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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해미고 06화

한티산적 늙은이

by 허관

해미고의 선진적이고 혁신적인 교육 운영 시스템인 졸업정원제를 처음으로 접한 건 입학하고 두어 달쯤 지났을 때였다. 5월에 입학이라니? 너무나 미래지향적인 정책이라, 당시에는 한마디로 황당한 사건으로 받아들여졌지만 말이다.


“자 인사해요”


조회 시간에 담임과 함께 처음 보는 중년 남자가 교실로 들어왔다. 중년 남자는 순박한 표정으로 우리를 한번 둘러보더니, 어색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검게 그을린 얼굴과 손등의 굵은 주름으로 보니 장학사는 아닌 듯했다.


“장대호 옆자리에 앉아요.”


알 수 없는 음악에 심취해 눈을 지그시 감고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던 대호가 움직임을 멈췄다. 뒤를 돌아봤다. 대호의 눈이 동그래졌다. 지난 두 달 동안 한 번도 본 적 없는 심각한 표정이었다. 검은 가죽가방을 든 남자는 비어있던 대호 옆자리에 조용히 가 앉았다. 가방에서 낡은 영어 교과서를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조회가 끝나자 담임 선생님은 교실을 나갔다.


“오늘 수업은 어디부터야?”


영어책을 어색하게 만지작거리며 중년 남자가 대호에게 물었다. 영어에 별 관심이 없던 대호가 알 턱이 없었다.


“저도 잘 모르는데요.”


“아 전 시간에 결석했나 보군. 그래 앞으로 잘 지내자. 난 이동업이라고 해.”


남자가 손을 내밀자, 대호는 두 손으로 그의 손을 덥석 잡았다.


“안녕하십니까.”


바로 그때, 배바지가 남자에게 깍듯이 인사했다.


“상진이 동생이구나. 멋있어졌네.”


“네 형에게서 형님 이야기 들었습니다. 제가 잘 모시겠습니다.”


멍하니 지켜보던 대호가 배바지의 팔을 잡아 교실 밖으로 끌고 나갔다가, 수업 종이 울린 지 한참 뒤에야 교실 뒷문으로 슬그머니 들어왔다.



“여러분도 괴롭다는 걸 나도 잘 안다. 하지만 나는 영어 선생이다. 매년 내려오는 학습 지침에 따라 여러분을 가르쳐야 하는 고등학교 선생이지. 자 오늘도 지침에 따라 수업을 진행하겠다.”


밥 먹기 전 감사 기도처럼, 키가 작은 영어 선생님은 수업 시작 전에 늘 말했다. 학생들에게 말했다기보다는 스스로 다짐했다고 해야 옳지만 말이다. 아무튼, 기도인지 다짐인지 모를 마친 선생님은 그 누구에게도 눈길을 주지 않은 채 혼자 수업에 열중했다. 수업이 끝날 무렵이면 넓은 칠판은 정체 모를 영어 단어와 문장들로 가득 차 있었다. 수업을 마치고 교실을 나가는 영어 선생님의 뒷모습이 왠지 모르게 쓸쓸했다. 선생도 못 할 짓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 생각도 잠시, 나는 영어 선생님이 교실에서 나가자마자 대호에게 다가갔다.


“누구야?”


가죽가방 남자가 궁금했다.


“모내기 끝나고 할 일 없어서, 학교나 다녀볼까 하고 입학했대, 나이는 나보다 다섯 살 많고, 너보다 일곱 살 많아.”


대호가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야 잘 모셔라.”


“근데 지금 입학한다는 게 가능해. 혹시 부정 입학 아냐?”


대호가 나를 돌아보며 퉁명스럽게 물었다.


“뭐 주워 먹을 게 있다고 해미고에 부정 입학하겠냐.”


대호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만 해도 대호나 나나 해미고를 그저 시골 양아치들만 다니는 곳으로 여겼으니까. 아무튼, 우리는 중년 남자를 동업아저씨라고 불렀다. 며칠 동안 대호는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거나 고개를 까딱거리는 등의 부산스러운 행동은 물론 노래도 흥얼거리지 않았다. 그러다가 일주일쯤 지나자, 대호는 다시 예전처럼 부산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했고, 보름쯤 지나서는 동업아저씨가 담임에게 부탁해 내 자리에 앉게 되었다. 튕겨 나간 나는 당연히 대호 옆에 앉았다.


“어차피 너도 잘 거 아냐?”


담임의 무심한 말에 나는 처음으로 반항이라는 걸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나는 대호와 상극이었다. 나는 조용히 잠을 자고 싶었지만, 대호는 끊임없이 움직였다. 대호의 책상은 항상 흔들렸고, 도무지 잠을 제대로 이룰 수가 없었다. 피로가 온몸에 달라붙는 듯했다. 명백한 인권 침해였다.


“야 잠 좀 자자.”


“미안.”


짜증 섞인 내 항의에 대호는 곧바로 사과했다. 그리고 사과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다시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며 정체 모를 노래를 흥얼거렸다. 그즈음부터 나는 속으로 나 자신을 달랬다. 흔들리는 책상은 포근한 요람이고, 녀석의 콧노래는 감미로운 자장가라고. 그렇게 마음먹으니 어느 순간부터 더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다. 오히려 흔들림과 노랫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잠에서 깨어날 지경이었다.


교실에는 혈기 왕성한 수컷 60마리가 모여 있었다. 학생들은 출신 지역을 중심으로 몇몇 그룹으로 나뉘었다. 해미 읍내 출신이 삼십여 명으로 가장 많았다. 다음은 해미 서쪽 서산에서 온 열한 명이 조용히 어울려 다녔다. 입학 초기 단추구멍은 그들과 붙어 다니더니 한 달도 안 되어 유학파에 합류했다. 서산 읍내 애들은 너무나 순진하고, 재미없다며 그들을 멀리했던 것이다.


해미 동쪽, 그러니까 가야산 산골에서 다니는 애들은 네 명이었다. 해미 출신들은 그들을 한티산적이라고 불렀다. 왕눈이와 몰린눈도 한티산적 패거리였다. 한티는 해미에서 예산 넘어가는 고개 이름이다. 이 산적들의 우두머리는 이마에 굵은 주름이 있는 ‘늙은이’였다. 해미중학교를 다닌 ‘늙은이’는 태권도와 유단자였다. 누구는 태권도와 유도 도합 3단이라고 했고, 누구는 12단이라고 했다. 중학교 때 주먹 서열 3위였다고 했다. 1위는 천안, 2위는 안양에 있는 고등학교에 각각 입학하는 바람에 반에서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해미중 출신 중에서는 주먹 서열 1위였다. 물론 배바지와 동업 아저씨에게는 깍듯이 대했지만 말이다.


해미 남쪽은 홍성군이다. 홍성군은 김좌진 장군의 고향이다. 장군의 피를 물려받아서 그런지 그곳에서 다니는 애들 여섯 명 모두 아주 거칠었다. 나라 잃은 시대에 태어났다면 김좌진 장군처럼 용맹을 떨쳤을 법한 기개와 외모였다. 그들은 스스럼없이 자신들을 삽자루파라고 불렀다. 그중에 한 놈은 장비처럼 얼굴에 수염이 났고, 덩치도 장비같이 건장했다. 나이는 열일곱 살인데 외모는 삼십 대 후반이었다. 장비는 쉬는 시간만 되면 거침없이 교실을 활보했고, 나는 눈치껏 장비를 피해 다녔다. 하지만 한티산적 늙은이는 장비가 설치고 다닐 때마다 ‘교실에서 조용히 하지’라고 경고했다. 언젠가 한 번은 서열을 정하는 살벌한 싸움이 터질 것이라는 걸 모두 예감하고 있었다.


해미 북쪽은 아무도 없냐고? 있다. 바로 나, 해미 북쪽인 당진 쪽에서 온 나다. 사실 해미 북쪽에도 해미고보다는 못하지만, 나름 명문고가 있어서 대부분 그곳에 입학했다. 다만 나는 엄마의 말씀대로 해미고에 입학했다. 집에서 가까운 명문고 고입 시험에서 매회 한두 명이 떨어졌다. 혹시 내가 그 한두 명에 속할 것 같아 머나먼 해미고에 입학했다는 소문이 한동안 동네에 떠돌아다녔는데, 아무리 내 머리가 나빠도 그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그 당시 엄마가 왜 나를 해미고에 보냈는지 모르고 있었기에 친구들이 소문이 사실이냐고 물어봐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모든 동물의 세계가 그렇듯이, 교실에서도 서열이 잡혀야 평화가 찾아오는 법이었다. 배바지와 동업 아저씨는 학생이라기보다는 선생과 학부모 쪽에 가까웠다. 당연히 서열 싸움에서 제외되었다. 수컷 60마리 중 가장 먼저 이빨을 드러내며 큰소리를 친 것은 예상대로 한티산적 두목 ‘늙은이’였다. 하지만, 그 상대는 예상과는 달리 삽자루파 장비가 아닌 쿤타였다.


“야. 조용히 해. 시끄러워서 잠을 못 자겠잖아.”


창가에서 쿤타와 곱슬이 요란스럽게 동전을 짤랑이며 홀짝 놀이를 하던 중이었다. 책상에 엎드려 잠을 자던 늙은이가 고개를 반쯤 들고 경고했다.


“학교가 여인숙이냐? 자려면 집에 가서 자.”


곱슬이 빈정댔다.


“뭐 이런 새끼가 다 있어.”


늙은이가 욕을 하자, 곱슬의 얼굴이 새빨갛게 변하는가 싶더니, 벌떡 일어나 의자를 집어 늙은이의 머리를 향해 내려찍었다. 늙은이는 잽싸게 뒤로 피했다.


“그러다 얘 죽이겠다. 참아. 내가 조용히 해결할게.”


쿤타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왼쪽 입꼬리만 올린, 이른바 썩은 미소를 지으며 곱슬을 말렸다. 흥분하여 얼굴은 물론 목까지 빨개진 곱슬을 대호가 창가로 끌고 갔다. 곱슬은 창문에 걸터앉아 화를 삭였다. 그러는 사이 쿤타는 앞에 책상 세 개를 옆으로 밀어 공간을 확보했다.


늙은이가 잠바를 벗어 던지고 팔을 걷어붙이는가 싶더니, 다리를 번쩍 들어 쿤타의 머리를 향해 내려찍었다. 쿤타는 옆으로 몸을 날려 피했다. 내려찍은 발이 바닥에 닿기도 전에 늙은이가 반대 발로 뒤돌려 찼다. 쿤타는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그 자리에 주저앉았고, 늙은이의 발은 쿤타의 머리 위로 빠르게 지나갔다.


다시 늙은이가 발을 높이 올려 가위 차기를 시도하려는 순간, 쿤타가 늙은이에게 달려들어 한쪽 다리를 잡아 번쩍 들어 올렸다. 늙은이가 그대로 뒤로 나자빠졌다. 쿤타는 늙은이가 일어나기를 기다렸다. 늙은이가 일어나자마자 쿤타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제대로 자세를 잡지 않고 휘두른 주먹이라 궤적이 크고 느렸다. 그런데 그 어설픈 주먹이 쿤타의 코에 적중했다.


쿤타가 비틀하는 순간 곧바로 늙은이가 옆차기를 날렸지만, 쿤타는 가볍게 피하면서 되려 늙은이에게 바싹 다가붙었다. 늙은이는 몸을 한 바퀴 돌면서 팔꿈치로 쿤타의 얼굴을 가격했다. 바로 그 순간 쿤타가 늙은이의 옆구리로 파고드는가 싶더니, 늙은이의 팔을 뒤로 꺾어 비틀었다. 사람 팔이 그렇게까지 바깥으로 꺾일 리 없었다. 뼈가 부러지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각도였다. 늙은이는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쓰러졌다.


미어캣이 교실 뒷문으로 나갔다. 쿤타는 코에서 터진 피가 앞섶을 다 적시도록 그냥 놔두었다.


“뭐야?”


미어캣의 뒤를 따라 담임과 풀색 군복 차림의 미호씨가 교실로 들이닥쳤다. 한 놈은 비명을 지르며 나뒹굴고 있고, 다른 한 놈은 온몸에 피범벅인 채 넋 놓고 앉아있었다. 담임과 미호씨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두리번거렸다. 그러다가 미호씨가 쓰러져 있는 늙은이의 팔을 만져보더니, 마치 빠진 나무 인형 팔을 다시 끼워 맞추듯 우악스럽게 힘을 주었다. 늙은이의 비명이 교실 가득 메웠다가, 뒤이어 모든 소리가 증발한 듯 침묵이 흘렀다. 마치 늙은이가 죽기라도 한 것처럼 조용했다.


“어떻게 된 거야?”


미호씨가 학생들을 둘러보며 소릴 질렀다. 그때 미어캣이 신이 난 얼굴로 조금 전 상황을 고자질했다.


“그러니까. 저놈이 일방적으로 때리다가 팔이 빠졌단 거지? 병신 육갑 떨고 있네. 따라와.”


미호씨가 교실을 나가면서 늙은이에게 소리 질렀다. 늙은이는 비틀거리며 일어나더니 미호씨를 따라나섰다.


“빨리 일어나 병원에 가자.”


담임이 쿤타를 일으켰다.


“괜찮습니다.”


쿤타가 울먹이며 말했다.


“피를 이렇게 많이 흘렸는데? 빨리 일어나.”


쿤타는 일어나 담임의 부축을 받으며 교실을 나섰다. 쿤타가 교실 문을 나가다 말고 뒤돌아보더니 윙크했다. 피에 물든 하얀 이가 섬뜩하게 빛났다. 그 광경을 반 아이들 모두가 똑똑히 보았다. 그 이후로 쿤타를 건드리는 녀석은 아무도 없었다. 나 역시 쿤타가 무서웠다.


그 모든 소란이 잦아들자 교실에는 무거운 침묵만이 감돌았다. 나는 창밖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상층에 낚싯바늘처럼 날카롭게 뻗어 있던 권운이 점차 낮아지면서 엷게 번져 하늘 전체를 뒤덮었다. 햇무리와 달무리가 자주 나타나는 권층운으로 변한 거였다. 봄꽃을 피우는 구름이며, 황사를 부르는 구름이기도 하다. 이따금 권층운 아래에는 뭉게구름이 두둥실 떠다니기도 했다. 지표면이 햇빛에 달궈져 상승기류로 인해 만들어지는 뭉게구름이었다. 그러니까 그때가 늦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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