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집단무의식에 따른 여성의 그림자

융의 영혼의 지도

이처럼 우리의 특정한 생각은 외부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치고, 그 결과는 우리가 눈으로 보고 경험하는 사물과 사건의 형태로 나타난다. 융이 언급한 자기(self)를 실현한 인간의 대표적인 사례로 자주 거론되는 부처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세상 만물은 우리 사고(생각)의 산물이다.”


이와 관련해 유명한 성공학의 고전인『신념의 마력』에 나오는 내용을 일부 인용해 보자.


“당신의 주위를 한 번 돌아보라. 만약 당신이 거실에 앉아 있다면 장식장이나 소파가 보일 것이다. 이 경우, 당신의 눈에 보이는 모든 물체는 누군가의 창조적 사고가 물체화된 결과다. 가구를 만들고, 유리를 끼우고, 커튼과 테이블보를 만든 것 모두가 사고의 물질화라고 할 수 있다. 자동차, 고층 빌딩, 비행기, 선박, 재봉틀, 작은 핀에 이르기까지 수천 가지의 물체는 모두 사고에서 출발했으며, 완성품과 비완성품 모두 창조적 사고의 결과물이다.”


― 『신념의 마력』 중에서


이 책의 저자인 클로드 M. 브리스톨의 말처럼, 오늘날 우리의 삶을 편리하게 만드는 모든 물건은 저절로 생겨난 것이 아니다. 누군가의 머릿속에 있던 생각이 외부 세계에서 구체적인 형태를 얻은 결과다.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는 하나의 관점이 바로, 양자역학적 세계관과 인간 인식의 작동 방식을 결합해 이해하는 끌어당김의 법칙이다.


이제 다시 융의 그림자로 돌아가 보자. 여기서 또 하나 흥미로운 그림자 현상이 등장한다. 바로 남녀 관계에서 나타나는 특이한 그림자의 작동 방식이다. 앞서 설명했듯이, 남녀가 서로에게 끌릴 때는 주로 아니마와 아니무스가 투사된다. 그러나 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에는, 아니마나 아니무스의 투사는 거의 일어나지 않고, 대신 그림자가 전면에 등장한다.


그림자는 우리가 인정하고 싶지 않은 욕망과 충동의 집합이다. 따라서 그림자가 투사된 상대에게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냉혹하거나 잔인한 태도를 보이게 된다. 이러한 그림자의 투사는 특히 싫어하는 이성에게서 강하게 나타난다.


대표적인 예가 언론에 자주 보도되는 배우자 대상 사망 보험 사기 사건이다. 그렇다면 왜 사람은 한때 사랑했던 배우자를 상대로 이런 끔찍한 범죄를 저지를 수 있을까? 그 이유는 이전에 설명했듯이, 상대를 더 이상 ‘사람’이 아닌 ‘사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우리가 노숙자를 볼 때 두뇌의 공감 부위인 내측전전두피질(medial prefrontal cortex, mPFC)과 전대상회(Anterior Cingulate Cortex, ACC)의 활동이 감소하는 것처럼, 배우자를 대상으로 보험 사기를 저지르는 사람들의 두뇌 역시 유사한 상태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


뇌과학적으로 내측전전두피질과 전대상회는 편도체에서 생성되는 본능적이고 거친 감정이 외부로 무분별하게 표출되지 않도록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특히 융 심리학적 관점에서 전대상회는 페르소나의 기능과 유사하게, 그림자의 부위인 편도체에서 올라오는 격렬한 감정을 전전두엽으로 전달하기 전에 한 차례 완충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이 부위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은, 편도체의 본능적 감정이 싫어하는 이성에게 그대로 투사된다는 의미가 된다. 이러한 뇌과학적·융 심리학적 이유로 인해, 나는 우리가 싫어하는 이성에게는 아니마나 아니무스가 아니라 그림자가 투사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내 경험상, 남성이 싫어하는 여성에게 그림자를 투사하는 경우보다는, 여성이 유독 싫어하는 남성에게 훨씬 더 강한 그림자를 투사하는 경향이 많은 것 같다. 이유는 간단하다. 여성은 자신의 배우자를 선택할 때 남성보다 훨씬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기 때문이다. 지금과 같은 피임 방법이 거의 없던 과거에는 남녀 간의 사랑이 곧 임신으로 이어질 확률이 매우 높았다. 따라서 여성은 본능적으로 자신과 자신의 아이를 지켜 줄 수 있는 강한 남성을 선택해야만 했다. 물론 이러한 남성성의 기준은 시대에 따라 크게 변화해 왔다. 과거에는 야생 동물의 공격에 맞설 수 있는 강한 근육을 지닌 남성이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그러나 과거 어느 때보다 여권이 높아진 현대 사회에서 여성들은 더 이상 육체적 조건만으로 남성을 선택하지 않는다. 이제는 육체적 조건보다는 경제적 안정성을 갖춘 남성을 더욱 선호한다(물론 육체적 조건까지 갖추고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만약 자신에게 접근하는 남성이 이러한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다면, 여성은 대체로 두 가지 행동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 가차 없이 거절하거나, 혹은 잔인하게 이용하는 것이다. 내가 말하는 여성의 그림자는 바로 후자에 해당한다.


누구라도 알고 있는 사실이 한 가지 있다. 바로 여성은 자신에게 매달리는 남성을 끔찍하게 싫어한다는 점이다. 남자라면 한 번쯤 특정 여성에게 매달려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라는 말에 현혹되어 끈질기게 접근하는 것이다. 특히 여성의 외모가 뛰어날수록 이런 행동을 할 가능성은 더욱 커진다.


“넌 나의 이상형이야. 너 없이는 안 돼. 모든 걸 다 해줄게. 제발 내 사랑을 받아줘.”


이런 말을 하며 매달린다. 하루 종일 그 여성만 생각하고,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세세히 보고하며, 당신이 아닌 다른 여성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겠다고 맹세한다. 여성이 원하는 값비싼 선물을 사주기 위해 대출까지 받는 남성도 있다. 그런데 일부 못돼먹은 여성은 이를 악용해 남성을 경제적으로 착취하기도 한다. 나 역시 매달려 본 경험이 있기에, 그 심정을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여성들은 왜 자신에게 매달리는 남성을 그렇게도 싫어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이런 남성을 만나는 순간 여성의 집단무의식 속에 억압되어 있던 그림자가 활성화되어 투사되기 때문이다. 여성은 자신에게 매달리는 남성을 마주하는 순간, 그 남성에게 자신의 그림자를 강하게 투사하기 시작한다. 마치 싫어하는 동성 사이에서 그림자의 투사가 정면으로 충돌하듯, 여성은 그 남성에게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그림자를 덧씌우며 강하게 밀어낸다.


그렇다면 이렇게 남성을 밀어내는 여성의 그림자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 그 안에는 다음과 같은 무서운 심리들이 숨어있다. 비교와 질투심, 통제되지 않은 소비 성향, 처음 만난 매력적인 남성과의 불륜에 대한 상상, 평생 나를 여왕처럼 떠받들어 줄 남성에 대한 욕망, 카사노바처럼 나를 거칠게 다룰 수 있는 강한 남성에 대한 갈망, 돈은 많지만 오래 살지 못할 남성에 대한 모순된 판타지 등이다. 이는 특정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상의 모든 여성들의 그림자 속에는 조상 여성들이 생존 과정에서 경험한 어둡고도 강렬한 욕망들이 그림자의 형태로 숨어 있다.


어떤가? 남성들이 기겁할 만한 무서운 욕망들이 여성들의 무의식 속에 숨어 있지 않은가? 너무나 순수하고 티 없이 맑아 보였던 여러분의 여자 친구나 배우자의 그림자 속에 이런 욕망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랐을 것이다. 그러나 겁낼 필요는 없다. 여러분이 어리석은 행동으로 여성의 그림자를 자극하지만 않는다면, 이러한 어두운 그림자를 직접 마주할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정말 사랑하는 여성의 그림자를 직접 보고 싶다면, 다음과 같은 행동을 해보라. 연락을 자주 해 달라는 여자 친구에게 분 단위로 전화를 하고, 카카오톡 메시지도 보내라. 친구들을 자주 만나는 것이 싫다는 여자 친구를 위해 친한 친구들과 과감히 절교하라. 여자 친구가 싫어한다면 전화번호부에 있는 모든 여성의 연락처를 지워라(심지어 직장동료나 엄마의 번호까지도). 여자 친구가 원한다면 새벽이라도 당장 달려가라. 지금까지 몇 명의 여성과 교제했느냐고 묻는다면 그녀가 처음이라고 거짓말을 하라. 전 여자 친구에 대해서는 최대한 험담을 하라.


“너 아니면 죽어 버릴 거야.”라는 말을 반복하라. 결혼을 하게 된다면 함께 산 집의 명의는 당연히 여자 친구에게 넘기겠다고 말하라. 월급 통장도 맡기겠다고 하라. 그냥 여자 친구가 원하는 대로 모두 들어주라. 그 순간, 여러분은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정말로 희한하면서도 끔찍한 여자 친구의 그림자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만약 이 모든 요구를 다 들어준다면, 그때부터 여자 친구는 서서히 여러분을 잔인하게 대하기 시작할 것이다. 사소한 실수에도 소리를 지를 것이고, 사람들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모욕을 줄 것이다. 심지어 욕설까지 서슴지 않을 것이다.


“우리 헤어져.”라는 말을 수시로 꺼낼 것이다. 그녀가 점점 더 당신을 잔인하게 착취할수록, 여러분은 오히려 그 여성에게 더욱 비참하게 매달릴 것이다.

“미안해. 내가 다 잘못했어. 다시는 안 그럴게. 내가 더 많이 노력할게.”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여자 친구가 “이번 한 번만 봐 준다”고 하면, 여러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쉴 것이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모든 책임을 스스로 떠안는 것이다. 이 단계에 이르면, 여자 친구의 눈에 당신은 더 이상 남자가 아니라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보다 못한 존재가 되고 말 것이다. 결국에는 이름 대신 “야”, “너”라는 무례한 호칭으로 불리기 시작하고, 심지어 손가락질까지 당할 것이다. 이 지점까지 오는 과정은 남성에게 매우 잔인하다. 특히 여성이 젊고 아름답거나, 남성이 모태 솔로라면 이러한 고통스러운 관계를 더욱 끈질기게 붙잡으려는 경향이 무척 강해진다.


내 직접 경험과 주변의 간접 경험을 종합해 보면, 이 단계에서 여성은 두 부류로 나뉜다. 이 남성과 관계를 끝내거나, 혹은 남성에게 더욱 잔인한 그림자를 투사하며 이용하는 것이다. 지금부터는 후자를 설명하겠다. 여성은 지금까지 자신의 모든 요구를 들어준 남성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냥 헤어질 것인지, 아니면 계속 이용할 것인지 말이다. 후자를 선택하는 순간부터 여성은 상대 남성에게 조상 대대로 내려온 집단무의식의 그림자를 본격적으로 투사하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여성은 남성을 하나의 ‘현금 인출기’처럼 인식하게 되고, 돈이나 명품을 요구하기 시작할 것이다.

이전 11화그림자: 끌어당김의 법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