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스타
보위는 『Blackstar』 앨범 수록곡인 Lazarus 뮤직비디오에서 스스로 관에 들어가는 퍼포먼스를 공개한 후 사망했다.
Lazarus; 예수가 살려낸 인물, 죽었다 되살아난 사나이, 역설.
천변을 따라 걸었다. 비가 조금 내렸다. 아니 비가 조금 내리고 있다. 살짝 얼어간다, 바닥이. 동지冬至가 지난 뒤였다. 유미의 걸음이 이따금 늦다. 나는 이따금 빠르다. 이따금 느려, 이따금 빠르다. 나는 걸음을 맞추려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차가운 빗방울이 입술을 치며 턱을 타고 목젖까지 내려와 맺힌 뒤 떨어졌다.
유미네옷가게에서 더 걸어가면 천변이 있었다. 구마다 공공사업으로 하천의 줄기를 찾아 막힌 물길을 터 새로운 산책로를 만드는 게 유행이었다. 유미와 나는 천변을 따라 이어진 산책로를 걸으며 맞은편에서 무심히 달려오는 자전거들을 피해 몸을 움츠렸다. 나만치 겁이 많았다, 유미는. 겁은 많은데 미래는 걱정하지 않고 여유로울 수 있다는 걸 신기해하다가 미래를 걱정하지 않아 여유로우니 오히려 겁은 많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머리 위로 아치 모양의 돌다리에는 알전구들이 듬성듬성 매달려 있었다. 크리스마스 동안 2RP의 매출을 올린 건 기애 씨 덕분이었다. 막 제대한 아들을 데려와 자기가 입을 옷 네 벌과 제대 선물로 아들에게 모직 코트 한 벌을 사 줬다. 마음 같아선 기애 씨네 중식당에 들러 탕수육, 깐풍기, 팔보채, 양장피 등 내가 아는 중식 메뉴들을 모조리 주문하고 싶었지만 다 먹어줄 만큼 아는 사람도 없고 연휴 내내 재이는 라오스에 있었다.
“언니, 저 오월이면 계약 끝나요.”
새해를 앞두고 유미는 십이월의 다음 달이 오월로 아는 듯 자연스레 말했다. 나는 아직 멀었어, 하고 무마하곤 재작년 개업했을 당시 유미네옷가게를 상상해 보았다. 매장의 크기는 나보다 작은데 토르소는 네 개나 더 많았다. 입구 옆에 하나, 양쪽 벽면에 두 개씩 마주 보게 두어 매장 초입에서 바라보면 흰 조각품들이 가장자리마다 도열한 작은 신전으로 보였다. 봄, 여름에는 꽃무늬의 레이온 원피스를 팔고 가을, 겨울에는 단색의 롱코트와 두꺼운 니트웨어를 팔았다.
“언니는 계약일이 언제였죠?”
십일월
십일월을 생각하면, 가끔 십일월에 있는 나를 생각하면 환란 같은 것이 마음을 비워버린다. 그걸 쉽게 뭉뚱그려 우울,이라 말하기도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시월과 십일월의 차이는 무엇일까. 조금 더 추운 것과 조금 덜 추운 것의 차이일까. 나는 그런 ‘11월’을 달력에서 빼버리기로 했다. 아무런 쓸모도 가치도 느낄 수 없다,고 재이는 그렇게 무심히 말하면서도 내게 빼빼로데이를 챙겼다.
내가 빼빼로를 한 입 베어 물었더니 재이는 싱긋 웃는다. 그 웃음의 의미가 무엇인지 해석하고 싶지는 않다. 사람을 관찰하는 것은 피곤한 일이고, 더욱이 사랑을 관철하는 것은 지난한 일이니까. 관계는 거품 같고, 결국 단맛 빠진 맥주처럼 변질될 뿐이니까. 그게 나와 가까운 사람이든 나와 먼 사람이든 결국 거품이 빠지지 않는 것이란 없다. 아마 십일월은 그런 달이다. 아니 내게는 그런 계절이다.
어째서 그렇게 구멍이 나 버린 걸까. 이렇게 끝없이 아래로 추락해도 되는 걸까. 십일월에 있을 때면 이상하게도 나는 끝없이 아래로 떨어져 간다. 마치 중력이 된 것 같다. 우리나라의 반대편에는 무엇이 있을까. 아마 바다라고 했다, 재이는. 나는 중력이 되어 땅을 뚫고 바다로 튀어 오른다. 그곳은 허공이 아니라 여전히 바다일 뿐이다. 여전히 차갑고 여전히 매섭고 여전히 고요할 뿐이다.
십일월에 있을 때면 나는, 내가 차갑다는 것과 매섭다는 것과 고요하다는 사실을 안다. 나는 십일월을 달력에서 빼버리기로 했다.
언제부터 이 노트에다 글을 썼을까. 국문학과에 입학하고부터. 아니 더 이전이겠지. 그렇게 연역하며 올라가다 보면 양양이 떠올랐고, 뒷산에 묻어둔 양양은 알을 깨고 나오지 못한 건지 내게로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집을 옮겨서일까. 아니면 뒷산 등산로가 바뀌어서일까. 분명한 건 양양이 내 곁을 떠난 다음 무언가가 쓰고 싶어졌다. 잘린 글의 조각은 날카로운 조각일 뿐이라서 노트를 펼칠 때마다 부채꼴로 산란하며 여기저기 생채기를 냈다. 마음이 베었는데 아픈 건 정작 몸이라 손으로 손을 씻거나 물건으로 물건을 진열하거나 아무 일은 아무 일일 뿐이라 아무 일도 없다는 사실에 예민해져 갔다. 의사는 나를 결벽증이라고 진단했다. 오늘날 내가 빈티지를 파는 사장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기겁하겠지. 시침이 몇백, 몇천 번 제자리를 찾아 되돌아오며 알게 된 건 나의 결벽증은 내 마음속에만 상주해 정작 내 몸은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이상한 표현이지만 내 머리 밖이 더럽혀진 건 견딜 수 있어도 내 머리 안이 더럽혀진 건 견딜 수가 없다. “기억을 꺼내 써 봐요.” 흰 가운을 입은 의사는 몸을 뒤로 젖힌 채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편린이라 생각하고 버려요. 머릿속을 청소한다는 기분으로.” 나는 두 손을 허벅지 사이로 말아 넣었다. 진료실이 온통 하얬다.
“언니.”
유미가 내 손목을 불쑥 잡아당겼다. 픽시 자전거 한 대가 내 왼편으로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커다란 코트 안에 숨겨져 있던 유미의 작은 체구가, 그러니까 양팔, 양다리, 머리가 순간 쭉 삐져나와 나를 구했다. 마치 닌자거북이처럼.
“예쁜데 왜 이렇게 안 팔려.”
캐시미어 원단의 감색 핸드메이드 코트를 쓰다듬었다. 주로 유미는 온라인으로 판매했다. 경력으로 보면 나보다 한참 위였다. 대학을 졸업한 뒤 일인쇼핑몰을 열었고 입소문을 타며 나름 안정적인 매출로 이어졌다. 아마, 하고 유미가 한숨을 쉬었다. 누가 커뮤니티에 악성 후기를 남기고부터 매출이 꺾였다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어느새 모두의 성토로 바뀌어 유미의 쇼핑몰을 덮쳤다. 제 불찰이에요, 하고 도메인을 바꿔 다시 쇼핑몰을 차렸는데 예전만큼 회원 수가 늘지 않았다. 그래도 살아남으려 아등바등하며 남들보다 일찍 동대문시장을 찾아 지하실에서 월급제 디자이너들이 저비용과 고효율로 창조해낸 상품들을 먼저 매입했고, 그걸 다른 쇼핑몰보다 저렴하게 팔았다고. 수익이 남지 않는 구조였다. 무엇보다 한번 망한 전력이 꼬리처럼 따라다니며 괴롭혔다. 유미는 그때 후기를 남긴 구매자를 꼭 만나보고 싶어 했다. 봉제가 엉망이라기에 환불 처리와 사과까지 했는데 여러 커뮤니티를 전전하며 악성 후기를 남겼다고. 언니, 제가 그렇게 잘못했나요, 하고 유미가 물었는데 바느질이 엉망인 걸 넘어 남루할수록 가치가 올라가는 빈티지를 판매하는 내가 위로하기엔 어울리지 않았다.
“억울해요. 근데 눈물은 안 나요.”
나는 비스듬히 고개를 숙여 괜찮은지 유미를 쳐다보았고 정말이지 눈물은 흘리지 않았다.
“언니, 주름이 왜 늘어나는지 알아요?”
별로 궁금하지 않지만 나는 모른다며 고개를 저었고 유미가 말을 이었다.
“울지 않아 그렇대요. 울면 엔돌핀이 생겨나고, 그러면 주름이 펴지고, 개운해지고, 피부도 맑아지는데. 아기들이 그래서 피부가 좋잖아요, 자주 우니까.”
튼살 자국 탓에 공용 목욕탕에 발길을 끊었다. 탈의실 평대에 모여 앉아 상주하던 동네 아줌마들은 나를 볼 때면 아무렇지 않게 새댁이라 불렀다. 악의가 아니라 더욱 기분이 나빴다. 차라리 출산이라도 해봤다면 덜 억울했을 텐데, 내 배에는 실패한 문신 자국처럼 꼬불꼬불한 주름이 일자를 그리며 흘러내렸다. 문신은 겁이라도 주지, 이거는 흉 외엔 아무런 쓸모가 없어 구구절절 떠들어야 간신히 동정 정도 받았다. 이경은 다이어트 성공이 준 훈장이라며 달랬지만 운동을 해서 빠진 체중도 아니라 아무런 위로가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선배가 침구 위에 나를 눕혀둔 채 내려다보던 눈빛을 기억한다. 튼살 수술에 대해 틈나면 검색해 보고 병원까지 찾아가 상담도 받았지만 흰 주름으로 굳어진 켈로이드 자국은 드라마틱한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며 의사가 직시시켰다. 그래도 수술을 감행했고 한결 나아졌어도 여전히 부족했다. 재이를 만날 때도 이 흉터는 내게 장애물이었다. 가까워질수록 먼저 알려야 할지 아니면 어느 날 갑자기 침대 위에서 들킨 뒤 자백해야 할지 걱정만 커졌는데 재이가 먼저 자신의 허벅지에 난 화상 자국을 보여주었다.
우리는 극장을 찾았고 반바지 차림의 재이가 발을 뗄 때마다 러시아 국토 모양의 흉터가 허벅지에 썰물처럼 드러났다. 나는 곁눈질로 훔쳐보았고 어두컴컴한 영화관에서 재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내가 한 살 때 엄마가 뜨거운 물을 엎었대.”
나는 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 재이의 손을 놓지 않고 꽉 붙잡고 있었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아 내 손에 내 살이 붙어 있는 것 같았다. 용기를 내 재이에게 튼살에 대해 고백했더니 되레 물어보았다.
“괜찮아?”
콜라와 남은 팝콘을 쓰레기통에 버린 뒤 물음표만 떼고 나는 똑같이 대답해 돌려주었다.
“언니는 잘 우나 봐요.”
유미가 짧게 싱긋 웃고는 길게 우울한 표정을 지어 감정이란 덩어리를 매달아 둔 채 번지점프를 무한 반복하는 것처럼 아찔했다. 다른 건 몰라도 슬픔이 바닥인 건 분명해서인지 이야기의 끝자락에 가서는 우울한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그렇다고 유미에게까지 내 배에 난 튼살을 공개하진 않았다. 대신 커피를 사 주겠다고 말했다. 블랙스타로 데려가면 왠지 유미의 기분이 한결 나아질 거란 확신이 들었다. 걸어가며 혹시 블랙스타를 아느냐고 물어보았고 유미는 가 본 적은 없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가는 동안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더 나눴고 그만큼 남은 일화 역시 줄어들어 블랙스타에 도착한 뒤로는 둘 다 재희가 말해주길 기다렸다.
“이름이 뭐예요?”
바를 사이에 두고 재희가 머그잔을 닦으며 물었다.
“유미요.”
“성은요.”
“양이요.”
“양유미.”
“네. 양유미.”
천변을 걸으며 유미는 전, 전유미였다고 말했다. 아빠와 이혼 후 엄마의 성을 따라 양유미가 되었다고. 나는 왠지 빨강머리 앤과 말괄량이 삐삐가 떠올랐고, 곧 우리 엄마도 떠올랐다. 양희숙. 엄마의 성을 붙여 나를 불러보았고 평행 우주 속 다른 나와 마주 선 것처럼 낯설었다. 언제 이혼한 지 물어보지 않았는데 유미가 먼저 알려주었다.
“중학생 때요.”
그리고 그땐 잘 울었다고 웃으며 말했다.
“잘 우세요?”
재희를 올려다보며 유미가 물었다. 앞뒤 맥락도 없는 말인데 재희는 아무런 당황하는 기색도 없이 잘도 대답했다.
“잘 울어요.”
그래서 어려 보이나 보다, 하고 유미가 읊조렸고 둘 사이 오가는 대화의 틈바구니에 내가 끼면 치일 것 같아 내 앞에 놓인 비엔나커피만 홀짝이며 월아트를 감상했다. 블랙스타는 ‘Blackstar’라는 표기 대신 앨범 재킷에 새겨진 별의 조각들만 간판에 새겼다. 그래서 여길 온 사람들은 블랙스타가 블랙스타라는 사실을 인지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내가 월아트를 감상하는 동안 재희와 유미는 꽤 가까워져 있었고 둘만 있는 공간처럼 이야기 안에 들어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으스러진 별 조각들이 레이저 프린트된 냅킨 위에 하나의 별 ‘★’로 그려놓고선 나는 카페를 나왔다.
비엔티안은 여기보다 두 시간이 느렸다. 라오스에 투숙 중인 재이에게 연락할 때면 마치 두 시간 전으로 되돌아간 기분에 휩싸여 내가 두 시간 전에 뭘 했었는지 상기해 보곤 했다. 밥 먹었어? 하고 메시지를 보내면 두 시간 전에 산책하던 내가 떠올랐다. 신입이던 시절 재이는 레이오버 스케줄이 나오면 며칠 전부터 끙끙 앓았다. 아무래도 항공승무원은 여성 비율이 높고, 그게 타지로 떠나 투숙할 때마다 재이를 난처하게 했다. 재이가 입사한 항공사는 사무장 승무원과 첫째 승무원에게만 각방을 줬다. 하지만 남자 승무원이 일정에 끼면 부득이하게 첫째 승무원은 여자 후배와 방을 함께 써야 했다. “또 남승이야?” 갤리의 커튼이 닫히자 선배 승무원이 막내였던 재이가 들으라고 중얼거렸다. 동남아로 비행을 떠날 때면 불합리한 업무 지적을 받거나 남자란 이유로 라바토리―화장실― 청소를 전담시키기도 했다.
“남자인 게 잘못은 아니잖아.”
쇼업―출근― 때마다 재이는 이러한 부조리를 인사말처럼 했다. 어느덧 사무장이 된 재이는 더는 이런 불만을 내게 토로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과 무관하게 해외에 체류하는 재이를 상상할 때면 나의 결점들이 생활 속에서 드러나 도드라졌다. 나의 시차는 하나로 움직이는데 재이의 시차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나뉘어 움직였다. 매장에 있는 모든 빈티지도 제각각 시차를 가졌다. 1998년도에 만들어진 옷도 2004년도에 만들어진 옷도 2008년도에 만들어진 옷도 있고 그 옷들은 시간의 개념을 상실한 채로 행어에 일렬로 진열되었다. 행어에 진열된 옷들을 손님들이 하나씩 밀쳐낼 때마다 짧게는 일 년에서 길게는 수십 년의 시간이 시간의 시차가 되어 건너뛰었다. 짝에는 가끔 어느 나라인지 알 수 없는, 그러나 무척 오래된 게 분명한 군복들이 딸려왔다. 도대체 이 군복이 어떻게 여기 짝에 압착돼 우리 매장까지 오게 된 건지 신기했다. 전쟁에 참전했던 군인의 군복이었을까. 군복 가슴팍에는 군인의 이름이 자수로 새겨져 있어 그의 행적에 대해 상상하다 보면 반나절은 흘러갔다. 그리고 옷은 주인과 닮아 있어 직업을 유추해 보곤 했다. 재킷의 소매가 닳았다면 자판을 만지는 은행원이었을 거라 상상했고 바지의 무릎이 닳았다면 백화점 구두 판매원, 팔꿈치가 닳았다면 독실한 신자일지 모른다고. 재이가 시침을 앞으로 감았다 뒤로 풀었다 하는 일이라면 여기는 수백 개의 시계가 모두 건전지가 닳아 멈춘 채로 모여 있는 것 같았다. 앞으로 감을 수도 뒤로 풀 수도 없는 상태.
그사이 블랙스타를 나온 유미가 우리 매장에 들러 가장 깨끗해 보이는 캐시미어 머플러를 하나 사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