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슬의 자취방은 목화여인숙 7호실이었다. 해미 유일의 숙박시설인 목화여인숙은 해미천 변에 자리했다. 단층 건물이었고, 방 출입문 옆에는 연탄아궁이와 석유풍로, 작은 찬장이 놓여 있었다. 방은 제법 넓어 다섯 명이 함께 뒹굴어도 좁지 않았다. 주로 공사장 장기 투숙객들이 이용하는 탓에, 여인숙은 밤마다 술에 취한 아저씨들의 고성방가로 떠들썩했다.
밥과 반찬은 늘 곱슬이 도맡았다. 신문지를 방바닥에 펼치면 그곳이 곧 밥상이었다. 몇 년 자취 경력의 곱슬은 요리를 좋아했지만, 유독 어묵을 즐기는 것이 문제였다. 어묵 된장찌개, 어묵 김치찌개, 어묵 뭇국, 어묵무침, 어묵볶음이 신문지 밥상에 올랐다. 우리가 어묵은 그만 먹고 싶다고 불평이라도 하면, 곱슬은 먹고 싶은 반찬은 각자 알아서 해 먹으라고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결국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어묵을 꾸역꾸역 먹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석유풍로에 지은 밥은 정말 맛있었다.
“야 수덕사 여승 앞에서 스트립쇼 한 이야기나 해줘라.”
배불리 먹고 벽에 기대앉아 소화를 시키는데, 곱슬이 새끼손가락으로 이빨 사이에 낀 고춧가루를 빼면서 말했다. 나는 대호를 쏘아봤다. 월요일 아침에 늦은 이유를 아무한테도 이야기하지 않기로 약속받고 수덕사에서 있었던 일을 털어놓았는데, 그새 곱슬에게 술술 불어버린 대호 때문이었다.
“난 자세한 이야기는 안 하고. 다만, 니가 수덕사 대웅전 앞에서 스트립쇼 했다는 얘기만 했어.”
수덕사에서 스트립쇼라니? 단추구멍과 쿤타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빨리 이야기하라고 재촉했다. 결국 나는 수덕사 사건의 전말을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좋은 일 했네. 얼마나 산속에서 지루했겠냐. 부처님도 이 사실을 알면 너에게 상 줄 거야.”
곱슬은 웃음을 간신히 참으며 말했다. 단추구멍과 대호는 방바닥을 두드리며 뒹굴뒹굴 굴러다녔다. 그렇게까지 웃을 일은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대호는 두 번째 듣는 이야기임에도 처음 들을 때보다 더 자지러지게 웃었다.
“개미에게 물리면 고자 된다는 걸 믿냐? 어린애도 아니고.”
천 년 가까이 산속에서 자라고, 칠백 년 넘게 대웅전을 받치고 있던 기둥이었다. 그것을 바라보고 있으면 시공의 허무함에 판단력이 흐려질 수도 있다고 변명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이 녀석들에게 얘기해봤자 놀림감만 될 게 뻔했다. 나는 침묵했다. 쿤타가 왼쪽 입꼬리를 올리며 씩 웃었다. 비웃음인지 웃음인지 헷갈렸다.
“그럼, 계속 월요일마다 수덕사 대웅전 마당에서 스트립쇼 하는 거야?”
“그만하지?”
대호의 말에 내 미간이 좁혀졌다.
“미안. 크크. 미안.”
대호는 사과하면서도 웃음을 그치지 못했다. 친구고 뭐고 당장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었지만, 이 분위기에서 혼자 사라지면 나만 우수운 꼴이 될 듯했다. 나는 속으로 삭였다. 그때 단추구멍이 슬쩍 내 눈치를 살피더니 웃음을 거두고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단추구멍은 며칠 전 늙은이와 쿤타가 교실에서 벌인 싸움 이야기를 꺼냈다. 그 일 이후로 늙은이는 교실에서 잠잠했고, 나보다 더 오래 잠을 잤다.
“대단하던데, 다시 봤어?”
단추구멍이 쿤타를 쳐다보며 엄지를 추켜올렸다. 쿤타가 어깨를 으쓱했다.
“적절히 절제하며 상대를 제압하는 게 멋졌어.”
“절제? 개뿔, 재랑 나는 한 번만 더 사고 치면 끝장이야.”
단추구멍의 말에 곱슬이 불쑥 끼어들었다.
“쿤타 저 자식 소년원 두 번이나 갔었어. 이제 성인이라 한 번만 더 주먹 휘두르면 감옥 가. 그래서 필사적으로 참는 거야. 언제까지 참을지 모르겠지만.”
“지는”
곱슬의 말에 쿤타가 퉁명스럽게 받아쳤다. 곱슬 역시 열다섯 살부터 열여덟 살까지 3년 동안 소년원에 있었다고 했다. 소년원은 길어야 6개월이었다. 소년원에서 3년을 보냈다는 건, 어지간한 죄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순간, 곱슬의 평소 선해 보이던 눈빛이 섬뜩하게 느껴졌다.
“야. 근데 너는 뭔 죄를 지었길래 3년씩이나 있었냐?”
“가족사니까 묻지 마라.”
대호의 질문에 곱슬은 단호히 선을 그으며 더는 캐묻지 말라고 못 박았다. 그 이후로 아무도 그 얘기를 다시 입에 올리지 않았다. 잠시 방 안에는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침묵을 깬 것은 단추구멍이었다. 그는 쿤타에게 하려다 만 질문을 이어갔다. 덩치도 크고 태권도로 단련한 늙은이를 어떻게 제압했는지 말이다. 쿤타가 곱슬을 바라보며 히죽 한번 웃더니 입을 열었다.
“운동한 애들이 다루기 쉬워. 다음 행동이 뻔히 보이거든. 상대한테 다음 행동을 읽히면 백전백패야. 너도 좀 운동한 것 같던데, 아무한테나 함부로 발길질하지 마. 상대가 고수라고 느껴지면 절대 먼저 공격하지 말고, 발은 땅에서 30cm 이상 떨어지면 안 돼.”
쿤타의 이야기를 듣는 단추구멍의 작은 눈이 빛났다.
“그리고, 이건 싸움 고수들만의 아는 비법인데. 주먹 쥐지 말고 여기로 치면 훨씬 빠르고, 충격도 주먹 못지않아.”
쿤타는 손바닥을 펴고 손목을 꺾어 손목과 손바닥 사이 도톰한 살 부위로 상대를 가격하는 시늉을 해 보였다.
“주먹을 쥐면 상체의 모든 근육이 긴장해서, 펀치 속도가 느려져. 상대가 고수라면 다음 행동이 읽혀 역공당하기 십상이지. 늙은이처럼 말이야. 하지만 손바닥을 펴서 여기로 가격하면 훨씬 빠르고 상대의 허를 찌를 수 있어.”
쿤타의 설명을 듣던 단추구멍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세를 취했다. 손바닥을 펴서 뒤로 젖히고 팔을 벌리더니, 무언가를 품 안으로 물건을 끌어모으듯이 양팔을 빠르게 휘저었다. 영화 포스터 속 성룡의 취권 자세와 흡사했다.
“취권이네.”
대호의 말에 단추구멍은 한쪽 다리를 들어 포스터 속 성룡과 똑같은 자세를 취했다. 그러더니 마치 개구리가 파리를 낚아채듯이 잽싸게 팔을 뻗어 손바닥으로 벽을 후려쳤다. 벽에서 ‘쿵!’ 하는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와. 대단한데. 차돌도 깨겠다.”
쿤타가 손뼉을 쳤다. 대호도 나와 같이 놀란 눈을 하고 단추구멍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하지만 곱슬만 방 귀퉁이에 비스듬히 누워서 희미한 미소로 우리를 쳐다볼 뿐이었다. 그의 미소는 온화했지만, 자세는 삐딱했다.
“야 병든닭. 네 정체는 뭐냐? 생긴 걸 보니 허우대만 멀쩡해서 운동은 젬병일 것 같은데, 혹시 너 연장 잘 다루니?”
쿤타가 불쑥 던진 ‘연장‘이라는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가 말하는 ’연장‘이 낫이나 망치, 자귀 따위를 의미하는 게 아님을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어쭈 정말인가 보네? 곱상하게 생긴 게. 참말로 돌아 버리겠다. 이 시골에서 연장장이를 다 만나다니. 뭐냐? 드라이버? 체인? 잭나이프?”
나는 그제야 연장의 의미를 알아채고 어안이 벙벙했다. 폭력차단회로가 있는 나에게 ’연장‘이라니? 정말이지 터무니없는 오해였지만, 그 당시만 해도 굳이 내 정체를 밝힐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쿤타, 그만하지.”
내가 당황스러워하자, 벽에 등을 기대고 비스듬히 누워있던 곱슬이 나직하게 말했다. 항상 웃고 있던 곱슬의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졌다. 쿤타는 한동안 곱슬을 노려봤다.
“노려보면 어쩔 건데?”
“에잇 씨발. 나 먼저 간다.”
쿤타는 커다란 하얀색 나이키 가방을 어깨에 메고 방에서 나갔다. 곱슬의 기에 눌린 쿤타였다.
“병든닭. 신경 쓰지 마.”
쿤타가 나가자, 곱슬이 다시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야. 너 막차 놓치겠다. 빨리 가자.”
단추구멍이 나를 보더니, 가방을 집어 들었다. 우리는 터미널로 향해 걸어갔다.
“나 너한테 정말 궁금한 게 있어? 기분 나쁘게 듣지 말고.”
“뭔데?”
“내가 거울을 보면서 너처럼 눈을 가늘게 떠봤거든. 그랬더니 시야가 엄청 좁아지더라. 자 저기 봐. 저 굴뚝 꼭대기부터 아래까지 한눈에 다 들어오냐?”
해미에 하나뿐인 대중목욕탕 굴뚝을 보며 나는 진지하게 물었다. 단추구멍은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팔로 내 목을 감아 어딘가로 질질 끌고 갔다. 돌덩이 같은 단추구멍의 팔뚝이었다. 숨이 막혔다. 나는 항복이라고 계속 소리를 질렀다. 그제야 팔을 풀어주었다.
“다 보여. 그리고 쌀집 간판까지 보여.”
“뭐라고? 난 쌀집 간판은 고개를 숙여야 보이는데. 정말이야?”
“그래 눈 작은 사람들이 보는 시야가 더 넓대.”
“누가?”
“아버지가.”
단추구멍은 나보다 눈은 작았지만, 그의 시야는 더 넓다는 건 확실해 보였다. 눈 작은 사람이 시야가 더 넓다는 과학적 근거를 아직 찾지 못했다. 그 누구도 그에 관한 연구는 하지 않은 듯했다.
“너 우리 집 갈래?”
단추구멍의 갑작스러운 제안에 나는 잠시 망설였지만, 끝내는 서산행 직행버스에 몸을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