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필
매장을 나와 찬바람을 맞으며 한 번 들른 적 없던 카페로 선배를 데려갔다. 흰 벽과 은빛 알루미늄 집기들, 투명 아크릴 테이블과 펜더 사의 앰프에서 뿜어져 나오는 각진 시티팝만이 공간을 메우는 한산한 카페였다. 자연스레 나는 햇볕이 쌓인 구석으로 가 자리를 잡았고 선배가 먼저 의자를 빼서 앉자 세련된 스킨 냄새가 원두 향과 섞여 내게로 왔다. 나는 숨을 조금 참은 뒤 이젠 빈티지를 입지 않나요? 하고 운을 떼려다가 예전과는 달라진 거 같다는 모호한 인사말로 대신했다. 마치 어제도 만난 사이처럼 선배는 어색함 없이 웃곤 느슨하게 풀린 자신의 타이를 고쳐 맸다. 재이가 라오스에 머물 동안 선배와 두어 번을 만났고 첫 만남에는 별로 알아낸 게 없었다. 오히려 조바심에 내가 먼저 어떻게 지냈는지 신나게 떠들어댔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고, 우리 둘 다 서로를 끔찍이 좋아하는 나머지 머지않아 결혼할 예정이라는 진실과 이제는 빈티지에 거부감이 사라져 이렇게 가게까지 차리게 되었다는 거짓. 무엇보다 내가 가게를 열게 된 추동의 심연에 선배의 형상이 어렴풋이 남아있다는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아 모든 걸 과장되게 열거했다. 선배는 아무런 내색 없이 평생 빈티지란 것엔 관심을 둬본 적 없는 사람처럼 말쑥한 정장 차림새로 다리를 꼬고 짙게 탄 밤색의 더비구두를 테이블 아래에서 까딱였다.
“사람이 왜 달리는지 알아?”
이경과 마라톤대회에 출전한 적이 있다. 한강을 따라 20km를 완주해야 하는 하프마라톤이었다. 올림픽대로 쪽에서 줄지은 차량의 열기가 미지근한 바람이 되어 한강 고수분지로 불어왔다. 인파에 떠밀린 채 앞으로 나아갔고 나는 완주까지 네 시간도 더 걸렸다. 이렇다 할 운동도, 뛰어본 기억도 없었다. 엄마의 몸에서 나올 때부터 나는 혈압과 맥박이 모두 불안정했고 입술과 손끝에는 청색증이 나타났으며 숨이 차 모유도 제대로 삼키지 못했다. 태어나자마자 수술을 치렀고 인큐베이터에서 자라났다. 의사는 판막 질환이라 가쁜 운동은 삼가라며 주의를 줬다. 어렸던 내가 의사의 처방을 들어본 기억은 없다. 온통 하얗던 진료실 안에서 무겁게 앉은 엄마가 대신 들었을 뿐이다. 체육 시간이면 나는 운동장 스탠드에 구부정하게 앉아 그림자놀이를 하거나 옷가지가 여기저기 내던져진 빈 교실에 홀로 앉아 폴더폰으로 64화음의 최신 벨소리를 켜 두고 창밖에서 흙먼지를 일으키며 공놀이를 하던 남자아이들과 슛이 나올 때마다 꺄르르― 환호하던 여자아이들을 구경하곤 했다. 여기까진 여느 멜로에나 등장할 법한 병약한 여자주인공의 서정적이고 처량한 모습과 사연이지만 내게는 그 너머가 없었다. 누가 내 심장을 요동치게 할 만큼 사랑에 빠져 다시 판막이 고장 나고 그래서 첫사랑과 결국 이별해야 하는, 그런 절절한 사랑. 나는 단적으로 뚱뚱했다. 뚱뚱한데 공부까지 못해서 반에서 내가 주목받을 일은 없었다. 내 기억은 매일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술 냄새를 풍기며 돌아온 아빠와 나의 교우 관계를 묻기보단 내 심장이 덮인 가슴에다 차가운 손을 얹던 엄마의 지치고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이 전부였다. 육 개월마다 정기 내원하던 나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로 올라가면서 점점 내원 주기가 뜸해졌고, 초음파기기로 내 가슴속을 훑던 의사는 이젠 숨찬 운동도 해 보자며 용기를 북돋웠다. 일 분을 뛰곤 십 분이나 가쁜 숨을 내쉬며 걸을 때마다 이경은 내 옆에 가만히 붙어 따라 움직였다. 우리는 한강 고수분지에서 정말 무의미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신을 믿지 않아.”
“신을 믿는 사람도 있어?”
“얼마나 많은데.”
“그렇구나.”
“왜?”
“신을 믿는 사람을 믿는다고 생각해서.”
“이상해.”
잠시간 가만히 멈춰 섰다. 하늘에 뜬 구름을 밀치며 마라톤 복장을 한 중년의 남자들이 우리를 추월해 빠르게 지나쳐갔다. 미지근한 바람이 머리칼 위로 간질간질 소용돌이쳤다.
“프랑켄슈타인이 괴물이 아닌 거 알아?”
“괴물이라고 생각한 적 없어.”
“아니, 바보야. 괴물이 아니라 박사 이름이래.”
이경이 다시 잠시간 멈춰 섰다.
“그러니까, 괴물이라고 생각한 적 없어.”
나는 이경을 쳐다보다가 다시 뛰었고, 이경이 야, 하며 나를 뒤따랐다. 이상했다. 모든 게 바뀌었는데 정연 선배의 눈매만큼은 여전해 보였다. 나는 그 속에서 이경을 보았고 달렸고 멈췄고 다시 한번 선배가 사람이 왜 달리는지 알아, 하고 내게 건넨 물음이 현실이 되어 다가왔다. 선배의 목소리는 여전히 수면 한 겹 아래 잠긴 듯이 흐릿했고 그게 내 기분을 오래전 대학 시절로 되돌아가게 한 걸까. 아마 10년 뒤, 20년 뒤 길을 걷다가 우연히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되어도, 어쩌면 임종을 앞둔 병든 선배가 철제침대에 누운 채로 거친 숨소리와 함께 뱉어낼 음성이 오늘과 같을 거란 상상에서, 결코 변하지 않을 무형의 형체가 왠지 나를 격하게 끌고 갔다.
“살 빼려고요?”
각진 시티팝만이 우리 사이를 무한정 움직였다. 선배는 정답을 알려주는 대신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몰라보게 살이 빠졌다며 딴소리를 했다. 그동안 고작 이 킬로그램만 빠졌는데 무슨, 몰라보게 늙었겠지, 하고 속으로 괜히 빈정거려 보았다. 왜일까. 느슨한 드레스 셔츠와 잘 말린 라펠과 브이 존 속 보조개가 잡힌 실크 타이, 윤기가 배인 낙낙한 슈트를 입고서 다리를 꼰 채 여유롭게 나와 마주 앉아서일까. 느긋한 선배와 달리 나는 여전히 초조해서 선배의 물음에 하나하나 의미를 담아 반응했다. 왜일까. 팔 년이란 시간으론 부족한 걸까. 선배는 알아볼 만큼 늙었고, 아니 늙었다는 표현보단 성숙해져 어른의 모양새를 갖추고 있었다. 다만 화법만큼은 여전했다. 질문을 건넨 뒤 정답을 요구하고 오답이 나와도 정답 따윈 절대 알려주지 않는. 문득 깨닫게 된 사실은 애당초 정답이란 게 없다는 것이다. 정답이 없으니 질문만 존재하고, 그래서 그 질문이란 건 늘 힘이 없고 쉽사리 바스러져 시간을 흐르고 나면 모든 게 감쪽같이 기억 속에서 잊혀 똑같은 물음으로 되돌아오더라도 전혀 알아채지 못하게 만드는 이상한 뫼비우스의 띠. 나는 예전으로 되돌아가 선배에게 배운 대로 따라 질문해 보았다.
“선배, 사람 믿어요?”
정연 선배는 숨을 고르다가 입을 열었고, 이내 눈망울 안에서 아기 사슴이 불쑥 나타나 내 시선을 밟고 연기처럼 식어버렸다. 모든 게 늙고 변했지만 선배의 화법은 정말이지 여전했다.
“반만 믿지. 나머지 반은 내가 나를 믿어야 하니까.”
저도 반만 믿을게요, 하고 되뇌며 커피를 한 모금 삼켰다. 밍밍했다.
“그만 일어나야겠다, 약속이 있어.”
선배가 셔츠 소매를 당겨 감춰져 있던 손목시계를 들춰 응시하며 자리에서 박차 일어났다. 빈티지 롤렉스가 내 시선에 걸렸다. 빛이 내리쬐는 캠퍼스 잔디밭에 누운 선배가 빈 손목을 하늘 위로 뻗어 올려다보던 시절이 있었다. 언젠가 빈티지 롤렉스를 찰 거야, 하고 선배는 둥근 태양 아래 그림자를 만들어 산란하는 빛들을 손목에다 돌려 감아 보았다. 선배의 솟은 손목뼈를 타고 내려온 노란빛이 내 인중에까지 흘러 닿았다. 쾌적한데 몽롱한 기운. 선배는 빈티지 롤렉스의 유리판은 크리스탈이 아닌 운모로 되어 있고 방사능 성분이 검출돼 시중판매가 영원히 중단되었다며 열거했다. 그럼 위험한 거 아닌가요, 하고 잔디밭에 누운 선배를 향해 짐짓 심각한 얼굴로 물었었다. 선배는 짧게 웃곤 그래서 가치가 생긴 거라고, 가치라는 건 아무나 가지지 못할 때 생겨난다는 진리를 거기서 알려주었다. 손목 위에 방사능이라니. 선배의 말만 따져보면 가치란 게 내게도 일정량 있어야 옳았다. 비밀리에 선배와 사귀고 있으니. 들키면 우리 둘 다 죽으니. 아니, 나만 죽을 테니 어쩌면 방사능보다 위험할지 모른다. 동시에 이런 의문도 생겼다. 아무도 모르는데 가치라고 우길 수 있을까. 아무도 모르는데…… 정말로 아무도 모르는데……. 선배를 바라다봤다. 잔디밭에 누운 선배가 죽은 듯 두 눈을 감고 있었다.
나는 구부정하게 절반만 일어난 채 완연히 일어선 선배와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선배가 떠난 빈 의자를 내려다봤다. 유리창을 투과한 빛들이 등받이 뒤로 모여 산란했고 나는 과거에 휘말린 듯 그 믿음과 가치에 대해 한참 되뇌어 보았다. 천장과 벽면이 온통 거울 시트로 도배된 미러룸 모텔 침구에 누우면 선배는 잠긴 목소리로 믿음과 가치에 대해 자주 읊조렸다. 거울 시트 속 천장에 비친 우리 둘의 나신은 성을 잃은 채 발가벗은 카인과 아벨로 보였다. 한 배에서 나온 사이일까. 아무리 유추해 봐도 우리 둘의 관계가 또렷이 이어지지 않았다. 대신 선배는 카인과 아벨을 낳은 탐스러운 배를 처음 본 듯이 튼살로 패인 내 배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혹시 실수한 적 있니?”
미처 말뜻을 모두 이해 못 한 나는 늘 그래왔듯이 네, 하고 입을 열었다가 이내 내 뱃살에 난 자국을 뜻한다는 걸 알아차려 서둘러 손사래를 쳤다.
“아니, 살이 빠져서 남은 건데, 진짜 이상하죠?”
두 차례 수술을 받았고 말끔히 지워지진 않았다. 간호사는 흉터가 아니라 자국이라고 표현했다. 살아있어 남은 자국이라고. 그 말은 아무런 위로가 되지 않았고 결국 병원이 해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이니 항의할 마음은 추호도 품지 말라는 경고로 여겨졌다. 그러니까 우리의 피부는 지구의 지각과 유사해서 끝없이 이동하고 부딪히고 팽창하고 수축하여 지각 아래 맨틀과 같이 표피 아래 진피에 자리한 콜라겐이 꿀타래처럼 아주 가늘어져서 생겨난 게 튼살 자국이라고. 어쨌든 자국이 남은 건 실재이고 달라질 게 하나 없다는 설명이었다. 그러나 하나 확실히 알게 된 건 체중 변화보다 호르몬 변화 탓에 튼살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아무런 노력 없이 살이 빠진 것도 호르몬 영향이고, 아무런 잘못 없이 자국이 남은 것도 호르몬 영향이라는 소리. 그 소리는 언제나 나를 위축시켰다. 선배가 내 젖가슴을 꽉 움켜쥐면 파도가 밀려오듯 윗배로 큰 물결이 일어 여기저기 삼각주를 그리며 짙게 퇴적되었고 배꼽까지 쓸려 내려온 물줄기는 곡선으로 꺾여 선명한 잔물결로 피어나 더, 더 깊은 아래를 향해 무한히 떨어져 고였다. 할로겐 조명을 쐬면 유독 물결이 거세게 찰랑거렸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할로겐 전등을 끄는 것인데, 선배는 환하게 밝힌 채로 내 배꼽 주위로 흘러내리는 선명한 자국들이 희미해질 때까지 훑어봤다. 그러면 나는 두 팔을 펼쳐 베갯잇 끝자락을 꾹 움켜쥐곤 눈을 질끈 감았다. 매번 나를 눕힌 선배는 내 알몸을 훑어본 뒤 내 배꼽을 따라 난 물결들과 함께 격하게 흔들리다가 나의 얕은 가슴께로 엎어졌다.
“농담이야.”
태풍이 지나간 자리처럼 잠잠해진 물결 위로 선배는 내 두 허벅지 사이로 쪼그려 앉아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닦아내곤 이내 보기 싫다는 듯 내 배에 난 자국들을 이불로 덮어 가렸다. 나는 마음껏 당황도, 창피도, 수치도 느낄 새 없이 선배가 내 안에 엎질러놓은 물로 인해 실, 수, 한, 적, 있, 니, ?, 라는 글자와 함께 아랫배로 흘러내려 흥건한 것들을 황급히 티슈로 닦아냈다.
“사람을 믿어?”
섹스가 끝나면 선배는 늘 침구 끄트머리로 데굴데굴 굴러가 협탁에 놓아둔 말보르 담배를 집어 차가운 입술로 베어 물곤 곧 휘발될 것들을 말했다.
“선배는 믿어요.”
“반만 믿어.”
선배는 오락가락했다. 나를 눕히기 전까진 다 믿으랬다가 관계가 마무리되면 늘어난 콘돔처럼 늘 힘없고 느슨해졌다. 전과 후의 온도 차가 극명해서 섹스가 끝나는 순간을 미루고만 싶었다. 그러면 나는 짐짓 뒤로 물러서는 대신 선배의 두꺼운 몸체를 끌어안곤 모든 걸 지연시켰다. 선배와 내가 맞댄 가슴, 윗배, 아랫배, 허벅지, 무릎, 발등 그리고 어깨와 입술 틈새로 무엇이 떠다닌 걸까. 사랑, 하고 뱉으면 수치가 나타났고 수치, 하고 삼키면 사랑이 상쇄되어 왠지 모든 게 쪼그라드는 심정이었다. 그러면 선배를 더욱 굳게 믿고 싶어졌고 믿으려고 들면 언제나 우리의 섹스는 파국을 맞이했다. 섹스만 끝났을 뿐인데 우리의 관계조차 끝이 난 듯 선배의 마음속에서 나는 온전히 밀려나 있고, 때때론 마음 밖으로까지 밀려난 기분이 역력해 나 혼자 우주 미아로 남아 종말을 맞이한 푸른 지구를 목도하는 유일한 증인이 되곤 했다.
믿으라고 안 하잖아.
그러길 바라지도 않고.
그냥 후자란 말이야.
어떤.
감정이 들어간 말이 아니라.
지금까지 볼 때.
그렇다는 의미로 말한 거야.
그게 지나치면 사람을 힘들게 만들거든.
물론 상대방도.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겠지만 믿음이란 게 그래.
그게 심해지면.
종교와 같아.
사귀는 사이에서도.
믿음이 일방적으로 흐르면.
때로는 곤란해.
어둑한 모텔 안에 우리 둘만 있을 때면 선배의 날카로운 문장들이 토막 난 채로 내 머릿속에 들어와 충돌하며 부유했다. 때로는 뒷산에 묻어둔 시처럼 여겨졌다. 이 말의 조각들은 전위적인 시 같아 연과 행을 옮겨 놓아도 해석에 달리 문제가 없었다.
재이가 라오스에서 귀국하는 날, 다시 선배가 찾아왔다. 나는 순대곱창을 좋아하는지 물었고 괜찮다는 선배의 반응에 순대곱창전문점으로 향했다. 정오라 식당은 북적였고 대화를 주고받기에 적합한 장소가 아닌 게 다행이라 여겼다. 재이 몰래 선배를 보는 게 내심 불편해 많은 증인을 둔 채 만나고 싶었고, 딴 마음은 없었다. 엉망으로 끝나버린, 여전히 매듭짓지 못한 내 과거의 기억을 풀든 묶든 이젠 정말 마무리 짓고 싶을 따름이었다. 더는 선배란 형상이 내 기억 속에 나타나 어떤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길 바랐다. 그래서 선배의 감정 따위는 하나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던 찰나에
“나 결혼했어.”
하고 들릴 듯 말 듯 흩어지다가 하나의 음성이 되어 내 귀로 전해져 왔다. 소란스러웠지만 선배는 조용한 공간에 홀로 놓인 시인처럼 조금도 자신의 목소리를 높일 의사가 없어 보였다. 답답한 내가 몸을 앞으로 뉘자 나 결혼했어, 라는 선배의 목소리가 분명해졌다. 누가,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어떻게, 왜, 하고 선배가 했던 육하원칙대로 쏘아붙여 되돌려주고 싶었는데 느닷없이 이어진 두 번째 음성이 모든 걸 잊게 했다.
“가민이라고 기억하니?”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였다. 내 몸은 여전히 선배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식당 안은 시끌시끌하고 이 안에 놓인 선배의 목소리는 뭉툭한데 내 귓속에 보청기라도 꽂은 듯 잘 세공되어 선명하게 들렸다.
“그래, 결혼했어. 우리.”
“축하해요.”
나도 모르게 입에서 튀어나왔다. 머리를 거치지 않고 나온 말. 떠올린 적도, 머릿속에서 주문을 내린 적도 없는데 분명 내 입을 거처 나온 말이라 의아했다.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말들은 이상하게 선배와 있을 때면 빈번했다. “씻지 않았어요.” “몸이 안 좋아요.” “어제부터 생리해요.” “아파요.” 모두 떠올린 적도, 머릿속에서 주문을 내린 적도 없던 말. 이경을 통해 이런 말들은 결국 나를 방어하기 위해 뇌에서 즉각적으로 내린 명령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몸에 난 멍이 다 아물고도 이경은 일 년 넘게 정신과를 찾았다. 그동안 이경의 상태를 알음 물었지만 명쾌하게 들은 적은 없었다.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어느 날 문득 내 질문엔 이미 정답이 정해져 있고, 그게 폭압적이라고 깨달은 후로 더는 묻지 않았다. 너를 위한 일이었을까. 나를 위한 일이었겠지. 침구 위에서 내가 눈을 질끈 감을 때면 뾰족한 턱 끝에 드세게 난 수염을 매만지던 선배가 이와 똑같은 질문을 했고 그러면 나는 매번 괜찮다며 웅얼댔다. 나를 위한 일이었을까. 잘 모르지만 내가 뱉어낸 방어적인 말들을 깨부수듯 선배의 날카로운 창끝이 나의 가장 깊숙한 곳을 향해 마구 찔러댔다.
선배의 고함이 나를 가두었다. 그 고함은 내가 내지를 수 있는 소리보다 월등히 강렬했고 가파르게 치솟아 있었다. 내가 그 울림에서 헤어날 수 없던 건 아마 철저하게 내 심장을 두르고 있는 두려움 때문이었고, 다가설 수 없는 영적인 경외심보다 현실적인 위험이 수증기처럼 엷어 앞으로 발을 내디디면 곧장 저 아래로 꺼질 것 같은 막연한 불안감 때문이었다. 심장은 뛰지 않았다. 죽은 심장이 깨어나길 바라는 건지 선배는 고함을 멈추지 않고 나를 가두었다. 선배와 다시는 가까워질 수 없을 만큼 멀어졌다는 건 내 심장을 통해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발걸음과 심장이 같은 고동을 일으키며 내가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한껏 피를 빨아 삼켰다.
“너만 불행하니?”
불행하다고 여겨본 적이 없다. 하지만 어느새 나는 불행한 사람, 불행해야만 하는 사람으로 되어 있었다. 여전히 심장은 뛰질 않았고 선배는 바람에 대고 시발, 시발, 시발, 을 태워 보냈고 조금 더 더러워진 채로 내 앞에 나타나 한숨을 몰아쉬었다. 작은 고양이가,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돌담 위를 빠르게 직진하다가 아래로 몸을 떨어트려 자동차 타이어 뒤편에 꼬리를 숨겼다. 선배는 걸음을 옮기며 담배를 태웠다. 하늘은 맑은데 이상하게 작은 알갱이가 안면을 때렸다. 허공으로 먼지가 쌓여갔다. 겉옷의 지퍼를 코밑까지 밀어 올렸다. 하아, 하아, 하아. 입김이 지퍼 잇새를 뚫고 뿜어져 나왔다. 그 입김을 콧구멍이 훔쳐 빨아들였다. 반복하며 걸었다. 우리는 갈림길 앞에서 갈라섰다.
나는 옷가지를 다 벗어 던져 나체로 거품을 냈다. 골반이 아려와 욕조 안에 주저앉았다. 목이 탔다. 샤워기를 입안에 가져다 댔다. 슈우우우― 목젖이 떨려왔다. 여전히, 여전히 심장은 뛰지 않았다. 임신중절수술 관리법이 적힌 용지가 물살에 녹아 배수구를 막았다. 물기를 닦고 이불속에 나신을 파묻었다. 선배의 고함이 다시금 내 귓속으로 빨려 들려왔다. 귀를 막고 이불속에 더욱 맨몸을 파묻었다. 이불 끝자락에 발가락을 비비며 태아처럼 허리를 구부렸다. 콜록거렸다. 어깨와 쇄골이 들썩였다. 폰을 켰다. 선배의 사진을 밀어 선배의 다른 사진을 보았다. 미소 짓는 선배의 얼굴을 손톱으로 긁어 보았다. 대신 액정 필름이 조금 긁혔다. 베갯잇에 관자놀이를 비비며 자궁을 찢고 삐져나오려는 태아처럼 정수리를 위로 쭉 뻗었다. 선배의 고함이, 가파르게 치솟았다. 응아, 응아, 응아― 화들짝 놀란 나는 폰을 껐다. 예정일에 대해 생각했다. 몸이 바르르 떨렸다. 이불속에 다시 맨몸을 파묻었다. 폰을 다시 켰다. 선배의 사진을 밀어 선배의 다른 사진을 보았다. 긁어 보았다. 액정 필름이 벗겨졌다. 머리통이 어지러웠다. 내 몸속에 들어온 선배 탓일까. 입술을 깨물며 통화버튼을 클릭했다. 통화음이 흐르다가 끊어졌다. 다시 폰 속 사진을 밀어 다른 사진을 보았다. 필름이 벗겨진 액정에 조금 흠이 갔다. 아랫배로 통증이 밀려왔다. 신음과 선배의 고함이 뒤엉켰다. 신음보다 강렬한 고함이 내 귀를 막았다. 우북하던 아랫배가 찰나에 푹 꺼져 가라앉았다. 차가운 금속성 냉기. 차가운 금속성 불빛. 차가운 금속성 공간. 차가운 금속성 눈빛. 차가운 금속성 집기. 차가운 금속성 생명. 차가워 가여운 내 아랫배. 심장은 뛰지 않았다. 펜듈럼 추락. 이제 됐다. 뒷산에 묻어주지 못했다. 미안. 아가. 미안.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귓속이 일순 고요해지자 온몸이 나른해졌다. 시간을 다시금 확인하고 나는 깊이 잠들기 위해 눈을 감았다.
눈언저리가 아렸다. 순대곱창은 맵지 않았는데. 아니 매웠나. 식당을 나와 선배와 잠시간 걸었다. 매일 산책하던 골목인데 오늘만큼은 생경했다. 팔 년 전 여기 골목은 어땠을까. 아니 팔 년 전에도 이곳에 저 순대곱창식당이 있었을까. 막연히 상상하다 보니 우리 둘의 관계가 여전히 팔 년 전을 벗어나지 못한 채 내 시간 안에 갇혀 있다는 사실이 가여웠다. 그동안 월드컵은 두 번 개최되었고 재이를 만났고 이사도 했다. 기억이 많이 쌓여 압축되어버린 건지 외국에서 날아온 짝처럼 별로 추억할 거리가 남지 않았다. 이상하게 좋은 기억은 쉽사리 잊혔다. 선배와 함께했던 모든 시간이 구태여 나빴다며 둘러대고 싶진 않았다. 이런 말도 좋아했다, 선배는. “모든 건 자기 선택이야.” 만나 사귀며 일어난 모든 일들, 그건 나의 선택, 선배의 선택이 아니라 우리의 선택이었겠지. 각자의 선택이 될 수 없어 우리는 공범자겠지. 미안해. 미안.
“행복해요?”
“결혼할 거라고?”
선배는 대답 대신 되레 되물었다. 언제 결혼했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너와 헤어진 직후, 하고 편집 없이 직설하거나 아직은 감추고 싶은 우리의 과거가 대화 속에 고스란히 되살아 나올까 나는 섣불리 입을 떼지 못했다. “이 동네 한적하고 좋네.” “대학가예요.” “식당들 많다.” “맛집은 별로 없어요.” “조용하다.” “밤에는 시끄러운걸요.” “도둑고양이가 많네.” “길고양이겠죠.” 하고 이내 끊어질 말들로 테트리스 조각 맞추듯 끼워 넣다 보니 어느새 가득 차 넘쳤다. 게임 오버. 골목 앞으로 노을이 내려 붉게 물들었다. 선배에게 나흘 뒤에 보자고 약속을 잡았다. 재이가 괌으로 비행을 떠나는 날에 맞춰. 그때까지 내 기억들을 모두 풀어 헤쳐보고 싶었고 선배의 대답도 듣고 싶은데 예전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쌓아놓은 피라미드의 가장 아래에 여전히 가민이가 깔려 있다는 게 마음 쓰였다.
라오스에서 돌아온 재이가 늦은 저녁에 가게 문을 두드렸다. 승무원 유니폼 차림 그대로 문 앞에 서 있었다. 라펠에 달린 윙 배지도 보였다. 나한테 저녁을 먹었는지 물어보았고 아니, 하고 대답하자 재이는 순대곱창이 생각나 이곳까지 달려왔다며 무구한 얼굴로 쳐다봤다. 끝나지 않았을까, 하고 내가 고개를 갸웃 젖혔는데 식당은 열려 있었고 그래서 우리는 식당에 마주 앉아 순대곱창이 나오길 기다렸다.
“라오스는 시원한데 여긴 춥다.”
시원한 것과 추운 것의 차이를 안다. 그 두 온도가 스미며 희석되는 십일월에 내가 개업했으니까. 외투를 걸치면 덥고 벗어두면 금세 추워지는 달. 둔감한 사람이 아닌 나는 십일월일 때면 언제나 손에 옷가지가 들려 있었다.
“이렇게 추운 날 그곳에 가서 물놀이하면 어떤 기분일까?”
“라오스로 가자.”
그러고 보니 나는 해외로 떠나본 적이 없다. 지구가 둥글다지만, 나는 해외로 나가본 일이 없어 재이에게 엉뚱한 질문만 해댔다.
“높은 하늘 위에선 지구가 정말 둥근 게 보여?”
“곡선이 보여. 아주 넓은. 내 눈에 다 들어오지 않는 기다란 림 같아.”
“림?”
“활을 당기면 완만하게 휘어지는 선 말이야.”
“쉽게 말해줄래.”
“비행 일을 하다 보면 내가 달이 된 거 같다고 해야 할까. 지구란 극점 위를 무한히 공전하는 기분. 엔진의 힘으로 나아가는 게 아닌 거지. 지구가 천천히 자전하며 내가 탄 무거운 쇳덩어리를 밀어내는 거야.”
“어려워.”
“공중에 있을 땐 모든 게 다 사라져. 누군가와 연락할 수 없고. 국적도, 가족도, 다. 오로지 나만이 남아. 국경 사이를 단 일 초 만에 넘어갈 때면 이 지구란 곳에 나라와 나라가 있단 걸 까먹는다니까.”
“그러니까 지구가 둥근 게 확실하다는 거지?”
아폴로 8호는 달의 주위를 스무 시간 넘게 선회하다가 어둠 속에 덩그러니 놓인 지구를 촬영했다. 1968년 크리스마스이브 날 아폴로 8호는 달 궤도 진입에 성공했고 다음 날 푸르게 빛나던 지구 사진 한 장을 크리스마스 선물로 지구인들에게 주었다. 지구평편설을 주장하던 다수의 신도가 이날 이후로 사라졌고 소수는 드디어 NASA가 조작까지 한다며 오히려 믿음이 굳건해졌다. 이상한 하루였다, 그해 엄마가 태어났다는 사실이 더욱 이상하지만. 내가 태어나기 전 엄마는 나의 엄마가 아니었는데 엄마의 젊은 시절 속 빛바랜 사진들을 빤히 들여다보면 달리 부를 호칭이 떠오르지 않았다. 희숙 씨, 사랑해요, 하고 태원 씨가 고백했을까. 아니면 태원 씨가 술에 취한 희숙 씨를 업어다 여관에 데려갔을까. 또 그게 아니라면 사실 사랑하지 않으면서 사랑한다고 고백했을까. 엄마가 아닌 엄마는 내가 당신의 뱃속에서 태어날 줄 몰랐겠지. 심장중격결손증을 가지고 태어날 줄은 더욱 몰랐겠지. 그리고 양양을 버릴 줄은 정말로 몰랐을 거야.
“모르지.”
내 물음에 순대곱창만큼이나 싱겁게 재이가 대답했다. 우리는 식당을 나와 골목을 배회했다. 선배와 걸을 땐 생경했던 골목길이 제자리를 찾은 듯 평온하게 돌아와 있었다. 발을 뗄 때마다 재이가 신은 뭉뚝하고 까만 구두 굽이 또각, 하며 마찰음을 일으켰다.
수술 후 며칠 쉬었다. 골반 쪽이 떨어져 나갈 듯 아려와 병원에 문의했더니 간호사가 관리법이 적힌 용지를 주지 않았냐며 시큰둥하게 반응했다. 그게 다 욕조 물에 녹아버렸어요, 하고 설명하긴 구차해 전화를 끊었다. 그러자 아랫배가 더욱 쓰라렸다. 하혈이 왔고 검은 핏덩어리가 팬티 밑을 채우며 사타구니에 닿아 흥건해졌다. 문구용 커터로 쓱 베듯이 속살이 쓰라렸고, 우리한 방사통이 집히지 않는 증기가 되어 가슴을 지나 목덜미까지 올라 맺혔다가 한 움큼씩 다시 속살로 아찔하게 떨어졌다. 순간 엄마가 떠올랐고, 엄마는 프리마 마트 계산대에 있었다. 다행이었다. 통증이 심해 입술이 바르르 떨렸다. 다시 전화하자 간호사는 귀찮다는 어투로 자궁 내막에 남은 찌꺼기가 흘러나오는 거라고,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다 그런 거라고, 전혀 걱정하지 말라며 시들하게 대꾸했다. 이게 자연스러운 일인가요, 하고 화를 내던지고 싶다가도 이내 간호사는 아무런 잘못이 없어 눈을 감았고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다시 속살을 타고 통증이 가슴을 지나 목덜미까지 밀고 올라간 뒤 한 움큼씩 떨어트리고를 반복했다. 방학이었고, 이경은 또 제멋대로 우리 집 앞까지 찾아왔다. 임대 아파트. 세발자전거가 허들이 된 좁은 복도식 아파트. 오래된 동네에 박힌 오래된 아파트. 나는 새끼 오리가 그려진 수면바지와 노스페이스 패딩 점퍼를 주워 입고 놀이터로 나갔다. 이경은 페인트칠이 반은 벗겨진 녹슨 철제 시소 한쪽에 앉아 멀리서 걸어오는 나를 향해 손짓했다. 걱정스러운 어투로 연락이 되지 않아 여길 찾아왔다고. 몸이 아파서, 하고 나는 짤막하게 대답했다. 식은땀이 났다.
“어디가 아픈데?”
“어딘가 아파.”
이 순간에도 나는 이경을 웃기려고 노력했다. 그러자 서글퍼졌고 양양을 묻어둔 뒷산이 무너져 내린 것처럼 죄책, 수치, 무력, 연민, 공포, 혐오, 절망, 그리고 적개심 같은 두서없고 날카로운 감정들이 한 덩어리로 뭉쳐 내 속살로 빠져들었다. 눈의 뒤편이 축축해졌고 그게 콧물이 되어 떨어졌다. 어느새 콧물과 함께 눈물도 흘러나왔다. 눈물이 아래에서 위로 솟아올랐고 이경은 아무런 기색 없이 나를 안은 채 같이 울어주었다. 그러곤 다시 꽃다발을 집 앞에 두고 갔다. 낡고 더러운 복도에서 이경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외시경으로 훔쳐보다가 문을 열어 앞에 놓인 꽃다발을 챙겨 물병에 꽂아 놓았다. 꽃이 시들 즈음 생리가 시작됐고 방학이 끝날 때까지 집에 머물렀다. 딱 한 번 외출했는데 양양을 묻어둔 뒷산이 그리워서였다. 엄마가 쉬는 날에 맞춰 우리는 뒷산을 찾아 산책했다. 시간이 많이 흘러 표식을 해뒀던 양양의 무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바람이 차서 등산객은 드물었다.
“오래전에 여기 묻어둔 게 있는데 못 찾겠지?”
엄마는 묻어둔 걸 왜 찾느냐며 되물었고, 아무리 기다려도 다시 나를 찾아오지 않아 내가 찾으려 한다고 답했다. 그럼 찾아오기 싫어 찾아가지 않는 거니 인제 그만 찾으라며 나를 말렸다. 내가 보고 싶어도 찾지 말아야 하는 거냐며 엄마에게 억지를 부리려다가 숨만 들이마셨다. 차가운 식물 냄새가 목구멍 끝에 걸려 체증을 유발했다. “찾는다고 찾아지면 다 찾았겠지. 못 찾은 것들이 많을수록 잘 산 거야.” 하고 엄마는 숨을 몰아쉬었다. 숨이 찼다. 오랜만에 산을 오르니 허벅지에 힘이 빠져 걸음을 멈추고 뚱뚱했던 어릴 적으로 되돌아가 따돌림당한 기억을 끄집어냈다. “엄마, 그때 애들이 날 얼마나 미워했는데. 나만 쉬었잖아, 나만.” 엄마는 조금 놀란 기색을 하며 그런 연유로 찾는 거라면 절대 다시 돌아보지 말라고, 그리고 이젠 괜찮은지 물어보았다. 괜찮아, 하고 나는 아랫배를 움켜잡아 보았다. 엄마가 무심해 다행이라 생각했다. 우리 집이 부유했다면 엄마는 가정주부였겠지. 일찍 퇴근한 아빠는 내 방문을 살며시 연 채 깨금발로 들어와 예쁜 우리 공주, 하며 내 볼을 꼬집었겠지. 나는 배시시 웃으며 땀 냄새가 풀풀 밴 아빠의 차가운 나일론 점퍼를 꽉 안고 타르, 니코틴이 물든 푸르뎅뎅한 입술이 무엇인지 하나 모른 채 거침없이 쪽, 했겠지. 엄마는 양념장이 묻은 앞치마를 두른 채 내게 잔소리를 뱉었겠지. 밥 좀 먹어라, 편식하지 마라, 나는 네, 하고 곱게 자란 말투로 대답해놓곤 적게 먹고 편식했을 거야. 아빠는 나를 앉혀두고 성적이 이 모양인데 어쩌려고 그러냐며 걱정했겠지. 엄마와 아빠는 나를 데리고 바다로 갔겠지. 해안선을 따라 도로 위를 달리며 많은 걸 보여주고 싶었을 거야. 가끔은 산에도 가고, 내 인생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레이더를 켠 채 면밀히 살펴봤겠지. 하지만 엄마도, 아빠도 내 뱃속에서 양양이 죽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모르기 때문에 나는 혼날 이유도 없다. 엄마가 무심한 건 아닐 거야. 우리 엄마는 무심한 적이 없고, 외동인 내가 외로울까 매번 걱정했다. 나는 숨을 몰아쉬며 내가 태어났을 때 어땠는지 물어보았고 엄마는 작고 귀엽고 낯도 가리지 않고 잘 울지 않던 착한 아기였다고 회상했다. 내가 착했구나, 하고 웃었다. 엄마는 착한 게 좋은 건 아니라고 착하게 살 필요는 없다고 당부했다. 착한 건 그냥 착한 것뿐이야, 하고. 이젠 하나도 착하지 않은 나는 그저 양양만 그리워졌다.
교수가 잃어버린 만년필을 본 건 중앙 도서관에서였다. 시험을 앞둬 도서관엔 빈자리가 없었다. 나는 전공서적들을 탑처럼 쌓아둔 채 아치형으로 된 로비 대기석에 앉아 빈자리가 나길 한참이고 기다렸다. 한 시간 즈음 지났을까 이경으로부터 옆자리가 났다는 연락이 왔다. 나는 서둘러 랩강의실로 향했고 제일 구석에서 손을 흔드는 이경이 보였다. 까치걸음으로 다가가 이경의 옆자리에 조용히 앉았다. 그리고 공부를 하려는데 이경이 십 분마다 내 귀에 대고 속닥거려서 집중할 수가 없었다. 배고프지? 아니. 라면 먹을래? 싫어. 나 허리 아파. 비틀어줄까? 야, 신지훈 좋지 않냐? 신지훈이 누군데? 하고 묻는데 따가운 시선이 앞자리에서 느껴졌다. 시끄럽게 굴어 죄송하다며 연신 무음으로 고개를 주억거리다가 탈색한 단발머리가 눈에 들어왔다. 가민이었다. 야, 정연 선배 여자 친구다, 하고 이경이 먼발치로 눈짓하며 가리켰다. 유이경, 다 들려, 조용해. 순간 가민이가 필기구를 공책 사이에 탁 끼워두곤 자리에서 박차 일어났다. 이쪽으로 걸어오나 싶어 서둘러 나는 두 팔로 얼굴을 파묻은 채 잠든 척했다.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아 고개를 살며시 들어보니 입구 쪽으로 멀어져 가는 가민이의 뒷모습이 보였다.
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쉴 때도 이경은 멈추지 않고 속닥거렸다. 야, 저거. 유이경, 좀 조용해. 저거, 저거. 뭐? 조교가 찾던 거 아니야? 하고 이경이 가리키는 손끝을 따라가니 공책 사이로 반짝이는 만년필 한 자루가 보였다. 아닐 거라며 이경의 어깨를 툭 치자 이경은 그런가, 하며 눈길을 뗀 뒤 싱겁게 넘어갔다. 하지만 기숙사로 돌아간 뒤로도 내 머릿속엔 그 만년필만 떠올라 공부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세상에 같은 만년필이 얼마나 많은데. 얼마나 많은데 하필 가민이의 만년필엔 교수의 이니셜인 J.G.가 새겨져 있었다. 왜 J.G가 새겨진 만년필을 가만이가 가지고 있는 건지 도통 연결되지 않아 괴로웠다. 선배에게 물어보기엔 두서가 없을뿐더러 우리 둘 사이에 가민이가 거론되는 것만으로도 자기기만에 휩싸일 게 자명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나는 시험을 망쳤다. 왜 내가 기운이 빠진 건지 하나 모르면서 선배는 다 알고 있는 듯이 나를 데리고 지하철과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탄 뒤 모텔 옆 맥도날드에서 소프트콘을 사 줬고 관념적인 말들을 늘어놓았다. 아이스크림에는 원액과 공기가 반반씩 섞여 있고 이걸 전문 용어로 오버런 백퍼센트라고 부른다고. 그러니까 믿음도 상대가 반, 자신이 반일 때에만 백퍼센트가 된다며. 그러면 그 믿음이란 건 이 소프트콘처럼 무르고 무르다 결국 다 흘러내리게 되는 건지 물어보고 싶었다.
“이건 보이저 2호가 발사되던 해 만들어졌어.”
선배가 턱짓으로 자기가 입은 청바지를 가리켰다. 양쪽 무릎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리바이스 청바지였다. 지금도 비싼데 십 년 뒤엔 더 비싸질 거라고 패스트푸드점에서 말했다. 나는 그저 십 년 뒤에도 선배가 저 청바지를 입고 맥도날드에 앉아 있을지 궁금했다. 선배는 자기가 입은 옷들로 그 시절에 일어난 사건들을 미루어 짐작하길 즐겼다. 이건 존 F. 케네디가 암살당하던 때 건너왔어. 클린턴 섹스 스캔들 알지? 그때 재단되었어. IMF가 터졌을 때 생산된 백사틴 원단이야. 옷으로 역사를 공부한 건지 역사를 공부해서 옷에 대해 잘 알게 된 건지 헷갈렸지만 무엇이 정답이든 선배가 박식하다는 건 확실했다. 그래서 가민이가 어떻게 그 만년필을 가지게 된 건지도 물어보고 싶었다. 선배, 알아요? 가민이가 가지고 있단 사실. 속으로 추궁하자 당연히 선배는 알고 있을 거란 결론이 내려졌다. 그 만년필의 역사는 어떻게 되죠? 그 만년필을 선물 받은 교수의 역사는요? 교수에게 선물한 작은 딸의 역사는요? 그게 다 역사가 될 순 없겠죠. 교수와 작은 딸을 빼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테니까. 아주 작은 역사조차 될 수 없어 기억이란 미미한 무형으로 남아 사라질 때까지 그들에게만 회자되겠죠.
나흘 뒤 선배는 약속대로 매장을 찾았다. 짙은 청록색 체스터코트에 레지멘탈 타이를 맨 채. 모즈룩의 폴 매카트니처럼. 우리는 지난번에 들른 카페로 향했다. 바닥에 쌓인 눈들이 녹다가 얼어 내 걸음걸이를 방해했다. 선배는 두 손을 코트 주머니에 꽂은 채 걸음을 옮겼다. 저러다가 미끄러질까 염려했는데 선배는 평균대에 오른 체조선수처럼 균형을 잘 잡았다. 어느새 나를 앞질러 내가 선배를 뒤따르게 됐다. 따지고 보면 선배와 나란히 걸어본 기억이 없다. 선배의 여자 친구는 가민이었고, 무엇보다 선배는 조심성이 컸다. 오해받을 수 있어. 지하철과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탄 뒤에야 안도하며 저런 식으로 해명했다. 가끔 오해받을 일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우리가 몰래 만나는 게 오해받을 일인지. 오해가 아니라서 오해받을 일도 없을 텐데 선배는 매번 오해받을 수 있다는 변명으로 일관하며 자신을 감싼 도덕성에 흠집이 갈까 염려했다. 그러면 나는 세 걸음을 쉰 뒤 걸음을 떼거나 만날 장소를 정한 다음 우회해서 재회했다. 이제 가민이는 선배의 아내가 되었고 오해받을 일이 생기지 않길 바란 건 나라서 선배와 세 걸음 떨어져 걸음을 옮겼다.
카페에 도착해 선배가 먼저 체스터코트를 벗자 그 안에 숨겨져 있던 깔끔한 남색 슈트가 드러났다. 지난번에 찬 롤렉스도 여전히 반짝였다. 모든 게 깨끗한 선배를 보자 맥도날드에서 소프트콘을 사 주던 모습이 생각났다. 내가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실 동안 선배는 에스프레소를 한 모금에 비워냈다. 선배를 잘 안다고 할 수 있을까. 적어도 지금 마주 앉은 선배는 내가 알던 모습이란 하나 없고, 그래서 무슨 말로 운을 띄워야 할지 고민하며 컵 손잡이를 만지작대는데 선배가 먼저 폰을 내 앞으로 들이밀었다. 사슴 같은 눈망울의 아기가 테이블 위로 나타나 웃고 있었다. 하얀 두 볼과 눈, 코, 입 가릴 거 없이 모두 둥글었고 둥글어서 모나지 않게 사랑받으며 자라고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아기라고 하기엔 커 보였고 아이라고 하기엔 작아 보였는데 사진을 가리키며 선배는 아기라고 불렀다. 이제 초등학교에 입학한다고. 마음이 어수선해졌다.
아기는 선배를 빼닮은 남자애였다. 학교에 들어갈 나이라면, 아마 양양도 이즈음 됐을 거라 상상했다. 아무런 의미 없는 상상. 남자였을까, 여자였을까. 의사는 알려줄 이유도, 필요도 없었다. 자신이 죽인 태아의 성별까지 알려주는 건 몰인정하니까. 나 역시 아기의 성별을 묻지도, 듣지도 않고 죄인처럼 쫓기듯 병원 밖으로 빠져나왔다. 양양이 보고 싶다며 말하자 선배는 남의 일처럼 담담하게 물었다.
“안나 카레니나의 법칙 알아?”
이 상황에서도 비유를 들 수 있는 선배의 여유가 놀라웠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한데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 불행을 안고 산다는 대학 시절 내내 교수에게 듣던 그 지겨운 소설의 첫 구절. 내가 양양을 낳으면 우리는 행복할 수 없고 오로지 불행하게 살다가 죽을 거라는 저주. 톨스토이는 가난이 무엇인지 모른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행복은 셀 수 없이 다양한데 불행은 오로지 단 한 가지 이유로 헤어날 수 없게 한다. 그러니까 불행이란 불행에 막혀 빠져나오지 못한다. 출구가 작아서인지 불행한 사람이 수없이 몰려서 그런지 어쨌든. 행복하면 다양한 취미를 안고 살고 가난하면 결국 가난만이 취미가 되니까. 무엇이 가난을 만드는 걸까. 어릴 적 나를 데리고 아동 병동에 갈 때면 급성 백혈병과 선천적으로 암세포를 가지고 태어난 아기, 병명은 몰라도 자기 몸집보다 큰 링거병에 매단 채 새근거리는 아이들을 흘겨보며 엄마는 걱정보다 내심 안도의 한숨과 함께 내 머리칼을 쓸어주었다. 병원에 들어서면 풍기던 소독약 냄새, 반질반질한 바닥, 원인을 알 수 없는 울음소리, 위치를 가늠할 수 없는 기계음 들을 지나 나는 어느 어두컴컴한 방 안에 들어가 윗옷을 걷어 가슴을 내준 채 젤을 바르고 내 심장을 확인했다. 흑백의 하얀 덩어리가 작아졌다 커졌다 쿵, 쿵 소리를 일으켰다. 아주 작은 생명체가 아주 작은 내 가슴 속에 있다는 게 느껴졌다, 죽지 않은.
“양양하고 나이가 비슷하네요.”
선배가 턱을 매만졌다.
“양양?”
나는 태연히 대답했다.
“제 아기요.”
선배는 조금 몸을 움츠렸다가 이내 내가 농담이라며 밝히자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순간 내 가슴이 텅 빈듯했다.
“선배.”
선배는 가만히 창밖으로 시선을 피했다. 승용차 한 대가 눈길 위를 무심히 지나쳐갔다.
“선배는 저를 어떻게 기억해요?”
선배가 검지로 아랫입술을 매만졌다.
“너?”
“저.”
“좋은 후배였지.”
“그래요?”
“그랬지 않았나?”
기억. 기억이란 건 정말이지 공평하다. 태어난 뒤 죽기까지 인간은 보고 들은 모든 걸 기억한다는 연구 결과를 본 적이 있다. 기억이란 건 한 번 저장되면 빠져나갈 수 없고 선택할 수도 없다. 기억이란 건 스스로 선택한 일이 아니라 조작할 방법도 없다. 제1원인론. 기억이 기억을 낳고, 또다시 기억이 기억을 낳아도 기억의 첫 단추는 사라지지 않는다. 기억의 기억은 기억일 뿐, 기억이 기억을 덮을 순 없다. 거짓이 거짓을 낳을 순 있어도 거짓이 사라지진 않는 것처럼. 기억으로 기억을 떠올리게 되면 결국 기억만이 떠오르겠지.
“기억이란 건 좋은 거 같아요. 그 속엔 거짓이 없으니까.”
선배의 얼굴이 더욱 일그러졌다. 선배, 하고 말을 이으려는데 선배가 먼저 내 입을 막아섰다. 잔뜩 일그러졌던 선배의 얼굴이 자백하듯 천천히 누그러졌다.
“이젠 좀 괜찮니?”
테이블 밑에 가려진 내 손끝이 떨려왔다. 이상하게 아랫배까지 쓰라렸다. 선배는 멈추지 않았다.
아기가 한 살, 한 살 클 때마다 마음이 아팠어.
알다시피 나도 어렸잖아.
너도 어렸지만 우리 둘 다 어렸어.
가민이는 더 어렸고.
나이가 드니까 볼 용기가 생기더라.
개업한 소식은 우연히 접한 거야.
안 갈 수도 있었지만.
내 아기한테 떳떳해지고 싶어.
정말 어렸어.
생각도 행동도 다 말이야.
너도 어렸잖아.
그래서 마음이 쓰여.
이젠 괜찮니?
선배의 말들은 예전과 같이 모두 잘린 채로 내 머릿속에 들어와 충돌하며 부유했다. 이 말의 조각들은 연과 행을 아무렇게나 옮겨 읽어보아도 해석에 달리 문제가 없었다. 정말 이상했다. 이상하지 않아서. 선배가 이상하지 않은 건지, 내가 이상하지 않은 건지, 우리 둘 다 이상하지 않은 건지, 아무도 이상하지 않아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사과일까. 선배, 그때 잘못했죠, 하고 따지듯 물으면 함께 내린 선택이잖아, 하며 당당한 어조의 대답이 돌아올까. 그럼 맞아요, 항상 반반씩, 하고 내가 맞장구를 쳐줘야 할까. 얼마 지나지 않아 선배가 꺼낸 말들이 사과가 아니란 사실을 깨닫자 내가 애써 용서할 방법과 기회도 사라졌다.
아무리 떠올리려고 해도 내 가슴골을 개복한 기억은 없다. 하지만 은빛 집기인 큐렛이 내 자궁을 헤집으며 불쑥 들어온 기억은 있다. 선배, 같이 반반씩 결정 내렸어도 그 고통은 오롯이 나만이 느꼈어요, 하고 속으로 되뇌어 보았다. 선배는 잊으면 그만이지만 내 뱃속에 머물다 나온 기억은 내 몸이 사라지지 않는 한 기억한다고. 할 수밖에 없다고. 여전히 내 몸은 하나 놓치지 않고 모든 걸 기억한다고. 제발 잘못했다는 한마디만 해달라고 애원하며 매달리고 싶었다. 눈물이 나지 않으면 차라리 눈을 찌르라고. 가민이까지 미워하고 싶진 않은데, 설마 가민이도 그때 선배의 아기를 가졌나요, 하고 따져 묻고 싶다가도 가민이가 너무 가여워 고개만 떨구었다. 시간도 차원이라면 기억은 인류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차원인 게 분명했다. 인지할 수도 냄새를 맡을 수도 없는 그 과거가 나를 휘감아 떠미는 이 힘이 어디에서 오는지 알 길이 없었다.
방학이 끝난 뒤로 선배를 다신 볼 수 없었다. 연락했더니 없는 번호로 수신되었다. 강의실에선 다들 선배가 죽었다며 떠들어댔는데 얼마 안 가 휴학계를 냈다는 사실이 조교를 통해 밝혀졌다. 죽었다면 죽었다고 연락이 왔을까. 아니 죽지 않길 바랐다. 그대까지도 나는 모든 걸 선배의 잘못이라 치부하긴 싫었다. 누구든 내게 선배와의 추억거리를 열거해보라 한다면 단숨에 백 가지라도 댈 수 있었다. 누굴 좋아하는데 백 가지 이유는 없더라도 백 가지 기억은 있을 테니까. 분명 나는 이걸 잊지 않고 모두 기억했고 나를 피해 도망가듯 사라진 선배에게 일말의 미안한 감정마저 서렸다. 선배가 떠난 뒤 로비에 설치된 유압식 소형 엘리베이터는 학생들의 성토 끝에 모두가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때까지도 이경은 취업에 관심이 없어 콘서트가 열리면 나를 끌고 다녔다. 한 번은 어느 가수의 콘서트에 갔다가 우리 둘 다 울었는데 엄마를 회상하게 만드는 노랫말 때문이었다. 이경은 지방에 사는 엄마가 보고 싶어 울었고 나는 엄마가 되어주지 못해 울었다.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요.”
선배는 내 아랫배를 흘겨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만년필 선배가 가져갔었어요?”
선배는 뚱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런 기억도 없다는 듯이.
“은색 만년필이요. 범인 잡는다고 조교가 우릴 모았고 그날 술도 마셨고, 그래서 제가 선배한테 연락처까지 받은 거잖아요.”
아, 하고 짧은 탄성을 내며 입술을 모은 뒤 그 만년필, 하며 몇 초 시간을 흘려보낸 선배는 그런 걸 다 기억하느냐며 너털웃음을 짓더니 이내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어떻게 알게 됐는지 묻는 선배에게 가민이가 가지고 있던 걸 봤다는 기억은 꺼내지 않았다. 내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자 선배는 별걸 다 기억한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직 내 이야기가 다 끝나지 않았는데 선배는 또다시 다른 말로 이어갔다. 내 가게를 찾은 건 온전히 우연이었다고. 광고 업체를 통해 배정받았는데 단번에 나를 알아봤다고. 알잖아, 하며 선배는 빈 잔을 괜히 꾹 쥐었다가 투명 아크릴 테이블에 탁 내려놓았다. 입안에 머무는 말은 백 가지가 넘는데 밖으로 나올 말을 고르기가 힘들었다. 억지로 말을 꺼내고 싶진 않았다. 다시 내 입으로 들어가야 할 테니까. 선배는 멈추지 않고 말했다. 저렇게 많은 말을 하는데도 신기하게 사과 한마디가 섞이지 않았다.
“선배, 왜 그랬어요?”
그해 학점을 이수하지 못해 교수실로 불려갔다. 김 교수는 나를 앉혀두고 무슨 일이 있는지 묻기는커녕 다짜고짜 어제 국가대표 축구 경기는 보았는지 물었고 내가 보지 못했다고 하자 정말 엉망인 경기였다며 안 보길 잘했다고 격려해주었다. 반어라고 생각했는데 교수의 눈을 보자 의심 없이 맑아 내가 의심이 많나 의심하게 되었고, 교수는 싱긋 웃으며 팔팔 끓던 포트기를 집어 믹스커피를 타 주었다. 아라비카, 하고 내가 혼잣말을 하자 교수는 따라 맥심, 하며 혼잣말을 했다. 맥심 아라비카. 아라비카는 분명 어느 소도시일 테고, 콜롬비아란 나라가 왠지 꽤나 어울려서 교수에게 아라비카는 콜롬비아 어느 위치에 자리한 소도시이냐며 물어보았다. 교수는 희끗 자란 수염을 매만지며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건지 되레 되물었고 나도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졸업 학년이라 다들 바빴다. 취업했거나 면접을 치르고 있는 동기들에 비해 이경과 나는 여전했다. 가끔 선배가 누웠던 들판에 혼자 앉아 내리쬐는 햇볕을 맞아보곤 했다. 쾌적한데 몽롱한 기운이 매번 몰려왔다. 교수실은 오평 남짓이었고 밤색의 기다란 책장이 한쪽 벽면을 꽉 채우고 있었다. 책장에는 영문으로 된 양장과 제일 아래 칸엔 미당 전집이 벽돌처럼 일렬로 꽂혀 있었다. 책장을 훑어보자 교수는 좋아하는 시가 있는지 물었고 당연히 나는 없다고 말했다. 뒤이어 무엇이든 좋아하는 게 있는지 물었고 무엇이든 좋아하는 게 없다고 말했다. 이번에는 내가 물어보았다.
“만년필은 찾으셨어요?”
교수는 대답 대신 시를 알려주었다. 기형도의 「대학시절」. 어느새 졸업을 앞두게 된 나는 신관 로비에서 우연히 마주친 김 교수에게 스치듯이 인사했다. 부족한 학점은 다 채웠냐는 걱정에 다시 한번 인사만 꾸벅했다. 그리고 나와 멀어져 가는 교수에게 넌지시 외쳤다. 아라비카는 도시명이 아니라 원두명이라고. 바리스타 자격증을 준비하다가 알게 됐다고. 교수는 돌아보는 대신 크게 손을 두 번 흔들었다.
“왜 훔쳤어요?”
나도 모르게 입에서 튀어나왔다. 머리를 거치지 않고 나온 말. 떠올린 적도, 머릿속에서 주문을 내린 적도 없는데 분명 내 입을 거처 나온 말이라 의아했다. 내가 이 말이 왜 떠올랐는지 아무리 점검해 봐도 기억에 없다. 선배는 당황한 기색을 보이다가 이내 등받이로 몸을 비스듬히 기댔다.
“어렸잖아.”
“이제라도 돌려줘요.”
“뭘?”
“선배꺼 아니잖아요.”
잠시간 정적이 흘렀다.
“어디 있는지 몰라. 잃어버렸어.”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하지만 울고 싶진 않아 고개를 들어 천장을 쳐다봤다. 그러자 시트로 된 거울 천장이 떠올라 서둘러 다시 고개를 숙였다. 왜일까. 이젠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은 기분이 들었다.
“그거 가스라이팅이에요.”
알아요? 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천천히 내뱉자 선배가 한숨을 몰아쉬었다. 만년필을 훔친 게 왜 가스라이팅이냐고 잔뜩 인상을 쓰며 펄쩍 뛰었다.
“너 병이야. 그거.”
“무슨 병이요?”
“결벽증 있었잖아. 그 병.”
“그게 왜요?”
“피해의식이라고.”
“제가요?”
“예전부터 그랬잖아. 내가 널 꼬셨니? 네가 날 꼬셨잖아.”
할 말이 없어졌다. 피해의식을 피해 간 적도 없다. 용기 내서 찾아온 자신을 도둑으로 몬다면 선배는 불쾌해했다. 드라마처럼 논리정연하고 멋지게, 그리고 적당히 감정적 거리를 두고 내 주장을 모두 펼치고 싶었는데 면접장에서 한마디도 못 뗀 것처럼 여전히 뜻대로 되지 않았다. 생각은 생각으로만 머물러서 내 입 밖으로 온전히 뱉어지지 않아 “넌 미안하지도 않니?” “내가 왜 학교를 그만뒀는지 몰라?” “나처럼 용기 내서 나를 찾아본 적 있어?” “다시 생각해봐, 내가 널 꼬셨니?” 하는 선배의 모든 물음에 수긍한 것도 아닌데 아무런 해명조차 못 했다. 다만 나는 같은 말만 반복했다.
“만년필 돌려주라고요. 만년필요! 만년필!”
한산한 카페 안으로 내 목소리가 벽에 튕겨 다시 내 귀로 돌아왔다. 선배는 크게 한숨을 몰아쉬었고 예전처럼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그 많은 말 중 하나가 걸렸다. 낙태증후군. 모르는 병명이고 모르는 말이었다. 모르기에 눈물도 나지 않았다. 이젠 낙태증후군까지 있어? 낙태. 낙태. 낯선 낱말을 입속에 넣어 굴려 보았다. 뾰족한 잔해들이 입안이 헤집었고 아려왔다. 끝까지 내가 꺼내고 싶지 않은 말을 선배는 쉽사리 꺼낸 뒤 나를 공격해 써먹었다. 그리고 선배는 우위를 점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더는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설득했다. “치료받아, 좀.” “나도 많이 힘들었어.” 같은 말들. 내가 살면서 감당해온 모든 일을 말하고 싶었는데 한때 좋아한 감정까지 속았다며 치부하고 싶진 않았다. 무엇보다 이상하게 가민이가 걸렸다. 아니 가민이가 가여웠다. 나는 여전히 힘이 없다. 몸이 떨리고 다리가 저렸다. 내가 먼저 자리를 박차 일어났는데, 동작이 하나 선명히 내 뇌로 전달되지 않았다. 질소만 남은 우주 속을 감각 없이 유영하는 기분이었다. 카페 밖으로 나갔다. 바닥이 미끄러워 걸음걸이가 꼬였다. 선배는 내 뒤를 따라오며 집요하게 자기는 가스라이팅을 한 적 없다며 억울해했다. 나는 걸음을 더욱 빠르게 옮겼다. 승용차들이 내 옆을 차례로 지나쳐갔다. 걸음걸이가 꼬여 몸이 오른쪽으로 쏠렸는데 뒤에 있던 선배가 내 오른 어깨를 잡았다. 소름이 돋았다. 아, 아악, 시발, 시발! 내 어깨에 닿은 선배의 손을 밀쳐내며 하얀 고함을 내질렀다. 선배의 손이 내 몸에서 황급히 떨어져 나갔고 나는 그대로 휘청거리다가 바닥에 엎어졌다. 얼굴이 울긋불긋 달아올랐다. 두 다리, 두 팔이 덜덜 떨렸다. 다시 바닥을 짚고 일어나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선배의 떨리는 목소리가 냉기를 밀치며 내 왼쪽 귀로 들어와 오른쪽 귀를 통해 빠르게 빠져나갔다.
그사이 괌에 도착했다며 재이가 한 통의 메시지를 보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