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가지 역설적인 표현들이 있다. '소리 없는 아우성'이라던가 '찬란한 슬픔의 봄'이라던가. 국어시간에 배웠던 대단한 표현들이 많지만 내가 살면서 가장 많이 내뱉는 역설적인 말은 '심심한데 나가기 귀찮아'이다.
기다리던 주말이나 긴 연휴가 다가왔을 때, 그런데 약속조차 잡히지 않았을 때 분명 그 전날까지는 혼자라도 여기저기 돌아다니자 다짐하지만 막상 당일 아침이 되면 이불속에서 나올 수 없는 병에 걸리는 것, 그거 나만 그런 거 아니지 않나.
나에게는 이번 명절도 그러했다.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 차례를 간소하게 지내는 데다가 친척간의 왕래도 없어 5일을 내리 쉬게 되었다. 친구들과 약속이 있는 마지막 날을 제외하면 4일을 내 맘대로 보낼 수 있었는데 전시회 티켓까지 끊어놓고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취소를 했다.
지하철 타고 한 시간도 안 걸리는 곳에 있는 독립서점에 가자는 스스로와의 약속도, 이도 저도 안되면 오분 거리 카페에서 글이라도 쓰자는 최후의 보루도 이불 앞에서는 모두 뜬 구름 잡는 얘기에 불과했다.
책이야 정기 구독한 어플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는 거고 커피는 집에서 타 먹을 수 있는 데 뭐하러 혼자 차려입고 나가야 하나라는 전기장판의 꼬드김이 텔레파시처럼 나의 좌뇌 우뇌로 파고들었다. 친오빠가 선물로 사준 난방 텐트는 너무 아늑한 게 아무래도 나의 주말을 망치러 온 악마가 깃들어 있는 게 분명했다. 어쩐지 오빠가 나에게 좋은 걸 사줄 리 없지.
나는야 나약하고 유약한 인간이자 선악과를 베어 먹은 아담과 이브의 자손이다. 종교가 기독교는 아니지만 여하튼 그렇게 되었고 달콤한 유혹에 당해낼 재간이 없어 오늘도 꼼짝없이 이불속에 갇힌 채 하루가 시작되었다.
째깍째깍 시간이 흘렀다. 손을 뻗어 충전기에 꽂혀있던 휴대폰을 집어 들며 가까운 곳에 갈만한 곳이 있나 찾아보지만 이윽고 나의 시선은 인스타로, 유튜브로, 웹툰으로 흘러가 버린다.
그러다 '이럴 때 남자 친구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따위의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만약 남자 친구가 있었다면 5일 중에 하루 정도는 약속을 잡았을 테고, 둘이 손잡고 독립서 점도 가고 예쁜 카페도 가지 않았을까 하는 망상에 퐁당 빠져버린다.
외롭다. 외로운데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혼자서도 잘 놀고 새로운 사람들도 많이 만나며 비로소 솔로 라이프를 즐기고 싶은 데 그거, 아무나 하는 게 아닌 것 같다. 귀차니즘을 숭배하는 나 같은 인간들에게는 어려운 미션이었다.
하지만 이 게으름의 검은 유혹을 물리치는 말이 있다. 바로 엄마의 '밥 먹게 나와'라는 말. 나는 점심시간이 다 되어서야 꾸물꾸물 방 밖으로 나왔고 밥을 먹은 뒤 엄마와 산책을 했다. 다녀온 후엔 몸이 뻣뻣한 것 같아 스트레칭을 했고 티브이를 보다가 또다시 저녁밥을 먹었다. 방에 돌아와서는 느릿느릿 글을 썼다. 어찌 됐든 하루가 흘러갔다.
심심했지만 나가기 귀찮았고 느리게 느리게 시간이 흘러갔고 밥은 잘 챙겨 먹었다. 전시회도, 독립서점도, 카페도 다음 기회로 미뤄두었다. 그렇게 소소한 일상이 저물었다.
또다시 이불속을 파고들었다. 내일은 계획하지 않기로 했다. 이번 연휴는 그냥 이렇게 심심한 채로 흘러가게 내버려두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나는 괜찮았다.
인생은 어차피 지루한 일상의 반복이다. 그 안에서 즐거움을 찾아 부단히 애쓰는 날이 있는 가 하면 심심함을 꿋꿋이 견뎌내는 날도 있는 것이다. 매일매일이 특별할 수는 없으니 나가기 귀찮으면 집에서 쉬는 것도 좋은 선택일지 몰라.라고 폭신한 꽃무늬 베개가 내게 말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