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사노바의 무의식과 기저핵(basal ganglia)
카사노바의 생존심리학
by 카사노바의 생존 심리학 Mar 20. 2026
〈그림 3-2〉는 우리 두뇌의 기저핵 운동 영역을 도식적으로 표현한 그림이다(그림은 박문호 박사의 『뇌과학의 모든 것』을 참조하였다). 물론 현재까지의 연구에 따르면, 기저핵에는 일차체감각피질이나 운동피질과 같은 정밀한 공간적 신체 지도(somatotopic map)가 명확히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기저핵은 반복되는 행동에 대해 특정 신경회로의 연결 강도를 강화함으로써 습관적 행동 패턴을 형성하는 구조이다. 본서에서는 이해를 돕기 위해 박문호 박사가 비유적으로 사용한 ‘기저핵의 신체 지도’라는 표현을 설명적 도식으로 활용하고자 한다.
이 그림을 보면, 기저핵 내부에 신체 부위별로 서로 다른 신경 영역이 배치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이후에도 반복해서 언급할 것이므로, 여기서는 그림의 세부를 주의 깊게 살펴보기 바란다). 이러한 신체 지도는 우리가 반복적으로 사용해 온 몸동작과 행동 패턴이 기저핵에 체계적으로 각인되어 있음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다시 말해, 기저핵은 우리의 습관적인 움직임이 무의식의 형태로 저장되는 핵심적인 두뇌 구조라 할 수 있다.
사실 우리가 일상에서 수행하는 대부분의 행동은, 매 순간 의식적으로 판단한 결과라기보다 이미 몸에 밴 무의식적인 습관에 따라 이루어진다. 걷기, 손동작, 표정, 말하는 방식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수많은 행동을 거의 자동적으로 수행한다. 이러한 습관 덕분에 우리의 일상은 비교적 편안하고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그 이유는 의식적인 사고 과정에 비해 무의식적인 처리 방식이 훨씬 적은 에너지를 소모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평소에는 무의식적인 습관에 따라 행동하다가, 생존에 직접적으로 중요한 자극을 만났을 때에만 의식을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예를 들어 갑작스러운 위험 상황에 직면하거나 예상하지 못한 변화가 발생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주의를 집중하고 상황을 분석하며 판단을 내린다. 이처럼 일상에서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행동은 습관에 따른 것이며, 이러한 습관적 행동이 기저핵을 중심으로 한 무의식의 신경 회로에 저장되어 있다. 이것이 바로 무의식의 뇌과학적 실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무의식의 영역에는 신체 동작과 관련된 행동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무의식적인 감정 또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누군가를 처음 만났을 때, 특별한 이유를 떠올릴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왠지 모르게 기분이 나빴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아직 그 사람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나도 모르게 그러한 감정이 형성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는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다. 과거에 외모나 분위기가 비슷한 사람에게서 심리적인 상처를 받은 경험이 있었을 수도 있다. 이러한 경험에서 비롯된 부정적인 감정은 의식적으로 또렷하게 기억되지 않더라도, 무의식 속에 감정의 흔적으로 저장된다. 이후 비슷한 자극을 다시 만났을 때, 이 감정의 흔적이 자동적으로 활성화되면서 설명하기 어려운 불쾌감이나 거부감으로 나타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의 감정을 처리하는 핵심 기관인 편도체(amygdala)도 빼놓을 수 없다. 편도체는 일반인에게도 비교적 잘 알려진 영역으로, 특히 공포와 불안 같은 감정을 처리하는 기관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 감정이라는 것은 의식의 영역이라기보다는 무의식의 영역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이유는 우리가 느끼는 감정을 말로 정확하게 표현하는 일이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감정은 앞서 설명한 비서술기억의 한 종류로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매 순간 어떤 형태로든 감정을 느끼며 살아간다. 감정을 느끼지 않는 순간은 거의 없다. 현재 여러분이 느끼는 감정은 어떠한가? 좋은 감정인가, 아니면 불편한 감정인가? 만약 좋은 감정이라고 답한다면, 그 감정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보라. 아마도 “마음이 편안하다”, “머리가 상쾌하다”, “온몸의 긴장이 풀린다”와 같은 비교적 포괄적인 표현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이처럼 우리가 느끼는 감정을 말로 세밀하게 표현하기 어려운 이유는, 감정이라는 주관적 경험이 쉽게 합의된 언어 체계로 정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저녁 하늘에 번지는 붉은 노을을 바라보며 느끼는 감정이 사람마다 천차만별로 다른 것이다(‘시’라는 문학 장르가 탄생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결국 감정이란 각자의 마음속에서만 주관적으로 존재하는 기분이며, 이러한 특성 때문에 감정은 의식보다는 무의식에 더 가깝다고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리고 우리의 감정이 무의식의 영역에 속한다면, 그것이 우리의 정신과 행동에 미치는 영향 또한 클 수밖에 없다.
뇌과학적 연구 결과 역시 이러한 관점을 분명하게 뒷받침한다. 인간의 이성적 판단을 담당하는 전전두엽(prefrontal cortex)과 감정을 담당하는 편도체 사이의 신경 연결을 비교해 보면, 전전두엽에서 편도체로 향하는 연결보다 편도체에서 전전두엽으로 향하는 연결이 몇 배나 더 많다는 사실이 보고되어 있다. 이러한 구조적 특성 때문에 우리는 실제 행동을 선택하고 실행할 때, 이성적 판단보다 감정의 영향을 더 크게 받게 된다.
이제 다시 R의 꿈으로 돌아가 보자. R의 꿈에는 어린 시절 자신에게 부정적 감정을 불러일으켰던 친엄마와, 동시에 불안과 혼란을 안겨주었던 젊고 아름다운 새엄마가 함께 등장한다. 더 나아가 새엄마의 얼굴 위로 친엄마의 얼굴이 겹쳐 보이며, 두 이미지가 공포스럽게 교차하는 장면까지 나타난다.
이처럼 R의 꿈에서 새엄마의 얼굴이 친엄마의 얼굴과 겹쳐 등장한 이유는 친엄마에 대한 감정이 무의식의 형태로 R의 편도체에 깊이 각인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가 꿈을 꾸는 동안에는 편도체를 포함한 감정의 처리 영역인 변연계(limbic system)가 매우 활발하게 활동한다. 반면 앞에서 설명한 주의 집중과 판단을 담당하는 영역, 즉 작업기억의 핵심 부위인 전전두엽은 거의 활동하지 않는다.
이러한 이유로 R은 꿈속에서, 깨어 있는 동안에는 애써 억누르고 지워버리고자 했던 친엄마에 대한 무의식적 감정 기억을 다시 마주하게 된다. 즉, 낮 동안 “기억하지 말자”라며 끊임없이 감정을 통제하던 전전두엽의 활동이 수면 중 약해지자, 억눌려 있던 편도체 속 감정의 기억이 꿈이라는 형태로 표면화된 것이다. 이와 동시에 다른 두뇌 부위, 즉 대뇌 각 피질에 저장되어 있던 친엄마의 외모에 대한 기억 역시 함께 소환되었을 것이다. 그 결과 R은 강한 죄책감과 불안 속에서 잠에서 깨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