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리고 지금
네모난 칸에 한 글자씩 또박또박.
오늘은 콩을 볶아 먹었다.
맛있었다.
노란색에 거뭇하게 그을린 콩들을 잔뜩 그려놓고 둥글게 상을 따라 앉은 우리는 양반다리하고 있으나 측면의 좌상을 어찌 그려야 할지 몰라 그려놓고 보면 우습게도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누워있는 모습.
나의 초등학교 일기장에 자주 등장하던 내용이었다.
사실 맛없었다. 먹다 보면 고소했지만 자주 등장하는 볶은 콩을 입도 짧은 어린 내가 맛있어 할리가 없다. 학교에 제출해야 하니 '행복모드 자동전환' 마지막에 붙는 말,
"오늘은~먹었다~맛있었다"
짜장면을 먹던 날은 어쩌다가 일기가 꽉 채워졌다. "정말 맛있었다"와 함께!
그런 날은 자랑할 게 많아 신났다.
재미없던 그림일기를 뭐라도 재미를 찾아
억지로 써내느라 꾸역꾸역 썼던 것 같다.
오늘은 놀이동산에 김밥 싸고 과자도 많이 사고 엄마 아빠랑 소풍 가서 청룡기차를 탔다. 무서웠지만 너무너무 재밌었다.
오늘은 아빠가 인형을 사 와서 기분이 좋았다. 다음엔 인형집도 사준다고 했다.
오늘은 가족모두 맛있는 걸 먹으러 갔다.
거기서 처음 보는 것을 먹었는데 마지막에 아이스크림이 나왔다. 너무너무 맛있었다.
나는 그런 일기를 쓰고 싶었다.
학교에서 청소를 했다. 깨끗이 청소를 하니 기분이 좋았다. 책상을 잔뜩 그려놓고 아이들이 비를 들고 있는 그림. 허리를 어떻게 구부려 그려야 하는지 몰라서 뻣뻣하게 서서 비를 들고 있는 모습.
누구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그리 썼을까.
나는 청소가 제일 싫었고 게다가 왜 어린 우리들이 청소를 매번 지독히 해야 하는 건지 노동처럼 느껴져 억울하기까지 했다.
오늘은 학교에서 재밌는 영화를 보았다.
선생님이 간식까지 나누어 주셔서 너무너무 기분이 좋았다.
오늘은 학교 끝나고 교실에서 재밌는 놀이를 했다. 선생님도 좋아하셨다. 다음에 또 하기로 했다.
오늘은 친구들이랑 학교 뒷동산에 올라갔다. 선생님이 제일 빨리 올랐고 우리는 거기에서 술래잡기 놀이를 했다.
선생님이 술래가 되었다. 너무너무 재밌었다.
그런 일기를 쓰고 그런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여름이면 해수욕장에 간 이야기. 불꽃놀이를 구경한 이야기, 텐트 치고 야영을 하며 가족들과 소꿉놀이 같은 하루를 보낸 이야기. 겨울이면 아빠랑 눈싸움을 하고 눈사람을 예쁘게 만들어 엄마한테 칭찬받는 이야기. 가을이면 기차를 타고 맛있는 것을 잔뜩 사가지고 단풍놀이를 간다며 산에 간 이야기. 봄이면 새 옷을 사러 가서 백화점에서 예쁜 원피스를 하나씩 사 입고 맛있는 것을 먹으며 집에 돌아온 이야기.
왜 그렇게 그런 이야기들을 끝도 없이 쓰고 싶었던 건지.
그래서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는 일기가 바뀌었다. 현실엔 없지만 판타지엔 있는 일기. 주로 연극을 하며 놀았던 이야기들.
오늘은 미스코리아 놀이를 했다. 옷장에서 어른들 옷을 꺼내 입고 빼딱 구두도 신었다. 우리 중에서 진선미를 뽑았다. 망토는 보자기로 했다. 나는 심사의원을 했다.
오늘은 피터팬 놀이를 했다. 내가 피터팬 역할을 하고 후크 선장과 팅커벨 그리고 웬디랑 동생들도 뽑았다. 나는 하늘을 날고
후크선장과 칼싸움을 해서 이겼다.
콩쥐 팥쥐 놀이를 했다. 친구네 집에 있던 소리로 들려주는 동화처럼 노래 테이프를 똑같이 따라 했다. 우는 장면이 제일 어려웠다. 오늘은 아이들을 불러 동네에서 과자 따먹기를 시켰다. 아이들에게 50원씩 걷어서 과자와 사탕을 사고 실에 묶어서 먼저 달려와 먹는 사람이 이겼다.
나는 그렇게 놀기 시작했다. 일기는 점차 재밌어졌다.
친구랑 싸운 얘기 엄마 아빠 때문에 마음 상한 얘기 억울한 얘기 슬픈 얘기는 결코 쓴 적이 없다. 일기는 다 행복한 것만 써야 되는 줄 알았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왜 그랬는지 슬픔금지 눈물금지 속상함 금지.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을까 재미있을 수 있을까 그런 생각뿐이었다.
학교 앞 병아리를 일생일대 한번 사다가 지극정성으로 키워 반려닭이라고 꼬꼬라는 이름까지 붙여주고 하교 후 언제나 꼬꼬를 부르며 달려가 애정을 주어 튼실한 닭으로 키워놨더니 어느 날 엄마가 내가 학교 간 틈에 백숙으로 만들어 저녁상에 내놓고 대성통독하던 나에게 꼬꼬가 아니고 꼬꼬랑 시장에서 파는 닭이랑 바꿔서 내놓은 거라며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는 나에게 꼬꼬를 먹으라고 했던 미저러블 한 그날밤 다락에 올라가 식음을 전폐하고 한없이 울고 또 울던 그날의 사건. 그날은 일기를 쓰지 않았다. 내 가슴 깊은 곳에 떠내려갔다.
하늘이 무너질 것 같은 기분이 드는 날도
너무 슬퍼서 견딜 수 없는 날들도 나의 일기장엔 없었다. 그래선지 일기장에 애착이 없었다. 쓰고 나서 다시 들여다보는 일은 없었던 것 같다.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하고 외쳐, 북한군에게 입이 찢긴 이승복 어린이를 치하하는 독후감을 6월 25일 기념하에 학교에 숙제로 써서 낼 때마다 나는 죄다 거짓말로 써놓아야 했다. 본받고 싶다.
훌륭하다. 용기 있다 등등. 그럴 때마다 밤마다 나는 내 입이 찢길 것 같은 악몽에 시달리고 북한군에 쳐들어오면 죽은 척하거나 항복하거나 "공산당이 좋아요" 하고 살아남는 상상을 하곤 했었다.
억지스러운 글 대신 나는 자유롭고 싶었다.
나는 클래식하고 순수하고 소녀답게 자라나고 싶어서 마음에도 없는 시를 쓰고
스스로를 미화시키고 이미지 메이킹을 하고
그렇게 십 대를 보냈다.
그때의 일기는 대부분 동향하는 시인의 시들을 모방하거나 그런 분위기의 일기를 쓰거나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런 것들을 따라 하다 보니 어느덧 서정적인 감성들이 깨어나고 그런 글들에 마음을 사로잡히고 깊은 아름다움을 느끼게 되어 글에 진심을 담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나의 일기장엔 시가 많아졌다. 여전히 적나라한 슬픔이나 좌절 아픔등은 쓸 수가 없어서 비유해서 상징으로 쓰다 보니 시가 늘어가고 시적인 표현들이 많아져갔다.
나중에 다시 읽어 보아도 나만이 느끼고 아는 비밀일기처럼 글을 썼던 그날의 사건과 감정들을 고스란히 다시 느낄 수가 있었다. 더 이상 일기장에 열쇠를 채우지 않아도 설령 누가 읽어본다 해도 나의 감정을 들키지 않을 것 같았다.
조금 더 자유로워진 나는 뒤늦게 그림일기를 다시 그리고 쓰게 되었다.
그날의 그림과 그날의 사연이 일기가 되어 일기장을 채웠다.
새 한 마리를 사진으로 찍어도 그것을 찍은 이유와 그때의 감정 그리고 나의 생각들을 그림과 함께 적을 수 있었다.
지금도 그러하다. 그림을 그리면 글을 쓰게 되고 글을 쓰면 그림을 그리게 된다.
나의 그림일기 여정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위에 게재된 그림은 제가 그린것들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