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재변호사가 말하는 소통의 딜레마
"왜 제 얘기를 이해하지 못하시나요?"
산재 사건을 맡다 보면 의뢰인에게서 이런 말을 종종 듣는다. 억울함, 답답함, 분노, 불신이 얽혀 있는 한 문장이다. 변호사로서 사건의 핵심은 분명하다. 법률적으로 다투어야 할 쟁점은 정리되어 있고, 절차는 잘 짜여 있다. 그러나 정작 어려운 일은 의뢰인과의 소통에서 시작된다.
보험사나 상대방 변호사와는 오히려 소통이 빠르다. 같은 법률 언어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로 논리를 주고받고, 때로는 타협점을 찾는다. 하지만 법률적 지식이 없는 의뢰인에게 내 말은 종종 “냉정하게 들리는 요령”일 뿐이다. 반대로 의뢰인의 말은 “논리보다는 감정의 호소”로 들리기 쉽다. 그렇게 서로의 말이 엇갈린다.
그런 점에서 나는 자주 **‘소통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 앞에 멈춰 서게 된다. 요즘 ‘소통’은 한국 사회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중요한 화두다. 소통은 영어로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이라 부르는데, 단순히 말을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해석의 틀을 가진 사람들이 의미를 공유하려는 역동적인 상호작용의 과정이다. 각 개인은 자신의 삶의 경험, 사고방식, 언어적 습관을 통해 세상을 이해한다. 그렇기에 완전한 이해는 어렵고, 오해와 충돌은 오히려 자연스럽고 불가피한 현상이다.
이와 관련해 최재천 전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불통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라고 말한 적 있다. 듣는 순간 마음이 놓이기도 했다. 그동안 ‘왜 나는 이렇게 소통이 어려운가’ 자책하던 마음에, ‘그럴 수 있다’는 공간이 열렸다.
내가 흥미롭게 참고하는 하나의 개념은 **‘Macho Bracket Model’**이다. 이 모델은 각 개인이 자신만의 인지적 해석 틀을 통해 정보를 수용하고 반응하기 때문에, 서로 다른 틀이 충돌할 수밖에 없음을 설명한다. 즉, 다툼은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해석의 틀이 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바로 상대의 관점을 이해하려는 의식적인 노력, 그리고 그 관점을 내 안에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다.
우리는 누군가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안도하고 기뻐한다. 이는 내가 가진 해석의 틀이 사회적으로 정당하다는 **감정적 보상, 즉 ‘사회적 확인(social validation)’**을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전혀 다른 관점을 마주하게 될 때 우리는 긴장하거나 방어적으로 반응하게 된다. 다름은 낯설고, 낯섦은 위협처럼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짜 소통은 그 다름 속으로 들어가는 데서 시작된다. **이해(understanding)**와 공감(empathy), 이 두 가지가 소통의 출발점이자 핵심이다. 산재 사건에서 변호사는 단지 법률을 다루는 사람이 아니다. 때로는 의뢰인의 감정을 품고, 그의 세계관을 이해하고, 함께 싸워줄 사람이다. 그러나 그 ‘함께함’은 말로만 되지 않는다. 서로 다른 해석의 세계를 존중하고 조율하려는 의지, 그것이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말이 통했다는 경험을 할 수 있다. 그러니 불통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불통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해하려는 노력이 없다면, 진짜 소통은 영원히 닿을 수 없는 섬으로 남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