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를 켜고 끄듯이 사는 삶

IN 그리고 OUT 가능할까?

by 준비된화살

속이 훤하게 보이는 나지막한 옥빛 바다

유별날것도, 변화무쌍할 것도 없이

늘 제자리에 있는 모습이다.

세화 해변


보고 싶었고 그리웠다.


제주는 해안도로가 참 멋있다.

차에서 내려 흠씬 바닷바람 맞으며 두 팔을 벌리고 멍을 때려 본다.

바닷물에 몸적실 자신은 없지만 그냥 하염없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파도 타고 실컷 논 것 같은 착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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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도로를 구분 지어 적당한 거리를 두도록 돕는 돌담을 통해

감상하거나 들어가 놀거나를 결정하게 된다.

격렬하게 파도치는 깊은 바다보다 잔잔한 제주 동쪽 바다에 애정이 더 가는 이윤

유유자적에 있다.

날것 그리고 옥빛의 평온함이 무료할 정도로 따분하다.


세화해변 바로 앞 유리로 된 통창이 있는 카페에 앉아 바다 감상을 택한다.

작은 소품 샵도 보고 싶고,

고등어구이에 전복버터구이도 넉넉히 내주는 맛집도 그리웠다.


잔잔한 노래와 달달한 아이스캐러멜마키아토를 한 모금 마시니

여기가 천국인가? 하는 마음의 평온함이 들면서

문득 몇 년 전 동료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녀의 책상에 놓여있는 컴퓨터 바탕화면엔 다섯 살의 남자아이가 활짝 웃고 있다.

컴퓨터를 로그인하면 같이 근무하는 사람이나

책상의 주인인 그녀나 의도하지 않아도 그 사진을 보게 된다.


그녀는 30대 중반의 보건교사다.

아들 한 명이다 보니 남들 하나 해줄 때 두 개해주는 게 큰 삶의 목표인 듯 보였다.


직장에서 자녀의 얼굴을 보면 일할 때 조금 특별한 동기부여가 되는지

에너지가 더 생기는지 알 수는 없지만 가정에서는 직장일을

직장에서는 가정일을 걱정하며 속상해하는 모습을 통해

직장일과 가정일의 분리가 잘 안 되는 부류의 사람인 듯하여

긍정적으로 바라보지 못했던 기억이다.




그녀와 비슷한 나이 때쯤이었을 거다.

함께 근무했던 워킹맘 선배에게 직장과 가정일에

에너지를 어떻게 배분하여 사용하냐는 질문을 던졌다.

그 선배는 가정에 있을 땐 가정에, 직장에 있을 땐 직장에 각각 100%를 사용한다고 답했다.

가정에 100% 직장에 100%

50:50 이라느니 아니면 70:30 이라느니 이런 답을 기대했는데

전혀 예상외의 대답이었다.

그 즉슨 직장에 있을 때는 직장생활에 가정에 있을 때는 가정생활에 최선을 다한다는 말 아니였을까?




징글징글하게도 해 오던 일들을 단번에 끄는 기술이 부족했다.

좀 더 내 삶에 집중하기 위해 때론 과감하게 일에서 out 할 수 있는 용기

그 용기의 시작점이 바로 오늘이 되었으면 좋겠다며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in도 아닌 그렇다고 out도 아닌 어정쩡한 삶에서

컴퓨터를 켜고 끄듯이 그렇게 정리할 줄 아는

그런 단정하고 단호한 삶을 살고 싶어진다.




신창풍차 해안도로를 돌다 보면 거대한 풍차를 만난다.

멀리서 본 풍차는 아름답고 한가롭게 보이지만

가까이 보면 어마한 구조물을 움직이는 몸짓이 버겁게만 느껴져

나를 누른다.


그렇게 가면을 쓰고 살았다.

멀리서 보면 어린이집을 든든하게 지키는 원장으로 보이지만

가까이 보면 나약한 인간이라 때론 버거울 수 있다는 것을 힘들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받아들이고 인정할 때

비로소 나 다울수 있다.

그러니 애써 담담한 척할 필요도 부자연스럽게 센 척할 필요도 없지 않겠는가



오늘은 완벽한

직장 out 그리고 나 in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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