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건네는 인사

It is well with my soul

by You앤Me Art Place

어느 날 그림이 내게로 왔다.


첫 그림 앞에 설 때 훅-하고 다가오는 색은 최면을 걸어 한순간에 보자기처럼 나를 덮어 눈을 감게 한다.
그 앞에서 발이 떼어지지 않고 시간을 잠시 뒤로 한채 가만히 숨 쉬게 된다.
무엇을 그린 것이며 사연은 어떠한지도 나중이다.
그저 나에게 다가온 그림을 조심스레 받아들이며 빠져드는 것으로 한참을 머무르게 된다.

나는 한동안 도심 한복판에서 내 역량에 벅찬 일을 하며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 지내던 때가 있었다.
지하철을 타고 도착하면 반사적으로 척척 해내던 일에도, 극도의 스트레스를 여실히 드러내어 수습도 못한 채 또 다른 하루를 맞이하곤 했었다.

우체국 일을 보러 갔다가 돌아오던 길에 바로 앞 빌딩에서 사원들을 위해 열린 전시가 있었다.
여러 번 그 앞을 지나다녔지만 남의 회사건물이 낯설어 들어가 본 적은 없었다.
하던 일에서 빠져나와 잠시 나를 환기시키고 싶어서 숨을 돌리며 전시장에 들어섰다.
중앙에 전시된 그림을 보는 순간, 바람 부는 언덕에 선 것처럼 그림의 색에 압도되어, 그대로 스며드는 것 같았다.

수줍은 호기심에 도슨트 없이 혼자 기웃대다가 마음에 들어오는 그림을 만나면 설레었다.
친구를 대하듯 살며시 다가서게 되고 그림이 나에게 말을 걸어오고 인사를 건네듯 나도 그렇게 다가가 내 마음을 이야기한다.
호감을 충분히 느끼고 나면 작가의 이름이나 제목을 읽어보고 그러고도 관심이 가면 숨은 이야기나 설명을 찾아보게 되는 것 같다.
그것이 내가 그림을 대하는 오랜 방식이고 비밀스럽게 혼자 즐기는 모습이기도 하다.

어떤 때는 꾸역꾸역 도슨트를 듣다가 건너뛰고 그룹에서 벗어나 마음이 가는 그림을 찾아보기도 했다.
때론 그저 혼자 차분히 볼 때가 좋기도 하다.
아마도 그림과 나. 둘만이 대면할 때 오는 개인적인 교류 때문인 것 같다.

그림에는 값을 매길 수 없는 고유함이 있다.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그림이나 마스터 피스와 상관없이, 나에게만 들어오는 어떤 그림을 만나고 대할 때면 귀인을 대하듯 공손한 시선으로 훔치듯 마음에 한 겹 한 겹 담게 된다.
지극히 사적인 취향이고 감동이겠으나
그 흔하지 않은 설렘이 그날밤 집에 돌아가 잠자리에 누울 때까지도 가시지 않는다면 행복한 여운으로 이어져 두고두고 엷은 미소를 짓게 할 것이니 값으로 매길 수 없는 아름다움이라 할 수 있다.

그림은 작가의 의도와 다르게 다른 이름으로 온다.

"위로"라는 이름으로 "환희"라는 이름으로
시시각각 다르게 손 내밀어 주는 그림.
그림을 어떻게든 가지고 싶어서 소장하게 되는 영광을 얻게 된다면 알게 될 것이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보이는 그림과 한낮에 무심코 그 앞을 지나칠 때, 또한 밤이 저물어 여린 조명아래 흘깃 보게 될 때 어떻게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지.
어느 날 상한 맘으로 누워서 그림을 무심히 보았을 때나 의기소침해져 있을 때 유난히 눈에 들어오는 그림이 얼마나 환하게 나의
기분을 풀어 주고 위로해 주는지.

그림은 감상할 때 보다 스스로 직접 그릴 때 교감이 커진다.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림이 나를 이끌어 주는 대로 따라가다 보면 고맙게도 배워지고 겸손해지기 마련이다.
의도대로 그림이 그려지고 그림을 정복하듯
고집스럽게 그려낼 수가 있을까.


그리는 동안 분위기가 수시로 바뀌어 가고
한 번도 그려본 적 없는 새로운 그림세계로 들어가면서 그 신비롭고 순수한 이끌림을 경험하고 나면 "내"가 그렸다고 말하기가 겸연쩍어진다. 그림이 나를 이끌었다고 말하는 것이 적절한 표현이다.
그림을 그릴수록 더욱 그러하다.
그 맛에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학교에서 상을 타고 싶어서 그렸던 그림들은
나중에 혼자 있을 때 보고 싶은 그림은 아니었다.
자랑하고 싶을 때 보여주고 설명하고 나면 별다른 애착도 남지 않았다.


그림을 사랑하는 것은 다르다.
혼자 만족해서 들여다보고 좋아하고 그때 그렸던 심경들이 떠오르고, 방향을 잃고 헤맬 때 이끌어 주고 가르쳐준 그 기억이 다시 떠오르기도 하여 고마워하는 마음으로 바라보게 된다.

어느 날 그림이 나에게 다가온다면 고마운 일이다. 그림을 그리든 그림을 관람하든 그림은 그대에게도 고마운 존재다.

*위에 게재된 그림은 제가 직접 그린 것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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