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실 쪽에서 들려오는 발소리에 잠이 깼다. 요란하게 발을 구르는 소리. 미어캣이 분명했다. 나는 책상에 엎드린 채 귀를 쫑긋 세웠다. 또 무슨 소식일까 몹시 궁금했다. 마침내 미어캣이 1반에서 나와 우리 반 교실 문을 활짝 열고 말했다.
“나비가 날아서 쏘았어.”
미어캣은 곧바로 옆 반으로 사라졌다. 미어캣이 던진 말이 교실 안에서 파문처럼 퍼져 나갔다.
‘나비가 누구를 쏘았다는 거야?.....누구긴, 딱 보면 몰라?.....설마?...아무리 나비라고 해도.....오늘 학교에 안 왔대....,야 그럼 한판 붙는 거야......근데 꼴뚜기파가 서산 앞바다에 가라앉힌 시체만 해도 10구가 넘는다는데, 나비가 어떻게....금기를 건드린 거야.,,,,호철이 허리 결딴났고, 어깨뼈도 금이 갔대.....두 번인가 주의를 줬는데....호철이가 뭐 나비 말 듣겠냐?.....오늘 꼴뚜기들이 해미로 온다던데....와 피바다 되는 거 아냐?....나비 어쩌냐....’
친구들의 짧은 대화 조각을 끼워 맞춰 나는 사건을 재구성했다. 2학년인 호철이는 3학년에게 함부로 굴었음에도, 꼴뚜기파의 위세에 눌려 아무도 저항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비는 아무리 건달이라고 해도 기본 예의는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비는 호철이에게 선배는 건드리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래도 말을 듣지 않자, 그를 번쩍 들어 해미 천변 시멘트 바닥에 메다꽂았다. 본래 약했던 호철이의 허리뼈와 어깨뼈에 금이 갔던 거였다.
사건은 빠르게 번졌다. 2교시가 끝나고 쉬는 시간에 미어캣이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새로운 소식을 전했다. 지금 꼴뚜기파 수십 명이 나비를 찾아 해미 읍내를 휘젓고 다닌다는 섬뜩한 소식이었다. 닥치는 대로 물건을 부수고, 젊은 청년만 보면 두들겨 팬다고 했다.
그때 운동장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3학년 학생 150여 명이 운동장을 가로질러 달려가고 있었다. 그때 배바지가 우리 반으로 뛰어 들어왔다.
“나비 혼자 꼴뚜기파들 읍성에서 대치 중이래! 우리도 가자!”
배바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친구들 절반이 벌떡 일어나 교실 문을 박차고 나갔다. 100명가량의 2학년이 함성을 지르며 몰려가자, 미호씨가 교문에서 막아섰다. 하지만, 혼자 100여 명을 상대할 수 없었다. 거센 물결처럼 밀려드는 학생들을 본 미호씨도 포기한 듯 그저 바라볼 뿐이었다. 2학년 학생들은 3학년 선배를 따라 읍성 남문을 향해 뛰어갔다.
대호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나도 따라 일어났고, 대호가 교실 밖으로 나오자 나도 그 뒤를 따라 나왔다. 교문에서 대호가 뛰기 시작하자, 나도 있는 힘껏 뛰었다. 그렇게 대호를 따라다니다 보니 어느새 나는 읍성 안에 서 있었다. 읍성 안에는 해미고 3학년과 2학년 학생 250여 명과 손에 몽둥이를 든 꼴뚜기파 50여 명이 대치하고 있었다. 그리고 구부정한 나비가 맨 앞에 있었다. 나를 비롯한 소위 유학파는 2학년 학생들 오른쪽 끝에 어색하게 서 있었다.
나비는 해미 시장 좌판을 부수며 활개 치던 꼴뚜기파를 해미읍성으로 유인했다. 하지만 더는 도망갈 곳이 없었다. 그가 멈추자, 쫓아오던 꼴뚜기들도 천천히 접근했다. 나비는 독 안에 든 쥐 신세가 되었다. 바로 그때 해미고 학생 250여 명이 성안으로 우르르 들어왔던 거였다. 인원수는 다섯 배가량 많았지만, 학생 대다수는 겁에 질려 금방이라도 바람 속으로 흩어질 것 같았다. 3학년 학생회장을 비롯한 덩치 좋은 몇 명만 당당하게 꼴뚜기들과 대치하고 있었다. 그때 꼴뚜기 파 중 한 명이 야구방망이로 자기 어깨를 툭툭 치며 앞으로 걸어 나왔다.
“나비만 넘겨주면 우리는 조용히 떠날 거야.”
어깨에 걸친 야구방망이의 손잡이 부분에 감긴 헝겊이 너덜너덜했다. 그때 갑자기 단추구멍이 나섰다. 나는 잽싸게 단추구멍의 팔을 잡았다. 단추구멍은 뒤를 돌아보며 살며시 미소 짓고는 내 손을 잡았다. 그제야 나는 그의 팔을 놓았다. 그래, 이런 상황에서 단추구멍이 가만히 있으면 그게 더 이상하지.
“나비는 잘못한 게 없습니다.”
어느새 단추구멍이 나비 앞에 섰다.
“야 너 영훈 선생님 늦둥이 맞지? 넌 빠져라. 형님들이 긴히 할 일이 있어서 그런다. 저놈이 우리를 건드렸어.”
“먼저 건드린 건 호철이 형입니다. 후배가 선배에게 대드는 건 누가 뭐라 해도 잘못한 겁니다.”
“야 그만 뒤로 빠져.”
나비가 단추구멍의 어깨를 잡더니 뒤로 끌어당겼다.
“왜 겁나냐? 쪽팔리게 야구방망이를 들고 설치게.”
나비가 앞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참 순진하군. 우리가 뭐 정의의 사도라도 되는 줄 아나 보지. 그런데 어쩐 다냐. 우리는 여자도 야구방망이로 두들겨 패는데.”
그때 해미 지소 경찰들이 읍성 안으로 몰려왔다. 모두 일곱 명이었다. 경찰을 보자 나는 순간 긴장이 풀리면서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때 대호가 나의 어깨를 잡아 주었다. 하지만, 꼴뚜기파 세 명이 경찰들 앞에 서자, 경찰이 멈칫했다. 설마 경찰이 조폭을 두려워하는 건 아니지. 나의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조폭 앞에서 주춤하는 경찰이었다.
“곧 서산 경찰이 지원 나올 거야.”
“어느 세월에.”
경찰들이 뒷걸음질 치며 소릴 지르자, 꼴뚜기 하나가 비웃듯이 말했다. 그러는 사이에 야구방망이를 든 남자가 천천히 나비를 향해 다가갔다.
“그만하시오.”
그때 언제 왔는지 베어가 나비 앞에 서서 소리쳤다. 마치 이순신 장군이 살아 돌아온 것 같은 묵직한 목소리였다. 나는 속으로 응원했다. 멋지다 우리 베어.
“누구?”
“애들 선생이요.”
“선생이면 다야!”
남자가 야구방망이를 휘두르는가 싶더니, 베어의 턱을 주먹으로 가격했다. 베어는 심장에 총구멍이 난 곰처럼 힘없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잠시 의심했다. 혹시 베어도 폭력차단회로가 있는 걸까?
남자가 야구방망이로 쓰러진 베어의 머리를 톡톡 건드렸다. 나의 우상 베어가 위험에 처해 있는데도 나는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두려움에 꼼짝 못 하는 나 자신을 속으로 실컷 비웃었다. 똥개도 낯선 사람이 주인을 해코지하면 용감하게 덤벼든다. 똥개만도 못하다는 걸 나는 다시 한번 인정해야만 했다.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
읍성에서 장렬하게 죽기로 굳게 결심한 다음, 눈을 감고 무작정 돌진했다. 그때 누군가가 나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눈을 떴다. 대호였다. 무언가를 바라보는 대호의 눈동자가 마구 흔들렸다. 대호의 뒤를 돌아봤다. 단추구멍이 야구방망이를 든 꼴뚜기를 사정없이 두들겨 패고 있었다. 곧이어 쇠파이프를 들고 있던 꼴뚜기들이 단추구멍에게 달려들었다.
그때 남문 입구에서 우렁찬 함성이 들렸다. 아주머니, 할머니, 할아버지, 아저씨들이 저마다 손에 낫, 호미, 곡괭이 같은 농기구를 들고 함성과 함께 몰려왔다. 꼴뚜기들이 멈칫하고 뒤를 돌아봤다. 아주머니, 할머니, 할아버지, 아저씨들은 곧바로 꼴뚜기들에게 달려들어 농기구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농기구로 무장했다고 해도 대부분 노인과 아주머니들이었다. 그들은 건장한 꼴뚜기들에게 곧바로 제압당해 넘어지고 발에 밟혔다.
두려움에 머뭇거리던 학생들이 이 광경을 보고 갑자기 고함을 지르며 꼴뚜기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엄마, 아버지, 할아버지, 할머니가 폭행당하는 모습을 보자 눈이 뒤집힌 것이었다. 250대 50이다. 5명이 1명을 상대하면 되었다. 물불 가리지 않고 덤비는 혈기 왕성한 학생들을 아무리 야구방망이와 쇠파이프로 무장했다고 해도 당해 낼 재간이 없었다.
꼴뚜기 한 마리당 대여섯 명의 학생과 어른들이 뒤엉키자, 독수리 떼에 덮인 시체처럼 꼴뚜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닥치는 대로 깨물고, 꼬집고, 다리를 꺾고, 팔을 칡뿌리 뽑듯이 당겼다. 손가락을 꺾고, 콧구멍에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눈에 흙을 뿌리고, 귓구멍을 나뭇가지로 찔렀다. 불알을 무릎으로 짓누르고, 얼굴을 손톱으로 할퀴었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서서 이를 지켜보는 건 경찰과 베어, 그리고 나뿐이었다. 치열한 전장 속에서 쿤타의 검은 얼굴이, 곱슬의 모자가, 그리고 단추구멍의 넓은 어깨가 이따금 보였다. 하지만, 대호는 보이지 않았다. 문득 걱정되어 뒤를 돌아봤다. 대호는 어느새 성벽 위에서 허리에 손을 올린 채 근엄한 자세로 난장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읍내 상인과 학생 연합군 쪽으로 전세가 급격하게 기울었다. 어떤 할아버지는 꼴뚜기의 팬티를 내린 다음 곡괭이 자루로 엉덩이를 사정없이 후려쳤다. 할머니는 머리의 은색 비녀로 꼴뚜기의 가슴을 마구 찔러댔다. 아주머니는 고추밭의 잡초를 뽑듯이 머리카락을 한 움큼씩 뽑아서 바람에 날려 보냈다. 시간이 흐르자, 읍내 상인들과 학생들, 그리고 꼴뚜기들은 꼬물거리는 누에처럼 느릿느릿 움직였다. 때리는 자나 맞는 자나 모두 지쳤다.
“그만들 하세요. 그러다가 사람 잡겠어요.”
경찰이 꼴뚜기 얼굴을 손톱으로 할퀴는 아주머니의 팔을 잡았다.
“뭐여. 니 놈들이 더 못되 쳐먹었어. 경찰이면 경찰답게 읍내 사람들을 보호해야지. 깡패가 읍내를 설치고 다녀도 모른채 혀. 이 못된 자슥들.”
곡괭이 자루로 엉덩이를 때리던 할아버지가 역정을 내자 읍내 어르신들은 다시 벌떡 일어나 경찰들에게 대들었다. 경찰 모자가 벗겨지고 제복이 찢어졌다. 경찰을 깨물고 꼬집고 할퀴고 팔과 다리와 손가락을 꺾었다. 그 틈을 타 꼴뚜기들은 슬금슬금 기어 한둘씩 성문을 빠져나갔다. 경찰들은 해 떨어질 때까지 읍내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온갖 수모를 당했다.
읍성 전투가 끝나고 일주일이 지나도록 신기할 정도로 조용했다. 경찰이 집단 폭행당했고, 조폭들이 해미 읍내를 활보하며 물건을 부수고 상인들을 협박했다. 무엇보다도 학생 250여 명이 조폭들과 맞붙어 싸웠다. 그런데 읍내 사람들도, 해미 지소에 근무하는 경찰들도, 학교의 교장과 교감 선생님도, 심지어 미호씨조차 읍성 전투 얘기를 일절 하지 않았다.
“야 너 괜찮아?”
가장 걱정되는 건 단추구멍이었다. 서산이 집이고 꼴뚜기가 그의 아버지도 알고 있었다. 내가 걱정되어 묻자, 단추구멍은 나에게 비밀이라고 하면서, 읍성 전투 이후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읍성 전투가 있던 날 저녁에 마흔 중반쯤으로 보이는 남자가 단추구멍 집에 찾아왔다. 키는 보통이고 덩치도 크지 않은 평범한 남자였다. 다만 눈두덩이 두툼했다. 소문으로만 듣던 꼴뚜기파 두목이었다. 두목은 먼저 단추구멍 아버지에게 정중하게 사과했다.
자신이 데리고 있는 김 부장이 몰래 해미에서 사고를 쳐서 미안하다며, 이 사건을 잘 마무리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단추구멍 아버지는 서산경찰서와 해미고, 그리고 해미 읍내 상인 조합실을 오가면서 어렵게 합의했다. 크게 다친 사람이나, 크게 손해 본 사람이 없으니 조용히 덮자는 합의였다. 해미는 물론 서산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이었다. 누군가는 책임져야 했다. 그래서 두목과 상의해, 조직원을 이끌고 해미로 쳐들어온 김 부장을 경찰에 넘기기로 했다.
그는 꼴뚜기 중간 보스로 단추구멍에게 얻어맞은 그 사람이었다. 학교도 더는 문제 삼지 않기로 했다. 미호씨가 단추구멍 아버지 의견에 반대했지만, 교감과 교장 그리고 베어가 합의를 받아들여 미호씨도 어쩔 수 없었다. 조폭과 싸운 건 사실이지만, 학생들의 행동은 정당하다고 베어가 적극적으로 항변하여 교장과 교감의 마음을 움직였던 거였다. 베어 아니었으면 학생들을 이끈 3학년 학생 간부와 배바지, 그리고 단추구멍은 퇴학당하고도 남았다.
“야 그러면 너도 안전한 거네.”
“그래, 그날 나에게 실컷 두들겨 맞은 그 사람 지금 감옥에 들어갔다고 하더라.”
“아마 읍성 전투는 길이길이 역사에 남을 거야. 그치?”
군사 목적으로 해미읍성을 지어졌지만, 500년 가까이 큰 전투는 없었다. 이순신 장군도 해미읍성에 머물렀지만, 그 당시에도 전투는 벌어지지 않았다. 해미읍성 축성 이래 가장 큰 전투였다. 나는 아직도 그때를 떠올리면 가슴이 뛰었다. 한동안 그 승리를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이 이룬 위업이라 여기다가, 최근에 깨달았다.
‘역시 해미고는 명문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