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썬제로 Feb 01. 2022

혈연으로 맺어진 사이의 안락함 (2)

컴 백 홈 



지난여름, 나는 자취를 끝내고 가족들과 함께 사는 집으로 복귀했다. 꽤 먼 길을 돌고 돌아 도착한 집이었다. 




머리가 커진 자식들 대부분이 꿈꾸듯 나도 독립을 간절히 원하던 시기가 있었다. 특히 사춘기 때의 나는 집에 들어가는 게 너무 싫었다. 집에 방은 3개인데 가족은 6명이라 그중에 내방이란 건 존재하지 않았으며 거실에는 항상 아빠가 술을 드시면서 티비를 보고 있었다. 혼자 있고 싶은 데 있을 곳이 없어 나가 놀다가 늦게 들어온다고 혼나는 이 심정.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다. 게다가 꾸미는 거에 영 관심이 없는 엄마는 인테리어가 촌스럽던 말던 신경을 쓰지 않았고 벽지부터 가구까지 모든 것이 내 맘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20살 이후 줄곧 나가 살았다. 기숙사에서도 살고 자취방에도 살았다. 취직을 하면서는 전세대출을 받아 내 집을 마련하기도 했다. 그렇게 유목민처럼 이 집 저 집을 옮겨 다니며 자발적인 유랑생활을 자행했는데, 나의 독립 로드를 짧게 소개해본다. 


대학생 때는 4년간 기숙사에서 살았다. 2인 1실이 기준이었으며 랜덤으로 걸리는 룸메이트와 한 학기 동안 같이 살아야 했다. 처음 만난 룸메이트가 기숙사 일을 돕는 일명 '층장'이었던 탓에 나도 영향을 받아 2년간 층장으로써 같은 층 사람들을 관리하기도 했다. 기숙사에 살았던 것은 삶에 좋은 경험이자 즐거운 일이었지만 때로는 어색한 사람들과 함께 샤워를 하고 더러운 화장실과 마주해야 하는 불편함도 더러 있었다. 


돈은 없고 용기만 많던 20대 초중반, 가장 친했던 대학교 친구와 두 번이나 함께 살았다. 이 친구와 나는 다 무너져 가는 허름한 집에서 한 번, 바퀴벌레가 나오는 집에서 한 번 동거를 감행했고 그때의 집은 난장판이나 다름없었다. 돌아가라고 하면 돌아가고 싶은 집은 아니지만 추억하면 웃음이 나오는 시절이다. 그래도 그때는 친구와 함께 였기에 외롭지는 않았다. 


마지막은 재작년, 중소기업 전세대출을 이용해 마련한 집이다. 원룸 형식의 아파트였고 내생에 처음으로 전세계약을 맺은 집이었다. 그런데 집을 얻고 3개월도 안되어서 좋지 않은 이유로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다. 회사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집이었는데 회사를 관두고 나니 허무하기도 했다. 설상가상으로 이 집에  있던 1년 간 이별을 두 번이나 겪었다. 


확실히 그 집은 내 스타일대로 인테리어도 했고 창문 밖으로는 나무가 푸르렀기에 분위기가 어둡지도 않았다. 원룸이긴 하지만 부엌도 있고 화장실도 깨끗했다. 쌈짓돈을 털어가며 샀던 내 취향의 가구들도 곳곳에 들어차 있었다. 그런데 그 집에 있으면 자꾸만 몸이 축축 가라앉았다. 


종국에 나는 가족들이 있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싫어했던 집인데 막상 다시 들어오고 나니 이제야 진짜 집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살면 좋은 점이 여러 개가 있다. 


1. 내가 친구들과 놀다 밤늦게 들어오거나 티브이를 보면서 깡소주를 먹어도 누구도 뭐라 하지 않는 자유를 얻는다.

2. 가끔은 설거지 거리를 쌓아놓거나 옷을 제때제때 걸어놓지 않아도 잔소리가 들리지 않는 자유를 얻는다.

3. 친구들을 불러 매일 밤 파티를 진행해도 옆방에서 항의가 들어오지 않는 한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자유를 얻는다.

4. 집에서까지 힘든 내색을 감추지 않아도 되는 자유를 얻는다.


하지만 명확한 단점이 존재한다. 


1. 깜깜한 밤 무서운 기분이 들 때 스스로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다. 

2. 매달 나오는 관리비를 보면 새삼 무서운 기분이 든다.

3. 정신 못 차리고 미루면서 살다 보면 집이 돼지우리로 변해있어 무서운 기분이 든다.

4. 가끔 집 밖에 나섰는데 고데기 전원을 안 끄고 온 것 같아 무서운 기분이 든다.

5. 외롭다


그렇다면 독립을 끝내고 집으로 들어와 살면서 나아진 점은 무엇일까.


1. 관리비 고지서에 가슴이 두근거리다가도 엄마에게 떠밀 수 있으니 마음이 편해진다.

2. 밥솥에 항상 밥이 채워져 있어 마음이 편해진다.

3. 내 방은 여전히 더럽지만 깨끗한 거실에 누워있으면 마음이 편하다. 

4. 택배 주문 시 혼자 사는 여자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곽두팔' 같은 이름을 써놓지 않아도 돼서 마음이 편하다. 

5. 덜 외롭다.



내가 집을 나가 있던 10년 동안 6명이던 가족 수는 어느새 4명으로 줄어들었고, 서울에 나가 사는 오빠를 제외하니 이 집에는 엄마와 나, 동생까지 총 3명이 남게 되었다. 전처럼 시끄럽지 않고 적막감에 휩싸이는 집을 볼 때면 계피라도 씹은 것처럼 가슴 한쪽이 씁쓸해져 오지만 집안 곳곳 가족들의 온기마저 사라진 것은 아니기에 여전히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 


혼자서도 괜찮은 사람이 되는 것이 치료의 목적이며 완치라는 목표를 달성하는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은 본디 힘들 땐 서로에게 의지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을 땐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가족들은 아주 좋은 치료제다. 


당분간 가족들 품은 나의 은신처가 되고 방공호가 되고 보호막 그늘이 될 것 같다. 혈연으로 맺어진 사이의 비교할 수 없는 안락함이 나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 부드러운 손길에 오늘도 편안하게 잠이 든다. 








이전 16화 심심한데 나가기는 귀찮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