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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영희 Aug 04. 2022

아버지의 글씨 지도

자부심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아버지는 헌 교과서를 사 오셔서 부를 가르치셨다.

  산수와 읽기는 나름대로 아버지 마음에 들었으나 쓰기는 생각보다 쉽지가 않았다. 나는 최선을 다해 고사리 같은 손으로 꾹꾹 눌러썼다.

  아버지는 성에 차지 않았는지 공책에 쓰인 글씨를 지우개로 다  지우셨다. 그리곤 다시 쓰라는 거였다.

  내가 안 쓴다고 하자 아버지는 나에게 회초리를 드셨다.

  나는 맞기 싫어서 글씨를 다시 썼다.

  잠시 훑어본 아버지는 다시금 말없이 글씨를 지우셨다.

  내 눈에는 눈물이 뚝뚝 떨어졌고 질이 좋지 않은 공책은 구멍이 서너 군데 나 있었다.

  그러면 아버지는 구멍 난 곳에 밥풀로 종이를 붙여 줄을 그은 다음 글씨를 잘 쓰는 것은 기본 이라며 또다시 나에게 글씨 쓰기를 강요했다.

  나는 몇 번이고 아버지 마음에 들 때까지 글씨를 써야 했다.

  내가 글씨를 잘못 쓸 때는 밤늦도록 썼다.

  날마다 계속되는 반복 속에 나는 그런 아버지가 미웠다.

그냥 미운 게 아니라 아버지가 없었으면 했다.

  초등학교 들어가고 선생님으로부터 글씨 잘 쓴다고 칭찬을 받았다. 글씨  쓰기 상까지 받고  나서야 왜 아버지가 그토록 심하게 글씨 쓰기를 시키셨는지 조금은 알 수가 있었다.

  그 후 아버지는 시름시름 앓으시다가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돌아가셨다.

  그때는 아버지의 죽음이 뭔지도 모르고. 사랑이 뭔지도 몰랐다.

  세월이 지나고 내가 커가면서 아버지의 울타리가 그렇게 큰지 뼈저리게 느꼈을 때는 이미 나는 죄인이 되어 있었다.

  아버지가 없었으면 하는 내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글씨를 잘 쓰는 바람에 학급의 미화 부장이 되어 좋은 글귀를 매주 써서 붙여놓았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글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글짓기의 싹을 틔울 수 있었다.

  글을 쓰면 쓸수록 행복감과 마음의 허기까지 없어졌고

꾸준히 노력한 결과 수필가와 시인으로 등단까지 하게 되었다.

  돌이켜 생각하면 글쓰기의 시발점은 아버지의 글씨 쓰기였다. 컴퓨터가 없던 시절 글씨를 잘 쓰다 보니 여기저기서 좋은 글을 써달라고 했고, 그 글을 쓰며 의미를 깨닫고 글짓기를 하게 되었으니, 그 혹독한 가르침이 내가 수필가가 되는 밑거름이 될 줄이야~~~

  오뚝이 정신으로 최선을 다하면 결과가 좋다는 것을

가르쳐준 아버지. 시간에 주름이 접히면서 그 글 속에 아버지의 모습이 그려질 때 내 가슴속에 아버지의 가르침은 영원히 남아 더 빛나게 될 것이다.

 


(시를 손글씨로 써서 주면 너무 좋아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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