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뜬 도민은 천장에 달린 환한 조명에 눈을 부셔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얼마나 잤는지 밖을 바라보니 해가 이미 져 있었다.
“도대체 왜 그러는데! 내가 뭘 잘못했다고 그러는 거야! 난 할 만큼 했다고!”
옆집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도민은 부스스한 상태에서 옆집에서 들려오는 소음에 짜증이 솟구쳐 올랐다.
‘저 사람들은 왜 밤만 되면 난리야.’
도민이 이사 온 이후로 3일에 한 번은 꼭 옆방에서 소리가 들려오곤 했다. 첫날밤의 흐느낌을 시작으로 어떤 날은 웃음소리가, 어떤 날은 화가 잔뜩 난 듯한 소리가, 또 하루는 술에 취한 상태에서 대화하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평소 잠귀가 어두운 도민이었기에 빨리 잠에 들면 된다는 생각으로 조용히 넘어가곤 했다.
하지만, 오늘처럼 면접에서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내지 못한 도민의 감정 상태에서는 궁금하지도 않은 옆집의 대화를 얌전히 들어주기에 역부족이었다. 결국, 도민은 화를 참지 못하고 직접 만나서 밤마다 시끄럽다고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결정을 내렸다.
똑 똑 똑
텅 빈 복도에서 노크 소리가 울려 퍼졌고, 계속해서 들려오던 여자의 자조적인 목소리가 멈추었다. 도민은 어떤 형태의 사람이 나오더라도 당황하지 않을 것을 다짐하며 맘을 다잡고 있었다. 그때, 긴 생머리에 수면 바지 차림의 20대 여성이 문을 열었다.
“누구세요?”
여성의 목소리에서는 직전까지 들리던 우울감 가득한 소리는 찾을 수 없었고, 밝고 카랑카랑한 목소리만이 3층 복도에 메아리쳤다. 도민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살짝 당황한 기색을 보였지만 이야기를 이어갔다.
“아... 안녕하세요, 옆집입니다.”
“아? 처음 뵙는 분이네요? 요전에 이사 오신 분인가?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근데 어쩐 일이세요?”
“아... 제가 여기 이사 온 지가 한 달 정도 됐는데, 그게... 밤에 조금 소란스럽더라고요. 같이 사시는 분이랑 문제가 좀 있으신 것 같은데, 그 소리가 좀 잘 들려서요. 혹시 두 분 무슨 일이 있나요?”
도민은 옆집 이웃 주민의 심경을 거슬리게 하지 않기 위해, 최대한 돌려서 자신의 의중을 내보였지만, 옆집 여자는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반응했다.
“네? 같이 사는 사람이요?”
“네. 같이 사시는 분이요. 제가 안 들으려고 했는데도, 대화 소리가 좀 들리더라고요. 아까도 할 만큼 하셨다고...”
옆집 여자는 잠시 생각하더니, 금세 상황을 파악하고 이야기했다.
“아 죄송해요. 많이 시끄러웠나요? 진짜 죄송해요! 이사 오시기 전에 살던 분은 아무 말씀이 없으셔서 들리는 줄 몰랐어요.”
사과하는 그녀의 목소리에서 그녀가 평소 밝은 성격을 가진 사람임이 드러나는 듯했다.
“엄청 시끄러운 정도는 아닌데, 아무래도 시간이 밤이다 보니깐 조금 배려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남자친구분께도 이야기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러자 옆집 여자는 도민의 말이 재밌다는 듯 깔깔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아 웃어서 죄송해요. 남자친구는 없어요.”
“네? 분명 대화하시는 것 같았는데...”
“사실 제가 배우를 준비 중이라 대본 연습을 하고 있었거든요.”
“연습이요?”
“아까 말씀하신 ‘할 만큼 했다’라는 것도 대사예요. 아마 남자친구랑 대화하는 소리로 착각하신 게 그거 때문인 것 같아서요. 근데 그게 다 들리는 줄 몰랐네요. 앞으로 조심할게요.”
“아... 배우...”
“이제 막 준비하고 있는거라 아직 배우라고 말하기도 좀 그렇긴 해요.”
옆집 여자는 쑥스러운 듯 멋쩍은 웃음을 보였다.
“그래도 제가 좋아하는 거니깐 열심히 해보려고요!”
확신에 찬 듯한 옆집 여자의 표정과 말투를 보고 도민의 잠시 당황했다.
“아! 계속 시끄럽게 하겠다는 말은 아니고요.”
“신기하네요.”
“네?”
“아뇨. 열심히 하시는 것 같아서 보기 좋다고요.”
“칭찬 감사합니다. 아무튼, 앞으로는 조심하도록 할게요. 진짜 들리는 줄 몰랐어요.”
“그렇게 해주시면 감사하죠. 연습... 열심히 하세요.”
“네! 감사합니다.”
도민은 닫힌 302호의 문 앞에서 잠시 멈취서서 자신에게 방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생각해 보았다. 한 달 넘게 들려오던 감정 기복이 심한 여성의 목소리는 이웃집 배우지망생의 연기연습 소리였고, 방금 자신이 처음 보는 배우지망생에게 시끄럽다며 한소리를 하려고 갔다가 오히려 그녀에게 압도당하고 왔음을 인지했다.
낮에만 하더라도 좋아하는 일이 있어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해 짜증이 났던 도민은 처음 만나는 사람 앞에서도 당당하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이야기하는 그녀에게서 그녀가 자신과는 다른 결을 가진 사람임을 느꼈고, 연기라는 것이 무엇이기에 그녀에게 그런 확신을 줄 수 있었는지 궁금해지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