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또래보다 정신연령이 낮은 편이었다. 유학파 친구들은 제법 어른티를 내며 욕도 맛깔나게 구사하고 행동도 성숙했던 반면, 내가 욕을 하면 유치하다며 웃음거리가 되기 일쑤였다. 수덕사 스트립쇼 사건 역시 내 또래였다면 상상도 못 할 순박하다 못해 어처구니없는 사건이었다.
고등학생이었음에도 구름을 보면서 온갖 이야기를 지어내며 엉뚱한 꿈에 잠기곤 했다. 당시에는 그런 내 모습이 한심해 보일 수도 있었지만, 결국 나는 구름을 보는 일로 월급까지 받으며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다. 나는 해미고를 졸업한 후 곧바로 공직에 발을 들여 국가 업무의 중책을 맡았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 당시도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다는 것은 하늘의 별을 따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진돗개 잡종인 콩이보다 못한 머리로 공무원이 될 수 있었던 건 두말할 나위 없이 해미고 덕분이다. 군대 제대한 후 마저 대학까지 마치고 공직에 들어온 동기들보다 많게는 열 살이나 어렸다.
그러잖아도 또래보다도 정신적으로 미숙했던 나는 나이가 많은 동기들이 술자리에서 사회의 부조리나 인간관계의 복잡함을 안주 삼아 열띤 토론을 벌일 때, 그저 흘러나오는 신나는 음악에 어깨를 들썩일 뿐, 그들의 심오한 대화에 쉽사리 끼어들지 못했다. 당연히 동기들은 나를 어딘가 어설프고 순진한 막냇동생처럼 대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어느새 중년의 문턱에 서니, 그때의 철없음이 오히려 나의 가장 큰 장점이 되었음을 깨달았다. 온갖 풍파에 시달려 매사에 냉소적으로 변한 또래들과는 달리, 나는 여전히 새로운 일에 쉽게 설렜고, 엉뚱하면서도 기발한 상상력으로 조직 내 골치 아픈 문제를 해결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대기만성이라는 옛말이 틀리지 않았다. 열여덟 살, 죽을 다짐했던 그때 정말로 삶을 등졌다면, 남들의 부러운 시선은 둘째치고 나는 그저 흔적 없이 스러졌을 것이다. 아무튼 인생은 오래 살고 볼 일이다.
그날도 월요일이었다. 나는 일부러 지각하기로 마음먹고 시내버스에서 내리지 않은 채 종점인 수덕사까지 갔다. 초여름 아침의 수덕사는 싱그러움 그 자체였다. 사찰 입구 밤나무엔 송충이처럼 길고 하얀 꽃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코끝을 간지럽히는 비릿한 밤꽃 향기가 야릇했다. 어려서는 밤꽃 냄새에 코를 쥐었지만, 중학교 때부터 비릿한 밤꽃 향에 괜스레 얼굴이 붉어졌다.
외삼촌은 밤꽃 향의 그 야릇함과 소주의 쓴맛을 알아야 진짜 어른이 된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달콤한 아카시아 꽃향기만으로 진정한 어른이 될 수 없다는 사실에 어쩐지 씁쓸하게 느껴졌다. 물론 이것은 오롯이 사내들만의 통과의례 같은 이야기다.
수덕사 대웅전으로 이어지는 오르막길 양옆에는 벚나무가 터널을 이뤘고, 그 사이사이에는 빨가벗은 백일홍 나무에 선홍색 꽃이 피었다. 땅바닥에 떨어진 버찌들이 터져 보랏빛 점들이 여기저기 찍혀 있었다. 나는 벚나무 가지를 힘껏 잡아당겨 버찌를 따 먹었다. 순식간에 손바닥은 짙은 보라색으로 물들었다.
험상궂은 표정의 거대한 사천왕문을 후다닥 뛰어 통과하자마자 시원한 약수를 한 모금 들이켰다. 계곡에서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얼굴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숨을 고르며 돌계단을 한 걸음씩 밟아 올라 마침내 계단 끝에 다다랐다. 눈 앞에 펼쳐진 대웅전 마당엔 빗질 자국이 정갈했다. 새 발자국 하나 없이 대나무 빗자루가 지나간 흔적만 선명했다. 나는 그 자리에 멈춰 서서 한참을 망설였다.
내가 과연 이 깨끗한 마당을 밟아도 되나? 감히 내 발자국을 남겨도 되나?
정면에는 세월의 무게가 고스란히 내려앉은 무채색의 수덕사 대웅전이 웅장한 자태를 드러냈다. 교과서에 실린 사진은 대부분 실물보다 멋있거나 아름답게 포장되기 마련이다. ‘백제의 미소’로 유명한 서산마애삼존불상이 대표적이다. 불상을 실제로 마주하면 사진과 달리 좀처럼 그윽한 미소를 허락하지 않는다.
하지만, 수덕사 대웅전은 달랐다. 언제 봐도 사진보다 실물이 훨씬 웅장하고 아름답다. 오랜 세월 풍파 속에서 화려한 색은 모두 빛바래고, 나무 본연의 색만 남아 고풍스러운 멋을 한층 더했다. 불룩한 배흘림기둥과 섬세한 마름모꼴 빗살 분합문 아홉 개가 부처님의 모습을 신비롭게 가리고 있었다.
지붕 또한 다른 화려한 사찰 건물들과 달리 소박하고 단순한 맞배지붕이었다. 처마를 날렵하게 하늘로 치켜올리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지붕 용마루에 부드러운 곡선의 미를 뽐내지도 않았다. 그저 묵직하고 듬직한 배흘림기둥들이 묵묵히 대웅전 건물을 버티고 선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편안함과 안정감을 주었다. 어떤 것도 숨기거나 잔꾀를 부린 흔적이 없다.
억지로 멋을 내지도 않고, 건물의 기본 역할에 충실한 모습. 나는 이것이야말로 수덕사 대웅전이 칠백 년 세월을 굳건히 버텨온 진정한 이유라고 여기며 깊은 상념에 잠겨 있는데,
“뭐야? 오늘도 땡땡이친 거야. 아주 상습범이네.”
등 뒤에서 누군가가 어깨를 톡톡 건드렸다. 돌아보니 포대화상이었다. 매주 월요일 시내버스를 타고 수덕사에 올 때마다 마주치는 스님이었다. 스님은 공부하다가 잠시 속세와 선계의 경계인 수덕사에 머문다고 했지만, 내가 갈 때마다 만나는 걸 보면 종일 대웅전 마당에서 서성이는 게 틀림없었다.
대머리에 두툼한 메기 같은 입술, 오동통한 몸매가 포대화상과 빼닮아 내가 지은 별명이었다. 절에 가면 불룩한 배와 가슴을 드러내고 동자승들과 해맑게 노는 배불뚝이 불상을 흔히 볼 수 있는데, 그가 바로 포대화상이다. 스님은 육식을 하지 않는데도 어찌 저리 살이 쪘는지 볼 때마다 신기한 몸매였다. 포대화상의 입꼬리는 항상 위로 올라갔고, 눈꼬리는 아래로 쳐져 금방이라도 만날 듯했다.
포대화상은 내 어깨를 밀치더니 빗질 자국이 선명한 넓은 대웅전 마당을 성큼성큼 가로질러 걸어갔다. 그가 걸어간 발자국은 신기하게도 일직선이었다. 나도 그의 발자국을 따라 천천히 대웅전으로 향했다. 포대화상의 큼지막한 발자국은 내 것보다 훨씬 컸다. 정갈하게 빗질한 마당에는 그의 발자국만이 선명하게 남았다.
나는 늘 그랬듯 대웅전 배흘림기둥에 몸을 기댔다. 대웅전 마당 왼쪽에는 늙은 고목이, 오른쪽에는 황소 허리보다 더 굵은 소나무가 버티고 섰다. 고목에서는 어느새 파란 잎이 돋아나 제법 풍성했다. 굵은 소나무는 고목 쪽으로 비스듬히 기울었다. 소나무와 고목 사이로 시원스레 펼쳐진 풍경은 그야말로 일품이었다. 나 같은 문외한이 봐도 수덕사 대웅전 터는 명당이었다. 과연 부처는 최고의 욕심쟁이다. 이런 명당을 떡하니 차지하고 있으니.
수백 년간 수많은 손길이 스쳤을 기둥. 인간들은 속세의 온갖 욕망을 채워 달라 빌었겠지만, 부처도 속수무책이었으리라. 대학 입시 철만 되면, 많은 학부모가 돈 싸 들고 힘든 계단을 올라와 대웅전 부처님께 자식의 합격을 빌었지만, 합격자 수는 정해져 있다. 누군가 붙으면 누군가는 떨어져야 했다. 부처님에게는 엄청난 딜레마였을 것이다. 나는 부처님이 2,500년 넘게 침묵한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라고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나는 이 생각은 외삼촌 외에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계곡을 따라 올라온 시원한 바람이 온몸을 휘감았다. 땀이 식자 노곤해졌다. 나는 배흘림기둥에 온몸을 밀착시키고 시원함을 즐겼다. 바로 그때였다. 등이 따끔했다. 돌아서서 기둥에 등을 기대고 몸을 문질렀다. 곧이어 허벅지, 겨드랑이, 배가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따끔거렸다. 손을 겨드랑이와 허벅지에 넣고 벅벅 긁었다. 갑자기 달려온 포대화상이 나의 윗옷을 확 벗겨버렸다. 포대화상이 바지를 벗기려 하기에 나는 그의 손을 뿌리쳤다.
“개미야. 독개미!”
“독개미요?”
“여기도 물렸어?”
포대화상이 내 가랑이 사이를 가리키며 미간을 찌푸렸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빨리 옷 벗어.”
다급한 포대화상의 목소리에 나는 팬티 한 장만 남기고 옷을 모두 벗어 던졌다.
“이것도 벗어야지.”
“왜요?”
아무리 포대화상의 표정이 심각해도 이유는 알고 싶었다.
“개미가 고추 물으면 고자 된단 말이야.”
포대화상이 내 팬티를 확 잡아당겼다. 순식간에 내 팬티가 발목까지 흘러내렸다. 나는 반사적으로 두 손으로 앞을 가렸다. 그때 대웅전 마당에서 깔깔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웬 등산복 차림의 아줌마 일곱 명이 대웅전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나는 얼른 벗은 옷을 들어 몸을 가렸다.
“이놈의 자식이 그래도.”
아줌마들은 점점 더 가까이 다가왔고, 포대화상은 내 옷을 도로 빼앗아 버렸다. 두 손으로 필사적으로 그곳만 가리고 있었다.
“손 치워 봐!”
나는 버텼다. 이것만은 안 된다.
“고자 된다니까. 너, 고자가 뭔지 모르지? 엉?”
알고 있었다. 포대화상의 진지한 표정이 낯설게 느껴지면서 겁이 덜컥 났다. 수덕사 대웅전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이었다. 당장 독개미는 물론이려니와 처녀 귀신이 나온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두려움이 나의 이성을 마비시켰다. 나는 눈을 딱 감고 손을 스르르 벌렸다. 그녀들의 발걸음은 더욱 빨라졌다. 곧 숨이 넘어갈 듯 깔깔대는 아줌마들은 한동안 내 알몸을 훑어보더니 한마디씩 던졌다. 그 말들은 차마 입에 담기 민망할 정도로 외설적이었다.
“따라와.”
스님은 백일홍 나무처럼 발가벗은 나를 데리고 대웅전 오른쪽 건물로 향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개미가 나의 고추를 물었던 것이다. 나는 비명을 질렀다. 나의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 꿈이 산산이 조각났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야! 창피하니까 빨리 옷 입어!”
포대화상은 팔자 좋은 소리를 했다. 창피한 게 대수인가? 내가 고자가 되는데.
“개미가 고추 물었어요. 개미가 고추를!”
나는 고추를 포대화상에게 내밀면서 소리 질렀다.
“알았으니까 빨리 옷이나 입어!”
포대화상은 대웅전 마당과 나를 번갈아 쳐다봤다. 평소와 다른 포대화상의 당황한 표정에, 나는 뭔가 이상하다고 느껴 대웅전 마당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 순간,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넓은 대웅전 마당에 스님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인기척 하나 없던 수덕사였다. 수행 중이던 스님들이 갑작스러운 비명에 놀라 무슨 큰일이라도 난 줄 알고 모두 대웅전 마당에 몰려나온 것이었다. 무엇보다 수덕사엔 정말로 여승이 많았다. 수치심과 절망감에 눈물이 핑 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