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우린 변하지 않았어.
친구랑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 항상 하는 말이 있다.
"나는 딱 스물아홉까지만 살 거야."
그에 대한 반응은 너무 짧게 사는 건 아니냐, 무슨 그런 말을 하냐 등등 참 다양하다.
사실 이런 생각을 처음부터 했던 건 아니다. 나도 다른 이들처럼 무병장수를 꿈꾸기도 했었고, 100살까지 사는 게 꿈이었던 적도 있으니까. 하지만 점점 시간은 흐르고 꿈꿔왔던 미래가 내 생각보다 더 멀리 있다는 걸 알게 되면 될수록 미래를 꿈꾸는 게 무서워졌다. 표현하자면 어두컴컴한 방 안에 홀로 서있는 기분이랄까.
어릴 때 한 애니메이션을 보다가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로 가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그때부터 괜히 나도 내 미래가 궁금했고, 후엔 어떤 이와 함께할지 아니면 평생을 이렇게 혼자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아갈지 생각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정말 어린 날의 기억일 뿐. 한없이 커버린 나에게 이젠 그런 미래에 대한 갈망과 궁금증 따윈 큰 힘이 되지 못한다.
근데 여기서 왜 많고 많은 숫자 중 꼭 스물아홉인 거지? 하는 물음표를 가질 수 있다. 그에 대한 답변으론 지금 평범한 20대를 살아가는 나로서는 앞 자릿 수가 바뀌는 나를 생각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라 대답할 수 있겠다. 현생에 치이고 치여 얼굴에 주름살이 하나둘씩 늘어가고, 어릴 적에만 꿀 수 있었던 허황된 꿈은 정말 꿈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우치는 것. 그저 많은 돈을 벌고, 안정된 삶을 사는 것이 지금의 나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걸 부정할 수 없어서다.
다들 어렸을 때만 하더라도 그랬던 때가 있지 않은가? 꿈이 뭐냐는 선생님의 물음에 "저는 돈도 많이 벌고, 엄청 큰 집에서 강아지랑 같이 살 거예요!" 혹은 "대통령도 되고 싶고, 가수도 하고 싶고, 여행도 많이 다니면서 행복하게 살래요!"라는 순수한 답변을 내뱉었던 때. 그래, 나도 그땐 당연히 그렇게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열심히만 하면 돈도 많이 벌 수 있을 것 같았고, 강아지를 키울 수 있는 마당 딸린 큰 집은 기본이라고 생각했었으며, 많은 직업들을 나열하곤 내가 선택만 하면 다 이뤄낼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생각했던 이상적인 현실은 날 더 비참하게 만드는 것으로 작용했을 뿐 그중 하나도 이뤄진 게 없다. 성인이 되면 얻을 수 있을 거라 믿었던 많은 돈도, 큰 집도, 대통령이나 가수가 되지도, 여행을 다니고 있지도, 행복도. 하나도 얻은 게 없단 말이다. 그래서 난 내 미래가 더 이상 밝아질 거라는 믿음을 버렸고, 딱 스물아홉까지만 후회 없이 살다가겠다고 한 것이다.
최근에 친구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나 정말 스물다섯까지만 살고 죽을래."
순간 내가 전에 비슷한 말을 했었던 사실을 까먹고 당황했다. 아, 얘한테 무슨 일이 있나 보구나 하는 걱정이 점점 커져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숨긴 채 "왜?" 하며 친구에게 이유를 물었다.
"그냥, 내 미래가 안 보여. 아니, 받아들일 자신이 없어. 솔직히 지금도 이렇게 힘든데 나중에 좋아질 거라는 보장이 없잖아. 사람들 시선 신경 쓰는 것도 힘들고. 쉽게 말하면 잘 살 자신이 없어. 그래서 짧게 살고 싶은 거고."
그 답변은 과거의 나를 마주하게 만들었고 순간적으로 머리가 멍해졌다. 분명 나도 저런 마음이었는데 내 친구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오니 마음도 아프고, 얼마나 힘들었으면 저런 소리를 할까 하는 생각이 차올랐다.
잘 살 자신이 없다는 것. 이제껏 살아온 20년이라는 인생도 힘들었는데, 앞으로 남은 두 배, 세 배가 되는 시간 동안 되풀이하고 싶지 않다는 말. 좋게 풀어내기엔 답이 보이지 않고, 정답만을 좇으며 살기엔 막연한 현실이기에. 그 사실을 알면서도 난 친구에게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다 맞는 말이긴 해. 우린 평생 이렇게 살지도 몰라. 아니, 아마 이렇게 살겠지. 놓인 상황에 늘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남들 시선에 신경 쓰며 살 거야. 예측한 상황은 번번이 빗나가고 그렇게 세상에 물들어 내가 하고 싶은 것들, 꿈들. 그 모든 걸 놓치고 살게 될 거야. 하지만 있잖아. 나, 요즘 그런 생각을 했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보며 조금 더 살아봐도 될 것 같다는 생각. 서로에게 의지하고 기대며 살 수만 있다면 이렇게 힘든 세상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고.
혹시 그때 기억 나? 우리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죽고 싶다는 말을 습관처럼 내뱉었었잖아. 죽을 날도 정해두고, 어떻게 죽을지 방법도 정했었고. 하지만 그때로부터 2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고, 우린 이렇게 살아있어. 난 그래서 네가 더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해. 죽고 싶다는 말이 자연스레 나와도, 살고 싶은 의지가 없어도 우리의 시간은 그런 생각이 무색하리만큼 빠르게 흐를 거야. 그러니 그냥 놔버려도 돼. 발악하면서까지 잘 살려고 하지 마. 아까도 말했지만 잘 살든, 못 살든 시간은 흐르고, 그렇게 우리는 어느새 어른이 되겠지. 그때의 우린 웃으며 지금의 일을 추억으로 회상할 거야. 그러니 난 네가 조금 더 살아봤음 해. 이기적인 생각이지만 난 네가 없는 세상은 상상도 못 하거든 (웃음)"
친구를 생각하며 나오는 대로 말을 내뱉었다. 솔직한 마음을 풀어내고 나니 내 가슴속 깊이 생겨났던 응어리가 사라지는 기분도 들더라. 한편으로는 내가 스물아홉까지만 살겠다고 말했을 때, 나 스스로에게 이런 말을 해줬다면 내가 조금 더 편하게 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아마 이 세상에 이런 생각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많은 걸 알아서다. 잘 살아나갈 자신도 없고, 남들 시선도 무섭고, 보이지 않아 손 뻗을 수도 없는 미래가 두렵기도 하겠지. 예측했던 일은 늘 빗나가고, 마음처럼 되는 일도 없고. 하지만, 무섭긴 해도 인생이 재밌는 건 예측할 수 없어서가 아닐까? 미리 정답을 알고 풀어내는 시험지처럼 지루한 건 없으니까. 틀린 답을 적어내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 풀고, 틀렸을 때 오는 흔들림을 바로잡고 다시 한번 시도해보는 것. 그 후에 내 시험지에 동그라미가 쳐졌을 때 그곳에서 오는 성취감이 날 살게 하는 힘이라는 걸.
그러니 우리 조금 더 살아보자. 주위에 모든 것들이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르게 뛰어보기도 하고, 숨을 고를 수 있는 속도로 천천히 걷기도 하자. 내가 지금 하는 모든 말들이 이해가 안 되고, 내 예상보다 더 힘든 삶을 살 수도 있다.
그대가 나에게 좌절을 묻는다면 내가 해줄 수 있는 것. 숱하게 반복해왔던 무너짐은 일어서기 위한 과정이었겠거니와 좌절을 경험한다는 것 또한 잘 살고 있다는 증거이니 무너져내리는 스스로를 사랑하라 말한다. 추락한 줄 알았던 과거의 우린 언제 그랬냐는 듯 딛고 일어서 눈이 부실만큼의 찬란한 춤을 추고, 빠져나갈 수 없을 거라 믿었던 좌절의 늪은 우리에게 또 다른 땅을 만들어 줄 것이다. 원래 사람이란 건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이고, 보여야만 아는 법. 나도 모르고 있던 나만의 세상은 무너져 내린 그 순간에 새로이 만들어질 테니까.
그러니 정말 다 괜찮아. 너와 나, 우리는 지금도 잘 살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