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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해미고 19화

제대로 작동한 폭력차단회로

by 허관

어느덧 날카롭던 낚시 권운이 점차 낮아지더니 낮에는 햇무리가, 밤에는 달무리가 잦아졌다. 또다시 봄이 왔고, 드디어 3학년이 되었다. 신관인 3학년 교실에서는 아직도 시멘트 냄새가 희미하게 풍겼다. 바닥은 대리석처럼 반질반질했고, 흰색 천장 덕분에 교실이 밝았다. 2년 동안 늘 붙어 다녔던 대호와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를 일이지만 다른 반이 되었다. 단추구멍과도 다른 반이 되었고, 쿤타와 곱슬은 나의 앞자리에 앉았다.


매일 다니다시피 하던 곱슬의 자취방 출입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로 줄더니, 2학년 겨울 방학 이후부터는 한 달에 겨우 한 번 갈까 말까 할 정도가 되었다. 쿤타와는 원래도 그리 친하지 않았지만, 왠지 모르게 더 멀어진 느낌이었다. 그래도 대호 때문에 이따금 만났다. 3학년이 되자 교실 분위기가 한층 산만했다. 그나마 수업 시간에 선생님 말씀을 경청하던 40여 명의 학생을 모아 별도의 반을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이름하여 대학 진학반이었다. 물론 2년제 대학도 진학하기 힘들었지만. 졸지 않고 눈을 멀뚱멀뚱 뜨고 있던 친구들을 한 반에 모아 놓았으니, 나머지 5개 반은 안 봐도 뻔했다. 그야말로 개판 오 분 전인 교실 분위기였다.


3학년이 되어 처음 맞이한 조회 시간, 나는 기쁨과 절망을 동시에 경험했다. 베어가 담임이라는 사실에 기뻤고, 교실에서 잠자는 것을 금지한다는 말에 절망했다.


“졸리면 뒤에 나가 서 있어라. 그래도 졸리면 운동장에 나가 걸어라. 그래도 졸리면 밖에 나가 성을 돌아다녀라. 내가 모든 걸 책임지겠다. 대신 절대 졸지 마라. 청춘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화려하고 귀하다.”


베어의 경고는 단호했다. 쉬는 시간에 대호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찾아왔다.


“너 어떻게 하냐? 너 잠 못 자면 혹시 죽는 건 아니지? 죽을 것 같으면 나에게 말해. 내가 베어에게 사정해 볼게.”


나도 어쩌면 대호 말대로 죽을 수도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죽진 않았다. 괴로울 따름이었다. 그것도 잠시, 운동장을 걷는 것도 꽤 괜찮았다. 날씨가 점차 따뜻해지면서 구름도 몽글몽글 다양해졌다. 구름을 쳐다보며 종일 걸었다.


오랜 봄 가뭄에 엄마가 한숨을 푹푹 내쉴 때였다. 종례 시간에 베어가 교탁에 서서, 무게를 잔뜩 잡고 우리를 천천히 둘러봤다. 모두 책가방을 손에 잡고 교실 밖으로 튀어 나갈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베어의 종례는 길어졌다. 모두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몸을 배배 꼬았다.


“나는 선생이다. 지금부터 교육법에 명시된 ‘개개인의 적성’을 찾는 데 집중하겠다.”


그러더니 반 전체 학생들에게 베어의 도장이 찍힌 백지 세 장씩 나눠주었다.


“이곳에 앞뒤 빼곡하게 자서전을 써서 다음 주 월요일까지 제출해라. 너희가 기억하는 것 말고 반드시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적어야 해. 부모님이나 형제들, 또는 친척들이 기억하는 여러분의 어린 시절 이야기여야 한다. 국어 교과서 글자 크기와 줄 간격을 맞춰서 반드시 여백 없이 써야 한다. 다시 한번 말하는데 기한은 다음 주 월요일까지다. 창피했던 일도, 자랑스러운 일도, 모두 괜찮다. 비밀은 절대 보장한다. 쓸 것이 많다고 하여 넉 장 쓰는 것 또한 안 된다. 반드시 앞뒤로 세 장이어야 한다. 난 못 쓰겠다 하는 학생 지금 손 들어.”


누구도 손을 들지 않았다. 베어의 행동과 말이 진중했고, 위엄 있었다. 무엇보다도 선배들 누구도 이를 어긴 적이 없었다. 베어는 항상 3학년 담임을 했다. 그리고 자서전 쓰기는 7년째 3학년을 대상으로 이어져 오는 해미고의 전통으로 자리 잡아갔다.


월요일이 되자 베어가 내준 숙제를 모두 제출했다. 물론 나도 앞뒤 꽉 채워 제출했다. 엄마에게 나의 어린 시절을 물어봤더니 청산유수였다. 그걸 받아쓰니 세 장이 금방 꽉 찼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에 1번부터 차례로 베어와 면담했다. 면담 시간은 짧게는 한 시간이고, 긴 친구는 세 시간이 넘게 하는 때도 있었다. 나는 끝 번호라 면담이 기약 없었다.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교련 검열로 바쁜 애들을 데리고.”


풀색 군복에 코가 반짝이는 군화를 신은 미호씨가 베어에게 소리를 질렀다.


“보면 몰라요? 수업하고 있지 않잖습니까?”


10분 전에 교련 검열 참석자는 지금 즉시 복장을 갖추고 운동장으로 집합하라는 교내 방송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어는 자신이 담당하는 윤리 시간이라고 하면서, 나가지 말라고 했다. 교련 검열은 2년에 한 번 했다. 나는 1학년 때와 마찬가지로 3학년 때도 교련 검열에서 제외되었다. 군대에서 운 좋으면 유격 한 번 받고 제대하는 반면, 운이 나쁘면 세 번 받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학년은 두 번 교련 검열을 받았다. 나는 월요일 아침마다 여전히 수덕사 경내를 거닐다가 첫 시간에 맞추어 학교로 왔다.


“선생님이 학생들을 좌파 선동하면 안 된다는 걸 모르십니까?”


“지금은 엄연한 윤리 시간입니다. 좌파 선동이라뇨? 선생님이야말로 학생들의 기본권인 교육받을 권리를 빼앗는 거 아닌가요?”


평소와 다르게 베어는 당당하고 여유로웠다. 미호씨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더니 교실 밖으로 나갔다. 학생도 아니고, 동네 건달도 아닌 선생님들의 입에서 국가니 좌파니 빨갱이니 하는 이야기를 들으니 겁났다. 나라에 곧 뭔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나의 해미고 생활이 꽈배기보다 더 배배 꼬이기 시작한 건, 미호씨와 베어가 한바탕 한 그날 6교시가 끝나고, 화장실에서 소변볼 때였다. 돌이켜보면 그때의 일은 인과응보였기에 사건의 발단이 된 왕눈이를 이제는 미워하지 않지만, 당시만 해도 나는 왕눈이가 치졸하고 비겁하다고 여겼었다.


2학년 때에는 꼴뚜기파 호철이가 서열을 흩뜨리더니, 3학년이 되자 철민이가 미꾸라지처럼 물을 흐렸다. 철민이는 대전에서 고등학교 다니다가 사고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중학교 때는 싸움은 물론 공부까지 잘해 대전으로 유학까지 갔었다. 대전에서도 싸움은 상위권에 있었는데, 공부는 하위권을 맴돌았다.


대전에서 계속 학교에 다니면 영원히 거리를 헤매는 건달이 될 거라고 판단한 철민 아버지가 강제로 집 근처 해미고로 전학시켰던 거였다. 그것도 우리 반으로 말이다. 개 버릇 남 못 준다고 철민이는 해미고에서도 설치고 다녔다. 2년 동안 대전에서 배운 것이라고는 깡밖에 없었다. 더 악랄해져 돌아온 철민이를 대하는 친구들의 반응은 극명하게 갈렸다. 그와 가까워지려는 무리와 멀리하려는 무리로 나뉜 것이다. 그와 친해지려는 무리 중에 한티고개 왕눈이와 몰린눈도 있었다. 늙은이가 사라지자 없는 듯 있는 듯 조용하던 그들은 철민이와 몰려다니면서 다시 껄떡거리기 시작했다.


모든 수컷이 그렇듯이 철민이도 오자마자 높은 서열에 올라가려고 적당한 제물을 찾고 있었다. 그게 유학파였다. 철민이는 믿고 있었다. 나비를 비롯한 해미 사람들은 다 자기 편이라고, 유학파와 대치 상황만 만들면, 해미 출신 학생은 물론, 해미 읍내의 나비도 자기를 도와 유학파를 쫓아낼 거라고 말이다. 똥개도 자기 집 앞에서는 반은 먹고 들어가던 시대였으니, 철민이의 판단도 그리 허무맹랑한 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움직일 수 없었다. 아무리 자기 고향이라고 해도 나이도 많고 압도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쿤타와 곱슬에게 함부로 할 수 없었고, 단추구멍이 장비를 일방적으로 두들겨 팬 사건은 전설처럼 떠돌았기 때문이었다. 잘못 건드렸다가는 망신만 당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대호처럼 순박한 친구를 제물로 삼을 수 없었다. 당연히 유학파의 신경을 건드릴 제물로 내가 최적이었다. 나의 머리에 폭력차단회로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왕눈이를 시켜 그것을 확인하고자, 철민이가 나에게 접근한 곳은 바로 화장실이었다.


“병든닭!”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고 바지 지퍼를 올리는데, 자라처럼 길게 목을 빼고 철민이가 다가왔다. 철민이 뒤에 서성거리는 왕눈이의 큰 눈동자가 마구 흔들렸다. 그 순간 왕눈이의 주먹이 나의 턱을 가격했다. 나의 폭력차단회로가 작동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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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발 아무것도 아닌 게 설치고 다니긴.”


깨어나자마자 떨리는 왕눈이 목소리가 들렸다. 곧바로 쿤타와 단추구멍이 달려왔다.


“어떻게 된 거냐?”


“몰라. 모른다고.”


나는 단추구멍에게 버럭 화를 내며 화장실 밖으로 나왔다. 개구멍으로 빠져나와 벚나무 숲속에 누웠다. 곱슬과 단추구멍이 나에게 와서 대책을 세우자고 했다. 그래서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쪽팔리니까. 가만히 있어 줄래.”


단추구멍이 곱슬을 데리고 울타리 안으로 들어갔다. 나의 속마음을 읽은 단추구멍이었다. 유학파는 조용했다. 나를 건드리면, 유학파가 접근할 거라고 여겼던 철민이의 계획은 어그러졌고, 나는 유학파와 멀어졌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낼 철민이가 아니었다. 절뚝거리는 사슴을 발견한 사자처럼, 그 이후로 나를 집요하게 괴롭혔다.


1학년 때 실시한 우리 학교 교련 검열의 등수는 하위권이었다. 미호씨는 등수를 올리려고 혈안이 되어 설치고 다녔다. 하지만 베어는 계속 교련 검열 연습에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였다. 우리 반을 향한 미호씨의 폭력적인 행동은 더 심해졌다. 교련 시간만 되면 우리 반 학생들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었다. 곱슬의 앞머리도 성한 곳이 없었다. 미호는 눈만 마주치면 곱슬에게는 머리를 자르라고 소리치면서 머리채를 쥐어뜯었고, 나에게는 빨갱이라고 하면서 지휘봉으로 등을 사정없이 내려쳤다.


교련 검열 등수가 올라가면 어떠한 혜택이 주어졌는지 그때는 물론 지금도 모른다. 하여튼 군사정권 시절이니 군인이 최고로 대우받던 시대였다. 면장 자리라도 바라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미호씨는 교련 검열에 맹목적이었다. 학생들은 죽을 맛이었다. 주변에서 지켜보는 나도 불편했는데, 직접 참여한 학생들은 오죽했을까.


걸어가면서 수백 명의 손과 발이 하나처럼 움직이며 행진하다가 멈추면 오와 열이 흐트러짐이 없어야 했다. 조금이라도 흐트러지면 사정없이 지휘봉을 휘둘렀다. 싱그러운 봄날에, 학생들은 점점 지쳐갔다. 미호씨를 욕할 힘도 없는지 교련 검열 연습을 하고 교실에 들어오면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그러다가 드디어 사건이 터졌다. 하얀 목련꽃이 떨어져 검게 변색 되었을 때였다. 방과 후 교련 검열 연습 도중 어깨가 굽었다는 이유로 미호씨가 곱슬의 머리를 잡아당긴 게 화근이었다.


그렇잖아도 신경이 곤두서 있던 곱슬은 미호씨가 머리카락을 잡자마자 머리로 그의 코를 정확하게 들이받았다. 미호씨가 지휘봉으로 곱슬의 몸을 사정없이 때렸다. 그러자 곱슬은 다시 머리로 미친 호래자식의 눈을 정면으로 들이받았다. 그 충격에 미호씨는 뒤로 벌렁 넘어졌다. 곱슬은 넘어진 미호씨의 얼굴을 발로 마구 짓밟았다. 미호씨는 기절했다가 세 시간 후에 병원에서 깨어났다. 코뼈가 부러지고 얼굴 뼈가 함몰되었다고 했다.


“야 쿤타는 가만히 있었어?”


교련 검열에서 제외된 나는 대호에게 이야기를 듣다가 갑자기 쿤타가 궁금했다.


“걔 교련 검열 제외되었어. 얼굴 검어서 검열자가 이상하게 볼 수 있다고. 쿤타는 좋다고 팔짝팔짝 뛰었지.”


피부색이 다르다고 제외하다니, 하지만 미호씨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었다. 소란스러운 소리를 내며 경찰차가 학교로 들어왔지만, 곱슬은 사라진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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