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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썬제로 Jun 19. 2021

나 홀로 호캉스

이상과 현실

외롭고 싶지 않아서 돈까지 썼는데 이것 참 더 외롭군.

호텔방에 들어온 지 30분쯤 지났을까 나는 이 모든 과정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외로움을 극복하고 나 혼자 할 수 있는 색다른 경험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제일 먼저 채택된 것은 호캉스였다. 크게 고민해서 결정한 일은 아니었다. 회사 근처에 호텔이 많기도 했고 멀리 여행 가는 것보다는 편했으니까. 퇴근 후 호텔에서 휴식을 즐기는 직장인. 그런 로망이 있기도 했다.


그리하여 호기롭게 켠 야놀자 앱. 가냘픈 통장을 생각하며 가성비 좋은 호텔을 골라 조금은 떨리는 손으로 결재를 마쳤다,


호캉스를 하는 날은 결심한 다음날인 월요일이었다. 월요일로 정한 이유는 월요일이 일주일 중에 제일 싫기도 하고 성격이 급한 나는 그냥 빨리 호캉스가 하고 싶었다.


호텔에 가면 일단 좋을 거고, 아늑할 거고, 다음날 출근도 편해질 것이다. 이별로 인한 아픔도 조금을 달래질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이렇게 생각을 했더랬다.


드디어 월요일 퇴근길. 처음에는 호텔에서 분위기 잡고 와인이라도 한잔 먹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더 분위기 있게 와인바를 갈까 하는 생각으로 옮겨갔고 근처 와인바의 메뉴판(가격)을 본 뒤 나는 어느새 이자카야로 가있었다.


혼술을 하기에 다찌석이 있는 이자카야는 딱이었다. 절대 파란불이 뜬 주식창을 생각한 것이 아니다.


바글바글한 사람들 틈에서 모둠꼬치와 함께 맥주 두 잔을 시원하게 마신 뒤 호텔로 향했다. 아쉬운 마음에 4캔에 만원 하는 맥주와 추억의 꿀호떡을 사들고 말이다.


자동반사적으로 따라다란 딴 ~ 하는 러브하우스의 bgm을 부르며 신나게 문을 열었다. 그다음으론 화장실에 욕조가 있다는 점에 놀라고 푸근해 보이는 침대와 창문 앞에 테이블을 보며 호텔에 왔음을 실감했다.


야무지게 가져온 가방을 옷장 안에, 맥주는 냉장고에 넣어 놓고 씻으러 들어간 화장실. 목욕을 하고 싶었으나 그러고 보니 이 날 나는 마법에 걸린 상태였다. 아쉽긴 했지만 깨끗한 호텔 화장실에서 샤워를 마치고 개운한 기분으로 나왔다.


나름 분위기를 낸다고 호텔 가운을 걸치고 테이블 앞에 앉아서 맥주캔을 꺼냈다. 탁 하고 캔의 입구를 따자 치이익 하는 맥주의 거품이 요동을 쳤다. 그대로 들어 입속으로 한 모금 밀어 넣었다.


배부르다.


이자카야에서 너무 배부르게 먹은 탓인지 맥주는 한 모금 이상 들어가지 않았다. 호떡은 차마 포장지를 뜯을 수도 없었다. 순식간에 처량해져 버린 테이블의 분위기였다. 맥주를 사 왔는데 왜 먹질 못하냐며 스스로를 자책했지만 소용없었다.

 

10시가 채 되기 전에 나는 침대에 벌러덩 하고 누웠다. 외로웠다. 외로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하나하나 되새김했다. 뭐라도 해보려는 의지가 잘못된 것인지, 하필 혼자 호텔에 온 것이 잘못된 것인지, 이자카야에서 꼬치를 너무 많이 먹은 게 잘못된 것인지 손가락을 접어가며 생각했다.


결론은 '섣불렀던 것' 이 잘못됐다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상실감이 컸던 그 시점에 외로움 투병환자인 내가 혼자 낯선 곳에서 하루를 보내다니. 깜냥도 안되면서 섣부르게 호캉스를 택했다. 또한 준비가 너무 없는 것도 잘못이었다. 그날 어떻게 하루를 즐길지 충분한 계획도 없이 그저 불도저처럼 밀어붙이기만 했다.


이렇게 첫 번째 나 홀로 도전은 실패로 돌아갔다.


하지만 성과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비록 그날 호텔에서는 눈물이 흐를 뻔했지만 외로움을 낫게 하려면 천천히 조금씩 나아지길 기대하는 것이 치료의 핵심이라는 걸 깨달았으니 말이다.  


누군가가 그랬다. 실패는 내가 했었다는 증거라고. 여기 이렇게 증거를 남긴다. 나 홀로 호캉스, 해보긴 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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