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같은 아침을 끝내고는 출근을 하는 여성이 803호에서 낮은 굽의 신발을 신으며 엘리베이터를 눌렸다. 여성의 아침은 늘 남들보다 바쁘다.
일어나서 세안 세족을 마치면, 자신의 옆에 누워서 자고 있던 아이를 깨워서 씻도록 한다. 그 사이 그녀는 전날 만들어 둔 국을 데우고, 다른 한켠에선 아이의 간식을 준비한다. 혼자였더라면 아침도 간식도 준비하지 않았겠지만, 화장실에서 양치질하는 아이를 위해서라도 그녀는 매일 분주하게 움직였다.
씻고 나온 아이가 식탁에 앉아 아침을 먹는 동안 그녀는 출근 준비를 한다. 틈틈이 아침을 먹으면서도 출근 준비를 하는 모습은 아이에게 '엄마가 사실 두 명이 아닐까?' 하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만들곤 했다. 아이가 식사를 마칠 때쯤이면, 여성의 출근 준비는 모두 마무리가 된다. 마지막으로 아이의 옷까지 갈아입히면, 비로소 803호의 전쟁이 마무리가 된다.
8층에서 엘리베이터가 멈추어 문이 열렸고, 아이와 여성이 함께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엄마, 오늘은 언제 와요?”
“음.. 내일 중요한 미팅이 있어서 오늘은 평소보다는 조금 늦을 것 같아. 엄마가 미안해. 간식 먹고 있으면 금방 올게. 알았지?”
“아니에요. 나 씩씩해서 문제없어요.”
“우리 승우가 그렇게 말해주니 엄마가 너무 고마운걸?”
여성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는 동안 엘리베이터가 3층에 멈춰 셨고, 부스스한 머리에 검정 트레이닝복을 입은 도민이 들어섰다.
“어, 아저씨 안녕하세요.”
“어, 안녕?”
도민은 부끄러운 듯 부스스한 머리를 손으로 감싸며 인사했다. 여성은 엘리베이터에 탄 도민을 보고 직감적으로 자신의 아이가 이야기한 아저씨임을 알 수 있었다.
“혹시 승우한테...”
“아. 네. 맞습니다. 사탕...”
“우리 애 예쁘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아이가 먼저 밖으로 나셨고, 두 명의 어른이 따라 나오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아, 저번에 승우 하원 시간에 문을 열어주셨다고 들었는데, 감사드려요.”
“아니에요. 그냥 저도 들어갈 때 같이 열어준 것뿐인데요.”
“그래도요. 그럼, 저희 먼저 가볼게요.”
“네, 들어가세요.”
“안녕히 가세요.”
도민이 손을 흔들자, 아이는 고개를 숙여 도민에게 인사를 하였고, 엄마의 손을 잡은 채 도민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도민은 자리에 서서 몸을 풀고선, 인도를 따라서 서서히 달리기 시작했다. 도민이 달리기를 시작한 것은 군 생활을 하게 되면서부터였다. 달리기 시작하면 처음에는 종아리가 땡기기 시작하면서, 호흡이 가빠지는데, 어느 순간부터 통증이 잘 느껴지지 않고, 호흡이 일정해지면서 오로지 자신의 호흡만이 귀에 맵돌게 된다. 이렇게 되면, 도민은 자기 스스로를 컨트롤하는 기분이 드는데, 그 순간에 느껴지는 기분이 좋아 도민은 달리기를 꾸준히 하고 있다.
처음에는 정해진 코스가 없이 무작정 달리기만 했다면 최근 들어서는 도민만의 달리기 코스를 만들어 달리고 있다. 프랜차이즈 가게들 사이로 5분가량 뛰면, 동네 주민들이 산책하는 산책로가 나온다. 최근에 산책로에도 가을이 찾아오면서 초록색 옷을 벗어던지고, 빨간색 노란색 옷으로 갈아입은 나뭇잎들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여타 다른 동네들이 그렇듯 오동나무 잎들이 땅바닥으로 떨어져 있다. 도민이 떨어진 오동나무 잎을 피하며 10분가량을 더 뛰면 산책로의 막다른 길에 다다르게 된다. 이때 다시 방향을 전환하여 출근하는 사람들과는 반대 방향으로 달려 집에 도착하면 달리기 코스가 마무리된다.
면접이 잡혀있는 하루이기에 도민은 평소보다 적은 거리를 뛰었고,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이 평소보다 일렀다. 고작해야 평소와 10분 정도 차이나는 아침이었는데, 유독 더 많은 직장인이 보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도민도 오늘을 기점으로 아침 운동을 포기하고, 직장인들로 가득 찬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는 것은 아닐까 상상하며 집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