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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썬제로 Jan 08. 2022

꿈에서 깨고 싶지 않았어


서울 시내에서 하늘에 둥둥 떠있는 미끄럼틀을 타고 다니는 말도 안 되는 꿈을 꾸었다. 


우리 가족은 잔디밭이 펼쳐진 어느 나무로 만든 집에 살고 있었고 나는 집과 연결된 미끄럼틀을 통해 이곳저곳을 누볐다. 빌딩과 자연의 조화가 적절해서 아름다웠다. 


그러다 한 커다란 빌딩 안으로 들어갔는데 처음 보는 중년의 남성이 갑자기 내 남편이라고 했다. 

엥? 언제 결혼했지? 그럼 난 지금 몇 살인 거야? 싶은 찰나에 장면이 전환되었다. 

오늘따라 꿈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확확 바뀌어주었다. 




이날은 체력적으로 지쳤다는 걸 느껴서 아무것도 하지 말고 쉬고자 월차를 쓴 날이었다. 무조건 늦잠을 자야지 싶어 알람도 맞추지 않았는데 배가 아파서 아침 6:30분에 눈이 떠졌다. 보통 출근을 위해 7시 정각 기상한다는 걸 생각하면 30분이나 이른 시간에 일어나게 된 것이다. 나는 화장실에 다녀오면서도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는 그렇게 힘든 잠깨기가 쉬는 날에는 왜 원하지도 않았는데 가능한 것일까. 


이 억울함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뇌도 잠재워야 할 것 같아 이불 위에 몸을 뉘이고 전기장판 온도를 따뜻하게 높여주었다. 몇 번의 뒤척임이 지나가고 나는 간신히 눈꺼풀이 다시 무거워짐을 느꼈다. 


그리곤 한참 동안 다이내믹한 꿈을 꾸었다. 아무래도 억지로 눈을 붙였기 때문에 깊은 렘수면에 빠지지 못하고 얕은 잠에 들었던 모양이다. 꿈을 꾸는 와중에 가위에도 여러 번 눌려 몸은 움직여지지 않는 채로 중간중간 내가 누워있던 방의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기분 나쁘지가 않았다. 꿈속의 상황들이 너무 재밌어서 조금만 더 꿈속에 머물고 싶었다. 잠에서 깨어나 봤자 딱히 할 일도 없고 조용한데 자꾸 내 맘대로 꿈이 조종되는 게 흥미로웠다. 


이번에는 저 옆 건물을 들어가 봐야겠다 싶어 들어가니 그곳은 내가 일하는 회사라고 했다. 누군가 말해준 건 아니지만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바닥을 내려다봤는데 내가 하이힐을 신고 있었다. 발 아픈 게 싫어서 운동화만 신고 다니는데 이곳에서는 발도 전혀 아프지 않았다. 복도 끝에는 커다란 문이 있었는데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어두컴컴한 비밀의 공간이 나왔다. 그리곤 반대쪽 문으로 양복을 입은 누군가가 들어왔는데 아까 그 남성은 아닌 듯했다. 왜인지 나는 있는 힘껏 그 사람을 껴안았다. 


아니, 근데 이 사람은 누구지? 


나는 누군지 보고 싶어서 껴안은 자세 그대로 고개만 들어보려 했지만 이상하게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체온은 너무나 따뜻했다. 아, 어찌 됐든 따뜻하니까 된 건가..  그리곤 갑자기 눈이 떠졌다. 


미리 데워놓은 전기장판 때문인지 몸의 온도가 살짝 올라가 있음이 느껴졌다. 꿈속에서의 따뜻함은 현실 속 전기장판의 영향이었다. 여전히 무거운 눈꺼풀에 다시 잠들까 살짝 고민했지만 이번에 잠들면 깨기 어려운 가위에 눌릴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억지로 노래를 틀고 잠을 깨웠다. 시간은 오전 10시 30분이 조금 지나있었다.




기분 좋게 열었어야 할 휴일 아침이 조금은 우울했다. 깨고 싶지 않은 꿈이었다고 해도 긴 꿈을 꾼 날은 어쩔 수 없이 우울해지는 것 같다. 차라리 배가 아파서 일어났을 때 하루를 시작할 걸 그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 꿈은 애정결핍에 시달리는 나의 내면을 이렇게나마 표출한 걸까. 껴안은 남자가 누군지 보고 싶어서 기를 썼던 내 모습이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고 웃음이 나왔다. 현실에서 껴안을 사람이 얼마나 없었으면 이런 꿈에 머물고 싶었던 걸까. 



나는 꿈의 내용을 반추해보다가 몸을 움직이기 위해 주방으로 향했다. 그리곤 미리 계획한 대로 빵을 데우고 과일을 씻고 동네 무인카페에서 커피도 한잔 사 왔다. 나는 그것들을 우걱우걱 먹었다. 크림치즈가 생각보다 더 부드러웠다. 계속 먹다 보니 느끼해서 라면을 하나 끓일까 했지만 배가 불러서 참았다. 현실은 적정량의 식사만 가능했다. 


돌이켜보니 그다지 깨고 싶지 않을 정도의 꿈도 아니었던 것 같다. 서울 한복판에서 공중 미끄럼틀이라니 말도 안 되지. 아마 그 꿈속에 머물렀다가는 미끄럼틀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껴안은 그 남자의 얼굴이 취향과 정반 대면 어떡한담. 


딸기를 집어서 입에 넣으니 상큼함에 혀끝이 저릿해졌다. 지금은 현실인 게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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