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면서도 꾸는 게 꿈인데
내가 무언가를 구별할 줄 알게 됐을 때쯤 엄마가 이런 말을 하셨다.
"경험만큼 중요한 건 없어. 엄마는 네가 하고 싶은 거, 할 수 있는 거 다하면서 살았으면 해."
무엇보다 경험을 중요시했던 우리 엄마. 그걸 그대로 받아들인 나는 정말 어렸을 때부터 많은 걸 해왔다. 춤이 좋아 댄스팀에 들어가 대회도 나갔고, 노래가 좋아 밴드에 들어갔고, 갑자기 미용을 해야겠다며 미용고등학교를 진학했다. 가고 싶은 직장을 정해 취업에도 성공했고.
어떻게 보면 참 별나다 라고 할 수 있겠다. 하고 싶은 건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 남들이 안 될 것 같다고 한 일에도 무조건 시도는 해보니까. 늘 하고 싶은 게 많은 건 좋은 거라고 생각해 이것저것 일 벌이기도 참 좋아했다. 몸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여도 내가 하고 싶은 거니까. 하면서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기도 했고.
근데 요즘 들어 과거의 내 모습이 보이지가 않는다. 현실에 찌들어버린 건지, 너무 지쳐버린 건지 잘 모르겠지만 분명 내가 하고 싶은 일임에도 모든 걸 놔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돈만 있으면 꿈 따윈 없어도 좋을 것 같다는 마음도 들더라.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도 모두 돈을 위한 일이 아닐까? 하는 의문감과 함께 꿈이 밥 먹여주는 건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도 종종 하고.
처음엔 그냥 심적으로나, 체력적으로나 지칠 대로 지쳐서 이런 거라고. 조금 쉬고 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게 아니라 정말 꿈을 잃어버렸다는 걸 알게 됐다.
처음으로 들어간 직장에서 적성이 안 맞는구나를 깨달았고, 그렇게 3개월 만에 퇴사를 했다. 처음엔 내가 끈기나 노력이 부족한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냥 적성에 안 맞는 일이구나 하면서 넘겼고 지금 일하는 직장으로 이직을 하게 됐는데 이마저도 내가 좋아서 한다는 느낌보다는 정말 돈이 필요해서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꿈을 꾸는 게 행복했던 과거의 내가 너무나도 부럽고, 그리웠다. 힘들어도 행복했던 그때가.
그래서 난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으려 발악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일/집/일/집을 반복하는 게 아니라 일을 하고 나서도 집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잠을 줄여서라도 하고 싶은 그런 무언가를 찾고 싶었다.
그때 문득 생각난 게 책과 글이었다. 초등학생 때 엄마는 집 근처에 있는 만화방에 나를 자주 데리고 가셨는데, 장르를 불문하고 만화든, 소설이든, 에세이든 모든 책이 네게 주는 것과 느끼게 하는 게 있을 거라고 말씀하셨고 그 시점부터 난 책을 좋아했다. 순간 그때의 기억이 몽글몽글 떠올라 집 근처에 있는 서점에 가 책 6권을 샀고, 일주일 동안 읽으며 느꼈다. '아, 내가 정말 좋아하는 거다. 책을 읽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직접 글을 쓰는 것. 그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이고, 해야 될 일이다.' 라고 말이다. 처음엔 어떻게 시작해야 될지 몰라 인스타그램에 나의 일기를 올렸다. 우울하고도 형편없는 글이었지만 가끔씩 공감해주시는 분이 있었고, 그때마다 진심으로 행복해하며 더 많은 양의 글을 썼다. 읽어주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가끔씩 글을 읽고 감사하다고 메시지를 보내는 분들을 보며 작가의 꿈을 꿨다.
이 과정은 꿈을 잃어버렸던 과거의 나를 청산하고 새로운 꿈을 향해 달리게 된 계기라고 설명할 수 있겠다. 찾으려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좇아 달려도 찾을 수 없었던 내 꿈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었다.
꿈을 가지기 위해서 필요한 건 아마 돈이나 실질적인 무언가가 아니라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찾는 게 아닐까.
친구들이 "일 그만두고 싶다. 재미도 없고 행복하지도 않아."라는 말을 할 때마다 나는 "그럼 그만둬. 세상에 얼마나 재밌는 게 많은데. 그런 것들에 매달려서 살아가기엔 네 시간이 너무 아깝잖아."라는 대답을 한다. 사실 나도 안다. 일을 그만두는 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과,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 순 없다는 걸 말이다. 그럼에도 그렇게 대답한 이유는 싫은 일을 빨리 정리해야 내가 뭘 하고 싶어 하고 뭘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보다 더 늘어나기 때문이다.
말했듯이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 수 없다는 걸 알기에 나도 현재 퇴사를 못하고 있지만 그 상황 속에서도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믿으며 산다. 지금 이렇게 휴무를 글 쓰는 걸로 보내는 것처럼 할 수 있는 방법은 참 많다. 가끔씩 내 주변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한다. "넌 그걸 잘하니깐 할 수 있는 거잖아. 난 이게 아니면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는 걸?"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말문이 턱 막힌다. 안쓰럽고 속상해서가 아닌 정말 할 말이 없어서. 정말 솔직하게 말하자면 난 아직도 잘 모르겠다. 왜 해보지 않은 일에 포기할 마음부터 가지는 건지. 지금 하는 일도 처음에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감과 함께 했을 테고, 지금 이렇게 잘하고 있는데 왜 사람들은 다른 일을 시작하는 것엔 시도도 안 해보고 덜컥 겁을 먹어버리는 걸까.
이 글을 보고 누군가는 '알지도 못하면서.'라는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맞다, 난 아무것도 모른다. 아직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완벽한 확신도 없고, 나도 가끔씩 겁이 나니까. 그렇지만 한 번쯤은 스스로에게 솔직해져 보자. 정말 못할 거라는 걸 완벽하게 예상하는가? 그냥 단순히 한 번도 안 해본 일이기에 두려움을 느끼는 건 아닐까? 만약 완벽하게 예상한다면 더 이상 할 말은 없다. 못할 거라는 걸 확신한다면 차라리 안 하는 게 나을 테니까.
난 지금 방법을 제시해주는 것도 아니고, 할 수 있는 것을 명확하게 알려주는 것도 아니다. 그냥 단순히 현재 하고 있는 일이 행복하지 않다는 걸 아는데도 계속할 마음이 있나.라는 물음표를 남기는 것뿐이지.
자, 우리 어렸을 때로 돌아가 보자. 분명 꿈도 많았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았고, 사고 싶은 것도 많았던.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사회와 현실에도 두려워하는 것 없이 꿈꾸며 설렘에 부풀어 있었던 그때. 돈보다는 꿈을, 공부와 현실보단 하고 싶은 일을 꿈꾸었던 그때. 커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는 물음에 "전 정말 멋있는 사람이 될 거예요. 대통령 돼서 짱 먹을래요." 하며 깨끗한 웃음을 지었던 우리의 과거. 어렸을 땐 우리 모두 그랬을 거다. 가끔씩은 막연한 꿈을 꾸면서 행복했으니까.
그때와 많은 게 달라졌지 않느냐고 한다면 난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우린 달라진 게 없다. 그냥 잠깐 현실에 부딪혀 주저앉았을 뿐, 우리가 그리던 미래와, 꾸었던 꿈은 언제까지나 우리의 곁에서 기다리고 있다.
그러니 숙인 고개를 들어 자신의 모습과 이 세상을 바라봤음 한다. 꿈을 꿀 수 없다는 건 너무 비참하니까.
만약 현실의 바람을 견디고 견뎌 그 끝에 꿈을 되찾았다면
그것은 당신이 비로소 완전한 모습의 어른이 되었다는 증거일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