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인천역에서 곧장 구로공단으로 향했다. 당시 구로공단은 대한민국 산업의 심장부였다. 그곳에 분명 내 적성에 맞는 일이 있을 거라 믿었다. 예상대로 구로역을 나오자, 안내판에 사원 모집공고문이 빼곡했다. 앉아서 하는 일보다 몸을 쓰는 일을 골라 전화했다. 종이상자를 만드는 공장이었다.
저녁 무렵 공장에 도착하자마자 일이 주어졌다. 12시간씩 2교대 근무에 월급은 18만 원이었다. 나는 기숙사에 대충 짐을 내려놓고 납작한 종이상자를 나르기 시작했다. 색깔을 구별하거나, 손재주도 필요 없는 그야말로 단순 작업이었다. 불량이 나올 리 없었다. 하지만 밤새워 일하고 아침을 먹자마자 허리가 끊어질 듯한 통증에 공장을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구로역에 있는 전신 거울 앞에 섰다. 나뭇가지에 천을 두른 것처럼 깡마른 사내가 거울 속에 서 있었다. 머리도 나쁜 데다가 힘까지 없었다. 분식집에서 가락국수를 먹고 자포자기 심정으로 역 의자에 누워 잠들었다. 누군가가 나를 깨웠다. 시계를 봤다. 12시 45분이었다. 역무원이 역의 철문을 닫을 시간이라 나가라고 나를 깨운 것이다.
여름이지만 밤공기는 싸늘했다. 나는 공중전화 부스 안으로 들어가 몸을 웅크리고 잠을 청했다. 햇살에 눈을 떴다. 누군가에게 실컷 두들겨 맞은 것처럼 온몸이 쑤셨다. 나는 공중전화 부스에서 나와 엉금엉금 사원 모집공고 안내판이 있는 곳으로 다시 향했다.
인형의 눈알을 붙이다가 본드에 취해 여기가 서울인지 해미인지 분간하지 못해 쫓겨났고, 장난감 자동차 바퀴를 조립해 보기도 했으며, 옷감 염색 작업도 해봤다. 옮기면 옮길수록 이전 직장이 차라리 나았다. 그렇게 열한 곳의 공장을 전전했지만, 대전 프레스 공장이 가장 좋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나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용산역으로 향했다. 용산역 계단에 앉아 하늘에 뜬 뭉게구름을 한참 쳐다봤다. 그때 나는 뜻밖에도 왕눈이를 만났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정말이었다.
“반갑다.”
왕눈이의 첫 마디에 나는 순간 어리둥절했다. 반갑다니? 우리가 이렇게 반가워할 사이던가? 하지만, 그는 진심으로 나를 반기고 있었다.
“너 꼴이 이게 뭐냐? 자. 라면이라도 사 먹고, 집에 가라.”
왕눈이가 만 원짜리 한 장을 내 호주머니에 쑤셔 넣더니, 계단을 올라갔다.
“그땐 미안했어. 지금 생각해 보면, 뭔가 홀린 것 같아.”
계단을 올라가던 왕눈이가 돌아보면서 말했다. 나도 뭐라고 말하려는데 왕눈이는 돌아서서 계속 계단을 올라가 역사 안으로 사라졌다. 나는 한동안 멍하니 서 있다가, 왕눈이가 사라진 건물 안으로 뛰어갔다. 왕눈이는 보이지 않고 의정부행 전철이 막 떠나고 있었다. 용산역 건물 안에 있는 거울을 보았다. 하얀 나이키 운동화는 얼룩무늬 운동화로 변했고, 얼굴엔 고등어 등처럼 땟국물 자국이 선명했으며, 옷은 기름 범벅이었고, 머리에는 새집이 세 채나 들어앉아 있었다.
용산역 밖으로 나와 계단에 주저앉았다. 서울의 노을 또한 아름다웠다. 그렇게 노을을 바라보고 있는데, 누군가가 아는 척을 했다. 한 번도 같은 반이 된 적이 없던 5반 친구가 나를 반갑게 맞이하며, 왕눈이처럼 만 원짜리 한 장을 건넸다. 나는 얼떨결에 돈을 받아 주머니에 넣었다. 그 친구를 통해 어제부터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여름방학을 맞아 친척 집에 가거나 취직자리를 알아보러 3학년 학생들이 속속 서울로 올라왔다. 해미에서 서울에 오려면 용산 터미널을 거쳐야 했고, 대부분 전철을 타려고 용산역으로 왔던 거였다. 부모님 손을 잡고 와 보던 서울에, 이젠 고3이라고, 혼자 또는 친구들끼리 왔다. 머나먼 낯선 곳에서 익숙한 얼굴을 마주치니 반가웠고, 나의 초라한 행색에 그들은 스스럼없이 지갑을 열었던 거였다.
일단은 저녁을 먹고 하룻밤 묵을 곳을 찾았다. 마침 용산역 광장 건너편 골목에 만화방이 보였다. 3천 원이면 하룻밤을 보낼 수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잠을 자고 오전까지 만화책을 보았다. 공포의 외인 구단은 몇 번을 봐도 재밌었다. 프로야구 구단에서 쫓겨난 그들이 무인도에서 혹독한 훈련을 받고 강팀으로 거듭나는 이야기였다. 나도 그때 대한민국의 외인이었다. 어쩌면 그때 나도 그들처럼 외인이 아닌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살아가는 꿈을 버리지 않았기에 만화책을 보고 또 봤던 게 분명하다.
만화방에서 파는 라면을 먹고 2시쯤 용산역으로 나왔다. 오전에는 해미로 돌아가는 친구들과 마주칠까 싶어 일부러 오후에 나갔다. 나는 해미고 친구들을 하루에 한 명 이상은 만났다. 닷새 정도 지난 뒤부터는 아예 대놓고 말했다.
‘차비 좀 빌려줘.’
비록 학교 다닐 때 친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같은 학교의 같은 학년이었기에 얼굴은 알고 있었다. 친구들은 흔쾌히 돈을 내주었다. 만화책을 보다가 용산역 계단에 앉아있는 일이 점점 재밌어졌다. 나는 그때 나의 천직은 거지가 아닐까, 생각했었다.
시간이 흐르자 만나는 친구들이 눈에 띄게 줄었고, 어쩌다 만나는 친구들도 이미 내 소문을 들어 더는 돈을 빌려주지 않았다. 그래도 그동안 모은 돈으로 몇 달은 버틸 수 있었다. 하여튼 나는 그 순간을 만끽했다. 용산역에서의 생활 하루하루가 행복했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살아온 내 인생에서 행복했던 순간을 꼽으라면 용산역 넓은 광장에 앉아 하늘의 구름을 바라보던 그때도 손에 꼽힐 정도였다.
“용산역에 가면 거지 중에 상거지가 있다는 소문이 해미에 파다하더니, 사실이었네.”
용산역 계단에 앉아 석양을 바라보고 있는데 누군가 옆에 앉았다. 얼굴에 수염이 덥수룩한 베어였다. 베어는 6월 5일 해미를 떠났다가 7월 2일에 해미로 다시 돌아왔다고 했다. 오랫동안 독재자에게 빼앗겼던 주권을 국민이 되찾자마자 베어는 다시 해미로 왔다고 길게 이야기했다. 그들이 이루고자 했던 걸 성공했지만, 베어의 모습은 실패자처럼 풀이 죽어 있었다. 나는 그때 베어에게 반강제적으로 해미로 끌려왔다. 고속버스 안에서 도금 벗기는 일부터, 박스 나르던 일까지, 그동안 겪은 일을 베어에게 말했다. 베어는 묵묵히 내 이야기만 들었다.
집에 오자마자 벽장 속에 4만 원을 채워 넣었다. 엄마는 나의 등을 때리며 한동안 탄식을 늘어놓았다. 그런데 이상한 건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두어 달 만에 돌아온 아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이후로 돌아가실 때까지 아버지는 나를 어려워했다.
개학하자마자 용산역에서 돈을 빌린 친구들에게 돈을 돌려주었다. 그래도 3만 2천 원이 남았다. 나에게는 귀한 돈이었다. 되도록 의미 있는 곳에 쓰고 싶어서 고이 간직했다. 개학하면서 단추구멍도 등교했다. 목발에 몸을 의지하고 오른쪽 발은 깁스를 한 채였지만 반가웠다. 그리고 개학하고 다음 날 베어가 나를 불렀다.
“용산역 계단에 앉아있는 너의 모습을 보는 순간 너는 빌어먹을 운명이라는 걸 직감했다. 참말로 평온해 보였거든.”
베어의 표정은 진지했다. 나도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반박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열두 개의 직업을 전전한 끝에 용산역 거지가 가장 내 적성에 맞는다는 결론을 내렸으니 말이다.
“자 앉아.”
베어가 책상 옆에 숨어 있던 의자를 발로 끌어내어 앞에 놓았다. 더는 거지 같은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았다. 거지가 되려고 앞으로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궁금하지 않았다. 거지가 되기 위해 사전에 무슨 노력을 해야 한다면 너무나 비참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거지의 가장 큰 장점은 무계획 무노동이었다.
“얀마! 어디 가는 거야? 이리와 앉아.”
나는 교무실 출입문까지 갔다가 되돌아와서 마지못해 의자에 앉았다.
“나를 속이려 하지 마, 너는 거지 생활이 행복했던 게 아니야. 하늘을 보는 게 행복했지. 너는 분명히 용산역 계단에 앉아 하늘을 보고 있었어. 그 모습이 너무나 행복해 보였지. 나는 해미에 오자마자 네 자서전을 읽었어. 역시 온통 구름 이야기더구나.”
듣고 보니 정말 그랬다. 그제야 베어가 내준 자서전 내용이 생각났다. 나는 엄마의 말을 받아 적었고, 그때 엄마는 구름에 미친 나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했었다.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을 보면 항상 마음이 편안했다. 거지 생활이 행복한 게 아니라 구름을 볼 수 있어서 기뻤던 거였다. 어렸을 때 자주 엄마에게 혼났다. 구름을 쳐다보고 있으면 밥이 나오냐, 쌀이 나오냐 하면서 말이다. 거지와 뭐가 달라.
“구름을 관찰하면서 먹고사는 방법이 있는데, 어때?”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베어가 내 마음속 말을 정확히 짚어냈다.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그냥 멍하니 베어의 얼굴만 쳐다봤다.
“그래. 그런 일만 있다면, 목숨 걸고라고 하겠다고?”
나는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어때?”
베어가 가리킨 것을 보고 순간 혹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없다는 걸 금방 깨달았다. 기상직 공무원이라니? 모차르트의 재능을 탐내다가 불행해진 살리에리처럼 주제 파악 못 하고 헛된 꿈을 꿀까 봐 두려웠다. 나의 머리로는 도저히 넘볼 수 없는 직업이었다. 아버지의 말씀대로 뱁새가 황새를 쫓아가려다가 가랑이만 찢어질 뿐이었다.
“선생님이 더 잘 아시잖아요. 제가 할 수 없다는 것을요.”
“그렇지 내가 더 잘 알지. 네가 할 수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 나가 봐.”
나는 터벅터벅 교무실에서 나왔다. 그리고, 일주일 후에 베어로부터 두툼한 서류철을 받았다.
“2년간 계획이야. 3개월 동안은 여기에 있는 내용을 반복적으로 읽어봐. 뭐, 처음에는 검은 건 글씨고, 흰 건 종이라는 것 이외에는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을 거야. 단어들은 머릿속에서 날아다니고, 무슨 의미인지 모른 채 깜깜하겠지. 하지만 한 달 정도만 반복적으로 보면 의미를 파악할 수 있을 거야. 선배들도 다 그 과정을 거쳤으니, 나만 믿어 봐. 네가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는 네 머리에 달린 게 아니야. 네 믿음에 달렸지. 나를 믿어. 알았지?”
나는 그때 베어의 말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용산역 거지 생활에서 행복을 느끼던 나였다. 더는 떨어질 바닥이 없었다. 나는 머뭇거렸다. 그러자 베어는 나의 손을 잡고 진지하게 말했다.
“그냥 미친 척하고, 두어 달만 내 말대로 해봐.”
베어의 말대로 나는 미쳤다고 생각했다. 그 이후로 나는 종례가 끝나면 곧바로 집으로 향했다. 대호가 맘모스 빵을 사준다고 해도 뿌리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