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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썬제로 Jan 30. 2022

나 홀로 부산여행

주의! 과도한 친절은 환자의 설렘을 유발합니다


나에게도 그런 순간이 찾아왔다. 삶의 고단함에 지쳐 불현듯 바다가 보고 싶어 지는 순간이. 마침 직장이 광명역 바로 앞에 위치해 있다는 상황마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부산으로 향하는 기차표를 손에 들었다. 


흐물흐물한 나의 육신은 퇴근 후 바로 광명역에 떨궈졌다. 기차가 서서히 움직이자 세상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현실이라는 암막이 벗겨졌다. 초점 없던 눈동자에는 캐치아이가 드리웠다.




지난번 나 홀로 호캉스를 실패로 끝낸 이후 다시 혼자 떠난 건 처음이었다. 호캉스 역시 낭만을 찾아 떠났지만 결국 외로움에 지쳐 눈물을 흘리지 않았던가. 이번에도 괜한 나의 오기가 아니었을까 내심 불안했으나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여행은 비교적 성공이었다. 


내가 말하는 성공의 기준은 외로움을 많이 느꼈는가 적게 느꼈는가의 정도이다. 돈과 시간을 투자한 여행에서 즐거움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공허함만 늘려온다면 그것만큼 쓸데없는 낭비가 없기 때문이다. 호캉스를 통해 얻은 깨달음이었다. 


솔직히 이번 여행은 지난번만큼이나 즉흥적이었으며 총 3박이라는 긴 시간을 홀로 보내야 했다. 예산을 줄이기 위해 게스트하우스 도미토리를 이용했고, 뚜렷한 목적지 없이 그저 바다를 봐야겠어!라는 객기와 독립서점을 가볼까? 정도의 계획만 가지고 떠났다. 


그렇게 도착한 부산. 눈부신 태양이 작열하는 바닷가 앞은 삼삼오오 놀러 온 사람들로 북적였으며, 방음이 되지 않는 도미토리 객실에서 혼자 누워있는다는 건 오롯이 군중 속의 고독을 느껴야 하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여행이 외롭지만은 않은, 좋은 추억으로 남을 수 있었던 건 매일 햇살이 조각조각 부서지는 드넓은 바다를 볼 수 있었던 것과 혼자 온 여행자를 따뜻하게 감싸준 작은 친절들을 마주한 것. 그 이유였다. 


어떤 사람들은 영업을 위한 친절함을 가식이라고 할 만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잘 모르는 상대가 도와준답시고 갑자기 말을 거는 것도 꺼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직원들의 도식적인 미소는 영혼 없는 빈껍데기로 치부된다거나 의미 없는 대화를 지양하는 경우도 많지만 나는 이런 사소한 친절이나 정형화된 스마일조차도 기분이 좋게 받아들이는 편이다.  


애정결핍도 있는 데다가 외로움 투병 환자로 살아온 내게 친절을 베푸는 건 목마른 자에게 물을 한 컵 건네는 행위이며 라면을 먹는 사람에게 김치를 가져다주는 일이고 시멘트로 둘러싸인 방안에 싱그러운 화분을 놓아주는 것과 같은 것이다. 


홀로 전시관을 구경하고 있으니 먼저 다가와서 사진을 찍어주시던 직원분, 아직 영업준비가 다 안되었는데도 들어오라며 공간을 내어주시던 서점 사장님과 근처 맛집을 여러 개 소개해주신 또 다른 서점의 사장님, 관광지 소개는 물론이고 더 예쁜 사진 찍으라며 조명까지 켜주시던 게스트하우스 사장님까지. 그들이 내게 준 건 의무적인 친절이었을지 모르나 내가 받은 건 곰팡이를 물리치기 위해 피톤치드를 내뿜는 편백나무 한그루였다. 


비록 그 시간대에 손님은 나 혼자였다던가, 그날의 첫 손님이 나였다던가, 내가 단지 고객이기 때문에 그들은 최선을 다해 속마음을 감추고 웃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르는 사람과 웃으며 대화할 수 있는 그 기회가 나에겐 얼마나 소중했는지. 그로 인해 나의 3일이 얼마나 밝아졌는지. 미소의 나비효과가 얼마나 멀리 퍼졌는지는 꼭 알아주었으면 한다. 그 어떤 이유든 사람의 미소에는 큰 힘이 깃들어있다. 


나는 여행 내내 그들에게 감사하며 설레는 기분을 만끽했다. 아마 그들이 좀 만 더 과잉친절을 선보였다면 나는 그들의 앞에서 얼마 없는 개인기를 선보이며 기쁨의 댄스를 추었을지도 모른다. 




여전히 혼자 떠나는 여행은 설렘보다 걱정이 먼저 앞선다. 내가 잘 견뎌낼 수 있을지 의구심이 목젖까지 타고 올라오기도 한다. 그래도 이젠 전보다 확실히 괜찮다. 이곳에 또다시 증거를 남긴다. 부산에서도 혼자 잘 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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