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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화 Oct 01. 2024

나의 꿈이 있는 곳, 서울

정글 속으로


서울로 올라가는 날 아침, 나는 캐리어를 끌고 문을 나섰다. 집에다가는 서울에 가는 이유를 적당히 둘러댔다. 어차피 내가 하는 일에 딱히 관심이 없으시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나의 서울행에도 부모님은 크게 동요하지 않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마 망했다는 말은 못 하겠더라.


아무튼 캐리어에 보조주머니까지 주렁주렁 달고 떠난 서울행. 친구가 배웅을 해준다고 하여 친구와 터미널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서울행 버스에 올라탔다. 짐이 너무 무겁고 많아서 그런지 마치 피난민 같았다.



서울 고속버스터미널에 내려서부터 조금씩 내가 저지른 미친 짓이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일단 사람이 많다. 많아도 너무 많다. 나는 숙소로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탔다가 깜짝 놀랐다.


“퇴근시간도 아닌데 사람이 이렇게 많다고?”

그럼 퇴근 시간에는 어떻게 된다는 말인가.

 "아. 맞다. 서울은 그랬었지."


에 나는 서울에 살았던 적이 있다. 바글거리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어렴풋이 지난 과거가 떠올랐다. 지하철에서 이러다 숨 막혀 죽을 수도 있겠다는 공포감을 느낀 적이 여러 번 있었는데 그 기억이 떠올랐다. 꿈이고 나발이고 젠장, 숨을 못 쉬겠다. 거추장스러운 짐까지 주렁주렁 달고 있어 더욱 힘들었다. 여기는 그야말로 정글이구나. 도착하자마자 여기서 살아남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괜찮다. 몇 달만 있을 거니까.


사람에 치여 기진맥진한 나는, 숙소 들어가기 전 밥을 먹고자 동네를 여기저기 방황하다가 근처 카레 덮밥 집에 들어가 적당히 배부를 것 같은 메뉴를 시켜 허겁지겁 밀어 넣었다. 맛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겠고 그냥 배고픔에 먹었다.

그렇게 밥집을 찾으며 내가 살 동네를 찬찬히 둘러보았는데 숙소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없는 게 없을 정도로 인프라가 좋았다. 그리고 서울은 번화가도 아님에도 동네 구석구석마다 사람이 많았다. 사실 서울 집값이 왜 비쌀 수밖에 없는지는 지하철만 타봐도 알 수 있다. 이렇게 인구밀도가 높으니 비쌀 수밖에.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아야 서울에 집을 살 수 있는 것인가...


나는 바퀴가 마모되어 요란한 소리를 내는 캐리어를 질질 끌며 생각했다.    

 

사서 고생을 젊을 때 해야 하는 이유

드디어 도착한 숙소. 서울살이 하는 동안 나의 집이 될 곳이었다. 도착하자마자 캐리어는 풀지도 못하고 잠시 앉아서 쉬었다. 아침부터 설쳤더니 너무 피곤했다. 씻고 싶은데 당장 화장실에서 신을 실내화조차 없었다. 심지어 두루마리 휴지도 없었다. 정말 피난 가듯 짐을 빡빡하게 싸 오느라 두루마리 휴지 하나 넣을 공간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결국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당장 필요한 것들을 사러 근처 다이소로 향했다. 다이소에서 10만 원 이상 긁어 본 적이 있는가. 나에겐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다. 이 한 몸 건사하는데 이 정도로 살 게 많은 줄은 몰랐다. 첫날에만 다이소를 2번이나 왔다 갔다 했고 대형마트에도 들러 먹을거리를 샀다. 이날 아마 2만 보 가까이 걸었을 것이다. 이래서 독립도 젊을 때 해야 한다. 아... 삭신이 쑤신다.


tv나 유튜브 브이로그 같은데 보면 이사 첫날 짐 정리하고 음악 들으면서 맥주 한 잔 하는 낭만이 있던데. 여기 방음 오지게 구려서 음악 절대 못 틀고 나는 알콜쓰레기라 술로 낭만을 찾을 수 없다. 현실적인 이야기에 MBTI S인가 싶겠지만 난 대문자 N이다.     


짐을 풀어야 하는데... 꼴도 보기 싫다. 풀 엄두도 나지 않아서 대충 구석에 두고 미리 택배로 보내뒀던 이불을 뜯어서 깔았다. 씻고 나니 정신이 좀 들었다. 모든 게 낯선 집. 하지만 빨리 적응해야 한다.


나는 지친 몸으로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지만 역시나 익숙하지 않은 탓인지 계속 잠을 설치다가 대략 새벽 3시가 넘어서야 겨우 잠에 들었다. 그렇게 서울에서의 첫째 날이 지나가고 나는 내일 새로운 정글에서 눈을 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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