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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 to the World Oct 15. 2023

책책책

-일곱 번째 생각

*이 글에서 “책”은 문학 작품을 의미하는 단어로 주로 쓰였음을 참고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책. 내가 이 글을 쓸 때 가장 즐거워하고 있으리란 건 누구든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시작하고 있는 나의 마음은 요리를 좋아하는 한 사람이 잘 준비된 재료들을 보면서 손을 비비는 모습과 아주 흡사하다.     


세 번째 이야기에서도 얘기해서 아시겠지만 책은 참으로 내 인생에서 중요한 존재다. 난 언니에게 “나 책 없으면 못 살아”라고 자주 얘기한다. 좋아하는 거 뭐냐고 물어보면 책 읽기라는 단어가 대뜸 튀어나오고, 책 읽을 때 방해하면 정말 무지막지하게 짜증 낸다.(방해한 이유가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면 말이다.)

     

난 기분이 안 좋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책부터 찾는다. 또 계속해서 좋은 책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책에는 절대 돈을 아끼지 않지만, 허투루 사진 않는다. 내가 책을 사는 것은 소장을 전제하에 사는 것이기 때문에 이 두 가지를 꼭 확인한다.

 

첫째, 내가 계속해서 읽을 책인가. (항상 도서관에서 먼저 빌려보고 다 읽고 나서 책을 사기 때문에 실수할 염려는 거의 없다.)

둘째, 내가 내 아들딸들에게 물려줄 만한 책인가.

      

좋은 책에 대한 나만의 기준이 있고 되게 깐깐한 편이다.

     

다들 잘 이해하지 못하긴 한다. 화날 때, 쉬고 싶을 때 책을 읽는다고…? 이러면서. 그럴 때 나도 어려운 책은 안 읽는다. 새로운 책도 안 읽고 내가 정말 사랑하는 책을 꺼내 읽는다. 이미 거의 통달한 상태니까. 다 알고 있는 세계에 들어가 다시 그 인물들을 만나고, 그 세계에서 숨 쉬다 보면 기분도 좋아진다. 그렇지만 머리를 비우고 싶을 때는 (워낙 삶을 복잡하게 살고 생각이 많은 터라) 책보다는 미디어를 보긴 한다. 그래도 미디어를 좀 자주 보다 보면 머리가 빈다는 생각이 든다. 난 머리를 채우는 걸 선호하는 편인 것 같다. 진짜 피곤하면 나도 잔다.

    

나의 책장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내가 정말 두고두고 읽을 책만이 모여 있는 곳이다. 나열해 보자면, J.R.R. 톨킨, C.S. 루이스, 도로시 L. 세이어즈, 아서 코난 도일, 찰스 슐츠(스누피-PEANUTS 작가) 제인 오스틴, 윌리엄 셰익스피어, 윤동주, 이어령, 허주은 작가님의 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작가님들은 (코난 도일 님만 빼고. 인간적으로서는 그렇게 좋아하는 분이 아니어서. 난 셜록 홈즈만 좋다) 모두 내 최애 작가님들이다. (아, 아직 책을 사진 못했지만 찰스 디킨스 작가님도 진짜 좋아한다.)

     

나의 소중한 서재

이분들은 모두 내게 새로운 세계를 선물해 주셨다. 새로운 생각을 하게 하시고 시각을 넓혀 주셔서 내가 나만의 생각만 가지고 사는 것이 아니라 남과 생각을 공유하고 받아들이는 데 유연한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 같다. 내가 그냥 가만히 있었으면 경험하지 못했을 여러 경험을 하게 해주셨고, 여행도 하게 해주셨다.

     

톨킨 작가님은 판타지 세계를, 루이스 작가님은 신학과 문학의 조화를 제대로 보여주셨다. 세이어즈 작가님은 영어의 맛을, 이어령 교수님은 한글의 맛을 진정으로 맛보게 해주셨다. 코난 도일 작가님은 추리 소설의 세계라는 걸 처음 보여주셨고, 허주은 작가님은 내가 계속 하고 싶어 했지만 살아 있는 작가분들 중 좋아하는 분이 없어 하지 못했던 작가 신간 기다리기를 할 수 있게 해주셨다. 찰스 슐츠 만화가님은 현실 세계 속 같지만, 그런 것 같지 않은 따뜻하고 유쾌하고 재밌는 세상을 그려서 보여주셨고, 제인 오스틴 작가님은 사랑이, 로맨스가 무엇인지 보여주셨다. 윤동주 시인님은 문학 작품의 영원성을 보게 해주셨고, 셰익스피어 극작가님은 이것이 바로 연극이라며 희극과 비극을 가르쳐 주셨다.

     

나는 이렇게 작가들을 보고 책을 사는 경향이 있다. 그 작가의 세계관과 생각이 어떻게든 책에 배어들기 때문에 내 최애 작가님들은 거의 다 나와 생각이 비슷하다던가 내가 닮고 싶은 생각들을 가지신 분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그리고 이 생각과 가치관들이 내 자녀들도 나중에 커서 나와 함께 이 책을 읽을 것인가에 대한 기준이 되기도 한다.

     

나는 정말 책을 연거푸 읽는다. 지금 1 회독만(이 용어를 여기 쓸 줄이야) 한 책은 다시 읽어야지 하면서 계속 벼르고 있다. 내가 책을 계속해서 읽는 걸 얼마나 좋아하냐면, 단적인 예로 내가 아마도 반지의 제왕을 약 4 회독 정도 했을 텐데, 한참 모자란다. 더 많이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가득 차 있을 정도다.

     

책은 기본 두 번은 무조건 읽어야 한다. 한 번으로는 너무 빈약하다. 한 번은 줄거리만을 알게 되는 것이고, 두 번째 읽을 때는 이미 줄거리를 알고 있으니까 더 깊이 이해하면서 읽게 된다. 특히 고전이 그렇다. 아마 그래서 내가 현대 소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두 번 읽을 생각이 전혀 안 든다.(내가 지금까지 읽은 것 중에서는 말이다) 고전은 읽으면 읽을수록 배어 나오는 그 깊은 맛이 있다. 그래서 연거푸 읽는다.      


난 가끔 고전 축약본을 한 번 읽고 완역본을 읽는 것을 추천하기도 한다. 나도 어렸을 때 축약본으로 읽었던 걸 커서 완역본으로 읽으면 더 재밌고 흥미로웠던 기억이 있으니까. 두꺼운 책만 보면 몸서리를 치는 사람들에게는 확실히 더 좋은 방법이긴 하다.

     

외국책은 현실 세계를 배경으로 한 책을 읽으면 유명한 책들의 문구를 읊거나 유명한 책들의 이야기를 비유 삼아 글이 전개되는 경우가 허다하기에 다양한 책을 읽고 예전에 읽었던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더 그 깊이가 풍성해지고 단어 하나하나가 깊은 울림을 준다.

     

난 책 편식이 좀 심한 편이다. 그래서 요즘은 다양한 책을 읽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수학, 과학, 미술, 역사, 철학, 지식…) 책으로 지식을 습득하는 게 확실히 잘 맞는 것 같기도 하고, 너무 이렇게 편향된 모습을 보이면 나의 지식이 치우쳐져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확실히 제대로 아는 게 생기고 그와 관련된 소설을 읽으면 더 재밌고 더 즐기면서 읽을 수 있다. 독서하는 법에서도 멈추지 않고 더 성장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난 책이 좋으니까!

    

내가 책을 많이 읽고 좋아하다 보니 책 추천도 많이 받는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다른 사람도 책을 좋아하게 하고 싶어 추천 도서를 고르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편이다. 항상 어려운 점은 내가 좋았던 책이냐 그 사람이 읽기에 좋은 책일까, 이다. 내가 좋았던 책은 거의 다 고전이고 두꺼운 책이 많아서 추천해 주기가 부담스럽다. 그것 때문에 책을 더 싫어하게 될까 봐. 그렇다고 그냥 사람들이 대중적으로 많이 읽는 책? 음… 내 마음에 엄청 들었던 것들이 별로 없고, 들었다 해도 그렇게까지 추천을 하고 싶지가…?

     

그리고 이상하게도 한국 책이랑 잘 안 맞는다. 어렸을 때부터 영미 소설 같은 걸 많이 읽어서 그랬는지 정서가…? (왜 안 맞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나도 이해 불가. 그렇지만 외국책도 현대 소설은 잘 맞는 게 별로 없다. 그냥 고전이 잘 맞는다고 생각해야 할 것 같다.)

      

최근 소설은 거의 다 안 맞아서 고전(+일제강점기 배경 현대 소설. 근데 사실 많이는 안 읽었다)을 찾아서 읽었는데도… 그렇게까지 마음에 와닿지는 않았다. 너무 어두운 면도 있어서 그랬을까.

     

그래서 그냥 결론을 내렸다. 우리나라 소설은 발전하고 있는 중이지만, 시는 진짜 잘 쓴다고(시는 좋아하는 거 많다). 내가 그렇게까지 많은 우리나라 책을 읽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내 결론이 틀렸을 수도 있다. 그래서 아직도 찾고 있는 중이다.

     

나도 궁금했다. 왜 나에게는 사람들이 재밌다고 하는 책이 그렇게까지 재밌지는 않을까? 왜 나는 사람들이 부담스러워하는 책이 너무 좋을까? 해리 포터도 그저 그랬는데…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이것 하나는 확실히 안다. 내게 좋은 책이란, 사람의 마음을 울리고 그 사람을 바꾼 책이라는 것. 해리 포터도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그렇지만 그 사람이 나는 아닌 것 같다. 그래서 나의 책장에 꽂혀 있진 않다. 내가 조금 전에 나열한 작가분들의 책들이 다 나의 삶을 변화시키고 내가 새로운 세상을 보게 해준 책들이다. 그것이 바로 내게 좋은 책이고, 주로 고전들이 그러했다.     


사람들과 읽는 것이 많이 달라서 책을 좋아한다는 사람을 만나도 공감 못 하는 경우도 많지만 그래도 난 내가 좋아하는 책을 읽는다. 최근에 나온 소설 중 제일 좋았던 것도 <불편한 편의점>으로 유일하다. 최근에 나오는 소설들은 나에게는 울림과 생동감을 많이 주지는 못하였다.

     

그래서 난 고전 같은 소설을 쓰고 싶다. 나에게 울림을 주고 나를 변화시킨 것처럼, 나도 그런 영향을 미치는 책을 쓰고 싶다. 음, 시대를 거꾸로 역행한다고? 나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내가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걸 해야 하지 않겠는가. 난 거짓된 거 못 쓰고 거짓말 못 한다.

     

그래서 오늘도 고전을 열심히 읽으면서 글을 쓴다. 내가 배울 수 있는 건 거기서 나온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힘들긴 하다. 어렵다. 그렇지만 나에게 위대한 작가의 정의란, “명성과 부를 다 떠나서 한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 세상에 길이길이 남을 책을 쓴 사람”이다.

    

난 그런 작가가 되고 싶고, 그래서 그런 책을 쉬지 않고 찾는다. 까다로운 독자로서, 또 작가 지망생으로서, 그냥 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책을 읽고 또 읽는다. 책과 함께 나는 더 성장해 나가고 싶다.

     

책은 나의 삶을 바꾸었고, 나의 삶의 새로운 목표로 자리 잡았고, 나를 이끌어 주는 원동력, 내가 존경하는 작가가 내게 속삭이는 귀엣말, 나를 포근하게 감싸주는 응원의 목소리, 다시 희망을 보여주는 등대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내가 책을 읽는 이유는, 새로운 세상을 찾아가는 그 희열과 기쁨 때문이다.

    


정말 공감이란 말로도 부족한,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정확하게 해준 C.S. 루이스의 독서에 관한 책, <오독>을 적극 추천하며 그 책의 마지막 말로 마무리 짓고자 한다.

     

“문학적 경험은 개성이라는 특권을 허물지 않으면서도 상처를 낫게 해줍니다. 상처를 치유해 주는 집단적 감정들이 있지만, 그런 감정들은 개성의 특권을 파괴합니다. 그런 감정들 안에서는 우리의 구별된 자아들이 한데 모이고 우리는 개성 이하의 수준으로 다시 가라앉습니다. 위대한 문학 작품을 읽을 때 저는 수많은 다른 사람이 되면서도 여전히 자신으로 남아 있습니다. 어느 그리스 시에 나오는 밤하늘처럼, 저는 수많은 눈으로 보지만 보는 사람은 여전히 저입니다. 예배할 때, 사랑할 때, 도덕적 행위를 할 때, 무엇을 알 때 저 자신을 초월하게 되듯, 문학 작품을 읽으면서도 저는 자신을 초월하게 됩니다. 그리고 바로 그때, 저는 그 어느 때보다 저 자신에게 충실한 존재가 됩니다.”
- C.S. 루이스, <오독> P.175~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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