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동화 Sep 27. 2024

나는 회사를 잃고 절망 대신 꿈과 자유를 얻었다

내가 벌인 일이 누군가의 눈엔 한심해 보일지라도 괜찮아. 꿈은 원래 그래

좌절할 시간 따윈 없어

백수 첫째 날, 나는 회사를 잃었다는 절망감을 느낄 새도 없이 출근하는 척 집을 나와 서울로 가는 고속버스에 올라탔다. 회사를 접기로 마음먹는 순간, 나는 그 옆에 새로운 꿈이 꿈틀대는 걸 느꼈다. 인생은 유한하고 지금도 계속 시간은 흘러가고 있다. 그 말은, 이전 실패에 좌절할 시간이 없다는 뜻이다. 나의 새로운 꿈은 서울에 있었고 나는 큰 망설임 없이 서울로 향했다.   

  

돌이켜보면 나는 딱히 취미 생활이라고 할 만한 것들을 즐겨 본 적이 없다. 남들 한 번씩은 다 해봤다는 그 흔한 수영 한 번 배워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그런 나에게 유일한 취미가 있다면 재미있는 드라마를 하루 종일 몰아서 보는 것 정도랄까. 드라마를 보면서 나도 저런 재미있는 드라마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국문과나 문창과를 나온 것도 아니고 학창 시절 억지로 쓴 독후감 몇 개와 대학교 과제로 냈던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레포트가 글쓰기 경력의 전부였던 나에게 그건 그저 지나가는 환상 같은 꿈이었다. 마치 초등학생에게 ‘꿈이 뭐예요?’라고 물으면 ‘대통령이요.’라고 대답하는 정도의 허황됨. 그런데 회사가 망하면서 찾아온 절망은 자유라는 친구를 함께 데려왔고 나는 나의 환상 같았던 꿈을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선물 받게 되었다.       


나는 막연했던 드라마 작가라는 꿈을 한번 제대로 꿔보고자 인터넷을 검색했고 서울에 드라마 작법을 가르쳐주는 학원이 많이 있다는 정보를 얻게 되었다.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이미 이전 꿈에 많은 시간을 쏟아 냈고 그 시간만큼 나의 세월도 지나갔기 때문이다. 작가라는 직업은 나이 제한이 없다지만 드라마 작가는 어느 정도 나이가 중요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 한시라도 빨리 시작해야 했다. 그리고 특히나 드라마 작가는 데뷔하는데만 기본 5년은 걸린다는 아주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보니 마음이 급해졌다. 그나마 5년 만에 데뷔하는 것도 운이 좋은 케이스란다. 그 정도의 운을 가지려면 나라를 구하는 정도 까진 아니더라도 전생에 임진왜란에 참여한 병사 1 정도는 됐어야 하지 않을까? 아무튼 드라마 작가가 되기 위해선 아주 좁은 바늘구멍을 통과해야 한다는 말이다.


꿈을 접은 용기로 다시 시작하기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라.‘ ’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긍정적인 말을 해라.‘ 흔히 자기 개발서에 많이 나오는 말들이다. 물론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바늘구멍을 통과할 자신이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주변사람들은 “왜 이렇게 부정적이야?”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긍정적으로 일이 풀린대.”라고 말한다. 나는 부정적인 게 아니라 주제파악이 빠른 거다. 100미터 22초에 뛰는 내가, 자신감과 긍정적인 마음만 가지고 육상국가대표가 될 수 있을까? 본인의 재능과 능력, 그리고 한계는 본인이 제일 잘 알 것이다. 내가 가진 재능 대비 막연한 꿈에 너무 큰 기대를 걸면 이루지 못했을 때 실망도 큰 법이다. 꿈을 이루지 못한 자신을 한심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한 우물만 파라’는 내가 싫어하는 속담 중 하나다. 물이 안 나올 걸 빨리 알아채는 것도 능력이다. 물이 안 나올걸 알면서 계속 한 우물을 파는 건 끈기와 노력이 아니라 무모함과 시간낭비이지 않을까? 그건 우물을 파는 게 아니라 자기 무덤을 파는 게 될 수도 있다. 한 우물을 팔 때는 거기서 물이 나올 거라는 적어도 51% 이상의 확신이 있어야 한다. 나는 내가 달리기에 재능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알고부터 육상부에 들어가겠다는 꿈을 바로 접었다. 미술학원까지 다녔지만 학원 안 다닌 짝꿍보다 그림을 못 그린다는 걸 알고 화가의 꿈을 접었고, 피아노 학원을 다니며 내가 음악에도 재능이 없다는 걸 알고 음악가의 꿈을 접었다. 어떤 사람들은 꿈을 너무 쉽게 포기한다고 혀를 차겠지만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열쇠를 찾아서


한 번은 우리 집 방문이 안에서 잠긴 적이 있었다. 문을 열기 위해 열쇠 꾸러미를 들고 왔는데 방에 비해서 열쇠는 왜 이렇게 많은지 열쇠만 보고 순간 우리 집이 부자인 줄 알았다. 아무튼 방 문을 열려고 하나씩 열쇠를 넣어보는데 한 번만에 열리면 얼마나 좋아. 근데 꼭 이런 경우에 앞에 넣은 열쇠는 다 안 맞고 거의 마지막에 넣은 열쇠가 맞더라. 나는 꿈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안 맞는 열쇠 가지고 ‘이게 맞을 거야’라고 자기 암시를 걸고 긍정적으로 자신감 있게 열쇠를 돌린다고 문이 열리는 게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꿈을 포기하는 걸 부끄럽게 생각하기도 하는데 절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안 맞는 열쇠를 과감하게 버릴 줄 알아야 맞는 열쇠를 찾을 확률이 올라간다. 잊지 말자. 우리의 시간은 유한하다. 어쩌다 처음 넣은 열쇠가 맞는 경우는 정말 운이 좋은 경우다. 이런 경우에는 한 우물을 파면 거기서 물도 나오고 기름도 나오고 돈도 나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그 열쇠를 찾는 과정 중에 있고 내 꿈의 열쇠를 확인하기 위해 서울의 시나리오 학원에 다니기로 결정했다.


코리빙 하우스를 아시나요


서울에 있는 학원을 다니기로 결정했으니 거기에서 살 집을 구해야 했다. 회사를 정리하기 한 달 전쯤.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부동산 사이트에 들어가 괜찮은 월세가 나온 게 있는지 검색했지만, 작년에 불어닥친 전세사기 이슈로 인해 월세로 수요가 몰리면서 월세 가격이 폭등했다. 그러던 순간, 고심하던 나에게 하나의 키워드가 떠올랐다. '코리빙하우스' 예전에 TV에서 보고 '요즘은 주거 형태가 참 다양하구나. 이런 곳도 있어?'하고 마냥 신기하게 생각했었는데 내가 지금 거기 들어가 살게 될 판이다. 사람 일은 진짜 아무도 모른다더니, 나는 그때부터 인터넷이며 유튜브며 거기에 관련된 것들은 모조리 검색해 보기 시작했다.

코리빙하우스는 1년이나 2년 단위로 계약을 하는 원룸, 오피스텔과는 달리 단기로 계약이 가능하고 보증금도 비싸지 않았다. ‘이거야.’ 나는 여러 코리빙하우스를 알아보았고 한 군데를 계약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사무실을 정리한 다음 날, 나는 곧바로 서울로 올라가 미리 알아봐 두었던 곳의 방을 보고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그리고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개강일이 비교적 가까운 시나리오 학원에 등록했다.



꿈이라는 파도는 절망을 밀어내고


회사를 접기로 마음먹으면서부터 조금씩 계획했던 일을 실행하는 데는 하루도 채 걸리지 않았다. 새로운 일을 벌이고 나니 파도처럼 밀려드는 기대감에 회사가 망했다는 절망감은 어느새 저만치 떠내려갔다.

아이러니했다. 6년 전 사업자등록증을 받아 들고 밀려드는 기대감에 들떠 있던 때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그때의 꿈은 6년 뒤 절망이 되어 돌아왔지만 또 다른 꿈이 그 절망을 밀어냈다.

“내가 벌인 일이 다른 누군가의 눈엔 한심해 보일지라도 괜찮아. 꿈이란 원래 그런 거니까. 그러니 꿈인 거겠지. “

미래의 나는 오늘을 돌아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그때 허황된 꿈에 시간을 낭비한 나를 원망할까? 아님 오늘 벌인 이 미친 짓을 그래도 잘했다고 칭찬해 줄까?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오늘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면 미래의 나는 되돌아볼 과거조차 없을 것이다. 내 꿈이 실패하건 성공하건 나는 내 인생에 또 하나의 히스토리를 새길 것이고 그 흔적이 쌓여 앞으로의 나를 만들 것이다.

미래의 일은 미래에 걱정하기로 하고 당장 백수 2일 차인 내일의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