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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 나 Oct 13. 2021

야, 우리 딱 스물아홉까지만 살자

과거의 우린 변하지 않았어.

친구랑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 항상 하는 말이 있다.

"나는 딱 스물아홉까지만 살 거야."


그에 대한 반응은 너무 짧게 사는 건 아니냐, 무슨 그런 말을 하냐 등등 참 다양하다.


사실 이런 생각을 처음부터 했던 건 아니다. 나도 다른 이들처럼 무병장수를 꿈꾸기도 했었고, 100살까지 사는 게 꿈이었던 적도 있으니까. 하지만 점점 시간은 흐르고 꿈꿔왔던 미래가 내 생각보다 더 멀리 있다는 걸 알게 되면 될수록 미래를 꿈꾸는 게 무서워졌다. 표현하자면 어두컴컴한 방 안에 홀로 서있는 기분이랄까.


어릴 때 한 애니메이션을 보다가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로 가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그때부터 괜히 나도 내 미래가 궁금했고, 후엔 어떤 이와 함께할지 아니면 평생을 이렇게 혼자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아갈지 생각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정말 어린 날의 기억일 뿐. 한없이 커버린 나에게 이젠 그런 미래에 대한 갈망과 궁금증 따윈 큰 힘이 되지 못한다.


근데 여기서 왜 많고 많은 숫자 중 꼭 스물아홉인 거지? 하는 물음표를 가질 수 있다. 그에 대한 답변으론 지금 평범한 20대를 살아가는 나로서는 앞 자릿 수가 바뀌는 나를 생각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라 대답할 수 있겠다. 현생에 치이고 치여 얼굴에 주름살이 하나둘씩 늘어가고, 어릴 적에만 꿀 수 있었던 허황된 꿈은 정말 꿈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우치는 것. 그저 많은 돈을 벌고, 안정된 삶을 사는 것이 지금의 나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걸 부정할 수 없어서다.


다들 어렸을 때만 하더라도 랬던 때가 있지 않은가? 꿈이 뭐냐는 선생님의 물음에 "저는 돈도 많이 벌고, 엄청  집에서 강아지랑 같이  거예요!" 혹은 "대통령도 되고 싶고, 가수도 하고 싶고, 여행도 많이 다니면서 행복하게 살래요!"라는 순수한 답변을 내뱉었던 . 그래, 나도 그땐 당연히 그렇게   있을  알았다. 열심히만 하면 돈도 많이   있을  같았고, 강아지를 키울  있는 마당 딸린  집은 기본이라고 생각했었으며, 많은 직업들을 나열하곤 내가 선택만 하면  이뤄낼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생각했던 이상적인 현실은   비참하게 만드는 것으로 작용했을  그중 하나도 이뤄진  없다. 성인이 되면 얻을  있을 거라 믿었던 많은 돈도,  집도, 대통령이나 가수가 되지도, 여행을 다니고 있지도, 행복도. 하나도 얻은  없단 말이다. 그래서   미래가  이상 밝아질 거라는 믿음을 버렸고,  스물아홉까지만 후회 없이 살다가겠다고  것이다.


최근에 친구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나 정말 스물다섯까지만 살고 죽을래."


순간 내가 전에 비슷한 말을 했었던 사실을 까먹고 당황했다. 아, 얘한테 무슨 일이 있나 보구나 하는 걱정이 점점 커져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숨긴 채 "왜?" 하며 친구에게 이유를 물었다.


"그냥, 내 미래가 안 보여. 아니, 받아들일 자신이 없어. 솔직히 지금도 이렇게 힘든데 나중에 좋아질 거라는 보장이 없잖아. 사람들 시선 신경 쓰는 것도 힘들고. 쉽게 말하면 잘 살 자신이 없어. 그래서 짧게 살고 싶은 거고."


그 답변은 과거의 나를 마주하게 만들었고 순간적으로 머리가 멍해졌다. 분명 나도 저런 마음이었는데 내 친구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오니 마음도 아프고, 얼마나 힘들었으면 저런 소리를 할까 하는 생각이 차올랐다.


잘 살 자신이 없다는 것. 이제껏 살아온 20년이라는 인생도 힘들었는데, 앞으로 남은 두 배, 세 배가 되는 시간 동안 되풀이하고 싶지 않다는 말. 좋게 풀어내기엔 답이 보이지 않고, 정답만을 좇으며 살기엔 막연한 현실이기에. 그 사실을 알면서도 난 친구에게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다 맞는 말이긴 해. 우린 평생 이렇게 살지도 몰라. 아니, 아마 이렇게 살겠지. 놓인 상황에 늘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남들 시선에 신경 쓰며 살 거야. 예측한 상황은 번번이 빗나가고 그렇게 세상에 물들어 내가 하고 싶은 것들, 꿈들. 그 모든 걸 놓치고 살게 될 거야. 하지만 있잖아. 나, 요즘 그런 생각을 했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보며 조금 더 살아봐도 될 것 같다는 생각. 서로에게 의지하고 기대며 살 수만 있다면 이렇게 힘든 세상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고.


혹시 그때 기억 나? 우리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죽고 싶다는 말을 습관처럼 내뱉었었잖아. 죽을 날도 정해두고, 어떻게 죽을지 방법도 정했었고. 하지만 그때로부터 2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고, 우린 이렇게 살아있어. 난 그래서 네가 더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해. 죽고 싶다는 말이 자연스레 나와도, 살고 싶은 의지가 없어도 우리의 시간은 그런 생각이 무색하리만큼 빠르게 흐를 거야. 그러니 그냥 놔버려도 돼. 발악하면서까지 잘 살려고 하지 마. 아까도 말했지만 잘 살든, 못 살든 시간은 흐르고, 그렇게 우리는 어느새 어른이 되겠지. 그때의 우린 웃으며 지금의 일을 추억으로 회상할 거야. 그러니 난 네가 조금 더 살아봤음 해. 이기적인 생각이지만 난 네가 없는 세상은 상상도 못 하거든 (웃음)"


친구를 생각하며 나오는 대로 말을 내뱉었다. 솔직한 마음을 풀어내고 나니 내 가슴속 깊이 생겨났던 응어리가 사라지는 기분도 들더라. 한편으로는 내가 스물아홉까지만 살겠다고 말했을 때, 나 스스로에게 이런 말을 해줬다면 내가 조금 더 편하게 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아마 이 세상에 이런 생각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많은 걸 알아서다. 잘 살아나갈 자신도 없고, 남들 시선도 무섭고, 보이지 않아 손 뻗을 수도 없는 미래가 두렵기도 하겠지. 예측했던 일은 늘 빗나가고, 마음처럼 되는 일도 없고. 하지만, 무섭긴 해도 인생이 재밌는 건 예측할 수 없어서가 아닐까? 미리 정답을 알고 풀어내는 시험지처럼 지루한 건 없으니까. 틀린 답을 적어내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 풀고, 틀렸을 때 오는 흔들림을 바로잡고 다시 한번 시도해보는 것. 그 후에 내 시험지에 동그라미가 쳐졌을 때 그곳에서 오는 성취감이 날 살게 하는 힘이라는 걸.


그러니 우리 조금 더 살아보자. 주위에 모든 것들이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르게 뛰어보기도 하고, 숨을 고를 수 있는 속도로 천천히 걷기도 하자. 내가 지금 하는 모든 말들이 이해가 안 되고, 내 예상보다 더 힘든 삶을 살 수도 있다.


그대가 나에게 좌절을 묻는다면 내가 해줄 수 있는 것. 숱하게 반복해왔던 무너짐은 일어서기 위한 과정이었겠거니와 좌절을 경험한다는 것 또한 잘 살고 있다는 증거이니 무너져내리는 스스로를 사랑하라 말한다. 추락한 줄 알았던 과거의 우린 언제 그랬냐는 듯 딛고 일어서 눈이 부실만큼의 찬란한 춤을 추고, 빠져나갈 수 없을 거라 믿었던 좌절의 늪은 우리에게 또 다른 땅을 만들어 줄 것이다. 원래 사람이란 건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이고, 보여야만 아는 법. 나도 모르고 있던 나만의 세상은 무너져 내린 그 순간에 새로이 만들어질 테니까.


그러니 정말 다 괜찮아. 너와 나, 우리는 지금도 잘 살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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