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301호 청년 17화

좋아하는 것

by 김승수

샤워를 마무리하고 바라본 거울에는 쫄딱 젖은 생쥐 한 마리가 있었지만, 오늘따라 생쥐는 묘한 자신감이 있었다.


‘오늘 좀 똘똘해 보이는데? 면접 프리패스’

어림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괜스레 거울 속에 도민은 현실과 달리 자신감 있고 당차 보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수건으로 닦아 사라지는 물기처럼 도민의 자신감도 함께 증발한 듯 다시금 차분해지는 도민이었다. 며칠 전 입었다 집어넣었던 양복을 다시 꺼내 잠시 바라보았다. 처음 양복을 샀을 때만 하더라도 언제 또 이걸 입게 될까 했는데, 그날이 결국 찾아온 것에 뿌듯하면서도 어색할 따름이었다.


흰 셔츠에 어두운 남색 정장을 갖춰 입고선 왁스로 머리까지 만지고 나니 드디어 취준생이라는 단어에 걸맞은 형색이 갖춰졌다. 7:3 가르마에 깔끔한 20대 남성은 서울 어느 곳에 서 있어도 직장인이라고 생각할 만했다.


오랫동안 신지 않아서 쌓인 먼지를 닦아내고선 구두를 신고 밖을 나섰다. 오늘따라 유독 날씨가 화창하여 마치 도민의 새 출발을 축하해주는 듯한 기분마저 주었다. 8분 정도 걸어 도착한 지하철에서 교통카드를 찍고 개찰구를 통과했다. 삑 소리와 함께 화면에는 16,550원이 표시되었다. 대학생 시절만 하더라도 적게 나와도 한 달에 교통비로 8만 원은 나가던 도민이었기에, 달의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시점에서 2만 원도 채 나오지 않은 가격은 나름대로 충격적이었다. 도민은 ' 내가 이렇게 밖을 안 돌아다녔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잠시 과거를 회상해본 결과 머릿속에 남아있는 것은 집안 천장과 산책로 그리고 마트뿐이었기에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기로 했다.


30분 정도의 시간이 지난 후 도민은 지하철역에서 빠져나왔고, 약 10분을 더 걸어서 도민은 회사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상상 속에서 그리던 통유리로 된 고층 빌딩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높은 건물과 큰 도로 앞에 세워진 회사였다. 원래 상상은 상상일 뿐 현실과는 다르기에, 좋은게 좋은거겠거니 하고선 정문으로 들어갔다. 데스크 앞 시계는 10시 30분을 알려주고 있었다.


도민이 회사 정문에서 빠져나올 때 시계는 오후 1시를 알려주고 있었다. 도민은 처음 경험하는 면접에 기가 빨린 듯한 표정이었지만, 머릿속에서는 한가지 질문만이 맴돌고 있었다.


‘도민씨는 뭘 좋아하세요?’


자신이 생각하기에 도민은 대부분의 질문에 예상외로 성실하게 대답을 잘 해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면접 막바지에 면접관이 가볍게 던진 그 질문에는 제대로 된 답변을 하지 못했다.


‘뭘 좋아하느냐...’


여행사에 면접을 보러 온 것이기 때문에 간단하게 여행이라 답할 수 있었지만, 이는 너무 흔한 대답이라 판단하여 면접관에게 이야기할 수 없었고, 다른 무언가에 관하여 설명해야만 했다. 하지만, 면접 볼 회사를 선택한 것조차 자신의 선호도와 관련 없이 선정한 도민이었기에 도민은 어떤 행위에 대해서도 대답하지 못했다. ‘특별히 좋아하는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라고 풀 죽은 듯 대답할 뿐이었다.


회사 밖으로 나온 도민은 자신의 형편없는 대답에 답답할 따름이었다. 출발할 때만 하더라도 자신을 따스하게 감싸주었던 햇살은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하게 만드는 빛에 불과하게 느껴졌다. 오늘만큼은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아온 자신의 삶이 탐탁지 못했고, 아쉬운 마음 가득히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지하철 스크린 도어에 어렴풋이 비치는 풀 죽은 자신의 모습을 보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망설이고만 있던 면접장의 모습을 떠올랐다.


집에 돌아와서도 도민은 완벽하게 대답하지 못했던 것에 속상해하며,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계속 생각했다.


‘달리기? 그건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체중 관리를 위해 하는 운동일 뿐이지. 요리? 다른 자취생들보다 잘 만들어 먹기는 하지만 본격적으로 요리를 좋아한다고 할 만큼 다양한 요리를 만들어 먹는 것은 아니잖아. 장보기? 장보기를 좋아한다라고 말했다면 면접관이 날 하찮게 볼 거야.’


도민은 머리를 싸매며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계속해서 떠올려 보기를 반복했지만, 마땅히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다.


‘좋아하는 걸 찾아야 할 이유는 또 뭐야?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면 안되나? 좋은게 좋은거지 내가 알아야 할 이유가 없잖아.’


이제껏 고민해 본 적이 없던 고민거리를 마주한 도민은 짜증이 나서 눈을 감고 현실에 도피하기로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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