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미고에서 처음 새긴 친구는 대호였다.
우리 반 학생은 59명이었다. 그 중에 절반가량은 해미 출신이었고, 나머지는 다른 지역에서 온 학생들이었다. 해미 출신은 중학교도 같이 다녔기에 서로 친했지만, 외지에서 온 아이들은 서로 낯설어했다. 나는 해미 출신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외지인이라고 하기도 애매했다. 우리 집에서 학교까지 시내버스로 20분 정도 거리였다. 5일마다 열리는 해미 장에 콩이나 마늘을 팔아 돈을 사러 가는 엄마를 따라 어릴 때부터 해미에 자주 와서 환경은 익숙했지만, 해미중학교에 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반 친구들의 얼굴을 그때 처음 봤다.
키 순서대로 자리가 정해졌다. 가장 키가 큰 대호는 맨 뒷자리에 혼자 앉았고, 바로 앞이 내 자리였다. 대호는 쉬는 시간마다 마치 드럼을 연주하는 것처럼 책상을 두드리며 혼자 노래를 흥얼거리다가, 수업이 시작되어도 큰 소리만 내지 않을 뿐,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는 행동과 작은 흥얼거림은 계속되었다. 대호 때문에 수업 중이나 쉬는 시간 할 것 없이 늘 내 책상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대호와 나는 외모부터 성격까지 닮은 구석이라곤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대호는 우리 반에서 가장 컸고, 몸무게 역시 가장 많이 나갔으며, 웃음 또한 가장 헤픈 친구였다. 나는 대호와는 다르게 팔다리가 싸리나무 가지처럼 가늘었고, 흐리멍덩한 눈빛을 하고 다녔으며, 늘 누워있어서 침울한 기분이 감돌았다. 입는 옷과 신발도 달랐다. 대호는 나이키 가방에 빛바랜 죠다쉬 청바지, 아식스 운동화 같은 유명 상표의 옷과 신발을 걸치고 다녔지만, 나는 나이스 가방에 당나귀 머리가 선명한 진청색 청바지, 스펙스 운동화 등 엄마가 서산 뒷골목에서 사 온 짝퉁 옷과 신발을 신고 다녔다.
이렇게 대호와 나는 너무나 달랐지만, 어쩌다 보니 같이 다니게 되었다. 처음에는 조용히 잠을 자는 나에게 대호가 자꾸 말을 걸고, 수업을 마치고 터미널로 걸어갈 때 계속 따라다녀 귀찮기도 했다. 그러다가 언제부턴가 책상이 흔들리지 않거나, 흥얼거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궁금해졌다.
해미고 3년의 기구하고 파란만장한 생활의 서막을 알리는 그 사건은 입학 후 2주쯤 지나 발생했다. 엉덩이가 공중에 잠시 머무르는가 싶더니 이내 딱딱한 교실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머리가 뒤로 젖혀지는 찰나, 지난 여름 경운기에서 떨어져 산산이 부서지던 수박의 붉은 속살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마치 내 머리도 그렇게 으깨질 것만 같다는 생각과 함께 정신이 아득해졌다.
내가 다시 정신을 차린 건 정확히 25초가 지났을 때였다. 내가 기절했던 시간이 25초라고 확신하는 이유는 내 머릿속 폭력차단회로가 작동했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때도 나는 철저한 비폭력주의자였다. 내가 무슨 대단한 신념을 가지고 있어서 비폭력주의자가 된 건 아니다. 나는 비폭력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누군가가 내 머리를 건드리면 곧바로 기절했기 때문이었다. 친구들은 이런 나를 보고 겁쟁이라고 놀렸다. 천만다행으로 그 당시는 내 머릿속 폭력차단회로가 있다는 걸 반 친구들에게 들키지 않았다.
아무튼 내가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떠보니 짙은 쌍꺼풀의 왕눈이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내 머리를 두 손으로 받치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제야 나는 내 엉덩이가 왜 허공을 헤맸는지 알았다. 바로 뒤에 있어야 할 의자를 왕눈이가 갑자기 치워버렸던 것이었다.
“야!”
나는 소리치면서 왼손으로 왕눈이의 뺨을 후려쳤다. 때려야겠다는 의식조차 없었다. 그저 몸이 본능적으로 반응했을 뿐이었다. 지금도 비폭력주의자였던 내가 그 당시 왜 그렇게 행동 했는지 미스터리다. 아무튼, 나에게 뺨을 맞은 왕눈이는 휘청거리며 뒤로 물러서더니 벽에 기대고서야 겨우 멈췄다. 마치 사람들로 북적이는 해수욕장에서 물속 깊이 자맥질했을 때처럼 교실 안은 순식간에 정적에 휩싸였다. 그때 배바지가 교실 안으로 들어와 이상한 분위기에 어리둥절해하다가 왕눈이와 시선이 마주쳤다. 배바지는 짧은 앞머리를 빳빳하게 세우고, 뒷머리는 마치 제비 꼬리처럼 길게 늘어뜨리고 다녔다. 통이 넓은 양복바지를 배꼽 근처까지 올려 입고 다녀서 대호가 ‘배바지’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다.
“너 왜 그래?”
입술에서 피가 흐르는 채 벽에 등을 기대선 왕눈이에게 배바지가 다가가며 물었다. 왕눈이는 얼른 몸을 똑바로 세웠다.
“괜찮습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마치 조폭 조직의 말단 행동대원이 중간 보스를 대하는 듯한 태도였다. 그때 몰린눈이 배바지에게 다가가더니 조금 전에 있었던 사건을 자세히 일러바쳤다. 몰린눈은 초봄의 쌀쌀한 날씨임에도 가슴과 팔 근육이 훤히 드러나는 얇은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몰린눈의 얼굴을 보면 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고양이 솜 인형 얼굴을 빨래집게로 집은 것처럼 두 눈이 얼굴 중앙으로 심하게 몰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몰린눈의 말을 들은 배바지가 천천히 나를 향해 걸어왔다. 역한 담배 냄새가 코를 찔렀다. 몰린눈도 바지 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 넣고, 양어깨를 잔뜩 움츠린 채 배바지 옆에 섰다. 몰린눈은 얼마나 어깨에 힘을 주었던지, 어깨가 턱에 거의 닿아 목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배바지가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의 매서운 눈빛에 나의 심장이 갈비뼈를 뚫고 나올 듯이 요동쳤다.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했지만, 몸은 돌덩이처럼 굳어져 꼼짝할 수 없었다.
“아이고, 형. 쟤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고 갑자기 놀라 얼떨결에 팔을 휘둘렀는데 왕눈이가 맞은 거야. 그렇지?”
바로 그때, 넉살 좋은 대호가 끼어들었다. 나는 기회다 싶어 대호의 말에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사과해.”
배바지가 어른스럽게 말했다.
“야 빨리 사과해.”
대호가 나의 어깨를 톡톡 치며 사과를 재촉했다.
“미안해.”
“너도 사과해야지?”
대호가 왕눈이에게 말했다.
“미안해”
배바지가 창가에 있는 자기 자리에 앉자, 해수욕장에서 물속에 있다가 고개를 내민 것처럼 다시 교실 안은 시끌벅적한 소리로 가득했다. 그제야 나는 꽉 쥐고 있던 주먹을 풀었다. 얼마나 긴장했는지 엄지손톱이 검지 중간 마디를 눌러 파랗게 멍들어 있었다. 긴장이 풀리자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내가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거지?’
나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가장 놀란 건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었다. 낯선 얼굴들, 그리고 예상치 못한 폭력적인 상황을 겪고, 나는 불길한 예감에 휩싸였다. 그 당시만 해도 해미고의 선진 교육체제를 모르고 있던 나는 주변에서 흔하게 말하는 ‘깡패 양성소’, ‘인간쓰레기장’ 등의 말들에 더 공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의 치명적 단점인 폭력차단회로가 드러나는 순간 나는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었다.
그 사건 이후로 나를 최대한 숨기고자 쉬는 시간은 물론 수업 시간에도 줄곧 잠을 자는 척했다. 두 팔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그 위에 이마를 댄 채 가만히 있었다. 눈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자 의외로 그 자세가 편했다. 그렇게 책상에 엎드려 있었지만, 나의 귀는 주변의 모든 소리에 예민하게 열려 있었다. 엎드려 있는 게 익숙해지자 이따금 깊은 잠에 빠지기도 했다.
항상 책상에 엎드려 잠만 자는 나를 보고 대호는 '병든닭'이라고 불렀다. 대호는 덩치만큼이나 목소리도 우렁찼다. 나를 부를 때마다 교실 안은 쩌렁쩌렁 울렸다. 그렇게 나의 별명은 ‘병든닭’이 되었다. 우리 반에는 그 외에도 특이한 별명들이 많았다. 이미 앞서 언급한 왕눈이와 몰린눈 이외에도 늙은이, 미어캣 같은 친구들은 이름을 알기도 전에 별명부터 익혔다. 늙은이는 이마 주름이 깊고 나보다 더 오래 잠을 잤으며, 미어캣은 창문으로 복도 상황을 살피다가 선생님이 오면 알리곤 했다.
우리 반 실세인 배바지는 나보다 세 살이나 많았다. 그의 부모님이 해미 읍내에서 전파사를 했다. 당연히 해미 출신들에게는 동네 형이나 마찬가지였다. 반 친구들은 그를 자연스럽게 형이라고 불렀지만, 나는 같은 반 학생에게 형이라고 부르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배바지 앞에서는 되도록 침묵했다. 대호와의 관계 역시 애매했다. 대호는 6개월 전에 부산에서 해미로 이사 왔으며, 나보다 두 살 많았다. 아무리 대호가 나에게 친근감을 보여도 한동안 어색했었다. 그렇게 지내다가 그와 친하게 된 계기는, 대호에게 반강제적으로 이끌려 해미 터미널 근처 빵집에 갔을 때였다. 그날도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터미널로 걸어가는 나를 대호가 졸졸 따라왔다.
“야 호칭 정리하자?”
내가 오랜만에 입을 열자, 대호가 마치 UFO라도 본 듯한 놀란 눈동자로 나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내가 먼저 대화를 시작하는 일은 극히 드물었기 때문이다.
“뭔 호칭?”
“난 같은 학년끼리 형·동생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형 동생 하면 어때서?”
“알았어. 그럼 대호 형이라 부를게.”
“아니. 그게 아니고. 내...말은...말이야. 그....게..”
“형님으로 모실까요? 아니면 형이라고 할까요? 그럼, 동생은 물러나겠습니다.”
“그게 아니고, 아이 답답해. 야 너 이리 와 봐.”
멀어지는 나를 향해 대호가 달려왔다. 대호는 나의 팔을 잡고 어디론가 질질 끌고 갔다. 대호는 덩치에 걸맞게 힘도 장사였다. 그에 비하면 나는 먹는 게 모두 키로 가는지, 수수깡처럼 키만 컸다. 팔다리는 가늘었고, 몸통은 일자였다. 매일 누워 자니 근육이 생길 틈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런 나의 손바닥에 맞고 비틀거린 왕눈이도 정상은 아닌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