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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묘은 Oct 12. 2021

화장 안 하고도 깨끗했던 철부지 소녀

이때가 가장 예쁠 시절이라면서요?

2021년 3월. '딩동댕동'하며 학교 밖까지 들릴 정도로 크게 울리는 학교의 종소리. 등굣길은 같은 교복을 입은 학생들로 가득 차고 저마다 각기 다른 모습의 가방을 메고 뛰어간다. 딱 봐도 지각을 한 폼새가 난다. 근데 사실 나도 그렇게 뛰어가는 학생들 중 한 명이다. "응? 아 나 오늘 또 지각인 거야?" "시끄럽고, 일단 그냥 달려" 머리를 쥐어뜯으며 같이 등교한 친구보다 조금이라도 빨리 교실에 발을 디디려 달려갔고, 그렇게 도착한 교실의 풍경은 늘 똑같았다. 한쪽에선 거울을 보며 화장을 고치고, 다른 한쪽에선 간식을 꺼내며 아침식사를 준비한다. '내가 지내는 교실의 모습은 참, 매일 봐도 적응이 안 된다'라고 생각하고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앞자리 친구와 수다를 떨고 있는데 교실 앞 문으로 담임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오늘부터 선생님이랑 상담 진행할 거니까 1번부터 한 명씩 교무실로 와."

'네? 등교 첫날부터 상담이요? 아니... 뭐 상담은 좋은데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실 거길래...'라는 말을 머릿속으로 중얼거리는데 그런 속마음을 알아챘던 건지 옆에서 친구가 알려주더라. 우리가 곧 선생님과 하게 될 상담은 무려 진.로.상.담. 이라는 것을. '진로상담' 그것은 곧 어떤 걸 의미하냐. 선생님과 단둘이 오붓하게 나의 생활기록부를 모니터 화면으로 보며 진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졸업 후 목표로 하는 것들을 내 입으로 이야기하며 잔소리를 듣는다는 것.


재밌게 말했지만 사실 진로상담은 그렇게 썩 유쾌하진 않다. 학생으로서 성인이 되기 직전의 모습을 그리는 시간이니, 보다 더 현실적인 조언들로 울적해지는 그런 시간이지. 그때의 나는 19살, 흔히 부르는 고삼이었고, 모든 이들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나이였다. (나는 미용전공이라 수능은 안 봤지만 말이다.)


상담을 시작한 지 수시간이 지났을 때였다. 23번, 나의 앞번호 친구가 나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야, 너 들어오래." 손을 세게 말아 쥐고 학생기록부를 인쇄한 종이를 챙겨 교무실로 들어갔다. 취업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을 거라 예상하고 선생님을 마주했는데, 마주한 선생님의 입에선 전혀 다른 소리가 나왔다. "너는 뭘 하면서 살고 싶어? 하고 싶은 건 있어?" 예상치 못한 질문이라 말문이 턱 막혔다. '내가 하고 싶은 게 있었나, 난 이제껏 그냥 학교에서 배운 걸로 취업할 생각만 했었는데.' 하는 말과 함께 내가 이 일을 진짜 하고 싶어서 하는 건가 하는 의문감이 생겨났다.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나의 꿈을 이야기하자니 떠오르는 게 없어 괜히 초라하게 느껴졌다. "쌤, 저 생각해보니 하고 싶은 게 없어요. 미용도 그냥 안정적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시작했는데 계속 그렇게 살다 보면 행복하지가 않을 것 같아요."


나의 대답을 듣고 곰곰이 생각하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생각하기엔 취업처를 찾고, 연습을 하는 것도 좋지만 우선적으로 네가 하고 싶은 걸 정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음, 내가 하고 싶은 게 뭘까. 이제껏 해온 건 많았지만 막상 진짜 즐거워하며 한 일이 없는 것 같았다. 미래라는 보이지 않는 길에 조금이라도 안전한 길을 걸으려 했던 것뿐이었지. 한 번도 죽을 만큼 열심히 살아본 적도, 간절했던 적도 없었다. 이제와 꿈을 찾으려 하는 건 막연한 생각이라며 날 다그쳤고, 그런 건 어릴 때나 할 수 있는 거라며 날 꾸짖었었다. 근데 그런 내게 하고 싶은 걸 찾으라니. 참, 세상 무엇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내가 해왔던 일을 곰곰이 되짚었다. '내가 뭘 좋아했었지. 아, 책. 책 읽는 걸 좋아했지. 근데 그게 어떻게 진로가 되지? 단순히 책 읽는 걸 좋아하는 내가, 나 같은 게 무슨 작가가 돼.' 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걸 본 엄마는 '쟤가 왜 저러나.' 하는 마음이셨으려나. 찌푸린 미간이 불편해 손으로 어루만지려고 하는 순간 엄마가 옆에 걸터앉아 내게 말을 거셨다.


- "딸, 무슨 고민 있어? 뭐가 그렇게 심각하길래 눈썹이 한 줄이 될 것처럼 찡그리고 있어."

"엄마, 나 오늘 진로상담을 했는데 꿈이 뭐냐는 선생님의 말에 대답을 못했어. 내가 하고 싶은 게 없어서. 좋아하는 걸 생각해보라길래 책 읽는 걸 좋아하는 내 모습을 떠올렸는데 도무지 고민이 해결되지 않아. 세상에 책 좋아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나 같은 게 작가가 될 수 있을 리 없잖아."


엄마는 내 말을 듣고 멍하니 날 바라보다 웃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게 무슨 소리야. 네가 뭐 어때서. 너 같은 게 뭔데? 네가 하고 싶은 일이면 그냥 해보면 되는 거야. 남들에게 작가 소리 듣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네가 너 스스로 작가라 칭하고 좋아하는 글을 쓰면 그게 직업이 되고 진로가 되는 거지."


- "내가 글을 쓴다고 해서 그걸 사람들이 봐줄까? 책을 내면 아무도 안 살 것 같은데."


"딸아, 엄마 말 잘 들어봐. 처음부터 성공하는 사람은 지극히 드물어. 네 말처럼 좋아하는 일이라고 해서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건 아니야.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싫어하는 일을 해서 많은 돈을 버는 것보단 좋아하는 일을 해서 적은 돈을 버는 삶이 더 행복할지도 몰라. 돈이 중요한 건 맞지. 하지만 그걸로 네 인생 전부를 판단할 수 없어. 엄마는 네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 돈을 많이 벌든, 못 벌든 네가 행복하다 느끼고 조금 더 성장했다 느끼면 그때가 언제든 돈은 널 따라오게 될 거야. 그러니 한 번 잘 생각해봐. 네가 하고 싶은 일이 어떤 건지."


그 말을 듣고 순간 정신이 멍해졌다. 난 꿈이 뭐냐는 선생님의 질문에 안정성과 돈을 생각했고,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선 안 될 거라는 섣부른 판단으로 날 옥죄이고 있었던 거였다.


엄마가 했던 말처럼 세상엔 성공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하지만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자신이 하는 일을 사랑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걷고자 하는 길을 굳건하게 이어나간다면 성공은 자연스레 따라올 것이라고, 돈이 중요하긴 하지만 그것으론 행복을 살 순 없다고.


그래서 난 결심했고, 걸었고, 그 과거의 모습을 밑거름 삼아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이 모든 건 나의 고등학교 시절 이야기이다.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꿈을 좇아가는 학생들에게 정작 꿈이 없는 현실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학생들에게 선생님들은 꿈을 꾸라 이야기한다. 그 꿈은 아마 좋은 대학교를 가는 것, 안정적인 직업을 얻는 것이겠지. 하지만 그 모든 걸 이룬다고 해서 진정 내가 행복해질까? 남들과 같은, 평범한 길을 걷는 것만이 정답은 아닐 텐데 말이다.


세상은 넓고, 할 수 있는 건 많다. 그 넓은 세상엔 정답이란 건 아마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지. 그러니 존재하지 않는 정답을 바라보는 것보단 나만의 정답을 새로이 만들어 내야 한다. 그게 설령 평탄한 아스팔트 도로 옆에 있는 구부정한 흙길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모든 이들이 편하고 안전한 길을 택할 때도 흙길을 맨발로 걸을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때론 원하지 않은 것에서 얻는 배움이 있고, 뜻하지 않았던 깨달음을 얻는 것처럼 네가 맨발로 걷고 있는 흙길은 네게 바닥에 평범히 존재하는 흙과 벌레를 사랑하는 법을 알려줄 것이다. 나만이 아는 노력을 하고, 나만이 아는 길을 걷는 것 또한 마찬가지겠지. 어떤 이가 힘들 거라고, 넌 막연한 꿈과 길 앞에 무릎 꿇게 될 것이라고 섣불리 단정 지었던 그 길은 나에게 또 다른 방향을 제시할 것이다.


그러니 막연한 꿈 앞에서 무너지지 말자. 꿈은 꾸라고 있는 거니까. 내가 꿈꿔왔던 그 길을 걸을 땐 '내가 지금 걷는 이 길이 맞는 길일까.' 하는 걱정 따윈 하지 않아도 된다. 아까 말한 것처럼 세상에 정답이란 없으니. 가끔씩 그런 물음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땐 걸음을 멈춰 숨을 크게 쉬자. 눈을 크게 감았다가 떠보고, 손바닥으로 뺨을 문지르자. 붉은색에서 짙은 청색으로 변하는 하늘을 바라보며 잠시 쉬었다 가자. 꿈에 대한 걱정과 의심을 거두고 단지 쉬었다 다시 걸어가면 된다. 지금 네가 걷고 있는 꿈의 길에 드넓은 대지와 하늘, 사람들의 환호 따위가 없더라도 오직 너만이 꿈꾸면 된다. 그럼 충분한 거다.




꿈은 네가 꾸고 싶은 대로 꿔. 충분히 이룰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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