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번째 생각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은 나에게 밥벌이를 의미하지 않는다. 이 질문을 15~16살 때쯤 묻기 시작한 것 같은데 그때부터 돈 벌 궁리하는 건 좀 이상한 것 같다. 이 질문은, 내가 어떤 모습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고, 사람들은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나는 어떤 영향을 사람들에게 미치고 싶은가, 내가 죽었을 때 사람들은 나를 어떤 사람으로 기억할까에 대한 질문이었다.
내 입으로 이렇게 말하긴 좀 그렇지만 나는 참 순수했다. 난 우리 아빠의 월급이 거의 재벌 수준인 줄 알았고, 서울에 있는 대학은 다 서울대인 줄 알았다. 거칠게 말하면 세상 물정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였다.
그렇지만 현실을 깨달았을 때도 난 돈 많은 사람이, 공부 잘한다는 사람이, 똑똑하고 잘났다는 사람이 부럽지가 않았다. 난 그런 사람처럼 될 수 있다고 해서 홈스쿨링을 해온 나의 삶을, 우리 가족과 함께하는 행복한 이 삶을, 책으로 가득하고 기쁨으로 가득한 나만의 삶을 내놓지 않을 것이었다.
천성적으로 단순한 것에 쉽게 만족하는 성격인 것 같긴 한다. 그렇다고 기준이 낮은 건 아닌 것 같다. 난 행복은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기 시작했다. 그 이유를 알고, 그 이유대로 살아야 가치 있고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부모님께, 교회에서 항상 듣는 정답이 있었다.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
이해는 됐다. 내가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 내가 그렇게 살아야 할 필요도 느꼈다. 그렇지만 너무 추상적이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지가 궁금했다. 많은 선배 그리스도인이 각자의 삶에서 자기가 잘하고 좋아하는 것으로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렸던 것처럼 나도 나만의 방법, 소명을 찾고 싶었다. 내가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으로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리는 삶.
어떤 직종을 선택하기 전에 먼저 나의 삶의 비전을 찾으라고 엄마 아빠께서 조언해주셨듯이 나도 나의 비전, 삶의 이유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런 질문을 하기 시작하니 내가 글을 쓸 때 그런 내용과 관련된 것이 많았고, 감동 받고 기억에 남는 문학 작품들도 그와 관련된 것이 대다수였다.
<하늘처럼>
“…하늘처럼 살고 싶습니다.
우렁찬 울음으로 시작했듯이
항상 한결같이 푸르게
항상 기다리며
항상 아름답게
마지막이 하늘 같았으면 좋겠습니다.
노을을 보며 미소 지을 수 있듯이
마지막까지 아름다움으로
하나님이 미소 지으셨으면….
항상 푸르고
마지막까지 아름답게
하늘처럼 살고 싶습니다.”
-자작시
<서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
윤동주 시인은 내가 우리나라 문인 멘토를 찾고 싶어 할 때 위인으로서 존경했던 걸 넘어 정말 좋아하고 존경하게 된 분이다. 이상하게 이렇게 시대 차이가 많이 나는데도 나와 생각이 비슷하신 것 같았다. 나도 그렇게 살기를 원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그의 마음은 나에게도 전해져 왔고, 큰 감동을 내게 안겨 주었다. 직접 만나 뵙지는 못했어도 윤동주 시인은 나의 고민을 함께 공유하고 나누는 친구이자 멘토가 되었다.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는 내 꿈이자 삶의 목표가 너무 이상적인 건 아닐까, 과연 내가 글을 쓴다고 해서 누구에게 영향을 미칠까, 그 주어진 길을 걸어가는 게 바보 같은 짓은 아닐까, 그게 과연 진짜 내 길이며 내가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걸까. 질문하고 질문했던 내게 윤동주 시인의 삶과 시는 충분한 확신이 되어 주었다. 이미 나에게도 엄청난 힘을 주고 있지 않은가! 이렇게.
난 학교에 다니지 않고 지금까지, 아직도 홈스쿨링을 하고 있는 홈스쿨러다. 남들과 삶의 방식도 모습도 달랐고 그러다 보니 생각도 많이 달라졌다. 나보고 인생 2회차냐고 묻는 분도 있으셨다. 가족들도 나보고 특이하다고 그런다.
내가 왜 태어나서 어떤 이유로 이렇게 살아야 했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궁금했다. 그냥 내가 경험해 본 걸로 따져 보아도 삶의 목적은 돈, 명예, 사랑 등 그런 것이 될 수 없었다. 사실 한 사람에게라도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 사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이런 생각을 나의 인생 선배들이 했다는 걸 어렸을 때부터 들으면서 자랐고, 그래서 나도 생각이 좀 더 성숙해지지 않았을까.
거창하게 비전을 선포했었다. “사람들에게 진정한 희망을 전하는 사람.”
멋있게 얘기했다. 멋있어 보이고 싶은 마음이 살짝 있었다. <홈스쿨링하며 살아온 소녀, 멋지게 꿈을 이뤄내다!> 이런 거. 해 보고 싶었고 사실 해 보고 싶다. 홈스쿨링이란 삶이 참 소중하고 특별하지만, 남들과는 다른 길이었기에 편하고 평범하게 살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새롭게 만나는 친구들마다 자기만의 생각으로 홈스쿨링을 정의하고 있는데 다시금 설명해 주어야 하는 이 수고를(진짜 귀찮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왠지 모르게 느껴지는 애처로움을 알까.
그러나 힘들긴 해도 세상에 좋은 영향을 미치고 싶었던 것이다. 외로워도 꿋꿋이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걷고 싶었다. 사실 나의 삶의 시작부터가 다른 이들에게 도전이 되는 모습이긴 한다고 들었다(부모님이 시작하신 것이지만).
내 뒤를 돌아다보았다. 괜찮았던 것 같다. 어떤 목표를 가지고 노력하는 것도, 멀리 있는 것을 위해서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것도 좋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해온 대로 매일매일의 삶에 충실한 것, 그것도 결국 내가 되고 싶은 모습으로 향해 나아가는 발 받침이 된다고 난 믿는다.
그래서 난 노력한다. 최선을 다한다. 현실을 알지만 허무맹랑한 꿈도 꿔 본다. 아직 미래는 다가오지 않았으니까. 열심히 준비하다 보면 될 수도 있으니까. 안 될 거라는 말에, 터무니없어 보인다는 생각에 꿈꿀 기회를 놓치고 싶진 않다.
아직 미래는 다가오지 않았으니까 현실적인 목표를 세우고 도전도 해 본다. 더 성장할 나를 위해서. 난 가끔 상상해 본다. 내가 상상하는, 꿈꾸는 그 자리에 서 있을 나의 모습을. 상상이어도 좋다. 꿈일지 몰라도 내 미래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니까.
그래서 난 오늘도 살아간다. 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물으며. 저 멀리 지평선을 보다 다시 내 발 앞을 보면서 걸어간다.