는 그 뉘앙스가 다르다. 홉스 봄은 평생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새로운 사회의 전망을 모색하면서, 근대를 ‘극단의 시대’로 칭하였다. 그에 의하면 근대의 특징적 모습들은 파시즘의 도래, 완벽한 파괴와 살육을 보장해 주는 기계들의 혁신, 폭력과 테러의 정치 및 문화의 진화, 끊임없는 인권 유린과 기본 권리의 침해, 무엇보다도 양차 세계 대전에서 절정에 이른 전쟁들 속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종래 연구의 틀에서 벗어나 워즈워스의 시를 살펴보면, 보다 소급하여 문화와 권력의 관계를 다루고 있는 워즈워스를 발견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환언하여 그가 영국의 국민의 시인으로 칭송받고 있는 소이를 천착해 보면, 워즈워드의 공동체 또는 국가에 관한 관점에 귀결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