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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 나 Oct 21. 2021

이대로 숨이 멎었으면 하는 마음

"사실 전 이렇게 살았어요."

가끔씩 그런 날이 있었다. 이렇게 살면서 힘든 날을 마주하는 것보다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것 같다고 생각이 드는 날. 모든 불행이 나에게 모인 듯한 느낌을 받았고, 쉽게 생길 수 있다는 상처인데도 난 쉽게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 그런 날이 내 모든 걸 감쌌다. 약 3년 전 병을 앓고 약 3달 정도가 지났을 즈음 삶에 대한 미련이 점차 사라져만 가던 순간이 있었다. 약을 먹는 순간에도 '나을 수도 없는 병인데 내가 왜 이 약을 먹어야 되지?' 하는 생각과 함께 '그냥 차라리 약 안 먹고 죽는 게 낫지 않을까?'라는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몸은 점점 악화되어가고,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많이 아팠던 나, 그 속에서 피어난 우울과 죽음. 그렇게 내게 처음으로 우울증이라는 아이가 찾아왔다.


우울하고 불안했다. '점점 사라지겠지.'라고 생각했던 이 마음은 생각보다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우울증이 찾아오는 이유를 묻고 다녔을 때였나? 그중 하루는 어떤 이에게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우울증 같은 거 맘 편한 애들이나 걸리는 거야. 마음이 편해서, 하는 것도 없고 시간이 남아 도니까 우울감도 생기는 거라니까? 별 것도 아닌 일에 감정 쏟아부을 시간이 있으니까. 생각 같은 거 많이 할 수 있잖아." 


그 친구는 우울증에 걸리는 이유를 궁금해하는 나에게 흉터를 남겼다. 마음 편한 애들, 시간도 남아돌고 별 것 아닌 일에 감정을 쏟아붓고, 괜한 의미부여를 하는 애들. 물론 내가 우울증에 걸린 것 같다는 설명을 해주진 않았지만 그 말은 우울하지 않은 사람이 들어도 괜히 움찔하게 만드는 말이었다. 그리고 내가 바닥으로 주저앉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우울의 이유를 찾으러 다녔던 나. 그런 난 그날을 기점으로 모든 원인과 이유를 내 탓을 돌리며 살았다.


남에게 상처 받았다면 그건 내가 약해서고, 자존감이 떨어졌다면 내가 못나서라고.  그래서 난 '내가 상처 받는 거, 그건 다 내가 약해서니까 티라도 내지 말자'며 울음을 삼켜댔고, 그 과정에서 입술을 꽉 깨물어 피가 나기 일수였다. 그렇게 모든 일에 내 탓을 하면서 살다 보니 남 탓을 할 수 없어 내 탓을 했고, 남에게 상처를 낼 수 없으니 내 몸에 상처를 내는 걸 당연시했다. 그렇게 내 왼쪽 팔은 늘 손등부터 팔꿈치까지 상처로 가득했고, 손톱은 하도 물어뜯어 자랄 수가 없었다.  소리 내어 우는 법을 까먹은 어린아이처럼. 난 그렇게 살았다.


그렇게 약 몇 달의 시간을 보냈을까. 난 팔토시로 가려왔던 팔에 생긴 상처와 남겨진 얼룩덜룩한 흉터를 엄마에게 들켰다. 이게 무슨 일이냐며 내 팔을 하염없이 쓰다듬고, 연고를 가져와 조심스레 발라주더라. 왜 이런 걸 했냐며 묻는 엄마에게 답했다. "화나고 슬픈 일이 있는데 어떻게 풀어야 될지 모르겠더라고. 사실 처음엔 단순한 마음이었는데 이젠 나도 잘 모르겠어. 이게 습관이 됐나 봐." 그 말을 들은 엄마는 내게 상담을 받아보자며 권유하셨고, 약 반 년정도의 시간 동안 상담을 받았다. 우울증이라며 약을 먹어보자는 말도 들었고, 자살하지 않겠다는 유서도 썼었다. 이렇게 상담을 하다 보니 점차 우울증을 잊혀갔다. 친구들과 있는 시간도 행복했고, 죽고 싶은 마음보단 하고 싶은 게 생겨났고, 가끔씩은 미래에 대한 생각도 했다.


그렇게 괜찮아졌다. 아니, 괜찮아진 줄 알았다.



그 후 하고 싶은 걸 찾아 살면서 2년이란 시간이 흘렀고 달라진 사람처럼 내 꿈을 좇아 뒤돌아보지 않고 뛰었다. 좋아하는 걸 하기 위해선 무언가를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에 잠을 포기했고. 직장에서 일이 끝나면 집으로 와 글을 쓰고, 대학교 수업을 듣고, 춤을 췄다. 하루에 2시간씩 자면서 그렇게 살아왔다. 솔직히 말하자면 바쁘게 살다 보면 힘든 마음이 생각나지 않을까 싶어서 한 행동들이기도 하다. 아무런 생각도 하기 싫어서.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힘들지 않다고 생각했던 내 마음속에 작은 응어리가 쌓이는 걸 눈치챈 날이 있었다. 평소랑 다를 바 없게 집에서 앉아있는데 갑자기 숨을 쉬는 게 버겁고, 손이 떨리다 점점 굳어갔다. 나도 모르게 눈에선 눈물이 흐르고 있었고, 그 작은 방 안을 채우던 공기가 답답하고 무겁게 느껴졌다. 불안감은 날 옥죄고 바닥으로 무너뜨렸다. 모든 시간을 쪼개고 쪼개 바쁘게 살던 나, 힘든 일은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달렸던 내게 다시 한번 우울감과 지침,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걸까? 하는 의구심이 찾아와 도저히 떨칠 수가 없더라.


불안감으로 시작된 발작 증상은 점차 빈도가 늘더니 집에 있을 때만이 아닌 일을 하던 도중, 지하철을 타고 있을 때, 길을 걸을 때. 나의 모든 날을 채웠다. 일을 하다 발작이 일어났을 땐 데스크에 앉아 숨을 고르고, 밖에서 일어났을 때에는 공공화장실 같은 곳으로 들어가 이러다 숨이 멎으면 어떡하지? 하며 웅크린 모습으로 엉엉 울어댔다. 함께 일하는 직장상사인 매니저님은 그런 내게로 와 상담이나 치료를 받아보는 게 좋겠다고 하셨고, 그렇게 난 일을 하던 도중에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갔다. "무슨 일로 오셨어요?"라고 묻는 의사 선생님께  "호흡하는 방법을 까먹은 사람처럼 숨 쉬는 게 너무 버거워요. 손도 자꾸 떨리고, 가끔씩 굳어버리기도 해요. 아무도 저를 신경 쓰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만 불안감이 찾아와 이대로 죽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라고 답했다. 나의 증상들을 하나씩 되물으며 종이에 적어 내리더니 그 끝에 '공황장애'라는 진단을 내려주셨다. 그리고선 이렇게 말씀하셨다.


"공황발작이 일어난다고 해서 모두 다 공황장애는 아닙니다. 하지만 발작증상의 빈도도 잦고, 예전에 우울증이 있으셨던 걸로 봐선 공황장애가 맞는 것 같아요.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전혀 괜찮지 않았던 겁니다. 잊고 산다고 해서 그게 다 잊어지는 건 아니에요.은나씨는 조금 더 자기 자신의 상태에 대해 솔직해질 수 있어야 합니다. 괜찮다 괜찮다 하며 쌓여왔던 것들이 본인도 모르는 사이 빠져나와 여기까지 온 거예요."


다 맞는 말이었다. 힘들고 지친 내 모습을 알면서도 모른 채 해왔던 것, 괜찮다고 말하면서 억누르고 있었다는 것. 모두 다. 이게 아무리 숨기려고 해 봐도 숨길 수가 없는 것들이더라. 선생님의 말씀처럼 내 감정과 불안, 우울, 슬픔, 지침. 이 모든 것들이 나도 모르는 새 흘러나와 날 축축하게 적시고 있었다. 그리고 중간에 말씀해주셨던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조금 더 자기 자신의 상태에 대해 솔직해질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모든 이야기는 약 2달 전에 있었던 일이다. 우울증으로부터 벗어났다고 믿었던 나와 갑작스레 공황장애를 앓게 된 나. 어떻게 보면 갑작스레는 아닐 수도 있겠다. 예전부터 겹겹이 쌓여왔던 응어리일 테니까. 의사 선생님이 해주셨던 말씀으로 난 확신했다. 내가 진정 괜찮아지고 편안해질 수 있으려면 내가 내게 솔직해질 수 있어야 한다. 괜찮다는 말 한마디로 넘길 게 아닌 확실하게 알고 괜찮아져야 한다. 만약 그게 되지 않고 악순환이 반복된다면 그건 괜찮아진 게 아니다.


이 글을 쓰기 전에 8월에 책을 출간했었다. <감정을 나열하기엔>이라는 제목의 책. 내가 그간 느껴왔던 사랑, 우울 등 모든 감정을 일기 형식으로 나열한 내용의 책이다. 나의 솔직한 생각들과 그 일을 이겨낼 수 있었던 과정을 담았었다. 참, 그 원고를 쓰면서 울기도 얼마나 울었는지. 감히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과거의 기억들에 아파하며 글을 써 내려갔었다. 그리고 그 책을 본 사람들 중 많은 분들이 괜찮냐며 위로를 전해주시기도 했다. 물론 내 성장일기와 다름없는 이야기이기에 이겨냈던 과정들을 풀어냈지만, 사실 난 아직도 괜찮지가 않다. 솔직한 내 모습을 볼 때마다 창피해서 내가 쓴 책을 볼 수가 없고, 형편없는 내 모습을 보기가 두려워 거울을 볼 수가 없다. 팔에 얼룩진 자국을 볼 때마다 그간의 기억들이 떠올라 괴롭기도 하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괜찮다는 말에 숨지 않기로 했다. '맞아, 나 이렇게 살았었고, 아직도 이렇게 살아.' 하는 마음으로 솔직해질 수 있게. 제목처럼 이대로 숨이 멎었으면 하는 마음 또한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기로.


나의 모든 불안감과 우울, 공황. 그 마음들과 감정들은 아직도 내 모든 부분을 채운다. 어쩌면 평생 이렇게 살아갈지도 모르겠다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과거의 난 솔직해질 수 없었다. 솔직해진다는 게, 받아들인다는 게 무서웠으니까. 하지만 내 감정들의 나열을 피해 여백으로 회피하는 걸 멈추려 한다.


괜찮지 않으면 괜찮지 않은 그대로, 괜찮으면 괜찮은 그대로. 나의 모든 나열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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