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Self)와 고흐(Gogh)의 별이 빛나는 밤

카사나보의 신비한 꿈

마지막으로 이 꿈에 나타난 융의 자기(Self)에 대해 살펴보자. 자기는 개성화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자기는 의식과 무의식이 균형과 통합을 이룬 상태를 의미한다. 이 꿈에서는 절망적인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나폴레옹이라는 집단무의식이 일종의 자기의 실현 상태를 제공하고 있다. 융에 따르면, 우리가 정신적으로 극도로 힘들 때에는 의식이 마비된 후 집단무의식이 활발히 분출한다고 한다. 정신적으로 매우 힘든 상황에 처한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혼잣말을 하거나, 존재하지 않는 환각을 보거나 환청을 듣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융이 말한 집단무의식의 활동이다.


이는 우리의 정신을 다시 평형상태로 되돌리기 위한 본능적인 몸부림이자, 자연이 우리에게 선물해 주는 마지막 기회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생전 처음 마주하게 되는 집단무의식은 일반인에게 너무나 무섭고 두려우며 공포스럽게 느껴질 수가 있다. 그래서 이를 피하려 애쓰지만, 그럴수록 집단무의식은 더욱 집요하게 우리의 의식을 잠식해 간다. 바로 이 순간, 가장 필요한 것은 자신의 집단무의식을 솔직하게 대면할 수 있는 강한 용기다.


사실 우리 각자에게 나타나는 집단무의식은 개인만의 무의식이 아니다. 그것은 지난 수백만 년 동안 우리의 조상들이 경험해 온, 인류 전체의 생존에 대한 지혜가 저장된 집단 전체의 무한한 무의식이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집단무의식을 통해 극심한 정신적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발견할 수도 있다.


이러한 집단무의식을 두려워하지 않고 차분한 의식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분석하기 시작하는 순간, 바로 그때부터 의식과 무의식의 진정한 균형과 통합인 자기(Self) 향한 힘찬 여정이 시작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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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이 경험한 바에 따르면, 자기에 따른 의식과 무의식의 균형과 통합은 두 가지 다른 색을 섞어 전혀 새로운 색을 만들어내는 작업과 비슷하다고 한다. 실제로 거의 조현병 직전까지 갔었던 R은, 며칠 동안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수시로 이런 신비한 경험을 했다. 그것은 마치 심리검사의 일종인 로르샤흐 검사(Rorschach test)와도 같은 것이었다. 꿈속에서는 갖가지 천연색들이 나타나 서로 섞이며 새로운 색을 만들어냈고, 동시에 여러 신기한 로르샤흐 형태의 형상들이 나타났다. 당시의 R에게는 이러한 경험이 너무나 무섭고 두려웠다고 한다. 그래서 며칠 동안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병원 TV를 통해 조현병을 극복한 사람의 사례를 보게 되었는데, 그 사람 역시 당시의 나와 비슷한 로르샤흐 형태의 이미지를 경험했다고 말했다.


이 방송을 본 당시의 R은 정말 신이 났다. 일반인들이 평생 단 한 번도 경험하기 힘든 일을 직접 겪고 있다는 뿌듯함이 밀려왔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나폴레옹의 꿈을 꾸게 되었고, 마침내 그동안 그를 지독하게 괴롭혀 왔던 다단계 피해의 트라우마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다. 아쉽게도 이후에는 더 이상 이런 신비한 꿈을 꾸지 못했다.


<그림 8-5>는 R이 병원에서 수시로 그렸던 소용돌이 나선 그림이다. 나선은 가장자리에서 원을 그리며 점점 중심을 향해 나아간다. 신기하게도 이러한 형태는 위대한 화가 반 고흐의 작품에서도 자주 발견된다. 심리학자들의 분석에 따르면 당시 고흐는 조현병과 비슷한 증상을 앓고 있었는데, 그의 이러한 증상이 오히려 위대한 작품을 탄생시키는 데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이와 비슷한 증상을 직접 경험한 R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는 무너져버린 의식과 무의식의 균형을 다시 맞추려는 본능적인 자가 치유 과정의 한 형태로 보인다(뭉크의 위대한 작품인 『절규』에도 소용돌이 형태가 등장하니 참고하기 바란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마음이 편안할 때 비교적 쉽게 의식과 무의식의 균형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 마치 저울이 자연스럽게 평형상태로 돌아가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어떤 부정적인 사건을 계기로 이 균형이 무너지면, 저울은 한쪽으로 급격히 기울어지게 된다. 바로 이 순간, 우리의 정신적 저울을 다시 평형으로 되돌리기 위해 무의식 속 깊숙이 숨겨져 있던 위대한 정신, 즉 집단무의식이 ‘짠’하고 모습을 드러낸다. 이 과정에서 R과 고흐가 경험했던 것과 같은 신비로운 체험이 나타날 수도 있다. 이것이 바로 융이 말한 개성화의 과정, 즉 자기 실현의 과정이다. 물론 자기의 실현은 내가 겪었던 것과 같은 극단적인 경험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인생에서 갑작스럽게 맞닥뜨리는, 어떤 커다란 사건(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을 계기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부모의 죽음이다. 주변 지인들 가운데, 부모의 죽음을 계기로 사람이 완전히 달라진 경우를 본 적이 있다. 부모가 살아 있을 때는 그 기대를 계속 저버리다가, 죽고 나서야 비로소 생전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부모가 자녀에게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결국 융이 말한 자기의 실현일지도 모른다. 물론 이러한 자기 실현이 모두 거창할 필요는 없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자녀를 훌륭하게 키우는 것 또한 충분히 가치 있는 자기 실현이라 할 수 있다.


위대한 소설가 헤르만 헤세(Hermann Karl Hesse)는 “고통은 사람을 강하게 만든다”라고 말했다. 온실 속 화초처럼 인생에서 아무런 고난이나 고통을 겪지 않은 사람들은 대체로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다가 생을 마감한다. 반면 역사적으로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인물들은 대부분 일반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고난과 고통을 경험한 사람들이다. 바로 그러한 시련이 있었기에, 그들은 융이 말한 자기의 실현에 도달할 수 있었을 것이다.

덧붙여 말하자면, 비록 자기의 완전한 실현 단계에 이르지는 못했을지라도 R은 정신병원에서의 힘든 경험 덕분에 지금처럼 그나마 정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그는 그 시절 정신병원에서의 경험을 오히려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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