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면서도 모른 척하고 싶었던
작년과 올해만 해도 장례식을 7번 넘게 갔다. 임종, 스스로 생을 마감하신 분들, 사고로 돌아가신 분들 등등. 셀 수도 없이 많이 갔는데도 불구하고 익숙해지지 못할뿐더러, 항상 그래 왔듯 '죽음'이라는 단어 앞에 무너져 내렸다.
난 늘 '원래 사람은 언젠간 죽으니까.'라는 생각을 갖고 살았다. 만남에는 헤어짐이 있고, 삶에는 죽음이 함께한다는 생각. 하지만 그런 생각을 갖고 있음에도 일면식 없는 누군가가 죽었다는 소식들 뉴스로 보고, 소리를 들을 때마다 괜히 마음이 불편했다. 아무리 끝은 있다지만 아직 난 누군가의 끝에 '잘 가.'라는 말을 내뱉을 자신이 없다. 마지막 인사를 내뱉으면 그가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는 사실을 인정해버리는 것 같아서.
난 이 목차에서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 싶은 죽음에 관한 일들을 이야기하려 한다.
다들 한 번쯤 부모님의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있지 않은가?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난 어른이 되지만, 그 말인즉슨 누군가와의 이별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 내가 완벽하게 어른이 됐다고 느꼈을 때 즈음엔 주변에 어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없어진다는 것 말이다. 그 생각은 떨쳐내려고 아무리 노력해봐도 떨쳐낼 수 없다. 의연해질, 슬퍼하지 않을 자신이 없다.
엄마가 종종 오빠에게 이런 말을 하셨다.
"엄마가 죽고 나면 은나한테는 너만 남는 거니까. 오빠니까 더 잘 챙겨주고 지켜줘야 해."
우리 엄마는 어렸을 때부터 남매간의 우애를 중요시하셨고, 지금도 내게 엄마의 죽음을 떠올리게 하는 말을 하곤 하신다. 어렸을 땐 "엄마가 죽긴 왜 죽어." 하는 말로 웃으며 넘겼지만, 그때보다 훨씬 더 커져버린 내게 그 말은 점점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로 탈바꿈해 다가왔다.
나는 그런 엄마의 말에 크게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가끔 이런 말을 했었다 "엄마, 죽는 거에 순서 있어? 혹시 몰라, 엄마보다 내가 더 먼저 죽을지." 솔직히, 진짜 객관적으로 봐도 맞는 말 아닌가? 그 어느 누가 죽음의 순서와 방법을 예측할 수 있을까. 만약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이 있더라도 그건 그냥 예측일 뿐, 그에 대해서 담담해질 순 없을 거다.
근데 이런 글을 쓰다 보니 갑자기 오빠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그래서 난 글을 쓰다 문자로 오빠에게 "오빠, 오빠는 엄마의 죽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라며 질문을 남겼다. 바로 읽은 오빠는 내게 "그딴 소리하지마셈. 시발아. 상상도 하기 싫으니깐."이라며 답장을 하더라.(그냥 좋게 말하면 되지 꼭 욕을...) 그래, 오빠가 한 말은 정말 솔직했고 어떻게 보면 정답이었다. 주변인, 그리고 가족의 죽음은 정말 상상도 하기 싫었으니깐.
아까도 말했다시피 난 항상 삶에는 죽음이 함께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글을 쓰면서 주변인의 죽음에 대해 슬퍼하고, 두려워하는 나를 만났고, 과연 만약 내가 죽는다면 내 주변 사람들도 슬퍼하려나?라는 물음표가 내 머릿속을 헤집고 있었다. 그렇게 물음표를 가지고 살다 최근에 '유서 쓰기'라는 제목의 영상을 봤다. 나의 죽음이 다가왔다고 생각하고 유서를 써보는 건데 한 두 세명은 거의 비슷한 내용으로 유서를 채웠다. 부모님과 친구에게 고마움, 미안함을 전하고 죽음에 대한 이유를 풀어냈다. 영상을 보면서 죽음에 가까워지면 다 똑같은 생각을 하게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난 내일 죽는다.'라는 상황을 가정하고 직접 유서를 써보았다.
"누군가 이 글을 보고 있다면 전 이미 이 세상에 없겠죠. 죽음을 선택한 이유를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계실 거라는 것도 압니다. (중략) 이 유서를 쓰면서 정말 많이 울었어요. 스스로 선택한 길이지만 죽는다는 게 무섭기도 하고, 가족들과 친구들을 더 이상 마주할 수 없다는 현실이 싫었거든요. 내가 죽는 순간까지 사랑하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제 사진을 보며 울고 있을 거라 생각하니 마음이 아파옵니다. (중략) 엄마, 엄마는 내게 줄 수 있는 게 없다며 늘 슬퍼했지만 난 생각보다 많은 걸 받았어. 엄마로부터 이 세상을 선물 받았고, 내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어. 때로는 끝까지 나만을 생각해주는 엄마를 보면서 많은 걸 배우기도 했고. (중략) 내 친구들. 너희 이름은 언급하지 않겠지만 아마 너희가 이 글을 보게 된다면 본인들에게 하는 말인 걸 알거라 믿는다. 내가 늘 다음 생은 돌멩이로 태어나고 싶다 말했지만, 다시 너흴 만날 수만 있다면 나로 태어나 더 긴 삶을 살아보고 싶어. 덕분에 끝까지 웃으며 살다 간다. 내 몫까지 열심히 사랑하고 열심히 미워하며 살다가 와."
유서를 쓰다 보니 진짜 죽는 것도 아닌데 괜히 눈물이 나더라.
이렇게 나의 죽음, 타인의 죽음에 대한 생각이 점점 커져갈 무렵. 전에 친구와 나눴던 대화가 생각이 났다. 친구는 내게 굵고 짧은 인생을 살고 싶다 말했고, 나도 그에 동의했었다. 질질 끌면서 길게 사는 것보단 후회 없이 굵은 인생을 살다 짧게 가버리자고.
그 대화와 지금 하고 있는 죽음에 대한 고민이 맞물리면서 이런 문장이 내 머릿속을 채웠다.
"후회 없이 살았어도 막상 죽는 날이 다가오면 모든 게 후회로 남진 않을까?"
맞는 말이었다. 그 당시에 후회가 없었다고 해도 다신 할 수 없게 된다면 그 생각조차 후회가 될 테니까.
그래서 난 스스로 정했던 '짧고 굵은 삶'이라는 목표를 안에서 지웠다. 어떤 방식으로 살아도 남는 게 후회뿐이라면 차라리 굵고 길게 쭉 가는 게 낫지 않을까? 하면서 말이다.
그로부터 난 내 삶에 끝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살자고 다짐했다. 하고 싶은 일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시도라도 해보고, 만약 결과가 좋지 않다면 깔끔하게 인정하고 다시 시작하자고. 끝이란 게 다가올 때쯤 날 채우는 것이 후회가 아니라 '아, 나 진짜 열심히 살았다. 이 정도면 만족한다.' 하는 생각일 수 있도록.
이 글을 쓰면서 날 감싸고 있던 생각을 떨칠 수 있게 되었다. 제목처럼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는 건 당연한 거다. 하지만 죽음에 연연하고 매달리기엔 우린 아직도 살 날이 너무나도 많다.
그러니 그대도 만약 죽음에 대한 생각을 떨칠 수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으면 한다. 절대 우린 죽음에 익숙해질 수 없다. 아마 평생 동안 떠나간 사람을 그리워하고, 곧 다가올 이별에 무서워할 거다. 하지만 괜찮다. 끝이라는 건 자연스럽고, 당연할 수 있는 거니까. 그러니 그냥 그런대로 흘러가게 놔두자. 자신의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면 그것 또한 스스로의 생각에 일부일 테니.
난 당신의 시작과 끝, 만남과 헤어짐, 삶과 죽음. 그리고 그에 대한 모든 슬픔과 생각을 응원하고, 위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