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하니 방안에 누워 천장을 구경하고 있던 오후였다. 휴대폰에서는 정적을 깨는 문자 메시지 알림 소리가 났다.
안녕하십니까, 김도민님. 하늘투어입니다.
[하늘투어] 이번 상반기 신입사원 공채 서류전형 합격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도민은 멍하니 휴대폰을 바라보다 정신을 차린 후, 다시 한번 문자 메시지를 곱씹어 읽어 보았다. '어떻게 합격했지?'라는 생각이 문뜩 지나갔지만, 사치스러운 생각임을 깨닫고 면접 날짜를 확인했다. 3일 뒤 오전 11시. 도민은 자리에서 일어나 정장을 꺼내 보았다. 어두운 남색 계열의 정장으로 졸업 기념으로 2년 전에 선물 받은 것이었다. 전역 이후 조금 살이 불었기에 사이즈가 맞을지 걱정이 되었지만, 다행히도 잠깐의 기합을 넣으니 입을 수 있었다. 이사 온 이후로 주로 트레이닝복을 입고 다녔던 도민이었기에, 격식있게 차려입은 자신의 모습이 어색하기만 했다.
다시금 옷을 벗고 다시 익숙한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고는 천장을 바라보며 누웠다. 충전 중이던 휴대폰에서 진동이 올렸고, 도민은 시선은 고정한 채 손을 쪽 뻗어 휴대폰을 들어 올렸다. 휴대폰 화면은 '여사님'이라는 단어가 표시되어 있었다.
“아들, 지낼만해?”
“예. 주변에 마트도 있고, 병원도 많아서 살만해요.”
“그래? 그럼 다행이고. 연락이 통 없어서 연락했지.”
“아, 저 3일 뒤에 면접 보러 가요.”
“응? 갑자기? 어떤 회사인데?”
“여행사 이곳저곳 서류 넣어 봤는데, 하나가 연락이 와서 면접 보러 가요.”
“취직할 곳 못 찾을 줄 알았는데, 마음에 드는 곳이 생겼나 봐?”
“뭐. 딱히 마음에 들어서 지원한 건 아니고요. 돈은 벌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치, 밥 먹으려면 돈 벌어야지. 3일 뒤라고? 좋은 소식 있으면 연락 줘”
“알겠어요. 쉬세요.”
“그래, 쉬어.”
전화를 마친 후, 도민은 부모님도 자신이 취직할 만한 곳을 찾지 못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었음에 머쓱해하며 휴대폰을 내려다 두곤, 직장인이 된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양복을 차려입고, 머리를 한껏 넘겨 출근하는 동지들과 함께 지옥철을 이겨내고선 회사 사옥에 도착한 상상 속의 도민은 직장 동료들과 인사를 한 후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켰다. 하지만, 직장인의 모습을 한 상상 속의 도민은 이 이상의 하루를 이어 나가지 못했다. 상상조차 가지 않는 삶에 도민은 당연하게도 아무런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잠시 기지개를 펴고 난 후, 도민은 자리에서 일어나 곁옷을 챙겨입고 편의점으로 향했다. 3분 거리에 있는 편의점에 도착한 도민은 편의점 점장의 미묘한 미소를 보았다. 도민은 친하게 지내서 나쁠 것이 없기에 먼저 인사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물... 사러 왔습니다.”
“어머. 안 오는지 알고 섭섭할 뻔했어요”
“마침 물이 떨어졌더라고요.”
“오늘 뭐 좋은 일 있나 봐요? 표정이 좋아 보이는데?”
“그런가요? 별건 아니고, 곧 면접이 하나 잡혀서요.”
“뭐야. 별거 아니긴! 좋은 일이잖아요.”
“붙은 것도 아니고 면접이라...”
“그래도 그게 어디야. 잠시만 있어 봐요.”
편의점 점장은 도민을 멈춰 세우더니 진열대에 놓인 빵을 하나 챙겨왔다.
“이거 하나 먹어요. 이거 신상인데, 우리 편의점 신상 킬러가 요즘 자주 사서 돌아가더라고요. 맛없으면 다시는 안 사는 사람이라 먹을만 할 거예요.”
“그분도 저랑 비슷한가 봐요.”
편의점 점장은 웃으며 답했다.
“손님은 몰만 사서 '물손님' 그 손님은 신상만 사서 '신상 킬러'.”
“물손님' 이요? 제 별명인가요?”
“그냥 여기 있으면서 손님들 별명 붙이는 게 내 소소한 취미거든요. 기분 나빴다면 미안해
요.”
“아뇨. '물손님' 귀엽고 좋네요.”
“그래? 그럼, 우리 '물손님' 이건 내가 선물로 줄 테니깐 면접 잘 봐요.”
“어우 그러시지 않으셔도 되는데.”
“아냐. 내가 주고 싶어서 그래. 하지만, 물은 3000원 입니다.”
“아, 네 계산해야지요. 빵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가끔 오면 내가 챙겨줄게요.”
“아.. 감사합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그래요. 잘가요.”
도민은 빵은 주머니에 넣고, 물은 가슴팍에 품은 채 고개로 인사를 하고선 편의점을 나셨다. 남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사람에게서 응원을 받아 기분이 묘했지만, 나쁘지만은 않은 기분이었다.
집에 돌아와 편의점 점장이 준 빵 봉지를 까 보니, 하얀 생크림이 가득 들어있고, 그 중심에는 애플 시럽이 들어간 빵이었다. 평소 단맛이 강한 디저트를 크게 즐기지 않는 도민에게는 너무 달았지만, 오늘만큼은 유난히 술술 들어갔다. 빵이 맛있어서인지, 기분이 좋아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유독 맛있게 느껴졌다. 이후에도 도민은 종종 이 빵을 먹게 되었는데, 이는 몇 달이 지난 후부터였다. 간단하게 양치와 세안을 마친 도민은 오늘도 옆방의 목적 없는 소음과 함께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