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나는 그 시절 한문 선생님을 떠올리면 마음 한구석이 아릿하다. 한문 선생님은 모내기를 마치고 입학한 동업 아저씨보다도 젊었다. 아직 피가 채 식지 않은 청년이었다. 풋풋한 젊음과 원숙한 어른의 경계에 선, 어쩌면 우리와 가장 잘 통할 법한 나이였지만, 그는 우리를 지독히 싫어했다.
우리를 향한 그의 혐오감이 고스란히 얼굴에 드러나 있었다. ‘내가 어쩌다 이런 시골 구석까지 흘러와 저런 형편없는 아이들과 마주하고 있어야 하는가’ 하는 냉담함이 그의 얼굴에 서려 있었다. 도깨비나 저승사자와도 금세 친구가 될 만큼 붙임성이 좋은 대호마져도 한문 선생님을 꺼렸으니, 다른 아이들의 오죽했으랴.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일주일에 한 시간 배정된 한문 시간에도 차별 없이 책상에 머리를 박고 잠을 잤다. 그날도 나는 어김없이 꿈속에서 백설공주와 손을 잡고 가야산에 올랐다. 뭉게구름을 밟으며 신나게 뛰어다녔다. 뭉게구름은 밟힐 때마다 뭉게뭉게 하는 소리를 내는 듯했다. 그 순간 발밑의 구름이 거짓말처럼 사라지면서 나는 까마득한 아래로 떨어졌다. 땅에 닿기 직전, 잠에서 깼다. 대호가 나를 흔들어 깨운 것이었다.
“튀어나와!”
한문 선생님이 나를 매서운 눈빛으로 쏘아보며 소리쳤다.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그는 안경마저 벗어 교탁 위에 신경질적으로 내던졌다. 나는 무거운 걸음을 옮겨 교실 앞으로 천천히 나아갔다. 몰린눈 옆을 지날 때였다. 한문 선생님이 성큼성큼 나에게 다가오더니 다짜고짜 나의 머리를 향해 손바닥을 휘둘렀다.
하지만 워낙 크게 팔을 휘두른 탓에 나는 어렵지 않게 그의 오른 손목을 붙잡을 수 있었다. 그러자 한문 선생님의 왼손이 순식간에 머리 뒤로 치솟았다가 내 머리를 향해 빠르게 내리꽂았다. 나는 반사적으로 선생님의 왼손마저 붙잡았다. 양 손목을 잡힌 그는 분을 못 이겨 구둣발로 나의 정강이를 사정없이 걷어찼다.
“반항해? 니들 눈엔 선생이 뭐 동네 똥개보다도 못하지? 나도 니들이 똥개보다도 더 못한 놈들로 보여. 실제로도 그렇고. 너희들은 미래의 사회악이야. 이 버러지만도 못한 새끼들!”
나는 한문 선생님이 바락바락 악을 쓰며 정강이를 걷어차도 그의 양 손목을 놓지 않았다. 손목을 놓는 순간 그의 손이 나의 머리로 날아들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정강이야 아무리 맞아도 괜찮았지만, 머리만은 안 되었다. 그때 동업 아저씨가 끼어들어 우리 둘을 떼어 놓았다. 나는 곧바로 교실 밖으로 나갔다.
학교 담을 대신하는 탱자나무 울타리 개구멍으로 빠져나가자, 논둑이었다.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하염없이 하늘만 바라보았다. 얇은 베일 같은 구름이 하늘을 너르게 뒤덮고 있었다. 햇무리가 선명한 걸 보니 권층운이 분명했다.
권층운은 점차 낮아지면서 두꺼워져 고층운으로 변했다가, 시간이 더 흐르면 솜사탕처럼 피어나는 뭉게구름을 거쳐,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적란운과 함께 여름이 올 터였다. 한여름 오후에, 하늘의 궁전처럼 웅장하게 피어오르는 적란운을 백설공주와 함께 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때까지 내가 이 학교에 남이 있을 수 있을까? 불길한 예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뾰족한 가시가 촘촘히 박힌 탱자나무 울타리보다 더 날카롭고 숨 막히는 학교 분위기에 나는 깊은 절망감에 빠져들었다. 어느새 3교시 끝을 알리는 수업 종이 울렸다. 나는 다시 개구멍으로 기어들어가 곧바로 교무실로 향했다. 교무실 문을 열자 담임이 나를 맞았다.
“한문 선생님 얘기 들었다. 내가 소홀했다. 미안하다.”
입학식이 있던 그 주 금요일 오후, 외삼촌이 다리를 절뚝이며 학교에 찾아오셨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해마다 새 학년이 되어 담임 선생님이 바뀔 때마다 외삼촌은 어김없이 학교에 와서 새로운 담임 선생님과 상담했다. 평소에는 알코올 중독으로 서울 시내 거리를 배회하다가도 내가 새 학년만 되면 늘 똑같은 낡은 양복을 입고 학교를 찾아오셨다. 외삼촌이 해마다 학교를 찾아온 이유는 단 하나였다. 담임 선생님에게 내 머릿속에 폭력차단회로가 있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보니 괜찮은 모양이네. 그래. 가 봐라.”
“죄송합니다.”
“아니다. 아니야. 너는 잘못한 게 없다. 내가 선생님들에게 미리 알렸어야 했는데. 모든 게 내 탓이지.”
나는 허리를 숙여 담임에게 인사하고 교무실 출입문을 나오다가,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고 서 있는 한문 선생님을 보았다. 긴 머리카락 아래로 희미하게 보이는 그의 뺨과 목덜미는 그때까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어린 나이였지만 나는 한문 선생님을 보고 까닭 모를 불안감을 읽었다. 그리고 그 불안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그 일이 있고 보름 뒤, 한문 선생님은 결국 학교를 떠나셨다.
마지막 수업 시간, 한문 선생님은 교단 앞에 서서 말했다.
“선생 노릇 정도는 저도 할 수 있다고 쉽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1년 동안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깨달았습니다. 선생질도 적성에 맞는 사람만이 제대로 할 수 있다는 걸 말입니다. 저는 여러분들 앞에 서면 대책 없이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제가 자질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한 채, 모든 책임을 여러분들에게 떠넘겼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지금 갑자기 깨달았다는 건 아닙니다. 수업 시간에 엎드려 잠을 자고, 끊임없이 떠들고, 잡지를 몰래 보고, 심지어 싸움까지 하고, 제멋대로 화장실 들락거리는 여러분들을 지금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언제쯤 여러분을 제대로 이해하고 따뜻하게 보듬어 줄 수 있을지 저조차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결국 이러한 결정을 내렸습니다. 무책임한 선생을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한문 선생님은 90도로 허리를 깊이 숙여 우리에게 작별 인사를 하더니 교실 밖으로 나갔다. 약 2분 정도 교실 안에는 무거운 침묵만이 감돌았다. 갑작스러운 한문 선생님의 행동에 아이들은 모두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그러잖아도 가정과 사회에서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지 못했던 아이들이었다. 그런 아이들에게 학교의 선생님마저 그들을 버리고 떠나자, 아이들은 잠시 큰 충격에 휩싸였던 거였다. 학교에서까지 버림받으면 갈 곳이 없는 애들이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