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가을이에요.
언제나 반짝하고 우리 삶에 잠시 머물다 가는 순간이 있다.
한없이 그대로 그 순간을 붙잡고 길어지면 좋을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을 때가 많다.
낙엽이 가을볕에 반짝이는 것을 볼 때 어느 순간 그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온몸에 햇볕을 받은 것처럼 흐뭇하기도 한 날이 있지 않은가!
삶은 예상을 벗어나 마음을 상하게 하기도 하고 애달파하기도 하지만
한 번도 뜻하지 않은 그 어떤 순간이라는 것이 찾아와 우리 맘을 설레도록 흔들어 놓고 가지 않는가 말이다.
길을 걷다가 유모차에 탄 아기가 눈을 피하지 않고 또렷이 나를 바라보며 이유 없이 웃어줄 때 그 어떤 위로보다 더 한 다독거림을 느끼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지'
혼자 중얼거리게 되기도 한다.
파랑새가 가까이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찰나와 순간을 통해 잠시 정지된 듯 우리들의 마음을 녹이고 한 번도 고마워해보지 않은 것들에 새삼 고마움을 느끼게 되는 것들이 분명 가까이에 있다.
내가 의도하지 않고 내가 기대하지 않은 아름답고 귀한 것들이 이 세상에 많아서 보물찾기 하듯 가끔 운 좋게 내 눈에만 보이는 것들. 내 마음에만 간직하고픈 것들이 생겨나니 말이다.
예전의 나는 그런 삶은 지루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고 어떤 특별함이 없기에 시시하고 보잘것없다고 느끼기도 했어서 어떻게든 도전하고 새로움을 향해 욕망을 드러내기도 하고
세계를 돌고 돌아 내 자리에 오기까지 멀리 또 넓게 많은 경험을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러나 해 아래 새로운 것이 없듯이 돌고 돌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듯이 값을 매길 수 없는 소중한 것들은 순간과 찰나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값없이 주어진다.
Everything has a beauty but not everyone sees it
모든 것들은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지만 누구나 그것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민들레 홀씨가 우리의 입김에 멀리멀리 날아가 새로운 여정을 보내고 어딘가에서 싹을 틔우듯이 생각보다 신비로운 일들은 아주 쉽게도 우리의 일상에서 일어나고 복잡하지도 않게 이루어지곤 한다.
사실, 숨을 쉬고 발걸음을 저벅저벅 옮기고
바람에 날리는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고 휘파람을 불어보고 풍선껌을 씹다가 문득 풍선을 불고 하는 이 모든 것들이 저절로 당연하듯 되는 일이 아니다.
사람은 어떤 존재로서 누군가에게 머물기도 하고 또 누군가에게서 떠나기도 한다.
그렇게 오고 가는 여정 속에서 배우게 되는 것들이 있다. 나라는 존재의 소중함 그리고 너라는 존재의 귀함. 우리는 그러는 동안 철이 들고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새로운 순간들을 깊이 담는 법을 배우게 된다.
잠자리가 두 날개로 날을 때 그리고 가느다란 풀대에 앉아 바람과 함께 흔들릴 때
그것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 기쁠 수밖에.
나뭇잎들 사이사이로 들어와 비치는 햇살이 에머럴드의 초록빛보다 아름답고 어떻게 해도 그런 아름다움을 흉내 낼 수도 가질 수도 없다는 것을 느끼며 한껏 즐겁게 바라보고 경이롭게 기억할 수 있지 않은가.
마음이 한참 뒤엉켜 있을 때는 걷기만 해도 스스륵 풀어지는 것들이 있고 한숨 푹 자고 나면 덜어지는 것들도 있으며 한없이 울고 나서 가라앉는 것도 있다. 참 고마운 일이지. 그럴 수 있다는 것이.
코스모스가 흔들릴 때 아름답다 말할 수 있고 그 여리고 하늘하늘한 핑크빛이 누구보다도 우아하게 느껴진다면 참 많이 누리고 있는 것이다.
맨발이 닿는 모래가 발가락 사이로 들어와도 아랑곳하지 않고 걸을 수가 있고 배꼽 잡고 웃을 일이 있을 때 손바닥을 마주쳐 소리를 내며 더욱 유쾌할 수 있다면 이미 많이 누리고 있는 것이다. 좀 더 세련되고 좀 더 멋스럽고 좀 더 그럴싸해 보이는 것만을 좇지 말고 수수하고 소박하고 식상해 보이는 것들 속에서 나만이 알아보고 느낄 수 있는 그 멋이란 것을 발견하고 만족해하길.
순간을 살고 찰나를 기억하며 무료로 주어진 그 삶을 아름답게 살아가길.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가을이에요
*위에 게재된 그림은 제가 그린 것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